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派인사 모임 <원탁회의> "안철수 일단 나와 판을 키워라"

안철수 측근 유민영 대변인 “安원장, 최근 백낙청 교수도 만났다”

左派 인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가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을 향해 12월 대선에서 야권연대에 조속히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원탁회의는 지난해 7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등의 인사 21명이 '2012년 선거에서 이겨 2013년에 정권을 교체하자'며 만든 모임이다.

원탁회의는 2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012년 대선승리로 '희망2013'을 성취합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안철수 현상’의 역동성을 살려 민주세력의 공동승리에 확실히 공헌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면서 安씨에게 구체적인 대선행보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어 한국 사회의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지속성과 열기로 보아 정치적 실체를 지녔음이 분명하다”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자,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安 원장이 공식 선언 이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구체화하고 동행집단에 대한 검증과 피드백을 활발히 수용해야 하는 한편 다른 진보협력 방안에 대해 그 또한 착실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원탁회의는 촉구했다.

민통당에 대해서는 “경선 과정이 투명성과 역동성이라는 기본을 충족함은 물론, 그것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과정이 되길 소망한다”며 “제 1야당의 자긍심을 지키면서도 개방성과 헌신성을 갖고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통진당에 대해서는 ‘통탄할 상황’이라며 “우리가 통합진보당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민주당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진보정치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安 원장이 이제 와서 '나는 도저히 자신 없으니 물러서겠다'고 하는 것은 민주당 후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자기가 단일후보가 되든 민주당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든 일단 나와서 판을 키우라는 것과 돕는 것이 맞다는 의미'라고 기자회견 취지를 밝혔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安원장 측 대변인인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이날 e-메일로 배포한 <안철수 원장의 동정>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 “安 원장이 최근 백낙청 교수도 만났다”면서 “사회 원로들의 말씀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정리/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從北 연대의 막후 모임 ‘원탁회의’의 정체
오종렬, 백낙청, 함세웅, 김상근, 박재승 등 從北인사 참거

4.11 총선 직전에 발표된 민통당과 통진당의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에는 兩黨과 함께 제3자의 서명이 들어갔다. 바로 ‘희망 2013-승리2012 원탁회의’ 대표들의 서명이다. 이 문서에는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의 약속’이라는 長文의 정책문서가 첨부됐다. 원탁회의는 2011년 7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박재승 前 대한변협 회장 등 左派 인사 21명이 '2012년에 선거에서 이겨 2013년에 정권을 교체하자'며 만든 단체다. 4.11 총선이후 원탁회의가 민통당 내부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원탁회의’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주>

▲ 오종렬: 전교조 탄생의 주역
代를 잇는 左派운동 집안, 父親은 좌익 인사

吳宗烈(오종렬, 現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前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전남 광주 태생으로 원래 교사가 직업이었던 인물이다. 1965년 광주사범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교육학 학사)를 졸업하고 軍복무를 마친 뒤 교사가 됐다.

吳 씨는 1987년 전교조의 前身(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가담, 이후 전교조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교조 광주광역시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지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에는 ‘여중생범대위’를 주도했으며, 2004년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保守(보수)진영에 대항해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
 
吳 씨는 또 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 2005년 ‘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6년 말 노무현 정권이 韓美FTA를 추진하려 들자 ‘韓美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및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등 左派정권 등장이후 크고 작은 시위에는 늘 吳 씨가 있었다. 吳 씨의 부친 吳正根(오정근) 씨는 일제시대 일본 유학파로 여운형의 건국동맹에서 활동했던 左翼(좌익)인사이다. 오정근 씨는 해방 이후 여운형, 박헌영 등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美군정이 들어서면서 나주인민위원회는 軍政(군정) 당국에 의해 해체됐고, 오정근 씨는 광주형무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종렬 씨의 집안은 代를 이어 左派운동을 하고 있다. 吳 씨의 아들 오창규 씨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 한총련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1993년 5월 한총련 출범식에서 利敵(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일원으로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와 전화로 ‘청년학생회담’을 추진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아 7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했다. 오창규 씨는 출소 후 ‘박승희 열사(분신자살) 정신계승사업회’에서 활동하다 2006년 민노당 후보로 광주 北구청장에 출마했었다.

