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思派 등 386운동권 출신이 가장 진을 친 곳은 초·중·고교와 대학이었다. 건국과 근대화 과정에서 實事求是(실사구시) 마인드를 가진 軍人·商人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자 과거의 물적 토대를 빼앗긴 좌파는 일종의 書院(서원)으로 들어갔다. 名分論(명분론), 觀念論(관념론)으로 무장해 토치카(tochka)를 건설한 것이다.
초·중·고교와 대학 등 학원가 진출은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主思派는 교내 운동권에서 사회로 진출할 이들을 위해서 ‘投身(투신)팀’을 운영했다. 主思派에서 전향한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사무총장은 “主思派 이념을 가지고 교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고시를 보고 심지어 군인이 되라고까지 교육했다”고 말한다.
名分論과 觀念論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나오기 어렵다. 기업·회사·공장,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에선 실용과 실리가 지배한다. 세칭 ‘돈이 없는’ 이들은 운동권 활동을 했어도 현실로 돌아간다. 먹고 살아야 하는 탓이다. 386운동권은 ‘學校’를 좌익 名分論·觀念論을 쫓기 위한 서원으로 삼아 이념을 확산해갔다.
21세기 강남 좌파가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교수나 교사는 물론 판사·변호사 등 일종의 書院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준 직종에 從北세력이 많은 이유도 동일하다. 먹고 살만하니 이미 망한 사회주의의 실험을 또 다시 할 여유가 생긴다. 생활은 親美-자본주의적으로 살면서 의식은 反美-사회주의적 기저에 머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일제시대 地主 자손이 좌익이 됐던 이유와 유사하다.
書院에 들어간 386운동권 출신 중 과거의 극단적 이념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反韓·反美·親北의 좌파적 쏠림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조국 교수 같은 부류도 그렇다. 그는 서울대 82학번으로 울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국보법 위반 혐의로 實刑(실형)을 살았다. 이후 서울대 교수가 돼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의식은 386운동권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이 물적 토대를 주는 토치카 역할을 해주니 마음껏 과거의 관념론·명분론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書院 토치카에서 이죽대는 강남좌파들
- 金成昱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2-04-07, 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