[팩트파인딩넷 바로가기] http://www.factfinding.net/figures/110
출생
- 부산 (1951)
학력
- 美 튤레인대 법학 박사 (1983)
- 美 마이애미대 비교법학 석사 (1981)
- 美 튤레인대 법학 석사 (1980)
- 경기고 졸업
- 서울대 법대
주요 경력
- 중앙대 법과대 학장 (2001~2003)
-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1995~2003)
- 중앙대 법과대 정교수 임명 (1993)
- 중앙대 법과대 전임교수 임용 (1983)
이상돈이 본 이정희: '딱 부러진 자세 인상적' 

憲法 '영토조항' 개정론자 심상정에겐 '한 표 찍을까 생각 했었다' 밝혀 金泌材 

심상정(사진 중앙)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블로그 주요 기사에 게재되어 있는 사진. 사진 우측에 보이는 인물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교수이다/심상정 공식 블로그 캡쳐
이상돈 시리즈-4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민노당 출신 정치인인 이정희와 심상정에 대해 각각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인 변호사”, “한 표 찍을 생각을 했었다”면서 從北-左派 세력의 대명사인 두 인사를 극찬했던 인물이다.이정희(민노당 대표)와 심상정(前민노당 의원)은 현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국보법 폐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 주한미군철수, 한미동맹체제 해체를 직접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韓美FTA반대 국회 최루탄 테러의 주역인 김선동 의원이 통합진보당의 원내 부대표이다. 원내대표는 강기갑 의원이다.
■ 천안함 침몰 당시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을 부정했던 이상돈 교수는 2008년 총선 이후인 4월9일 ‘총선 결과 소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정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민노당 비례 3번으로 입성한 이정희 변호사가 눈에 띤다. 국방부 회의 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이정희 씨는 비록 나와 노선은 다르지만 소신 있고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인 젊은 변호사다. 그런 ‘투사’가 진보 쪽에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누구 말대로 한쪽은 ‘명사’가 많고, 다른 쪽은 ‘투사’가 많은 것이다.”
이정희는 서울대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원임용양성평등위원회 위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감사 등을 지내다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이다.
이정희는 韓美FTA국회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린 데 대해 2011년 11월2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김선동 의원, 오늘 하신 일에 대해서 저는 같은 민주노동당 의원이고, 또 당 대표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윤봉길 의사였다, 안중근 의사였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었다.
■ 이상돈 교수는 <경향신문> 2011년 6월14일자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7)/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에서 심상정과 대담을 나눈 뒤,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후기를 남겼다.
李교수는 후기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협상에 반대했던 활동으로 기억되었던 심 대표는 2008년 초에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물론 노회찬 대표와 함게 민노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만든 사건이다. 당시 ‘보수의 승리’에 도취된 이른바 보수 매체는 진보신당의 ‘종북주의 탈피’를 극구 찬양하고 나섰지만, 나는 노조의 뒷받침이 없는 진보 정당이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2008년 총선결과는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는 광우병 파동 때 TV토론에서였다. 나는 정부 측 패널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심 대표를 포함한 야권 측 패널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작년 지방선거 때 심 대표에게 한 표 찍을 생각을 했었는데, 아쉽게도 막판에 사퇴를 했다.”
李교수는 심상정과의 “대화가 끝나고 근처의 커피숍에서 심 대표와 못다 나눈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 沈씨가 李교수에 대해 평가한 발언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심 대표는 ‘교수님 글을 자주 보는데, 다른 것은 모두 진보인데 시장을 중시하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했다. 작별인사를 하고 차를 운전하면서 집으로 오는 동안 ‘한국에서 보수를 하려면 4대강 파헤치는데 찬성하고, 검찰권 남용도 지지하고, 병역기피하고 모피 코트 거치고 살아야 하는 판이니, 이게 도무지 뭔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심상정은 자신과 李교수의 차이가 ‘시장’을 중시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다른 것은 모두 ‘진보’라고 평가했다. 참고로 제17대 대선 당시 민노당 후보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던 심상정(前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영토조항 변경, 南北정상회담 개최, 국보법 폐지, NLL(북방한계선) 폐지, 韓美전시증원훈련 중단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從北정당 민노당 대표 출신의 이정희를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민노당 후보로 대선까지 출마했던 심상정을 총선에서 찍을 생각까지 했다는 이상돈 교수.
