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재/토론방
제목 : 김정일은 전쟁의 두려움을 모른다
[보천보 전투와 6·25]
김일성도 6·25 전에는 전쟁의 두려움을 몰랐던 듯하다. 기껏 자랑하는 항일투쟁이 국내 갑산파의 도움을 받아 함북 갑산군 혜산진에서 일본인 경찰 7명을 죽인 보천보 습격 사건(1937년 6월)밖에 없다. 중공군 동북항일연군의 일개 중대장 정도의 지위에 있었던 김일성이 중공군에 소속되지 않고 조선인만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맞선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최대 70만에 이르렀던 일본의 관동군과 맞서려면 최소한 10만 이상의 중무장 병력이 필요했는데, 뿔뿔이 흩어진 조선 독립군은 아무리 긁어모아야 몇 천 명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독자적으로 군사활동을 할 수 있는 단위 부대는 많아야 100명 수준이었던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1920년 6월) 승전과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1920년 10월) 승전 이후 1,000명 이상의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일본군이나 일본 경찰, 조선 총독부에게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김구의 명을 받아 이봉창(1932년 1월)과 윤봉길(1932년 4월)이 일본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진 것이 가장 큰 무장 항쟁이었다.
독립의 뜻만 가상했지 현실적으로 조선은 일본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이나 소련, 미국의 도움 없이는 독립은 백년하청이었다.
김일성은 중공군에 속했다가 나중에 소련군에 속함으로써 그 자신조차 감히 상상도 못했던 '조선의 왕'이 되었다. 어쩌다 줄을 잘 서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자 그는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의 왕'이 되자,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줄 착각하게 된다. '통일 조선의 왕'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립에 기여한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는데, 만약 남북 통일을 달성하면 그 누구도 그를 영웅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때마침 미군이 철수하고 한국은 정치가 지리멸렬하고 경제는 낙후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여 공산주의 사상이 곳곳에 파고들고 군대는 제식 훈련이나 겨우 받을 정도로 허깨비나 다름없음을 보고, 소련으로부터 현대 군사교육을 받고 소련의 탱크와 비행기와 소총과 대포를 지원 받아서 기습남침하면 차 한 잔이 식을 시간에 한국을 접수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음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중공도 여차하면 도와 주기로 했으니까 '잃을 것은 38선이요 얻을 것은 통일'이라고 호언할 수 있었다.
미군과 UN군과 국군이 거세게 밀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김일성은 비로소 전쟁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본다. 또한 중공이 도와 주긴 하되 조선 인민군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미국에 맞서 신출귀몰한 유격전과 당당한 정규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후 두 강대국이 교대로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전쟁의 무서움을 더욱 실감했을 것이다.
--전쟁은 함부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구나!
[6·25 후 전쟁과 미군의 무서움을 알게 된 김일성]
6·25 후 김일성은 주한미군이 겁이 나서 아무리 공격해도 반격이 없는 '말 전쟁'이나 하고 이따금 무장 간첩을 내려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 식으로 국민들이 한 눈 팔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오로지 정치 권력을 다지기 위해서 날마다 전쟁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김일성은 독립 투쟁과 6·25를 철저히 날조해서 '김일성 소설'을 수십 번 고쳐 쓰게 하여 '불세출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또한 국경을 철저히 폐쇄하여 북한 사람들의 이목을 완전히 차단하고 끝없는 반복 학습을 통해 그는 마침내 '태양신'으로 중천에 높이 떴다.
그에게는 권력과 부와 명예와 쾌락, 이것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에 입신양명을 꿈꾸던 봉건사상이 그의 뇌리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일제말처럼 전쟁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실지로 다시 남침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렇게 외부에 적대 세력을 만듦으로써, 일제뿐만 아니라 미제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허풍을 침으로써 그의 독재와 실정에 대해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권력과 부와 명예와 쾌락, 이것밖에 없었다.
