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씨가 지난 3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사망했다. 향년 89세. 5.16 이후 51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33년을 더 살았으니, 참 장수했다.
그는 5.16후 혁명주체세력의 얼굴 마담으로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국방부장관,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내각수반을 겸하는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가, 결국 주체세력에 의해 밀려나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났다. 이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 미시건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는 11년 전, 5.16 40주년 관련 기사를 쓰느라 미국에 있던 장도영씨와 전화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전화기를 넘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씽씽했다.
그와의 대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래픽 컨트롤!"이라는 한 마디였다. "왜 쿠데타군이 쳐들어오는데 한강다리에 50여명의 헌병만 내보냈느냐"고 묻자, 그는 "트래픽 컨트롤!""트래픽 컨트롤!"을 연발했다. 한강다리에 헌병대를 보낸 건 쿠데타군과 전투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 교통통제하라고 보냈다는 얘기였다. 그는 "군대는 병과마다 기능이 다르다"면서 "헌병을 그 기능이 교통정리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그럼 5.16은 쿠데타가 아니고 교통사고였다는 얘긴지....
그는 30사단에서 1개중대만 진압군으로 출동한데 대해서는 "사단장이 '출동가능한 병력이 그 뿐'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 1개 중대도 서울로 진주한 후 혁명군으로 둔갑했다).
장도영씨는"5.16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대 때문"이라는 말도 여러번 되풀이 했다. 육군참모총장인 자신의 통제 밖에 있던 해병1여단이 들어오는 바람에 진압에 실패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5.16 당시 서울에 가장 먼저 들어온 혁명군은 6군단 포병단 병력이었다.
그는 5.16주체세력과 사전 내통이 있었다거나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 음모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설, 칼멜수녀원에서 장면 총리를 만났을 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는 얘기도 완강히 부인했다.
장도영씨의 얘기는 솔직히 전반적으로 자기변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별로 설득력 없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은 장도영씨에 대해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착하고 신사적이었던 그는 '독한' 박정희 장군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5.16을 막지 못한 무능한 군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6.25 당시 그는 용문산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공로가 있다. 그의 전공을 기억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도영 전 육군참모총장과의 11년 전 전화인터뷰
-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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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05, 20: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