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철수'가 왜 '좌익 선동꾼'차럼 말하나?

'안철수의 생각' 讀後記
‘자기’가 없는 책

對談集 ‘안철수의 생각’(김영사)는 최근에 내가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재미가 없었다. 그런 책 275페이지를 의무감으로, 분석적으로 읽은 건 하나의 고통이었다.
우선 ‘자기’가 없는 책이다. 안철수 씨가 주장하는 것들은 그의 삶이나 조국의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어 그의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읽고 들은 이야기인데, 주로 從北좌파 세력이 發信한 논리의 틀 속에서 이야기하니 상투적이다.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그가 좌파적으로 생각한다. '착한 철수'가 왜 '좌익 선동꾼'처럼 말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좌파적이라 함은 이 세상을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본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 서서 대한민국을 ‘弱肉强食(약육강식)’과 ‘勝者獨食(승자독식)’의 사회라고 매도한다. 엄청난 선동이고 왜곡이다.
교양이 느껴지지 않는다. 漢字를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책이다. 나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두 문자 중 하나인 漢字를 말살한 글을 글로 보지 않는다. 안철수 씨와 김영사가 만든 이 책은 국어 문법의 원칙을 위배하였으므로 정상적 출판으로 볼 수 없다. 교양의 바탕은 ‘人文的 知識’(인문적 지식)이다. ‘知識’이란 한자어를 분해하면 지식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가 나온다. 矢는 화살, 즉 전략이다. 口는 입, 즉 경제이다. 言은 인문학이고 音은 예술이며, 戈는 창, 즉 전술이다. 지식인을 자처하려면 모름지기 전략, 전술, 경제, 인문, 예술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人文的 교양의 틀은 역사, 문학, 철학이다. 국가와 민족의 발자취를 알게 하는 역사,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 事物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이다. 안철수 씨의 말에선 이런 교양의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이 50을 넘긴 사람에겐 당연히 요구되는 자질이다. 그는 한글專用 교육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잠재력을 무시

그는 인간을 아주 허약하고 의타적 존재로 본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잠재력과 생존력, 그리고 克己의 힘과 창의력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일단 허약한 존재로 보고 국가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돋보인다. 過保護(과보호)가 인간의 鬪志를 약화시키고 공짜심리를 가르쳐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듯하다. 19세기 번영을 구가하던 영국에서 문필가 토마스 칼라일이 남긴 말이 생각 난다.
"逆境을 이기는 인간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안 된다."
안철수 씨가 내세운 ‘복지, 正義, 평화’는 공허하다. 복지는 성장으로, 正義는 法治로, 평화는 安保로 유지된다. 그는 이 책에서 성장, 法治, 안보에 대한 신념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한다. 정부가 채찍만 써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北核 문제 해결 방식은 북한정권이 주장해온 것의 踏襲(답습)이다. 광우병 亂動과 용산 放火사건을 진압한 정부를 비방하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從北문제를 외면한다. 제조업을 경시하고, 대기업을 敵對的으로 대하면서 낭비적 복지를 주장한다. 그의 복지, 正義, 평화는 공허하다.
그는 正義란 단어를 애용하지만 정의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의감은 균형감각 위에 서야 한다. 안철수는 대기업에 대하여는 적대감과 분노를 드러내는데 민족반역자이자 학살자이자 反인류범죄자인 김일성 一家와 從北세력에 대하여는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분노의 대상을 잘못 설정한 것이다.
세계적 성공 모델을 제시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舊체제'로 매도한 그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고, 키우고, 가꾼 선배 세대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이는 제대로 감사할 줄 모른다. 李承晩, 朴正熙, 미국, 국군, 트루먼, 李秉喆. 鄭周永 같은 이들을 미워하는 게 從北좌파 세력이다. 安씨가 '대한민국을 만든 이들의 勞苦'에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고 있다면 대한민국을 ‘弱肉强食’이라고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한 짧은 언급은 있지만 溫氣를 느낄 수 없었다. 지도자가 되려는 이에게 요구되는 正義感은 애국심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한국인의 애국심은 공동체의 敵인 북한정권과 종북세력에 대한 분노,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과 자랑,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기도 하다. 安씨에겐 이런 감정 구조가 없는 듯하다.

