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軍의 6.25 - 즉결처분 이야기

즉결처분 이야기

총살형 집행 1분 전
劇的으로 구출된 元상사
元상사 앞에 다가간 姜부연대장은 가린 눈을 벗기고 묶인 손의 새끼줄을 끊었다. 그리곤 그를 지프에 태우고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최 종 태 서울 송파구 신천동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패서라도 깨워!』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951년 6월 초. 소련 外相(외상) 마르크는 UN에서 한국 전쟁의 휴전을 제안했다.

3월13일, 서울을 再탈환한 UN군은 「캔사스 라인」(西部 문산, 中部 화천, 동부 고성간)의 주저항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도사단의 宋堯讚(송요찬·4·19 당시 육참총장, 3공화국 때 내각수반 역임, 중장 예편) 사단장은, 5월31일 香爐峯(향로봉·표고/1,293m)을 점령한 예하 제1기갑연대 李龍(이용) 연대장(교통부 차관 역임, 현 성우회 사무총장, 소장 예편)으로 하여 香爐峯 西南 쪽 6km에 위치한 山頭谷山(산두곡산·표고 1091m)을 점령하라는 작전 명령을 다시 하달(1951년 6월3일 24:00)했다.

이 이야기는 공격 작전 연대장이 제2대대(연대OP)에 나가 있는 연대 작전주임 장교 魚소령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하여 朴翊均(박익균) 제2대대장(대령 예편, 성업공사 사장 역임, 작고)으로 하여금 공격제대를 편성하도록 하려는 과정에서 야기된 것으로 「戰時(전시) 군인의 생명」이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었던가를 말해 주는 사건이다. 명령이 내려진 것은 6월3일 밤 24시 정각.

점령 목표까지의 거리는 야간 행군으로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공격 개시 시간까지는 4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무리한 作命(작명)이었다.
전시 作命 전달 불이행! 이는 마땅히 총살감이라 할 수 있다.

『선임하사님!, 선임하사님!』
元상사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와 함께 허리통을 세차게 흔드는 바람에 곤한 잠에서 눈을 떴다. 아니, 잠을 깬 것이 아니라 마음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응, 응, 알았어』할 뿐이었다.

급기야 통신병은 발길질을 했고 元상사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잠을 깬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元상사가 이처럼 고단한 것은 향로봉 작전 이래, 72시간 만에 겨우 2시간 동안 잠을 잤던 까닭이었다.

元상사는 통신병의 무전기 레시버를 받아들고서 꿈을 꾸듯이 대답했다.
『元상사입니다』
『이놈아, 너는 또 누구냐? 나, 연대장이야』
『넷!, 저 작전과 선임하사관입니다』
元상사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나고 긴장이 되살아났다.
『빨리, 작전참모 魚소령을 바꿔』
『넷, 알겠습니다』
레시버를 놓고서 元상사는 참모들이 잠들어 있는 개인 막사로 가서 魚소령을 깨우기 시작했다.
『참모님! 참모님!』
元상사는 魚소령 몸을 거세게 흔들어보고 잠을 깨우려고 별짓을 다했다. 무례하다고 할 정도로 물리적인 행위를 가했으나 참모는 화를 벌컥 내고서는 다시 곯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연대장님은 계속해서 魚소령을 불러 댄다. 元상사는 몇 번이고 참모님을 불러댔지만 魚소령은 『응, 응, 알았어, 알았다니까』 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아무리 깨워도 魚소령은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한다. 무전기에서는 연대장의 고함 소리가 요란했다. 元상사는 하는 수 없이 무전기의 레시버를 들었다.

『연대장님! 元상사입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오른 연대장은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야! 이놈의 짜식아. 왜? 魚소령을 대주질 않는 거냐?』
『참모님을 깨울 수가 없습니다』
『뭐야? 연대장 명령이야.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패서라도 깨워!』
『알았습니다』

30세에 軍門에 들어온 老兵

元상사는 월남한 반공투사였다. 그는 30이 넘은 나이에 軍門(군문)에 들어왔고 그의 반공투쟁의 경력 등이 참작이 되어서 6·25가 일어나기 전에 上士(상사)로 특진이 되었다. 그리고 육군의 유일한 기갑 연대의 작전과 선임하사관으로 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老兵(노병)이었다.

그래서 그는 上士이지만 장교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작전참모도 나이가 비슷한 老상사의 의견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참모님을 깨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무전기의 레시버를 들고서 연대장을 불렀다.