李교수는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이정희와 심상정이 공동대표로 있는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해야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았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容共조작의 元祖' 매카시즘까지 옹호한 이상돈의 표변 

극우는 극좌와 통한다더니... 金泌材 

감정의 기복이 커서 자주 극단(極端)을 오가는 인물은 늘 경계의 대상이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保守 진영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일례로 그는 2007년 국민행동본부가 주최한 <노무현 대통령 형사고발 설명회>에 연사로 나와 “대한민국 대통령은 反국가단체 활동이나 反국가단체에 가입되어 있다고 해도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있다”면서 우리 憲法의 문제점을 제기했었다.같은 해 5월에는 모 保守단체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집권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든다...(중략) 愛國 진영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다시 세우거나, 도저히 불가능하면 한나라당을 대신할 정당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이에 앞서 2004년 11월에는 <동아일보> 시론(제목: 逆매카시즘의 함정)을 통해 ‘매카시즘’을 옹호하기도 했다. 李비대위원은 “(매카시)의 주장이 진실에 근접해 있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한 사람은 대개 간첩과 공산주의자, 그리고 중국 등을 공산당에 넘겨준 무능한 관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미국에선 매카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進步니 左派니 하는 사람들이 문제만 생기면 ‘매카시즘’을 들먹이고, 保守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요즘 세태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우스운 것이 될지 모른다”고 했었다.李비대위원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의 보수논객 앤 코울터(Ann Coulter)의 주장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코울터에 따르면 舊소련의 기밀문서와 미국의 기밀문서(특히 NSA의 ‘베노너 프로젝트’ 기록)를 보면 매카시의 주장의 대부분이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주류 역사학계에서 ‘부인주의’(否認主義)로 취급되고 있다. 매카시 상원의원이 간첩으로 지목했던 159명 인물들 가운데 실제 간첩의 증거나 의혹이 있었던 인물은 단지 몇 명에 불과했다. 이런 비율은 우연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다.
매카시즘(McCarthyism)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그가 옳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내놓는 자료로 ‘베노나 프로젝트’(Venona Project) 문서(1995년 공개)를 인용한다. ‘베노나 프로젝트’는 NSA와 그 전신인 육군 무선정보국이 1943년부터 소련의 암호교신을 해독한 기밀작전이다. 베노나 문서는 로젠버그 부부와 앨저히스, 해리 화이트 등이 모두 소련의 간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문제는 베노나 문서에 나타난 명단과 매카시 의원이 간첩으로 지목했던 명단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카시즘을 옹호했던 李비대위원이 이영조 후보의 과거 영문(英文) 보고서를 문제 삼은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만부동(類萬不同)한 행위다.
14일 공천이 전격 취소된 李공동대표는 과거사정리위원장이던 2010년 英文 보고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을 ‘민중항쟁(popular revolt)’, 제주 4·3사건을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폭동(communist-led rebellion)’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상돈은 이걸 문제 삼아 공천을 취소시키는 데 앞장 섰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표현임에도 선동꾼들이 문제를 제기하니 사실 與否를 무시하고 좌파와 투쟁해온 이영조 후보를 몰아낸 것이다.지금 李비대위원이 하고 있는 짓이 ‘매카시즘’류의 선동이다.
李비대위원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시위의 배후는 없는 것 같다”고 했으며,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에는 우리 軍의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했었다. 민노당(現통진당) 대표 이정희에 대해서는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이라고 했으며, 憲法의 영토조항 개정론자인 심상정 前민노당 의원에 대해서는 “한 표 찍을까 생각했었다”고 말했었다.
從北좌파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골라서 하면서 대한민국 수호 세력의 등에 칼질을 하던 그가 비대위원이 되어 보수적 가치와 보수적 투사들을 공격하는 건 목불인견이다.
天地분간을 모르는 철부지와 함께 선동꾼들의 장단에 맞추어 칼을 휘두르는 게 꼭 '늙은 홍위병'이다.
극우는 극좌와 통한다더니...