안철수의 自畵自讚-거의 聖者수준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이란 책은 안철수 씨와 제정임 씨의 問答集이다. 제씨가 묻고 安씨가 답하는 식이다. 安씨가 자신을 설명할 때 한국인들이 좀처럼 쓰지 않는 自畵自讚(자화자찬)의 語法이 많은 데 놀랐다.
<저는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겐 따뜻하게 대하는 편이지만, 강한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하면 더 세게 맞받아치는 '괴팍한' 성격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동안 척박한 환경속에서 경쟁자들과 겨루고 결국 살아남았던 것도 이런 성격 덕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경영학을 다시 공부한 이유가 '배워서 남 주려고'였거든요.>
<지난 10개월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사회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제가 고민한 가장 큰 기준은 '개인적으로 뭘 많이 얻을 수 있는가'나 성공확률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였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은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결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과장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예절감각과는 맞지 않는다. 직업을 바꿀 때 오로지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만 생각하였다면 聖者(성자) 수준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생각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결점 많은 인간이 자신은 무결점이라고 확신하고 다른 결점 많은 사람을 斷罪함으로써 유토피아를 만들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같은 역사적 사례가 많다. 獨善(독선)과 僞善(위선)이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결합되면 위험하다. 천국을 만들려다가 지옥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안철수 씨 이력 설명이 붙었는데, <최근에는 '국민 멘토'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적은 필자 소개는 필자가 반드시 교정을 본다. 이 표현을 안철수 씨가 지우지 않은 것으로 봐 그는 자신을 '국민 멘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그를 나의 멘토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안철수의 요술방망이-'소통과 합의'

자신의 도덕성을 내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안철수 씨는 이 책을 통하여 李明博 정부와 대한민국 現체제를 비판하는 데 무자비하다. 그는 '구체제'란 이념적 표현법을 썼다. 한자로는 舊體制(구체제)다.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 즉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과 계층 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경제시스템 등을 극복하고...>
安씨는 '구체제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부연 설명을 해달라'는 질문에 대하여 萬惡의 책임을 몽땅 '구체제'란 말 속에 집어넣는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 성장과 효율성만을 앞세워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구체제>라는 것이다.
안철수 씨가 '안철수의 생각'이란 對談集에서 진단하는 한국의 현상황은 양극화와 貧富격차가 심화되고 젊은이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며 중산층은 쓰러지고 의료보험은 부족하며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사회는 勝者獨食의 암울한 정글이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가 활개치는 가운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흘러가다가 보니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고 중소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들이 새롭게 창출되거나 창업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죠. 그러다 보니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실질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 부족한 수입을 빚으로 메우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죠.>
안철수 씨가 애용한 '약육강식, 승자독식,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등의 용어는 좌익들이 한국의 현상을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분석할 때 상투적으로 써 먹는 선동적 말이다. 安 씨의 머리엔 좌익들이 프로그래밍한 인식 틀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판단이 섰다. 좌익들은 국제적 비교를 꺼린다. 李明博 정부가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여 2008년의 한국보다 2012년의 한국은 국제적 位相이 다른 나라가 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책이다.

역동적인 한국을 고정관념으로 분석


복잡하고 동태적인, 약동하는 한국을 경직된 이념에서 나온 정태적 고정관념으로 분석하면 현실과 괴리된 전혀 다른 한국, 즉 암울한 한국을 그리게 된다. 그가 한국의 실정을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란 매우 쉽다.
작년 UNDP는 삶의 질(HDI=인간개발지수) 랭킹에서 한국을 세계 187개국중 15등으로 평가하였다. 삶의 질은 소득(구매력 기준), 평균수명 등 보건, 교육 부문을 종합한 평가이다. 복지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세계 복지 랭킹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29등(세계은행 통계)이었다. 삶의 질 등수는 이보다 14등이나 높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허용하는 것보다 보건과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정부가 복지 분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력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326조 예산중 복지 예산이 92조 원으로서 국방비(33조원)의 거의 3배이다. 45조의 교육예산을 복지에 더한다면 약140조원이나 된다.
중산층 비중도 낮아졌다가 2010년부터 늘고 있고 원래부터 낮았던 貧富격차는 더 줄어드는 추세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율이 고소득층보다 높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에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2008년보다 더 나아졌다. 재정, 무역수지, 물가상승률, 성장률, 실업률을 종합하면 한국은 싱가포르, 대만, 스위스, 노르웨이와 함께 세계에서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이다. 안철수의 대한민국과 세계가 평가하는 대한민국은 딴판이다.
2008년까지 우리의 라이벌이었던 스페인은 실업률 23%(한국은 3%), 청년 실업률 50%(한국은 7%)이고, 국가는 부도 직전이다. 안철수는 비판을 하더라도 뭘 알고 해야 할 것 아닌가? 勝者獨食? 고졸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현직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1980년대 성장률 세계 1위