오창규 씨에게는 쌍둥이 親兄(오정규)이 있는데, 그의 兄 역시 1993년 오창규 씨가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나설 때, 공과대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오창규 씨는 2008년 5월21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한 축을 중심으로 해 민노당 당원으로 진보정당이 기층 대중 저변으로 확대되도록 하고 한국진보연대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두 개의 바퀴를 돌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 청화: 한총련 합법화 주장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

전북 남원 출신의 승려 靑和는 조계종 교육원장 출신으로 현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6.10항쟁계승사업회 공동의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2003년 4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표된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2010년 7월8일 ‘4대강 개발 중단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생명평화선언’ 등에 참여해왔다. 예컨대 그는 2002년 7월18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한총련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종교인 1000인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 利敵단체 한총련을 적극 비호했었다.

당시 그는 “94년경부터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가 모인 종교인협의회가 활동해오고 있고 이번에도 이 문제에 대해 실무자 차원에서 논의가 준비되었다”면서 “김영삼 정부 때 남북관계가 완전히 경직돼 한총련 파워가 커지자 사회적 격리를 목적”으로 한총련이 利敵단체로 규정됐지만 “국민의 정부에 와서는 6.15 남북정상의 만남을 통해 남북 관계가 화해 협력으로 진전되어 정부에서 추진하는 시책과 한총련 이적은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利敵이란 상대를 이익 되게 하는 것인데 정부도 상대를 얼마나 이익 되게 하고 있느냐?”면서 “한총련 합법화는 舊시대에 양산된 것을 해지하고 젊은 학생들의 활동영역도 열어주고 저희들도 양심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려 靑和가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이하 실불회)>는 대표적 極左단체인 한국진보연대 참여단체이다. 실불회는 1992년 설립 이후 줄곧 ▲비전향장기수후원회(1998년 6월) ▲국보법반대국민연대 및 국보법폐지국민연대(1999년 9월) ▲여중생사망사건 관련 불교대책위원회 구성(2002년 대선 직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2003년 4월) ▲국보법폐지 108배 정진(2004년 12월) ▲비전향 장기수 송환 5돌 기념 및 2차 송환촉구 대회 개최(2005년 9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지속을 주장하는 합동회견 개최(북핵 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법회 주도(2008년 7월4일) 등 反美․反軍․從北 활동에 주력해왔다.

실불회는 또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 간첩-빨치산 묘역을 조성했다. 묘역의 입구에는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비석을 세우고, 비문에는 남파간첩을 의사, 빨치산을 ‘애국통일열사’로 부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애국통일열사 류낙진 선생. 민족자주조국통일의 한길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나리” ▲ “의사(義士) 故 최남규 선생. 해방 후 청진 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로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1957년 구속되어 29년의 감옥생활에서 지조를 지켜내신 민중의 벗. ‘백두’ 옹 여기에 잠들다” ▲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 하나 된 조국 산천의 봄꽃으로 돌아오소서” ▲ “의사(義士) 금재성 선생. 일제감점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 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19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 “애국통일열사 손윤규 선생.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시다가 비전향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친 열사 여기에 잠들다”

승려 靑和는2010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백낙청-함세웅-김상근 등과 함께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9월1일 ‘불교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인격자다운 기품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라며 교육감 후보단일화 대가로 곽 씨가 박명기 당시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혐의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와 함께 2010년 곽노현과 박명기 교수 간 후보 단일화 발표 자리에 배석했던 것에 대해 “재야 원로들의 요청과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관과 교육철학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함께 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곽노현 교육감이 법대 출신인데 법에 저촉된 다고 판단했다면 이미 사퇴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일부 언론이 뭐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듯 한 보도를 하고 있다”면서 끝까지 곽 씨를 두둔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2012년 4월17일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에게 단일화 대가로 2억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교육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억 원이라는 금액은 역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비춰 거액이고 교육감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후보 사퇴 대가로 돈을 지급한 점이 인정되는 만큼 원심 형량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면서 곽 교육감에 대한 판결 이유를 밝혔다.