이상돈, 4대강 사업 반대 '분신(焚身) 승려' 옹호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주장 金泌材 

이상돈 한나라당 비대위원. <1>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교수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며 분신자살(焚身自殺)한 승려를 베트남 전쟁 당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던 승려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비구니(比丘尼) 문수(文殊)는 2010년 5월31일 경북 군위군 사직리 유천잠수교 제방에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온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焚身自殺)했다.
당시 승려 文殊의 이른바 소신공양(燒身供養: 부처에게 공양하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위) 소식이 알려지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퇴휴,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등의 인물들이 현장으로 급파되어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사건에 대한 李교수의 해석이다. 그는 2010년 6월1일자 칼럼(제목: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 소식을 접하며)에서 文殊 승려를 언급하며 “스님의 소신공양은 1960년대 초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당시 월남 스님들의 연속 분신은 세계적 뉴스였고, 그것은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분신 사태가 일어나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고딘디엠 대통령의 동생인 실력자 고딘 누의 부인인 마담 누는 승려 분신을 '바베큐'라고 부르면서 악담을 했다. (고딘디엠은 독신이어서 제수인 미모의 마담 누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마담 누는 “바베큐에 쓴 휘발유가 미제라서 완전한 국산이 아니다” “다른 승려가 분신을 하겠다면 자기가 휘발유를 공급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독설을 퍼부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런 형제 집권자를 두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은 월남 군부를 조종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승려 분신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결국 실패했음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참고로 승려 文殊는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범종추(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범종추는 1994년 3월23일 실천불교승가회, 동국대석림동문회, 선우도량 등 8개 승가단체가 결성한 소위 ‘불교계 진보(進步)단체의 집합체’로 알려져 왔다.
범종추는 조계종단 개혁과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운동을 벌여 1994년 4월 조계사 폭력사태를 계기로 일반신도와 조계종 원로들의 지지를 얻어 徐총무원장 퇴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베트남, 소위 평화-민족-인도주의 위장세력의 선전-선동으로 패망
<2> 베트남 전쟁당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자유베트남)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 동조자를 포섭하고 각 분야에 간첩을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는 등 정부가 힘을 집중시키기 못하도록 했다. 1975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개 이상의 左翼 단체의 선전전에 당했던 것이다.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1963년 6월 11일 분신자살(焚身自殺)한 승려 '틱쾅둑'(Thich Quang Duc) 이후 베트남에서는 종교인들의 분신자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면서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의 부패척결운동과 反美·反戰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애국인사, 언론인들이 다음날이면 시체로 발견됐고, 이들의 가족-친지들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이상돈 교수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의 칼럼 말미에 “정부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공사를 밀고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일어나 일들이 정말 걱정된다”고 했다.
승려의 自殺을 선거에 이용한 이정희, 한명숙, 정세균<3> 승려 文殊가 분신자살(焚身自殺)하자 민노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野) 4당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010년 6월1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을 표로 심판해야 한다면서 여론을 선동했다.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서울광장에서 한명숙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 야(野) 4당 대표들과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어제 文殊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셨다. 국민 여러분, 시민 여러분 꼭 투표장에 나가달라. 정권 심판, 정책 변경하는 방법은 투표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명숙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文殊스님의 분신을 보며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에 근로자나 노동자의 인권이나 환경의 발전이 계속됐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언론에서는 文殊스님의 소식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단신정도로만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호소를 해도 공정하게 보도되지 않으면 우리는 발전할 수가 없다. 기자 여러분들, 목소리를 공정하게 내달라”고 했다.
민노당의 이정희 의원은 “文殊스님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다 돌아가셨다”면서 “MB 정부는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정권이다. 국민이 심판해주지 않으면 4대강을 살릴 기회가 다시는 없다”고 주장했다.