연대장도 작전주임 장교가 연 3일 이상을 잠을 자지 못해 몹시 피곤하리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연대장님, 아무래도 지금은 도저히 참모님을 깨울 수 없습니다』
연대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물었다.
『너, 작전과 선임하사관이라 했지?』
『넷!』
『그러면 네가 作命을 받아서 주임장교에게 전달해』
『넷, 알겠습니다』

元상사는 연대장의 구두 작전명령을 하달받았다.
<현 위치에서 제2대대를 山頭谷山을 향해서 이동, 04:30분을 기해 공격을 개시하라. 현재, 山頭谷山에는 1개 중대의 증강된 인민군 병력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이동간에는 무전기의 사용을 금한다>

이 작전명령은 공격 개시시간을 24시간이나 앞당긴 것이었다. 元상사는 작전명령을 받고 무전기를 껐다. 그리고 元상사는 또다시 작전주임을 깨우는 싸움을 시작했다. 부르고, 흔들고, 그러기를 한 시간여, 魚소령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변을 보고서 元상사의 보고를 받고 제2대대장 朴중령을 찾았다. 元상사는 2시간여 가까이 연대장과 참모 사이에서 시달림을 당해서 피곤했다. 결국 그도 어딘가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간신히 일어났지만 잠에 취해 있기는 魚소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어물어물하다가 또 쓰러져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새벽 3시, 통신병이 무전기의 키를 틀었다. 연대장님은 또 작전주임 장교를 찾는다. 통신병은 元상사를 불렀다. 잠이 깬 元상사는 魚소령을 깨웠다. 무전기의 레시버를 들자 연대장은 『현재 어디쯤에 가 있는가?』 하고 물었다.

魚소령은 깜짝 놀랐다. 기가 막히기는 연대장님이 더했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공격을 개시하기로 한 부대가 목표의 3시간 거리 밖에 있다니! 연대장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사형 집행장에 뛰어든 姜弘模 소령

元상사는 「作命 전달 불이행」이라는 죄목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논란은 있었지만 결국, 총살형에 처한다는 판결이 내려져 당일 戰線(전선) 이탈자 7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香爐峯에서 뻗어 내린 한 무명의 능선 기슭에 마련된 사형 집행장. 사단 법무관이 사형집행문을 낭독하고 죄인들은 눈을 가리고 나무기둥에 묶였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 헌병장교의 지시에 따라 실탄이 장전되고 집총병들이 사격 자세로 일렬횡대로 줄지어 섰다. 집행 장교의 구령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야! 잠깐』 하면서 刑場(형장)의 헌병들 앞으로 달려드는 이가 있었다. 헌병들은 「세워 총」 자세로 돌아왔고 이 형집행에 참관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뛰어들어온 장교에게 집중되었다.

보니 우리 연대의 부연대장 姜弘模(강홍모) 소령(金昌龍 암살 관련으로 복역, 한미운수 사장)이었다. 그는 집행장교에게 元상사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제일 오른쪽입니다』라는 누군가의 대답이 있었다. 姜부연대장은 元상사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가린 눈을 벗기고 묶인 손의 새끼줄을 끊었다.

『따라와』
『안됩니다! 부연대장님, 그것은 불법입니다!』
사단 법무관이 부연대장을 만류하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집행 방해는 처벌을 받는다는 법무관의 말에 부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자신이 책임지고 말씀드린다며 걱정 말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불쑥 내뱉는 것이었다.

『魚소령 이 자식 어디 있어? 나쁜 놈! 제가 잘못하고는 부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총살은 그런 놈이 당해야 돼』
姜부연대장은 元상사를 지프차에 태우면서 법무 장교에게 말했다.
『姜弘模가 사형수를 폭력으로 납치해 갔다고 사단장께 보고해. 내가 지금 사단장님께로 갈 것이다』

元상사를 태운 지프차는 그대로 먼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탕, 탕, 탕, 탕… 긴 여운을 남긴 총성이 사라졌을 때 姜부연대장은 옆자리에 앉은 元상사에 말했다.

『야! 너 내가 3분만 늦게 도착했으면 죽을 뻔했구나. 그래서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것이야. 아무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끊을 수 없어』

姜부연대장은 억울한 죽음을 당할 뻔 한 元상사를 살렸다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이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28세 때에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총살 5분 전에 니콜라이 황제의 사면령이 총살 현장에 도착해서 살아났다고 한다.

그는 죽음 직전에서 살아나 바로 그 유명한 명작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 등의 大作(대작)을 남기는 세기적 문호가 되었다.
『기적으로 살았으니 오늘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살아!』
姜부연대장은 힘 있는 목소리로 元상사에게 말했다.

또다른 6·25의 교훈

6·25 전쟁기간 즉결처분권의 남용은 상당부분 무리가 있었다. 모 장군은 휴전 20여 년 후까지도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즉결처분까지도 할 수 있고 야전 사단의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戰時 군인의 생명이 너무나 가볍게 다루어져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의 필요성, 또 하나의 6·25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元상사의 경우 총살 집행 전, 정확히 1분 전에 연극처럼 구제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만일 그가 총살형에 처해졌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평시의 軍의 존재는 평화를 위한 것이다.

싸우는 전술, 무기를 다루는 기술의 발전에 앞선, 정신의 함양과 사기 앙양은 군인의 인권 향상과도 절대적으로 무관치 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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