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옹호하는 용산사태 '농성자들의 正體'

"개발논리만 밀어붙이다가 용산참사 초래했다"(?)
'용산사태'가 벌어진 용산4구역의 세입자 대책위 상인 50여 명은 2008년 4월4일 민노당(現 통진당의 전신)에 집단 입당했다.

안철수는 대담집《안철수의 생각》에서 2009년 과격(過激)단체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이 주도한 ‘용산방화사건’(이하 용산사태)에 대해 “거주민들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논리만으로 밀어붙이다가 용산 참사 같은 사건을 초래했다고 본다”면서 “앞으로는 도시를 재개발할 때 세입자 등 상대적 약자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산사태’의 근본원인은 安씨의 주장처럼 당국의 “개발논리” 때문이 아니라 ‘전철연’(하단 참고자료)의 불법행위가 원인이었다. 용산사태는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재개발 지역에서 농성자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서울경찰청 특공대 소속 김남훈 경장과 양회성씨 등 농성자 5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이 된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은 2006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부터 철거가 시작됐다. 관련 세입자는 총 890명이었는데, 이 중 85.7%인 763명의 보상이 완료됐었고(약 84억원 지급), 보상에 반발하는 86세대 상가세입자들이 2007년 ‘용산세입자대책위원회’를 조직, 2008년 2월 ‘전철연’에 가입했다. 두 달 후인 2008년 4월,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여기에서 탈퇴하고 26세대만 남아 ‘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2009년 1월19일, 전철연 등 소속 농성자들은 남일당 건물을 점거농성 대상으로 정하고 세입자 10명과 외부인 22명이 복면을 쓴 후 건물을 점거했다. 그리고 수백 개의 화염병, 염산병 등을 무차별적으로 집어 던져 인근 상가와 차도·인도 등을 방화했다.

당시 경찰은 18차례 해산을 설득했지만 거부당하자 경찰 특공대를 진입시켰다. 농성자들은 시너를 통째로 부으며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불이 옮겨 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경찰 20명이 다쳤다. 사망 농성자 5명 중 용산 세입자는 2명뿐이었으며, 현장에서 연행한 화염병 시위 가담자 28명 중 보상금 지급 대상인 세입자는 7명, 나머지 21명은 ‘전철연’ 회원들이었다.
 
전철연은 망루와 새총을 비롯해 화염병 제조·투척, 염산 및 시너 공급 등을 주도하며 1박2일 동안 경찰은 물론 버스·승용차가 지나는 거리에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했다. 골프공 300여 개, 유리구슬 400여 개, 벽돌 1000여 개를 대형새총으로 발사했다. 염산병도 40개 이상 던졌고, 시너를 통째로 부었다. 이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인근 건물 4곳에서 불이 났다.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011년 4월28일, 사건 당시 망루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기소된 남경남 前 전철연 의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리/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전철연, 철거민을 사회변혁의 主體로 보는 ‘계급투쟁 조직’

‘전철연’은 1993년 구성된 ‘전철협’(전국철거민협의회)의 후신이다. ‘전철연’은 ‘전철협’ 회원들 중 경기와 서울 지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출신 강경파 일부가 노선 차이로 1994년 ‘전철연’을 결성해 독립해 나온 조직이다.

전철연은 철거민을 노동자로 보고 철거민을 사회 변혁을 위한 주체로 정의해온 계급투쟁 조직이다. 전철연의 조직은 중앙위원회를 정점으로 중앙집행위(의장단), 조직국-연사국 등 4국 그리고 시․도 연합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철연은 그동안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사제총’, ‘사제화염방사기’, ‘새총’, ‘인분’ 등 폭력적 수단을 꺼리지 않고 사용해왔다.

일례로 이들은 1999년 시위 현장에서 사제총 사용으로 논란을 초래했고, 2000년에는 철거민 대책을 요구하며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당사를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철연은 소위 ‘골리앗 투쟁’(망루 설치 투쟁) 방식을 선호하며 용산 사태와 같이 철거민 의식화 교육 과정 중 망루 설치 방법 등을 교양하고, 망루 제작 등을 지원해왔다. 이들의 망루 투쟁은 기간에 상관없이 목표 달성 시 까지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1995년 ‘용인 수지 망루 사건‘(10개월), 1999년 ‘수원 권선지구 망루사건’(4개월), 2002년 ‘상도동 망루사건’(16개월), 2003년 ‘고양 풍동 망루사건’(20개월), 2005년 ‘오산세교 망루사건’(2개월) 등 굵직한 철거민 사건에 전철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관련기사] 親北세력, 용산사태 '제2의 촛불시위' 도구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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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경찰청/용산 불법 점거농성자 검거 경위 및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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