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後記] 《안철수의 생각》…‘自己’가 없는 책
글 :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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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기’가 없는 책이다. 안철수씨가 주장하는 것들은 그의 삶이나 조국의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어 그의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읽고 들은 이야기인데, 주로 종북좌파(從北左派) 세력이 애용하는 억지의 틀에 갇혀 있어 매우 상투적이다.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그가 좌파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착한 철수’가 왜 ‘좌익 선동꾼’처럼 말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좌파적이라 함은 이 세상을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본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 서서 대한민국을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사회라고 매도한다. 엄청난 선동이고 왜곡이다.
교양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자(漢字)를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책이다. 나는 한국어(韓國語)를 표기하는 두 문자 중 하나인 한자를 말살한 글을 글로 보지 않는다. 교양의 바탕은 ‘인문적 지식(人文的 知識)’이다. ‘知識’이란 한자어를 분해하면 지식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가 나온다. ‘矢’는 화살, 즉 전략이다. ‘口’는 입, 즉 경제이다. ‘言’은 인문학이고 ‘音’은 예술이며, ‘戈’는 창, 즉 전술이다. 지식인을 자처하려면 모름지기 전략, 전술, 경제, 인문,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문적 교양의 기둥은 역사, 문학, 철학이다. 국가와 민족의 발자취를 알게 하는 역사,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 사물(事物)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이다. 안철수씨의 말에선 이런 교양의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이 50을 넘긴 사람에겐 당연히 요구되는 자질이다. 그는 한글전용(專用) 교육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잠재력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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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대형서점에 안철수 교수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이 가득 쌓여 있다. |
“역경(逆境)을 이기는 인간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안된다.”
안철수씨가 내세운 ‘복지, 정의(正義), 평화’는 공허하다. 복지는 성장으로, 정의는 법치(法治)로, 평화는 안보로 유지된다. 그는 이 책에서 성장, 법치, 안보에 대한 신념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한다. 정부가 채찍만 써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북핵(北核)문제 해결방식은 북한정권이 주장해 온 것의 답습(踏襲)이다. 광우병 난동(亂動)과 용산 방화(放火)사건을 진압한 정부를 비방하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종북문제를 외면한다. 제조업을 경시하고, 대기업을 적대시하면서 낭비적 복지를 주장한다.
세계적 성공 모델을 제시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구(舊)체제’로 매도한 그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고, 키우고, 가꾼 선배 세대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 북한인권 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한 짧은 언급은 있지만 온기(溫氣)를 느낄 수 없었다.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분노는 있으나 민족의 원수인 김일성 일가(一家)에 대한 분노는 없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정의는 공허한 것이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탈무드)
자신을 거의 聖者수준으로 自畵自讚
《안철수의 생각》은 안철수씨와 제정임씨의 문답집이다. 제씨가 묻고 안씨가 답하는 식이다. 안씨가 자신을 설명할 때 한국인들이 좀처럼 쓰지 않는 자화자찬(自畵自讚)의 어법(語法)이 많은 데 놀랐다.
<저는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겐 따뜻하게 대하는 편이지만, 강한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하면 더 세게 맞받아치는 ‘괴팍한’ 성격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 경쟁자들과 겨루고 결국 살아남았던 것도 이런 성격 덕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경영학을 다시 공부한 이유가 ‘배워서 남 주려고’였거든요.>
<지난 10개월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사회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제가 고민한 가장 큰 기준은 ‘개인적으로 뭘 많이 얻을 수 있는가’나 성공확률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였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은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결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과장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예절감각과는 맞지 않는다. 직업을 바꿀 때 오로지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만 생각하였다면 성자(聖者) 수준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생각만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결점 많은 인간이 자신은 무결점이라고 확신하고 다른 결점 많은 사람을 단죄(斷罪)함으로써 유토피아를 만들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같은 역사적 사례가 많다. 독선(獨善)과 위선(僞善)이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결합되면 위험하다. 천국을 만들려다가 지옥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안철수씨 이력 설명이 붙었는데, <최근에는 ‘국민 멘토’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적은 필자 소개는 필자가 반드시 교정을 본다. 이 표현을 안철수씨가 지우지 않은 것으로 봐 그는 자신을 ‘국민 멘토’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그를 나의 멘토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弱肉强食-勝者獨食의 한국”
자신의 도덕성을 내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안철수씨는 이 책을 통하여 이명박(李明博) 정부와 대한민국 현(現)체제를 비판하는 데 무자비하다. 그는 ‘구체제’란 이념적 표현법을 썼다. 한자로는 ‘舊體制’다.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 즉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과 계층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경제시스템 등을 극복하고….>
안씨는 ‘구체제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부연설명을 해 달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만악(萬惡)의 책임을 몽땅 ‘구체제’란 말 속에 집어넣는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 성장과 효율성만을 앞세워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구체제>라는 것이다.