한국의 언론, 정치, 종북좌익들이 즐겨 쓰는 계급투쟁적 선동어는 '兩極化'와 '貧富격차의 확대'이다. 안철수 씨는 그런 선동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바탕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沙上樓閣(사상누각)의 사고구조이다.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富의 분배가 세계적으로 공정한 편에 속한다.
세계은행이 1965-89년 사이 세계 40개 주요국 평균 경제 성장률과 소득분배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 성장률에서 세계 1위, 소득분배의 평등성에서도 아주 양호한 국가로 나타났다. 소득 분배의 평등성을 재는 기준은 上位 20%의 소득이 下位 20%의 몇 배를 차지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한국은 약7배, 브라질은 약26배, 말레이시아는 약16배, 수단은 약12배, 멕시코는 약20배, 태국은 약9배, 필리핀은 약11배이다. 일본과 대만은 약5배, 싱가포르는 약9배, 홍콩은 약9.5배였다.
1965-89년의 24년간 1인당 소득 성장률이 年4% 이상이고, 소득 분배 지수가 10(즉, 上位 20%의 소득이 下位 20%의 소득의 10배)이내인 우량국가는 東아시아의 6개국-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 태국뿐이었다. 이는 군사정권 때 한국사회의 貧富 차이가 더 커졌다는 俗說을 무효화 시키는 통계이다. 군사정권 때 한국은 전체적인 國富와 개인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소득분배도 가장 공평하게 되었다.
1965∼80년 사이, 즉 朴正熙 대통령 시절과 거의 겹치는 16년간 한국의 年평균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은 9.5%로서 세계 9위였다. 1980∼90년의 11년간, 즉 全斗煥―盧泰愚 대통령 시절 한국의 GDP 성장률은 연평균 10.1%로서 세계1위였다. 5·16 군사혁명 직후인 1963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00 달러로서 말레이시아(271달러) 필리핀(169달러) 태국(115달러)보다 못했다. 군인출신 대통령이 國政을 운영하던 30년간 한국은 GNP 규모에서 세계 37위(1960년)로부터 15위, 1인당 국민소득에선 83위→30위, 무역부문에선 세계 51→11위로 도약하였다.
한국의 민주화가 최소한의 피를 흘리고 이뤄진 것은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가 고도성장 시기와 일치한 덕분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나더라도 국민의 외면을 받아 쉽게 진압된다.

안철수의 요술방망이-'소통과 합의'

安씨의 현실진단은 사실 왜곡이다. '빈부격차 심화' 는 과장이고 '양극화 방치'는 거짓말이다. 문제는 모든 나라가 모든 시대에 지니고 있었던 이런 문제들을 체제의 잘못으로 단정한 뒤 그가 내어놓는 처방의 '나이브함'(순진함)이다.
<이런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고요.>
'소통과 합의'는 萬惡의 근원인 '구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술방망이로서 '안철수의 생각'에 자주 등장한다. 安씨가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고 엄정한 法질서 확립과 安保, 그리고 성장이 필요한데 그는 줄곧 '소통과 합의'라고 강조한다.
안철수 씨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수많은 복지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유엔개발기구(UNDP)의 삶의 질 통계(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지금도 국민소득 수준에 비하여 교육과 복지 분야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이다. 이미 복지과잉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씨는 유럽 국가의 기준을 갖고 와서 '한국은 아직 더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돈을 쓰는 방법도 가난한 학생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무상급식이 필요하지 않는 부자 집 학생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급식하자는 식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형편에서 좀 늘리자는 얘기를 두고 '재정위기'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 재정위기를 맞은 것이 '과잉복지'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복지지출이 많아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훨씬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먼저 망했어야 했겠죠. 그런데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은 경제력 수준보다 더 많은 복지 지출을 하여 재정위기가 온 것이고, 北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에 맞는 지출을 하여 위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점을 무시한 비교법이다. 개발 도상국이 복지 수준을 自國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선진국 기준에 맞추려 하면 필연적으로 재정적자가 생긴다. 그리스는 의료보험 분야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여 위기를 자초하였다. 안철수 씨는 스웨덴의 경우 "富者라서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해서 富者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되지 돈을 많이 써야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복지를 하여 부자가 되려면 그 나라 경제력에 맞는 수준의 복지를 해야 하는데 安씨는 한국의 경제력보다 더 많은 복지를 하자고 주장하니 富者가 아니라 貧者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하여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많이 내려면 개인과 기업이 이익을 남겨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가 주장하는 경제, 복지정책을 종합하면 거의가 시장경제의 자유를 죽이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增稅를 하나? 그는 "능력대로 내고, 필요한 만큼 쓰자"는 주장도 소개한다.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고 많이 쓰자는 이야기이다. 이는 공산주의의 사기극으로 밝혀진 유토피아의 꿈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