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5: 박정희 소령은 누가 살렸나

問5: 朴正熙 소령은 누가 살렸나.
답: 백선엽 정보국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자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

백선엽의 결심

항공사관학교 김정렬 교장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박원석 교수부장을 구해내려면 상선으로 되어 있는 박정희의 무고함을 증명하면 될 것 같 았다. 그래서 수사책임자 김창룡 소령에게 다짐하듯 재차 물었다.

'만약 박정희 소령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어 풀려나온다 면 어떻게 하겠소?' '그야 박원석이는 자동적으로 풀려나오게 되겠죠.'.

'박정희가 빨갱이가 아니면 박원석은 그저 나오는 것이오?' '예, 그렇습니다.'.

김정렬은 육군참모차장이던 정일권 대령을 찾아갔다. '만군 후배인 박정희가 빨갱이로 몰려 있으니 살려내라'는 식으로 다그쳤다.

'지금 김창룡이가 나까지 빨갱이로 보고, 나를 못 잡아서 안달인데 내가 어떻게 하겠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참모차장인데 한번 따져볼 수는 있지 않 습니까?' '아이고! 김창룡이 이야기는 하지도 마시오.'.

김정렬은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을 찾아갔다. 백 대령은 숙군수사의 총책임자였다. 백선엽 대령도 김정렬의 구명요청에 대해 난색을 보였 다. 그도 '형님, 말도 마십시오. 김창룡이는 지금 나를 잡아넣지 못해 서 안달입니다'라고 하더란 것이다(김정렬 회고록).

이에 대해서 백선엽 전 육군대장은 '김정렬씨가 와서 박원석 대위 를 선처해달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박정희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김 창룡은 나의 지시를 잘 따르는 부하였다'고 말했다.

김정렬은 일본 육사5기 선배인 채병덕 준장의 갈월동 자택을 찾아 갔다. 그는 지금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으로 있었다. 김정렬 교장의 말을 듣더니 채병덕은 즉시 김창룡을 불렀다. 김정렬은 다른 방으로 피했다. 김창룡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려보낸 뒤 채병덕은 김정 렬을 다시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창룡이가 말하기를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인 것은 확실한데 풀 어줄 길은 있다고 하는구만.'.

김창룡이가 제시한 '살릴 길'은 이러했다.

'수사관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갈 때 열번만 박정희 소령을 앞 세우고 동행한다. 만약 박정희가 남로당 세포가 아니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기에 협력하여 누명을 벗을 것이요, 그가 공산주의자라 하더라 도 열번을 배신하게 만들면 그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전향하지 않 을 수없을 것이다'.

설명을 마치자 채병덕은 김정렬에게 물었다.

'박정희 소령이 거기에 응해줄까 몰라.' '아, 그거야 물론 당연히 응하겠죠.'.

다음날 일찍 김정렬은 다시 김창룡을 찾아갔다. 박정희가 적극적으 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데는 한 보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김창룡이 아무리 숙군수사의 실력자라고 해도 박정희 를 마음대로 풀어줄 수는 없었다. 절차를 밟아야 했다. 전국적 규모로 벌어지고 있던 숙군수사를 총괄 하고 있던 것은 육본정보국 특무과장 김안일 소령이었다.

이 특무과는 SIS(Special Investigation Section) 이라불렸다. 이 과는 곧 육군특무대로 확대되고 이 부대가 방첩대, 보 안사령부로 바뀌면서 두 대통령, 두 정보부장을 배출하는 등 한국 현 대사를 주름잡는 권력기관으로서 역사의 전환기때마다 중심적 역할을 하게된다. 김안일은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자고 해서 그를 지금 조 선호텔 근방에 있던 특무과 사무실로 불러 직접 신문했다.

'그는 자포자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생에 애착이 있 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의식적으로 태연한 척하는 것도 아니고. 그 래서 내가 백선엽 국장에게 살려주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자기 조직을 털어놓은 공산주의자는 거세된 환관과 같아 풀어주어도 안심할 수 있 다고 판단한 겁니다.'.