안철수씨가 이 책에서 진단한 한국의 현 상황은 양극화와 빈부(貧富)격차가 심화되고 젊은이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며 중산층은 쓰러지고 의료보험은 부족하며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사회는 승자독식의 암울한 정글이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가 활개 치는 가운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흘러가다가 보니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고 중소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들이 새롭게 창출되거나 창업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죠. 그러다 보니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실질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 부족한 수입을 빚으로 메우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죠.>
안철수씨가 애용한 ‘약육강식, 승자독식,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등의 용어는 좌익들이 한국의 현상을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분석할 때 상투적으로 써 먹는 선동적 말이다. 안씨의 머리엔 좌익들이 프로그래밍한 인식 틀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판단이 섰다.
力動的인 한국을 고정관념으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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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일 안철수 교수가 기자들에게 정치권의 검증 공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작년 유엔개발기구(UNDP)는 삶의 질(HDI=인간개발지수) 연례(年例) 랭킹에서 한국을 세계 187개국 중 15등으로 평가했다. 삶의 질은 소득(구매력 기준), 평균수명 등 보건, 교육 부문을 종합한 평가이다. 복지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세계 복지 랭킹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29등(세계은행 통계)이었다. 삶의 질 등수는 이보다 14등이나 높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허용하는 것보다 보건과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정부가 복지 분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력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326조 예산 중 복지예산이 92조원으로서 국방비(33조원)의 거의 3배이다. 45조의 교육예산을 복지에 더한다면 약140조원이나 된다.
중산층 비중도 낮아졌다가 2010년부터 늘고 있고 원래부터 낮았던 빈부격차는 더 줄어드는 추세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율이 고소득층보다 높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에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2008년보다 더 나아졌다. 재정, 무역수지, 물가상승률, 성장률, 실업률을 종합하면 한국은 싱가포르, 대만, 스위스, 노르웨이와 함께 세계에서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이다. 안철수의 주관적 대한민국과 세계가 평가하는 객관적 대한민국은 딴판이다.
2008년까지 우리의 라이벌이었던 스페인은 실업률 23%(한국은 3%), 청년 실업률 50%(한국은 7%)이고, 국가는 부도(不渡) 직전이다. 안철수는 비판을 하더라도 뭘 알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승자독식? 고졸(高卒)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현직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안철수의 요술방망이- ‘소통과 합의’
안씨의 문제는 모든 나라가 모든 시대에 지니고 있었던 문제들을 체제의 잘못으로 단정한 뒤 그가 내놓는 처방의 ‘나이브함(순진함)’이다.
<이런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고요.>
‘소통과 합의’는 만악의 근원인 ‘구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술방망이로서 《안철수의 생각》에 자주 등장한다. 안씨가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과 안보, 그리고 성장이 필요한데, 그는 줄곧 ‘소통과 합의’라고 강조한다.