李의원은 이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뤄냈던 40대 동년배 여러분, 50~60대 어르신 여러분, 현재 우리 젊은이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어른들의 복지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주: 위 기사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自殺한 文殊 승려가 간첩행위 등 反국가 활동 전력은 없었음을 밝힌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 |
![]() |
'같은 당 후보끼리 싸우면 본선에서 지기 마련' |
| 金成昱 |
![]() |
|
<아래는 5월4일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4.25재보선 평가세미나(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에서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의 발언 요지이다> 많은 사람이 경쟁을 해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얘기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얘기다. 미국의 예를 들자. 아버지 부시는 밥 돌 후보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에너지를 탕진했고, 결국 本선거에서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7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도 레이건과 막상막하의 경쟁을 벌인 포드는 本선거에서 카터에게 맥없이 지고 말았다. 68년 本선거에서는 야당 후보였던 공화당 닉슨이 압승했다.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와 유진 맥카시가 각을 세우는 동안 미리 준비한 결과였다. 같은 당 후보끼리 싸우면 本선거에서는 지기 마련이다. 한나라당 역시 「운하파(派)」와 「페리파(派)」가 이전투구(泥田鬪狗) 해 온 결과, 12월 대선 승리 가능성이 사라져 버렸다. 97년 대선 당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이 못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50만~100만 표는 모자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는 DJP연합을 성공시켰고, 전국을 돌며 은밀하게 「그린벨트 해제」를 유포시켰다. 기사에는 나오지도 않은 이런 약속은 지역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는 수도이전 공약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발표 직전까지 깜깜 무소식이었고, 대응이라고 내놓은 것도 『서울아파트값 폭락』이라는 반론이었다. 충청권 여론을 무시한 발상이었다. 마치 프로와 아마츄어의 싸움을 보는 듯 했다. 이명박, 박근혜가 「운화」와 「페리」를 주장하는 것은 죽을 꾀를 쓰는 것이다. 고속도로라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 운하를 타고 오면 대전에서 서울까지 이틀은 소요될 것이다. 「운하」와 「페리」는 시계바늘을 100년 전으로 돌리는 일이다. 본선에 접어들어, 범여권이 TV토론에서 몇 번 공격해 버리면 한나라당 후보들은 네안데르탈인으로 몰릴지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汎보수언론들 사이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말도 안 되는 쇼에 대해 입을 닫는다. 자격이 없긴 강재섭씨도 마찬가지이다. 『비핵 반전 평화』라는 좌익의 상투적 구호를 당의 공식슬로건으로 내걸지 않았나? 이런 모습들을 보다보면 한나라당 집권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재보선 결과가 지금 나와 시간을 벌었다. 애국 진영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다시 세우거나, 도저히 불가능하면 한나라당을 대신할 정당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나와, 그나마 조금 남아 있을 한나라당의 애국 세력과 연대해서 정치판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정리 김성욱 기자 |
| |
![]() |
'촛불시위 10대~30대 바다, 여학생 파워 대단' 극찬 |
| 프리존(金泌材) |
![]() |
지난 대선서 이회창 총재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이 교수는 11일 자신의 홈페이지(www.leesangdon.com)에 게재한 칼럼에서 “보수성향의 어르신들은 류근일 선생의 칼럼, 조갑제 선생과 김성욱 기자의 책을 사서 탐독한다. 문제는 이런 분들은 류근일·조갑제·김성욱 씨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보수는 완전히 실패했다. 보수의 완전한 패배는 교보 문고에 가보면 안다. 진보 좌파 책 일색이기 때문”이라며 “보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파는데,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적 자위행위’라고나 할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촛불시위를 보면 그야말로 ‘10대~30대의 바다’이다. 특히 여학생 파워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중략) 이들과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면 ‘배후’를 척결한다고? 그런 확실한 ‘배후’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2008년 6월,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나는 곤혹스러울 뿐이다..(중략) 보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칼럼에서 지난 10일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등 애국단체들이 주도한 ‘국민대회’를 취재한 동아일보 기사를 언급하며 “이회창 총재에 대한 (국회 등원) 기사와 보수단체 집회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다. 