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운운하는 神學者 양반들

인간은 神이 만든 화원을 가꾸는 정원사일 뿐 화원을 만드는 주인이 아니다.
[ * 이곳저곳 돌아다니다보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많이 만난다. 종교인들이 세상을 보는 가장 엉뚱한 시각이 經濟(경제)다. 자본주의는 악이고 사회주의는 선이란 식의 시각은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통일, 자유통일을 가로막는 인식론적 걸림돌로 작용되곤 한다. 이것을 생각해본다.]

태초에 市場(시장)이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去來(거래)와 交易(교역)의 역사다. 시장은 가족처럼 ‘자생적 질서’이고 여기에 문명이 생기면 시장경제, 자본주의로 불렀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本然(본연), 자인(sein),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사회주의는 자연적 질서가 인공적 과정을 거쳐 바뀐 뒤에 들어설 수 있는 當然(당연), 졸렌(sollen)이다. 그러나 그 성립에 동원된 강제력과 자원이 줄어들면 사회주의 체제는 이내 허물어져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간다. 그래서 역사는 이 ‘낙원(?)’이 사막 위 신기루 같은 것임을 웅변한다.

인간의 얄팍한 지성은 시장경제라는 자생적 질서를 뛰어넘지 못했다. 시장경제는 花園(화원) 같은 것이다. 하이에크 지적처럼, 사람의 노력은 화원을 다듬고 가꾸는 데 멈춰야지 화원 자체를 뒤집는 사회주의적 모험은 언제나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종교인 가운데 사회주의를 감싸는 이들이 많다. 386세대가 주류가 된 신학자들 역시 경제를 보는 시각은 사회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이것은 성경이 ‘강요된 베풂’이 아닌 ‘자발적 베풂’을 말하고 있다는 것(롬 15:26~27. 고후 9:7)을 오해한 것이다.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에 나오듯 성경은 所有權(소유권)을 강조한다. 성경에 나오는 복지 역시 무차별 복지,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선별적 복지다. “가난한 사람들”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 “떠돌이” “고아” “과부”(레19:9-10, 신 14:29, 신 24:19, 시 10:14)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심령”이다. 스스로 탐욕을 버리고 회개하는 것이다. 종교의 역할도 회개의 촉구다. 시스템 자체를 사회주의로 바꾸는 시도는 神(신)을 믿지 않으니 나, 인간이 하려는 것이다. 자생적 질서를 인위적 질서로 바꾸는 왜곡된 人本主義(인본주의)다. 그러나 인간은 神이 만든 화원을 가꾸는 정원사일 뿐 화원을 만드는 주인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대개 세상에 무식하다. 특히 경제에 무지하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곁눈으로 읽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왜곡·날조·편향된 정보가 잠재의식에 깔려있다. 이후에 성경을 읽건, 불경을 읽건 청년시절 거짓의 세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눈 먼 목자가 양떼를 이끄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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