백선엽 국장은 김안일의 건의를 받아들여 박 소령을 면담하기로 했 다. 김안일이 수갑을 찬 박정희를 데리고 정보국장실로 들어와서 백 국장옆에 앉았다. 백선엽은 석달 전 여순 14연대 반란군토벌사령부의 참모장일 때 박정희 소령을 작전장교로 데리고 있었다.

마주 앉은 박 정희의 모습은 처연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한 연약한 인간이 생명을 애원하는 순수한 모습, 그것이 백선엽을 움직였다. '저를 도와주십시 오'라는 박정희의 애원에 백선엽은 무심코 '도와드리지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백선엽 장군은 지금도 그 결정적인 말이 '무심코' 나왔다고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이 결국 그를 살린 것입니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어 떻게 살리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통수계통을 따라 재가를 받 아야했으니까요. 그분이 살아난 것은 간단합니다. 저와 직접 대면했기 때문입니다. 숙군수사 책임자인 저에게 아무도 박정희를 살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수사선풍이 불고 있을 때인데 감히 저에 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때였습니다. 저 앞에 앉아 있던 그분의 모 습, 거기에 저의 마음이 움직인 겁니다.'.

개인적 친분으로 친다면 최남근 중령이야말로 백선엽이 구해야 할 인물이었다. 최남근은 봉천군관학교 선배이고 간도특설대에서 같이 근 무했으며 함께 38선을 넘어와 같은 날 임관하여 군번도 백선엽 바로 앞이었다. 그런 백선엽은 숙군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한 최남근을 체포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 되었다.

김안일의 기억에 따르면 김창룡 이 박정희 구명사유서를 겸한 신원보증서를 적어 자신과 함께 백선엽 국장에게 갔다고 한다. 백 국장은 '너희들도 여기에 도장을 찍어'라고 하여 세 사람이 박정희의 신원보증인이 되었다. 붉은 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던, 저승사자 같은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렸다는 것--.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기구한 인연중의 하나이다. '김형, 고맙습니다'
-------------------------
군내 좌익세포를 숙정하는 수사과정에서 박정희의 제보 어느 정도였 던가, 박정희의 역할과 위상은 어느 정도였던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사-재판기록이 없어진 현재,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검토해야 한다. 숙군수사본부였던 육군정보국 첩보과 장 겸 전투정보과장 김점곤(육군소장 예편·평화연구원장)은 이 무렵 박정희 소령과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무척 가까웠다.

육사 1기 선배인 김점곤은 또 1연대 정보주임으로서 숙군수사를 사 실상 주도하고 있던 김창룡 소령의 보고상선에 있었다. 숙군수사에 시 동이 걸린 어느 날 김창룡 소령이 전화로 '이재복이를 잡았습니다'고 보고해 왔다.

'이재복이 누군데?' '남로당 거물입니다.'.

한 시간쯤 뒤 김창룡이 나타나더니 김점곤 과장에게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김(김) 과장은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본듯하기도 하 고'라고 했다. 김창룡은 '이 놈이 이재복인데 김 과장과 춘천에서 저녁 을 같이 했다는데요'라고 했다. 그제서야 어떤 회식자리가 생각났다. 김점곤은 '박정희가 숙형라며 데리고 온 사람과 저녁을 먹은 것이 기억 난다'고 했다.

김창룡은 '이 놈이 그날 박정희의 숙형이라 위장하고 그 자리에 나 타난 겁니다'라고 했다. 1년반 전 8연대 시절 그 회식 자리가 마련된 것은 작전참모 박정희 소위가 김점곤 중위에게 '시골에서 산판을 하여 돈을 좀번 숙형(삼촌)이 계시는데 저녁을 사겠답니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원용덕 연대장을 모시고 술을 함께 마시는데 서로 인사 가 끝나고 잔이 몇 바퀴 돌고나서 원용덕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정희야, 너 아주 쌍놈이구나.'.

박정희는 '예?'하고 묻더니 '저는 가난하게는 살았어도 쌍놈은 아닙 니다'라고 했다.

'이놈아, 숙질간에 성이 다르니 쌍놈일 수밖에.'.

