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 가운데 한국과 북한을 똑같이 보는 이들을 ‘너무나’ 많이 만난다.
“북한은 김일성을 섬기지만 한국은 돈과 물질을 섬긴다” “김일성우상숭배나 돈·물질숭배나 다 나쁜 것 아니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돈·물질숭배에 대한 회개이다. 북한을 욕하는 건 우리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보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남북한 모두 惡(악)이라는 兩非論(양비론)을 펼치고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며 ‘재벌착취(?)’ 등 소위 사회문제를 거론한다. 그리곤 통일의 주역은 남한도, 북한도 될 수 없으니 새로운 한국(New Korea)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남북한 兩非論은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을 유혹하여 이른바 ‘左派기독교인’을 만들어낸다. 유물론에 터 잡은 사회주의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음에도, 햇볕정책 아래서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결국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혼합이 벌어진 셈이다.
남북한 兩非論은 自由의 본질을 왜곡한 것일 뿐 아니라 眞實(진실)이 아니다. 왜 그런가? 한국에서 돈·물질숭배가 있을지 모르나 强制(강제)된 것이 아니다. 반면 북한에서 이뤄지는 김일성숭배는 强制된 것이다. 김일성숭배를 안 하면 죽임을 당하는 곳이 북한이고 돈·물질숭배는 조롱을 받는 곳이 한국이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한국과 그 자유가 완벽히 박탈된 북한을 동일시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비유이다. 聖經(성경) 이전에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억지거나 불평·불만으로 진신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떠드는 궤변이다.
북한은 김일성 우상에 절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이다. 주민을 통제하는 절대적 규범인 ‘10대원칙(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은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여야 한다(1조)”로 시작된다. 1조6항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화, 동상, 초상휘장, 수령님의 형상한 미술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북한은 ‘김일성 초상화에 낙서’를 했거나 ‘먼지가 쌓였는데 안 딱은 사람’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는 곳이다. 허만호 著 《인민의 天國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에 나오는 탈북자들 증언이다.
▲“회령 사는 사람인데. 노동신문에 나온 김일성 초상화를 장판 밑에 깔았어요. 구들장 수리하는 사람이 그걸 보고 신고했습니다. 초상화 유리를 깨먹어도 처벌을 당해요(탈북자A)”
▲“김일성 초상화 유리를 팔아먹고, 대형 초상화 유리 팔아먹다 걸린 사람들이 공개 처형당했습니다(탈북자B)”
▲“노동신문에 나오는 김일성 사진으로 담배를 말아 피워서 교화형 4년을 당했다(탈북자C)”
▲“김일성 초상화를 건드려 초상화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지는 바람에 말 반동까지 포함해 교화소 3년 형을 살았다(탈북자D)”
영국 청교도들은 “풍요는 그 어머니 敬虔(경건)을 잡아먹는다”고 自警(자경)했었다. 한국인들은 60년 세계사적 성장과 성취를 얻고도 감사를 잊어 가고 있다. 더 많은 돈·물질을 얻지 못한 것을 불평하며 심지어 한국도 북한과 다를 바 없는 地獄(지옥)이라는 말까지 뇌까린다. 이런 말은 돈·물질숭배에 빠진 자들의 푸념일 뿐이다. 돈·물질을 쫓다가 채우질 못하니 애꿎은 세상 탓을 하며 사회주의라는 환상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를 존재케 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은 더 많은 성장과 성취의 전제조건이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을 망치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길이다.
北은 김일성숭배, 南은 돈·물질 숭배한다고 욕하는 사람들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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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7, 1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