조선일보에는 없는 일”이라면서 “동아일보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나를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며칠 전 동아일보에 실린 김순덕 칼럼이 생각났다. ‘시위는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대립이며 시위참여자는 반세계화 세력’이라는 내용의 칼럼이었다”며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 점포를 부셨다면 반세계화 시위일 것이지만, 이 점포들이 시위 때마다 매출이 서너 배 오른다면 그런 시위대가 오히려 세계화 세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한편, 촛불집회에 ‘배후는 없다’는 이 교수의 주장과 달리 정통우파 진영 시민단체 및 조갑제·김성욱 기자 등의 우파 언론인들은 ‘촛불집회’의 주동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래 친북반미(親北反美) 소요를 주도해온 인물 및 조직이라고 일관되게 지적하며, 대(對)좌파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관련, 좌익추적 전문기자인 김성욱 기자는 최근 <프리존> 칼럼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라는 단체는 170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했다고 하지만 핵심은 좌파단체 회의체에 해당하는 ‘한국진보연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우병대책회의 대표 급으로 활동하는 오종렬·한상렬·강기갑·천영세·이석행 등은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라며 “오종렬·한상렬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이며, 강기갑·천영세 의원은 한국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노당 소속이고, 이석행 역시 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 민노총 대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실무진도 마찬가지다. 5월15일 광우병대책회의가 작성한 내부 회의문건에 따르면, 상황실 상근자 12명 중 운영위원장, 사무처장, 대변인 등 핵심간부 6명이 모두 한국진보연대 소속”이며 “나머지는 참여연대가 4명, 다함께 1명(半상근), 나눔 문화 1명(半상근)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김 기자는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달 6일 광우병대책회의 출범식장에서 당시 행사의 사회를 맡아 분위기를 이끌었던 박석운은 한국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었고, 기자회견장 맨 앞자리에는 있던 강기갑·천영세·오종렬·이석행·한상렬 등의 인물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다. 한편, 한국진보연대는 지난 해 9월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 3개 단체를 계승해 출범했고, 이들 단체 역시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한미동맹파기·615선언실천’을 강령상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아래는 이상돈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게 게재한 칼럼의 전문이다. '보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있다' 나는 6-25 전쟁 중 부산 피난시 태어 났으니 몇년 후면 '환갑'이 된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 참으로 빠르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교수 생활을 한지도 이제 25년이 되어서, 본의와 관계없이 학내에선 '원로교수'가 됐다. 교수라는 직업이 좋은 것은, 늘 젊은이들과 생활하는 것이다. 새 학기가 되면 싱싱한 새 얼굴들은 보는, 그 기분이 바로 교직을 하게 하는 아드레나린이다. 지난 몇년 동안 나는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 강연회, 포럼 등에 몇차례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서글프게 생각했던 것은 도무지 내가 가장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어르신은 '이제 당신 같은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50대 중반의 원로교수'에게 충고까지 하셨다.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야외 집회도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나이 든 분의 국가관이 보수적이고, 그분들이 살아 온 과정이 우리 사회의 이 시점에 주는 교훈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가 알아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보수 성향의 어르신들은 조선일보의 류근일 선생의 칼럼을 열심히 읽고 공감한다. 또 조갑제 선생과 김성욱 기자의 책을 사서 탐독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들은 류근일, 조갑제, 김성욱 제씨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데 있다. 어차피 자기 생각을 확인하는 것 뿐이다. 글은 남의 생각을 움직이는데 의미가 있다. 교육이 중요한 것은 흰 도화지 같은 젊은이들의 머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수는 이 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어설픈 실정 때문에 30% 지지 갖고 이명박 씨가 대통령직을 따내서 보수가 승리한 것으으로 보일 뿐이다. 보수의 완전한 패배는 교보 문고에 가보면 안다. 진보 좌파 책 일색이기 때문이다. 보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파는데,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적 자위행위'라고나 할까. 도서 시장의 좌편향을 부추긴데는 보수 신문 '조 중 동'의 역할도 적지 않다. 보수 신문이고 '친이명박 신문'이라고 해도 토요일 북 섹션은 전혀 딴판이다. 그래도 조선일보가 조금 낫고, 동아일보는 진보 편향이 특히 심하다. 볼만한 보수 성향의 책이 나오지 않는 것도 원인이기는 하지만, '문화' 그 중에서도 책 시장이야 말로 가장 좌편향 되어 있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요즘 쇠고기 촛불시위을 보면. 그야말로 '10대-30대의 바다'이다. 