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선관위, 안철수의 事前선거운동 혐의 방치하나”

제204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 “통진당 內紛(내분), 애국진영의 생각이 옳았음을 反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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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방송>



<제204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가 서울 중구 소재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끝나지 않은 6ㆍ25, 이념전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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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날 강좌에서 북한 權府(권부)의 변화와 최근 政局(정국) 상황을 분석했다.

趙 대표는 과거 김정일의 개인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訪北(방북)소식을 전하며 “前例(전례)에 없던 이상한 현상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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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주방 책임자로 12년간 있었다. 그러다 2002년 북한을 탈출해 일본으로 귀국,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썼다. 후지모토 겐지는 과거 암살 대상이었으나, 지금 김정은의 초대를 받아 북한에 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고급 정보 하나를 폭로했다. 바로 김정일의 후계자가 김정남, 김정철이 아닌 김정은(그 당시엔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음)이란 것을 밝힌 것이다.”

趙 대표는 “김정은의 후지모토 겐지 초청은 김정은이 독재자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그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자 임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통진당 내분, 애국진영의 생각이 옳았음을 反證

그는 “‘從北정당’ 통합진보당의 이석기ㆍ김제연의 제명이 실패하자, 통진당 당원들이 들고 일어나 脫黨(탈당)과 分黨(분당) 이야기가 黨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趙 대표는 ‘통진당 서울시당’ 평당원들이 낸 성명서를 예로 들었다.

“통진당 서울시당 평당원들이 ‘통진당 해산청원을 내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은 과거 ‘국민행동본부(이하 國本, 본부장 徐貞甲)’가 세 차례나 냈었던 反헌법적 정당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 해산 청원’과 같은 이야기다. 國本은 ‘민노당과 통진당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반하고 북한 정권의 對南 공산화 전략에 동조한다. 따라서 헌법 8조에 따라 해산돼야 할 정당으로 提訴(제소) 해야 한다’며 법무부에 청원서를 제출했었다.”

그는 “과거 통진당 해산 청원서를 내려하자 일부 애국진영 인사들도 ‘과격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지금은 통진당 내에서 政黨(정당) 해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것은 國本을 비롯한 여기 계신 애국시민들의 생각이 헌법과 國益에 부합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역설해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趙甲濟 대표는 선관위의 불공정한 잣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國本은 안철수의 對談集에 나온 내용을 반박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했다. 이에 선관위는 이 광고가 선거법 위반이라며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선관위의 행태를 구체적 사실을 근거로 반박했다.


선관위, 안철수가 입후보 예정자라면 事前 선거운동 제재해야

“‘안철수가 출마는 하지 않았지만, 安씨는 입후보 할 사람이다. 즉, 입후보 예정자이므로 광고를 통해 비판해선 안된다’는 것이 선관위의 논리이다. 그러나 입후보 예정자란 개념은 입후보할 것이 확실시 되는 사람의 사전 선거운동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선관위는 이를 거꾸로 해석해 안철수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이 개념을 逆(역)이용하고 있다.”

趙 대표는 “이 과정에서 선관위가 실수를 했다”며 “안철수가 입후보 예정자라면 사전 선거운동을 해선 안된다. 선관위는 그동안 安씨의 사전 선거운동을 제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불참을 선언하지 않은 채 ‘안철수재단’을 설립한 것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선거를 앞두고 책을 출판한 것 등이 “사실상 事前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했다.

趙 대표는 또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5월 경, 천안함 爆沈(폭침)을 규탄하는 國本 광고(‘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종북좌익세력을 규탄한다’)를 냈었다. 그랬더니 선관위로부터 경고장이 왔다”고 했다. 그는 “당시 광고에 특정 정당의 이름을 넣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종북좌익세력이 민주당과 민노당을 지칭하는 것 아니냐’며 확대해석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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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제창 중인 청중들



趙 대표는 또 “선관위 직원 중 상당수가 공무원노조에 가입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9년 국정감사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전체 공무원 2649명의 67.4%인 1,786명이 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조합원이며, 민공노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법원공무원노조는 같은 해 9월22일 ‘통합공무원노조’ 결성을 가결하고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구, 울산, 경북 등 일부 선관위노조는 이 같은 결정에 반발,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었다. 그는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선관위 잣대에 불공정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스탈린은 美中을 이간질하고자 김일성을 이용했다

주제강연에서 趙 대표는 1950년 6ㆍ25 南侵(남침)전쟁 직후인 6월27일, 소련이 UN안보리 이사회 불참한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소련의 UN대사 말리크는 유엔 안보리를 참석을 보이콧한 바 있다.

그는 스탈린이 체코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을 소개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련대사의 안보리 불참은 내가 지시했다…(중략) 우리는 네 가지 이유로 안보리에 불참했다. 첫째, 새로운 중국과 소련의 단결을 과시하기 위해, 둘째, 미국이 안보리에서 국민당 괴뢰 정권을 중국의 대표로 인정하고 중국(注-모택동이 이끄는)의 진정한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의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셋째, 두 강대국의 불참 때문에 안보리 결의는 정당성이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넷째, 美 정부가 안보리 다수결을 이용, ‘프리 핸드(free hand, 일종의 재량권)’를 갖고 어리석은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도록 한 것이다.”

趙 대표는 “이는 미국이 유엔군 기치 하에 한국에 참전할 수 있도록 돕고자 소련이 의도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고백”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탈린은 김일성이 내건 ‘한반도 공산화 통일’은 언급하지도 않았다”며 “그가 북한군 공세의 실패를 예견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이라고 분석했다.

趙 대표는 “스탈린의 전략은, 美中이 한반도에서 싸우게 되면 美軍이 중공군을 이길 수 없어 자연히 美軍이 한반도에 묶이게 될 것으로 보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스탈린의 전략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전쟁의 낚싯밥’으로 삼았다.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와 남침을 요구했을 때, 스탈린은 ‘남침을 하되 이를 毛澤東(모택동)에게 설명을 하라’고 떠넘긴다. 김일성은 1950년 5월 毛澤東에게 남침을 하겠다고 설명하고 모택동도 이에 同調(동조)한다. 그러면서 毛澤東은 美軍이 개입할 것이라고 충고도 한다. 김일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도움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毛의 주장을 일축했다.”

趙 대표는 “김일성은 전쟁 직후 미국이 개입하자 모택동에게 매달린다. 결국 중공군의 개입이 이뤄졌다”고 했다. 그는 “이후 戰勢(전세)가 밀리자 毛澤東과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휴전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하나 스탈린은 단호히 거절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을 이간질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6ㆍ25전쟁 시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으면, 미국은 중국과 修交(수교)도 하고 交易(교역)도 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趙 대표는 “그러나 스탈린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그의 전략을 逆이용, 신속한 참전을 이끌어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음 강좌는 8월13일 오후 2시 한국 프레스센터(서울 중구 태평로33) 20층 국제회의장에서 ‘生日없는 나라의 운명’이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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