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 고려대 객원교수(전 국가정보원 3차장)는 지난 7월24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리영호 숙청, 권력투쟁·개혁과 거리 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하여 주목할 만한 의견을 냈다. 그는 <북한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배경을 둘러싸고 추측이 난무했는데, 결론은 신군부를 대표하는 리영호가 당료파이자 주도 세력인 장성택·최룡해와 정책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軍에 집중된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한 교수는 누가 이런 분석을 내렸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최근 對北 정보 관계자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리영호가, 인민군 지휘관들의 돈줄인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가져간 데 불만을 토로하다가 장성택-김경희-김정은 중심의 實權派에 의하여 숙청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영호의 불만 표출은 개인적인 게 아니라 군대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韓 교수는 리영호 숙청이 권력투쟁이나 路線갈등에서 빚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1990년대부터 軍 부대는 회사를 차려서 각자가 외화벌이에 나섰다. 일부 軍 지휘관들은 蓄財(축재)도 하였으나 벌어들인 돈은 거의가 부대 운영에 쓰였다. 김정일은 군에 대한 배급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군대의 자체적인 외화벌이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군대를 체제 수호의 중심으로 규정, 先軍정치라고 하여 군대를 黨보다도 우대하는 정책까지 폈다.
1961년 5.16 혁명전 한국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장교들이 월급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으니 厚生사업이란 걸 하였다. 사병들을 시켜 나무를 잘라 시장에 팔기도 하고 숯도 구워 팔았다. 부대 차량을 민간인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기도 하였다. 生計 유지용의 사업이었지만 돈을 모으는 지휘관이 생겨 나고 이에 분노하는 장교들도 있었다. 軍內 부패에 대한 불만이 5.16 군사혁명의 한 동기였다.
북한군에서 외화벌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군의 후생사업에 비교할 바 아닐 정도로 클 것이다. 장병들을 먹이는가 굶기는가의 절박한 문제일 수도 있다. 1990년대에 이미 북한군 부대에선 영양실조자가 대거 생겨, 이들을 눕혀 놓는 내무반을 별도로 운영하였다.
돈줄과 밥줄인 외화벌이 사업을 김정은 정권이 軍 지휘관으로부터 빼앗가 내각에 넘긴 것은 軍 지휘부를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밥줄을 빼앗는 것보다 더 강한 반발을 부르는 일은 없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리영호가 군대의 이런 불만을 반영, 불손한 言動을 하다가 장성택 등 실권파에 의하여 숙청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으로 군대의 불만이 수습될 것 같지는 않다.
군인들의 집단적 원한을 사는 정책은 매우 위험하다. 文臣이 武臣을 조롱하다가 武臣의 亂을 부른 고려시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軍制개혁에 반발한 임오軍亂이 있고, 5.16 혁명의 예가 있다. 혁명 직전 張勉 정부는 10만 減軍을 추진하였다. 이게 장교들을 자극하였다. 減軍이 되면, 장교직도 줄어들 것이고, 강제 轉役될 사람도 생길 것이다. 제대자들이 실업률이 높은 사회로 나가서 밥줄을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북한군의 상황이 5.16 직전의 한국군과 닮았다고 단정할 순 없으나 외화벌이 사업 이관으로 軍의 불만은 높아질 것이다. 김정일 시대라면 强權으로 이런 불만을 누를 수 있었지만 김정은 정권이 행사할 수 있는 공포의 세기는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두려움이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한다.
實權派와 북한군의 갈등과 긴장은 암살, 軍亂과 같은 돌발 사건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만큼 북한 상황은 유동적으로 변한다. 시장의 확대, 정보의 확산, 권력 내부의 갈등, 주민 불만과 군인 불만의 高潮(고조) 등등의 변수가 무슨 계기로 서로 연결되면 대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急變의 조짐을 보이는 북한을 놓고 치러지는 2012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을 軍 통수권자로 뽑을 것인가?
리영호 숙청이 軍亂을 부를 가능성은 없는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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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1, 1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