특히 여학생 파워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 진치고 있는 좌파 진영을 초라하게 보이게 할 정도의 대단한 위세가 아닐 수 없다. 도무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 이들이 과연 전교조와 좌파 미디어의 선동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말인가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그토록 크단 말인가 ? 손에 손에 휴대폰과 디카를 든, 이 풍요한 세대를 누가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 그들의 분노가 '일시적 감정의 분출'이고 '유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감정'과 '유행'이 한 나라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킨다면, 이건 나라가 아니다. 이들과 싸운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된다. 그러면 '배후'를 척결한다고 ? 그런 확실한 '배후'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2008년 6월,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나는 곤혹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보수는 이제 마지막으로 패배하고 있다' 좌편향 도서시장의 암울한 현실 아무리 우리나라 보수진영이 ‘진보 좌파 세력’을 ‘친북’이니 뭐니 하고 불러도 이기기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주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도서 출판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대단히 좌편향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나라가 세계에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보수진영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 좌파가 보수를 만만하게 보는 것입니다. 출판사는 팔리는 책을 만듭니다. 서점은 팔리는 책을 진열해서 팝니다. 보수는 책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습니다. 물론 최근에서 보수 성향 출판사가 책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대체로 자비 출판 정도의 책입니다. 자기들끼리 돌려 갖고 마는 책입니다. 상품은 시장에서 승부해야 하는 법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닙니다. 아래는 지난 주(5월 4주)의 교보문고 사회/정치/법 분야 베스트셀러 1위-60위 도서 리스트입니다. 베스트셀러 60위권 책을 제가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60위까지 보면, 진보 성향이 36권, 보수 성향이 1권, 이념 중립이 23권입니다. 40위까지 끊어 보면, 진보가 26권, 보수가 1권, 중립이 13권입니다. 20위까지 끊어 보면, 진보가 12권, 중립이 8권입니다. 단 한권의 보수 책은 제가 번역한 앤 코울터의 ‘반역’(Treason)입니다. 29위를 했더군요. 요즘 불붙은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은 예정된 것입니다. 6월 10일 시위, 6월 11일자 동아일보 1. 6월 10일 시청 시위 참관 소감 - 보수 단체 집회는 5000명이 모였으니, 나름대로 성공이었다. 하지만 역시 모두 어르신내들 뿐이다. - 이 모든 것이 '좌익의 음모와 조직적 행동'이라고 흥분하는 한 지인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놈들을 때려 잡아야 한다'고 흥분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에 이것이 '엄청난 좌익의 음모'라면 이미 그들의 음모는 멋지게 성공한 것이고, 우리는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 같이 구경했던 이 아무개 형은 상당히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시청 앞 던킨 도너츠 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도너츠를 먹는, 정다운 모습의 젊은 연인, 젊은 부부,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 모두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적힌 시위물건을 들고 있었다. 며칠전 동아일보에 실린 김순덕 칼럼이 생각났다. 시위는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대립이며 시위참여자는 반세계화 세력이라는 칼럼이었다. 스타벅스와 던킨 도너츠 점포를 부셨다면 반세계화 시위일 것이다. 하지만 던킨 도너츠와 스타벅스 커피솝이 시위 때마다 매출이 서너배가 오른다면, 그런 시위대가 오히려 세계화 세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엘친의 하야와 부틴의 대통령 취임 과정이 어떠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또 워터게이트 사건 후 탄핵절차에 들어가자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한 타임지 사설이 머리를 스쳐갔다. 사설을 싣지 않는 타임지가 사설을 실었던 유일한 경우였다. 정말 잘 쓴 영어 문장으로,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나는 그 사설을 몇번씩 읽었다. 당시 타임지 편집장 도노반이 쓴 그 사설의 제목은 'The President Should Resign.'이었다. 요지는 닉슨이 이미 신뢰를 잃어 버렸고, 더 이상의 법적 절차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닉슨은 사임했다. 우리 사회에는 타임과 같은 언론도 없다. 한국 언론은 어차피 파당 언론이기 때문이다. - 잘 아는 현직 언론사 간부를 우연히 청계광장에서 만나서, 같이 허허 웃고 말았다. 2. 6월 11일 아침 동아일보 - 이회창 총재에 대한 기사와 보수단체 집회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다. 조선일보에는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나를 잘 보여 준다. 작년 연말 이회창 출마 선언시 연일 비난의 폭탄을 퍼부었던 것이 동아일보다. 과거에 동아일보는 보수단체의 집회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일제에 대항하고, 유신정권과 싸웠던 그 '동아일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