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최근 행보, 매우 놀랍고 심히 의아스럽습니다.
딱 한 번, "야! 통쾌하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그래도 한번은 이렇게 질러야 되는 것 아니겄어!"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딱 한번입니다. 순간도 지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쓱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날을 우리는 광복으로 기억하고 일본은 패전으로 기억합니다. 일본은 아예 이 날을 기점으로 전전(戰前) 전후(戰後)를 나누고 학문적으로나 저널리즘적으로나 통상 일본 현대사의 전환기적 개념으로 이를 사용합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패전후 절망을 감당하지 못하여 그야말로 정신의 방황을 오래 겪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놓고 벌이는 옥신각신을 보면 일본의 이 방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인간실격', '사양'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이 일본 전후 정신적 상황을 제대로 그려냈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이 빵처럼 팔렸다는 이 시대, 그야말로 비끼는 해, 사양(斜陽)의 작가 다자이는 빵처럼 팔린 사양의 성공을 뒤로 하고 자살하고 말았죠.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끼오(1925~1970)가 일본 자위대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상황도 패전과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1930년대부터 유행했던 일본의 '근대의 초극론(超克論)'이란 승승장구하는 일본이 드디어 서양을 이겨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고 마침내 세계제패에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표현한 사상입니다.
근대를 넘어선다는 것은 서양을 이기겠다는 것이고 곧 천황, 후지산, 에도 이런 일본중심적 상징들과 함께 욱일승천한다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서양도 근대도 넘어서지 못했고,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본토는 아니지만 미국에 제대로 맞짱을 뜬 호기도 아랑곳 없이 전면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천황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말하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내놓았습니다.
천황이 내놓은 권력을 들고도 전후의 일본국민들은 안절부절해 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왔는데 이걸 정말 줏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입니다. 그렇게 패전 이후 일본의 현대 정치사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랄까요.
한편으로 패전과 함께 군대도 재벌도, 강력한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았는데도 일본경제는 6.25전쟁 특수와 함께 승승장구했습니다. 한때는 미국을 넘어설듯 세계 제2위까지 치달아올랐습니다. 우리로서는 일본이 벌받아야 한다고 믿을 때 이렇게 잘나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였지요.
이런 일본을 바라보며 극일의 의지와 함께 활활 타올랐던 것이 한국 현대사를 구성한 집념의 한 축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일본을 이겼다는 느낌은 60년 이상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은 그런 의미에서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감정적 체험이 된 것같습니다. "아싸. 드디어 일본을 이겼다!" 이런 느낌이 밀려 들었으니 말입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이른바 '극일감(?)'이 허용된다면 저도 합창하며 만세 부르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식민지 지식인들, 특히 문인들의 일본 열등감을 연구한 저로서도 왜 이 합창에 동참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데, 거듭 말하건대 찰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짧은 시간이 지나자 불안한 마음이 스칩니다.
일본은 한반도 자유통일의 중요한 협력자인 것이 현실입니다. 6자회담 당사자인 일본의 역할은 쉽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몹시 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광복 이후 우리의 대일정책이 현실주의에 기반했던 것은 탓할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한방 날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작년 12월, 지진으로 몹시 피로한 일본을 둘러보며 진심으로 일본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센다이 지역의 무너진 해안풍경을 보며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일본인들에게야 말로 처리되지 않은 상한 마음, 상처받은 마음, 부와 상관없이 우울하고 불행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지금 실질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필 이때, 자타가 공인하는 현실주의자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낭만적 민족주의자로 등장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대통령의 최근 대일 행보,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성숙한 태도인가 자문해 보시기를 권고 드리고 싶습니다.
진정한 승리의 길은 좀 더 남았습니다. 일본이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도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더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 지도자들이 조금만 더 역사 앞에 진지해졌으면 합니다. 통일과 함께 거대한 낭만적 기쁨에 맘껏 젖을 때까지 아직은 좀 더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도자의 깊이와 높이, 넓이가 참으로 필요한 오늘입니다.
현실주의자 MB의 낭만적(?) 對日행보
- 김미영(세이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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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6, 2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