안철수씨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수많은 복지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도 안되는 형편에서 좀 늘리자는 얘기를 두고 ‘재정위기’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 재정위기를 맞은 것이 ‘과잉복지’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복지 지출이 많아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훨씬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먼저 망했어야 했겠죠. 그런데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은 경제력 수준보다 더 많은 복지 지출을 하여 재정위기가 온 것이고, 북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에 맞는 지출을 하여 위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점을 무시한 비교법이다. 개발도상국이 복지 수준을 자국(自國)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선진국 기준에 맞추려 하면 필연적으로 재정적자가 생긴다. 그리스는 의료보험 분야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여 위기를 자초했다. 안철수씨는 스웨덴의 경우 “부자라서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되지 돈을 많이 써야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복지를 하여 부자가 되려면 그 나라 경제력에 맞는 수준의 복지를 해야 하는데 안씨는 한국의 경제력보다 더 많은 복지를 하자고 주장하니 부자가 아니라 빈자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가난을 감춰 주기 위해 富者학생에게도 강제급식하자는 사람
미국의 쿨리지 대통령은 가장 하기 쉬운 일은 국민세금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주인이 없는 돈이기 때문에. 안철수씨는 자신의 대담집에서 쿨리지의 명언(名言)을 실증(實證)한다.
<학교급식의 경우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면 ‘얻어먹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 효율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권과 정서라는 측면에서도 배려가 필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선별적 복지를 하다가 보면 수혜 자격, 즉 가난을 입증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행정비용이 든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고요.>
누가 가난한 집인지, 누가 부자인지를 모르게 하기 위하여 무차별적으로 일종의 강제급식을 하자는 주장이다. 동급생(同級生)이 가난한지 부자인지를 모르게 하기 위하여 부자 학생들은 먹기 싫은 밥도 강제로 먹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데 드는 돈이 안철수씨 것이 아니라 국민세금이란 점이다. 안철수씨는 자기 돈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한 반에서 1년간 생활하다가 보면 누가 가난하고 누가 부자인가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있다. 누가 잘생겼고 누가 못생겼는가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못생긴 학생의 열등감을 감춰 주기 위해 잘난 학생에겐 못생기도록 성형수술을 해 주어야 하나. 아니면 못생긴 학생들을 몽땅 성형수술하나? 가난을 입증하고 검증하는 데 돈이 든다고 불평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복지가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도 강제 복지 혜택을 주면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겐 돈을 쓸 수 없을 때가 온다. 안철수씨의 이 낙인론도 좌익진영에서 먼저 개발하여 써먹은 것이다. 안씨의 머리는 먼저 들어간 선입견(先入見)이 임자인 모양이다.
그는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복지정책을 제시한 뒤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많이 내려면 개인과 기업이 이익을 남겨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가 주장하는 경제, 복지정책을 종합하면 거의가 시장경제의 자유를 죽이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증세(增稅)를 하나? 그는 “능력대로 내고, 필요한 만큼 쓰자”는 주장도 소개한다. 이는 공산주의의 사기극으로 밝혀진 유토피아의 꿈이다.
‘지난 5년간 정당한 의사표현이 억압당했다’는 妄言
안씨는 이명박 정부를 비방하는 데 용감하다.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했다고 하는 비판 수준이 아니다. 일방적 매도이다.
<지난 5년 동안 정당한 요구, 정당한 호소, 정당한 의사표현이 많이 억압되지 않았습니까?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한 요구들마저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됐고, 이 때문에 시민의 분노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분노와 갈망이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불법을 서슴지 않는, 주로 종북좌파 진영이다. 안철수씨 머리엔 이 진영의 선동 논리가 그대로 입력되어 자동적으로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듯하다.
▲조작, 과장, 편향, 왜곡의 수법을 총동원한 프로를 통하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선동한 MBC도 ‘정당한 의사표현’을 하여 억압을 당한 경우인가? TV가 발명된 이후 최악의 선동 방송을 한 MBC의 누가 감옥에 간 적이 있나? 억압당한 건 국민이고 진실이고, 억압한 건 MBC 아닌가.
▲좌익이 주동한 광우병 난동으로 대한민국의 심장부가 밤만 되면 불법 시위대에 점령당하고 경찰관이 500명 이상이나 다쳤는데, 이것도 정당한 요구와 정당한 호소를 억압한 결과인가?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투척하고도 검찰조사를 거부하고, 국회로부터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수류탄을 던질 표현의 자유까지 주어야 한다는 건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것은 법질서 확립을 하지 못한 일인데, 안철수는 이 정도의 법질서 유지도 억압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국은 폭도들에게 반역의 자유, 깽판의 자유를 주고(그리하여 무정부 상태가 되고) 표현의 자유로서 수류탄 투척의 자유까지 보장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심판은 선수 편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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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교수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보다는 우리 정부의 책임을 묻는데 더 열심인 것으로 보인다. |
<우선 정부의 각 부처들이 자기가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지금은 노동부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노동부는 노동자 편도, 기업 편도 들어선 안 된다. 법률과 상식과 국익(國益) 편에 서서 공공(公共)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노동부는 노동자 편을 들고 기획재정부는 기업 편을 드는 게 본분에 충실한 태도인가? 질문자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이다.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등에서 파업 등 노사대립이 있을 때 정부가 사용자 편에 서서 경찰을 동원한 강경진압으로 반발을 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라고 질문한 데 대하여 안철수는 이렇게 맞장구친다.
