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의미'

"민주주의는 결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박원순 씨는 1986년 박헌영의 아들로 알려진 승려 원경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하단기사 [2] 참고)를 설립했다.
▲“민주주의는 결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이념을 받아들여 그 사회 속에서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여러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국가보안법 연구》 3권, 178페이지)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2004년 9월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

▲“소위 利敵(이적)서적에 대한 압수수색의 바람이 불고 있다…(중략) 통일의 진정한 논의는 상호간의 이해에 바탕하며 그것은 북한의 原典(원전)과 북한연구서에 대한 대폭적인 개방이 전제된다…(중략) 기본적으로 어떠한 내용의 서적이든 이를 금압하는 것은 야만적인 짓이며 역사를 암흑으로 이끌 것이다.” (1989년 4월11일자 동아일보)

[1] 박원순 씨는 2003년 8월7일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추진위)에 강정구 前동국대 교수, 오종렬․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의 인사들과 함께 공동대표로 참여했었다.

당시 범국민추진위는 利敵단체 한통련 의장 곽동의, 동백림 간첩단 사건 연루자 이수자(작곡가 윤이상의 부인), 在獨(재독)학자 송두율 등 해외 親北인사를 ‘해외 민주인사’로 부르며, 이들의 귀국을 추진했었다.

朴씨는 또 2009년 2월9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文益煥(문익환) 목사에 대해 “성경학자, 교수로서 오래 지내다가 인생 후반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80년대 절망의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의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했던 분”으로 평가했다.

文목사는 1989년 密入北(밀입북)해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대한민국 대표자 자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통일3단계방안 원칙’에 합의했다. 文목사는 ‘反국가단체잠입죄’ 등 국보법 위반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투옥됐던 인물로 利敵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장을 지냈다.

[2] 박원순 씨는 한국 현대사 左편향 왜곡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설립)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역사문제연구소’ 출신의 학자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발간된 좌편향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대거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에는 강만길(고문), 임헌영(운영위원), 강정구(연구위원) 등의 좌파인사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 가운데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은 학계에서 줄곧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임헌영(本名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등 수 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前 서울고검장)가 2010년 발표한 ‘親北(친북)-反국가 행위자 100인’ 명단에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명단에는 학계(전-현직) 관계자가 17명이 선정됐는데, 이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6명이 역사문제연구소의 이사장, 운영위원, 자문위원,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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