[6·25 후의 북한군은 독재의 수단]
6·25를 통해 미군의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죽는 날까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한 남침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음에 틀림없다. 그 날로 부귀영화는 거품처럼 사라졌을 테니까. 미군이 국군과 함께 북침할 것을 걱정했을까? 아마 허풍과 거짓이 안 통하는 박정희 정권 때는 그런 걱정을 좀 했을지 모르지만, 미군은 정치가 안정되고 군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국가에는 선제 공격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서 북침은 거의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죽을 때까지 또한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평생 6·25의 악몽에 시달렸다고 본다. 그만큼 미군이 무서웠다고 본다. 전쟁이라곤 남(중공군)의 위세를 업고 남(갑산파)이 다 마련해 놓은 안전지대에 가서 분탕질하여 고작 군인도 아닌 경찰을 7명 죽인 경험밖에 없는 자가 감히 300만이 죽은 전쟁을 도발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전쟁을 통째로 중공군에 맡기고 조마조마하게 쳐다만 보았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대한 바다'를 구경한 것처럼 얼마나 정신이 아득했을까. 초전에 기습 공격으로 승승장구할 때는 그래도 기고만장했겠지만, 미군이 곧바로 개입하면서 인민군이 사정없이 밀리기 시작하자 그는 혼비백산했을 것이다. 전쟁 후에는 또 얼마나 악몽에 시달렸을까.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는 김정일]
김정일은 다르다. 그는 어려움이 뭔지 모른다. 인생의 신산을 모르고 불쌍하고 약한 사람들을 동정할 줄 모른다. 어릴 때 겪은 전쟁도 그에겐 신나는 오락이었고(아버지의 군모를 쓴 자랑스러운 모습이나 군복을 맞춰 입고 으스대는 김정일 어린이의 사진을 보라),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이 황태자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보고, 그는 이 세상에는 황제와 신민 또는 황제와 노예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정계복귀와 죽음]
김일성은 최소한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그의 생전에는 배고픈 사람은 많아도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5년 이후 김정일에게 정치를 거의 일임하고 지상낙원에서 상왕 노릇을 하면서 그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다가 1993년 NPT 탈퇴와 더불어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된다. 그는 주책없는 늙은이 카터의 중재로 어벙한 김영삼과 정상 회담을 준비하면서 '혁명을 시작할 때보다 못한 경제'를 최소한 공동통치 이전인 1970년대 초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소련과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로 바뀐 상황에서 더 이상 전쟁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무모함을 깨닫고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하여 평화공존하기로 개혁개방하기로 결심을 굳혔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정치 일선에 복귀하고 얼마 안 있어 죽고 만다.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어떤 정적이든지 다 콩밥을 먹였는데, 결국 가장 믿었던 자식한테 비참하게 패배한 것이다. 죽음보다 비참한 패배는 없는 법이다. 능히 10년은 더 살 수 있었던 건강이었으나 그는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월간조선 2004년 8월호). 주치의가 없는 상황에서, 주치의가 '태양신' 곁에 없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태양신'의 나라에서 '태양신'이 심장이 발작하여 죽은 것이다.
김일성의 죽음과 더불어 '당 중앙'의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국방위원장'은 모든 걸림돌을 제거했다. 이어 총 한 방 안 쏘고 한국 대통령을 불러 들여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을 받았다. 핵 숨바꼭질로 유일 초강대국 미국도 10년간 농락했다. 미국 스스로 속았음을 인정했다(상대가 한번 속이면 상대의 수치이고 두 번 속이면 나의 수치 --존 볼턴 미국 국무차관). 그 사이 300만이 굶어 죽고 탈북자가 수십 만 발생했다. 중국을 드나든 사람까지 합하면 수백 만이 북한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김정일은 요지부동이다.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수백 만이 죽든 수백 만이 등을 돌리든 상관없다. 그리고 자신이 생겼다. 통일전선의 성공으로 한국을 준 식민지로 만드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신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걸로는 안 된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경우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심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김일성이 소련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잡고 '소설과 신화'로 민족의 태양으로 군림한 것을 잘 알므로, 김정일은 속으로 김일성을 경멸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생전에는 잘 먹고 잘 살지는 못했지만,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버지와 아들을 확연하게 구별한다는 것을 김정일이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1974년 김정일이 제2인자로서 군림한 이후 경제가 한번도 나아진 적이 없고 계속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 씨앗을 설령 김일성이 뿌렸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일제시대보다 못 살게' 된 것은 김정일 탓이라고 이심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화려한 성공 신화가 꼭 필요하다.
그 유일한 방법은 개혁개방이지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한국의 다섯 살 아이보다 모르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오로지 욕하고 저주할 줄 밖에 모르는 그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리가 없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남조선 접수'. 일거에 한국을 접수하면, 그는 김일성을 반딧불로 만들고 스스로 태양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300만을 굶어 죽인 것도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것이다. 큰 것을 얻기 위한 위대한 희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對한국 공작과 對미국 공작]
김정일도 미국이 무서운 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미국을 떼어놓는 것에 사활을 걸었고 그것이 거의 성공했다. 해방 이후 6·25까지 남로당이 한 일 이상의 일을 했다. 권력에 중독된 자는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고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데 천부적인 소질과 동물적 감각이 있다. 대신 그런 자는 오직 힘 앞에서만 굴복한다. 對한국 공작에는 거의 성공했으나 對미국 공작에는 성공하는 듯하다가 이제 산통이 다 깨져 버렸다. 문화가 달라서 처음에는 오히려 성공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가져오게 될 상황에 처했다. 거짓이 들통나면 한국 문화에는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면 된다. 그래서 여전히 김정일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정부와 여당, 방송에서 '식견 있는 지도자'로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나 통하는 방법이다. 어떤 나라에도 안 통한다. 하물며 이미 한 번 속은 적이 있는 미국에 통할 리가 없다.