<정부는 중간에서 공평한 중재자 역할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과 법적인 근거하에서 판단하고 중재하는 심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기업 쪽에 기울어져….>
노동부 장관에겐 노동자 편을 들라 해 놓고는 여기선 심판 역할을 주문한다. 좋은 말만 골라서 하다가 보니 상호간에 모순이 생긴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경우, 경찰 동원은 기업 편을 들기 위한 게 아니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 법질서와 공권력을 보는 안철수씨의 눈은 전형적인 좌편향 사시(斜視)이다.
1.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부를 신뢰 못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왜 정부가 신뢰를 잃었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정부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서 그 억울한 장병들이 수장(水葬)되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2. <이명박 정부는 채찍만 써서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중략) 저는 기본적으로 (천안함 관련) 정부의 발표를 믿습니다. 다만,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합리적 의문’을 풀어 주려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견을 무시하는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봅니다.>
얻어맞기만 한 정부더러 채찍 들고 강경책 썼다고 비방
1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작년 10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발언 요지이고, 2는 안철수씨가 《안철수의 생각》에서 한 발언이다. 두 사람이 한 사람같이 말한다. 종북좌익 진영에서 개발한 억지 논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윤창중(尹昶重)씨는 이런 안씨를, <사이비 좌파들이 조작설을 떠들어대다가 밀리니까 토 달고 나서는 것까지 똑같다>고 혹평했다.
안철수씨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한 다음엔 북한정권에 비판의 화살을 돌려야 할 터인데 피해자인 대한민국 정부를 비방한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의문을 다 풀어 준 정부에 대하여 ‘이견(異見)을 무시하였다’고 욕하는 안철수가 국군통수권자가 된다면? 북(北)이 전면(全面)남침을 해도 ‘안철수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북을 자극한 국군이 책임져야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거나,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이견을 검증하기 전엔 반격하면 안 된다’고 할 것 아닌가?
안철수씨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채찍 위주의 강경책, 기계적 상호주의를 고수한 것은 ….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봉쇄정책은 한반도의 긴장만 고조시키고 평화를 훼손한다고 생각해요.>
2008년 이후 북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를 사살하고, 임진강 홍수를 일으켜 피서객 6명을 죽이고, 천안함 폭침공격으로 46명, 연평도 포격으로 4명, 총57명을 죽였다. 이렇게 얻어맞기만 한 대한민국이 강경책만 썼다고 생각하는 이가 안철수씨다.
그는 ‘대북(對北) 퍼주기는 북의 핵(核)개발을 도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종북정권 10년간 북에 갖다 바친 약 100억 달러어치의 금품이 군사력 증강에 쓰이지 않았다면 왜 북한주민들이 굶었나. 연간 3억 달러어치의 옥수수만 수입했어도 굶는 사람이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은 북한정권에 뜯어먹히지 않고 봉쇄정책을 편 점이다. 좌파정권의 대북지원은 거의가 북한정권과 군대를 강화시키는 데 쓰였고 주민들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었다. 이명박 정부가 북의 대남도발에 대한 응징으로 이 돈줄을 끊어 버리니 정권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시장기능이 확대되었다. 북한의 시장확대는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이다. 이를 안철수씨는 비방하고 있다. 그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순진한 생각, ‘美中 사이에서 균형외교’
안철수씨는 ‘순진한 사람’이다. ‘순수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순수한(Pure)’은 청탁(淸濁)을 다 들이마시고도 영혼의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순진한(Naive)’은 뭘 몰라서 ‘순수하게’ 보일 뿐이다. 예컨대 균형외교에 대한 이런 발언이다.
