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地名 이야기③/蠶室洞(잠실동)

88올림픽의 요람이 된 누에방
<사진출처:송파구청 페이스북 사진첩>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사기》를 일명 蠶史(잠사)라고 한다. 사마천이 宮刑(궁형: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을 받고 회복을 위해 蠶室(잠실)에 보내져서 그곳에서 사기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누에 키우는 방을 잠실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 세종 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었다. 지금의 서대문구에 있는 것을 西蠶室(서잠실)이라 하고 송파구에 있는 것을 東蠶室이라 했다. 잠실의 국립양잠소에 해당하는 蠶室都會(잠실도회)가 이곳에 설치되어 지명이름이 유래되었다. 본래 잠실은 한강의 지류인 탄천 하구에 있어, 큰물이 지면 사방에 물이 들어 꼭 섬 모양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浮里島(부리도)라고도 불렸다. 조선 前期(전기) 서울에는 총 3개의 잠실이 있었는데 후에 서초구 잠원동에 생긴 잠실을 新잠실이라고 했다.

의복을 만드는 데 원료가 되는 양잠이 중요했기 때문에 세종 때와 성종 때까지 양잠을 장려했으며 양잠의 主공급원이 되는 누에와 뽕나무를 신성시 여겼다. 부리도의 부렴마을에서는 뽕나무를 수호신으로 삼아 매년 10월에 桑神祭(상신제)를 지냈다. 조선왕조에서는 백성에게 양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장려하기 위해 先蠶祭(선잠제)와 親蠶禮(친잠례)를 행했다.

선잠제는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던 西陵氏(서릉씨)를 치제 제사하는 의례다. 《國朝五禮儀: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선잠제는 5일간의 齋戒(재계)와 2일간의 제수 陳設(진설), 전날의 犧牲(희생: 제물로 쓰이는 살아있는 소) 검사와 香祝(향축) 전달 같은 준비 단계를 거쳐 제사 당일 헌관이 제단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의식은 奠幣(전폐)와 酌獻(작헌), 送神(송신)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친잠례는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주체가 되었던 국가의례였다. 선잠제 후 왕비가 직접 採桑檀(채상단)에서 뽕잎 5가지를 따고, 내외명부 1품은 7가지, 내외명부 2품과 3품은 9가지를 차례대로 따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채상을 마치고 內外命婦(궁중에 봉직한 女官, 왕실·종친의 여자 및 文武官의 처)가 잠실에서 뽕잎을 누에에게 주면 친잠례가 끝난다.

조선의 잠실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조선말부터 日帝 강점 초까지 잠원동에는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고 잠종을 보급하였으며 잠업강습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뽕나무가 무성했던 이 잠실섬 지역은 1971년 잠실지구 종합 개발계획으로 75만평의 육지로 만들어졌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장기 개발계획으로 잠실아파트단지와 잠실종합운동장을 만드는 등 개발지로 변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들이 잠실 지역에 많이 건설되었다.

송파구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2년 6월 기준, 잠실에는 60,070세대에서 164,678명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한강공원 중 성내천 합류부부터 잠실대교 남단(0.9㎞)까지 107,150㎡ 면적에 뽕나무를 집중 재식해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또한 잠실동을 포함한 잠실지역 2.31㎢를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롯데월드, 석촌호수, 방이맛골, 올림픽공원 등이 관광특구 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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