이제는 최후의 일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한국 공작에 더욱 신경을 써서 민족공조와 자주평화통일의 이름으로 한국을 완전한 우군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김정일은 지금까지 실패를 몰랐던 사람이다. 마음먹은 바를 이루지 못한 게 없다. 그러나 국경을 벗어나는 순간 그는 일개 독재자에 지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숲 속의 호랑이로 착각하고서 이제 '통일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 공작에 성공한 것과 미국 공작에 성공할 뻔한 것에 고무되어 미국과 '맞짱' 뜰 준비가 되어 있다.
김정일은 한국의 독립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통일도 국제 역학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른다. 미국만 물러서면 되는 게 아니라 중국마저 물러서지 않으면 한국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 여차하면 중국이 '고구려의 고토를 수복'하려고 '동북공정'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일본과 러시아도 언제든지 '간섭'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김정일은 전쟁의 무서움을 모른다. 전쟁을 오락으로 생각한다. 전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서움도 알긴 알되 제대로 모른다. 미국과 진검 승부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한 패로 끌어들이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이 바로 그 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핵폭탄이 없었다는 것을, 그는 고려에 넣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폭탄은 미국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하룻강아지 부하가 식칼을 들고 함부로 설치는 것을 보고 호랑이 두목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아 아주 괘씸하게 생각하고 크게 손을 봐 줄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북의 핵폭탄은 일본만 이롭게 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할 절호의 기회이고 중국과 맞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6·25가 일본을 기사회생시켰듯이 김정일의 핵 개발과 제2의 6·25는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20년 불황을 단숨에 털어 버리고 비상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것이다.
김정일은 동정심이 없다. 황태자로 자라고 허수아비 황제를 앞세워 10여년간 황제 노릇하다가 정식으로 황제로 등극하여 10여년을 군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백만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관 속의 황제에게 연연하며 먼 산을 쳐다보는 자들을 무릎 꿇리는 한편 모든 군과 당으로부터 충성서약을 받는 데 골몰했던 것이다. 그에겐 어떤 인간이든 권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에겐 인간이 피와 살을 가진 노예 내지 가축일 뿐이다.
[북한의 아킬레스건]
미국이 마침내 두 번 속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6자 회담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증인으로 삼고 지하 요새와 지하 방사포와 지하 핵 시설을 폭파하기 위해 미니 핵폭탄을 만들고 있고 드디어 북한 인권법안을 제정하고 있다.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이제 상원에서 통과되기만 기다린다. 미국이 드디어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찾은 것이다. 북한에 핵이 있다면 미국에는 인권이 있다. 한국이 핵폭탄보다 강한 이 무기를 쓸 줄 모르고 도리어 미국이 이를 쓰지 못하게 교묘하게 방해하고 있는 사이, 미국이 전혀 개의치 않고 전매특허 내어 '히틀러 아비와 스탈린 아들'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한다. 나라 없던 유태인보다 비참한 탈북자와 시베리아 죄수보다 가여운 북한 주민을 구출하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김정일이 먼저 총을 뽑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총 한 방 못 쏘고 너무도 허망하게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지하 생활을 하다가 '두더지 작전'에 딱 걸려서 '더부룩한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은 채 일개 위생병이 시키는 대로 혀를 내밀라면 내밀고 입을 벌리라면 벌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저력]
김정일이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전혀 고려에 넣지 않았지만, 한반도에는 미국보다 무섭고 중국보다 무서운 세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근대화 세력이다. 우익이다. 아직은 조직이 없어 지리멸렬하고 있지만, 위기에 봉착하면 틀림없이 크게 떨치고 일어난다. 한강의 기적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그 힘은 가공하다. 국력이 고갈된 한말과는 전혀 다르다. 스스로 능히 앞가림을 할 수 있다. 설령 중국이 북한을 접수하려고 압록강을 건너도 능히 '고향 앞으로' 돌려보낼 '고구려의 잠재력'이 있다. 미국과 일본을 지렛대로 이용할 지혜도 있다. 북한에도 있다. 60년 '거짓'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재의 쇠사슬이 전쟁으로 느슨해지는 순간 서리서리 한이 맺힌 북한 주민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면 그 폭발력도 가공할 것이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그 성사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큰 폭풍우가 몰려와도 폐허 위로 태양은 떠오르게 마련이다.
(2004. 7. 23.)
근대화 세력의 저력과 김정일의 약점
-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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