<균형외교와 다자외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미, 대중 외교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미동맹은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존속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외교’란 말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썼다가 국력(國力)이 뒷받침되지 않아 부도처리된 정책이다.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핵을 보유한 강대국 정도이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적군(敵軍) 편인 나라(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한다? 미국이 한국의 안전을 위하여 서해로 항모전단(航母戰團)을 보내면 중국은 반발한다. 이때 한국이 미·중(美中)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외교를 할 수 있나?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비호한다. 이런 중국과 핵을 폐기시키겠다는 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외교를 한다?
‘순진한 사람’은 근사한 용어의 포로가 된다. ‘경제민주화’, ‘균형외교’를 논하면 자신이 고매한 사람이나 되는 걸로 착각한다.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이 교수 출신인 자신 앞에서 균형외교론을 강의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경멸적으로 평한 회고록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너무 많이 아는 사람?
한국 지식인들의 한 단점은 “모른다”, “그건 내 전공 분야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지식인은 삼라만상(森羅萬象)에 대하여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안철수씨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대담집을 읽어 보면 그는 너무 많은 분야에 대하여 너무 자신 있게 발언한다. 그의 전공은 정보기술(IT) 분야이다. 그런데 질문자가 안보, 원전(原電), 복지, 경제 등 비(非)전공 분야에 관하여 질문해도 답변을 사양하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한국의 IT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설명해 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는 척하고 설명을 시작하면 이는 웃기는 일이 된다. 안철수씨가 원전의 미래에 대하여 아는 체하는 것도 그런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 있게 설명한다. 질문자는 “우리나라가 원전의 발전량 비중을 현재의 32%에서 2030년까지 59%로 높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안철수씨는 일본에 가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씨를 만났는데 그가 ‘원자력 에너지는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하더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자력 발전 기술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의 선생이다. 2009년 한국 원전의 가동률은 93.4%로서 세계 1위였다. 일본보다는 가동률이 29.6%포인트나 높았다. 가동률이 높다는 말은 안전성이 높다는 뜻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기습했던 쓰나미가 덮쳐도 한국의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 같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안철수씨는 왜 한국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않고 원전 전문가도 아닌 일본인의 말을 옮기는가? 그는 취약한 논리적 바탕을 딛고 위험한 점프를 한다.
<눈앞의 이익이라는 논리로만 따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가 됐는데요, 지금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중략) 국가가 경제논리만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국인의 자랑거리인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을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존재로 매도한 것이다. 한국이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가 되었다? 수백만을 굶겨 죽인 북한정권의 인간말살엔 침묵하면서 ‘사람 목숨’을 지고(至高)의 가치로 존중하는 한국을 야만국가로 묘사한 이가 대통령을 꿈꾼다? ‘생명을 담보로’ 하여 경제정책을 결정한다고? 도롱뇽을 살린다는 한 여승(女僧)의 억지 주장을 검증하기 위하여 조(兆) 단위의 국고(國庫)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터널 공사를 연기하였던 나라이다. 뭘 모르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건 총론적 비방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도 완벽하냐는 반론이 있고요, 설령 안전하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고를 줄이는 문화가 아닙니다.>
환경론자들은 늘 ‘완벽성’을 요구한다. 인간이 하는 일에 완벽은 없다. 완벽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안철수씨의 논법을 빌리면 비행기도, 자동차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못하므로 앞으로 차츰 줄여 나가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량 비중은 석탄발전량의 40.3% 다음으로서 31.2%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은 1%도 안된다. 발전 단가(單價)도 원전이 가장 싸다. 원전 사고는 일본에서 난 것이지 한국에서 난 일이 아니다. 일본이 잘못하여 저지른 사고를 기준으로 하거나 일본의 비전문가 의견을 받들어 최고의 안전도를 자랑하는 한국의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시키자고 나서는 사람이 과연 과학도인가, 한국인인가?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주체성의 기준이다. 사실(事實)과 현실(現實)에 기초하여 시비(是非)를 가리는 자세가 자주적 행동인 것이다. 안철수씨는 사실과 현실과 자신을 떠나서 외국인의 견해를 빌려 와 ‘탈(脫)원전’이라는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 이게 사대주의 아닌가?