그 순간 김점곤과 박정희의 눈길이 마주쳤다. 김점곤의 눈은 '어떻 게 된거야?'라고 묻고 있었고, 박정희의 눈은 '어떻게 하지?'라고 도움 을 청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김점곤의 반응이 없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의 외숙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원용덕은 기다리던 대답이란 듯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하여 웃음을 터뜨려 분위기는 정상화되었다. 그때 박정희의 외숙이 사실은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 이재복이었다는 사 실에 경악한 김점곤은 다음날 일어나 생각하니 박정희도 붙들려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을 했다. 전화로 김창룡을 불렀다.

'박정희는 고문하지 말아요.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다루면 죽을 가능성이 있어.'.

그때 박정희는 자신을 좀 혹사하고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 술을 퍼마시는데 체력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점곤이 김창 룡으로부터들은 보고에 따르면 박정희는 남로당의 군사부책인 이재복의 직속인물로서 군내 남로당 조직도에선 최상층부에 위치하고 있었다.'여 수 14연대 반란사건 직전에 이재복이 박정희를 군내조직 책임자로 임명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적으로 자신과 직접 연결되고 두뇌와 인격 이 뛰어난 박정희로 하여금 조직을 관리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때 남 로당의 군내세포 관리체계는 엉망이었습니다. 박헌영은 빨치산 출신인 김일성과는 달리 군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육사 3기생부터 군내당을 건설하기로 한 것 같은데 지휘체계의 혼선이 컸습니다. 여수 14연대 반란사건도 중앙당의 이재복이 지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도당이 관리하던 하사관들이 멋대로 주동하여 일으킨 것입 니다.

중앙당은 장교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김지회 중위가 뒤늦게 지 창수상사로부터 지휘권을 인수하여 반란군의 두목이 된 것입니다. 지창 수는 같은 부대에 있던 김지회가 남로당 세포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김창룡이 박정희를 통해서 군내 남로당 조직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김창룡에게 박정희로부터 자 술서를 받되 그 내용이 우리가 후에 조사한 것과 다르게 나오면 용서할 수없다고 못을 박고 이 점을 말해두라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조직을 털어놓기 전에도 김창룡은 이재복보다 먼저 붙든 그의 비서 김영식을 통해서 군내 조직원 수백명의 명단을 입수하였다. 수사책임자 백선엽 육군 정보국장에 따르면 경찰로부터도 군내의좌익명 단이 넘어왔다고 한다.

김태선 서울시경국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 한 명단이었다. 군정시대 경찰은 좌익소탕에 앞장 선 때문에 체계적으 로 정보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미군사고문단장 로버 츠를 불러 그 자료를 내놓으면서 '그 동안 미군은 뭘하고 있었는가. 이 런 군대를 대한민국 정부에 인계했는가. 책임지고 숙청하라'고 다그쳤 다.

이 명단은 이응준 육군총참모장에게 건네졌고 숙군수사 때 기초자료 로 쓰여졌다. 이 경찰자료와 이재복 비서로부터 압수한 명단 중에 박정 희의 이름이 끼여 있어 그의 체포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박정희가 털 어놓은 명단 때문에 군내의 좌익들이 몽땅 체포되었다는 주장은 과장이 다.

좌익세포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었던 곳은 육군사관학교였다. 1중 대장 박정희 소령에 이어 1중대 2구대장 황택림 중위, 4구대장 장구섭 소위, 2중대장 강창선 대위가 체포되었다. 그 이전에 사관학교에서 간 부로 근무했던 오일균, 조병건, 김학림도 제거되었다. 박정희의 만주군 관학교 2기 동기 출신들 가운데서도 이병주, 안영길, 강창선, 이상진이 숙청되었다. 혈연, 학연, 군맥에 의해 좌익인맥과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었던 것이 박정희였다.

김점곤의 관사는 박정희의 용산 관사와 길 하 나를 두고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박정희가 구속된 뒤에는 혼자 있는 이현란을 총각의 몸으로 찾아가기가 뭣했다. 옆집에 살고 있던 군 악대장 이종태 부부와 함께 들러 쌀도 갖다주곤 했다. 1949년 1월말,박 정희가 풀려나온 것을 김창룡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된 김점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상을 받아놓고 밥숟 가락에 김을 막 얹으려던 박정희가 김점곤을 보더니 달려나와 와락 끌 어안았다. 그는 '김형, 고맙습니다'라면서 엉엉 울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