원자력 발전소의 문을 닫은 후 일어날 일들
안철수씨가 탈원전의 대안(代案)으로 내놓는 것들도 원론(原論)을 벗어나지 못한다.
‘에너지 효율화를 통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과도한 전력소비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며,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대체(代替) 에너지를 적극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걸로 전력(電力) 31%의 공백을 메울 수 있나?
원전 문외한이 아는 척하면서 정책 대안을 내놓으니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된 것이다. 가장 큰 무식(無識)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점을 모르는 무식이라고 한다.
한국 원자력 산업을 키우는 데 큰 공헌을 한 원로(元老)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이런 설명이 돌아왔다.
“3·11 쓰나미 같은 게 한국을 덮쳐도 우리 원전은 안전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디젤 발전기를 지하에 설치, 쓰나미에 침수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인데 우리는 한참 높은 안전공간 안에 있어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는 일본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 맨 마지막에 타격을 입을 건물은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지진이 겁나서 원전 문을 닫겠다는 건 고층건물을 다 헐어 버리자는 것보다도 더 무리한 폭언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안전기술을 갖고 있어요. 사소한 사고는 났지만 인명(人命)에 영향을 준 사고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탈원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원자력 발전소 수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한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원자력 발전소 건설 시장에서 경쟁합니다. 국내에서 문을 닫는데 수출이 되겠습니까?
전기값이 올라갑니다. 원자력 발전 덕분에 한국인들은 값싼 전기를 씁니다. 30년 전에 비하여 전기값이 15%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원전을 풍력으로 대체하면 발전단가가 세 배, 태양광 발전은 열 배예요. 전기값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집니다.
독일이 탈원전한다고 그 나라를 따르자는 이들이 있는데, 독일의 가정용 전기료가 한국의 네 배입니다. 앞으로 더 오를 겁니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
정규재(鄭奎載)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은 《안철수의 생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대통령에 출마하고 국민들, 어린 친구들의 지지를 상당 부분 받는다는 사실 자체에 당혹감을 느낀다. 안철수는 나 같은 사람들의 주장에 ‘분노를 느낀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기가 찬다는 느낌을 받았다. … 어디서 얘기는 들었고 좋은 말은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전혀 없다.”
윤창중 《문화일보》 전 논설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줄이라도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지적(知的) 자극이나 지적 열등감을 주지 못하는 안철수의 생각―‘아!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니 마니 하는 수준의 대한민국이구나’ 하는 장탄식이 절로 새나온다.”
한때는 재벌 2세들과 클럽을 만들어 어울렸던 안철수씨가 이제 와선 왜 좌파 논리로 정의를 말하고 그들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가? ‘착한 안철수’를 감염시켜 ‘좌익 선동꾼’으로 만든 바이러스의 정체(正體)는 무엇인가? 텔레비전이 급조(急造)한 인기가 인격을 바꾸었는가? 그의 과거는 그의 미래를 위하여 재구성되는가? 약한 바닥을 딛고 너무 높이 점프를 하다간 바닥이 무너질 터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의 지지기반은 단단하다. 자신이 보수라는 이의 약 30%, 중도라는 이의 약 50%, 진보라는 이의 약 70%의 지지를 받는다. 학생, 화이트칼라, 젊은 세대, 특정 지역의 지지율이 특히 높다. 안철수 지지층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층과 많이 겹친다. 아직 전쟁 중인 나라에서 적군을 편들고 국군을 괴롭히는 ‘천안함 폭침 부정자들’에겐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재교육을 시켜야 하는 게 맞지만 한국에선 민주시민의 자질이 부족한 이들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이들이 민주주의의 허점을 이용, 투표장으로 몰려 나가니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약10%인 29명의 국가반역 전과자(前科者)가 당선됐다. ‘안철수 현상’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김정일 사망 후 급변(急變)의 조짐을 보이는 북한을 놓고 벌어지는 12월 대통령 선거는 통일 대통령인가, 종북 대통령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대중 민주국가에서 위기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진인(眞人)이나 메시아는 없다. ‘안 속는 유권자’가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