▲ 백낙청: 천안함 사건 왜곡, 참여연대 고문

참여연대 고문으로 활동 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는 지난해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을 중재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9월1일(201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생각’이란 글에서 “후보 단일화 과정 당시 곽노현, 박명기 두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금전거래나 금전거래 약속도 없었음을 확신한다”면서 구속 수감된 곽노현을 적극 옹호했다. 백낙청은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 개입한 이유도 설명했다. “만에 하나 금전거래가 성립한다면 두 사람 다 죽는 길이요, 박 교수가 사퇴할 용의가 있음이 분명해졌는데도 돈 때문에 단일화에 끝까지 응하지 않는다면 그로서는 두 번 죽는 꼴이 될 터였다”며 “(그래서) 원로들이 중재하는 모양새를 갖춰주겠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단계 연방제로 통일 이뤄야”

백낙청은 2006년 4월20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주최한 강연에서 “남측의 연방제 혹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해 1단계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강연에서 “(6.15 공동선언에서)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은 베트남 식 무력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대전제에 합의한 것이었다”며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의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2항은 ‘독일식 통일도 안 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이어 “6.15공동선언을 지지할 수 있는 세력은 잠재적으로 대다수의 국민”이라며 “이 잠재적 지지 세력을 공개적인 지지 세력으로 만들고 그 공개적 지지 세력이 全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되게 만드는 것이 향후 통일 과정에서 마주할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백낙청이 당시 강연에서 밝힌 ‘낮은 단계 연방제를 통한 1단계 통일’, ‘6.15 공동선언 2항은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의 방향으로 통일을 의미한다’는 등의 발언은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對南혁명논리와 그 궤를 함께하고 있다. ‘북한식 연방제’는 1960년 8월14일 ‘과도적 연방제’,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고려연방제)’, 1991년 ‘느슨한 연방제’ 즉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변화해왔지만, 對南 적화 통일전략의 일환으로 제기해 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천안함 사건관련 정부 조사 '엉터리 발표'라며 음모론 펼쳐

평북 정주 출신의 백낙청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영문학과(학사)를 거쳐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를 밟았다. 그는 미국 유학과 서울대 교수 등 한국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혜택을 많이 누려온 인물이다. 그런 <백 교수는 4월25일 언론 인터뷰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라며 '특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색깔 공세를 각오하고 천안함 문제를 들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일보 사설이 소개하였다. <백 교수는 2010년 6월 '미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에 관해 일본의 양보를 받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발언으로 북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계속 제기해 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백씨가 비판을 각오하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아 아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야당의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경기고-하버드大 박사-서울대 교수의 학력을 가진 이가 초등학교생 정도의 知覺(지각)만 있어도 이해할 수 있는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하여 아직도 不信(불신)과 음모론을 갖고 다니며 이런 허위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은 심리학적 연구사례가 아닐까?

백낙청은 2010년 6월10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된 정부 조사결과를 “엉터리 발표”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나온 발표가 엉터리 같다,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으니 해명해라, 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생존자들과의 접근도 차단하느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분적인 정보밖에 없는 상태에서 대안적인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그는 또 정부 내 對北(대북)강경론자들이 북한의 천안함 도발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진상은 확실히 모르지만 북측의 어뢰 공격이라기보다는 해군이나 국방 당국에서 은폐하고 싶은 유형의 어떤 사고였을 가능성이 있고, 대통령은 북한소행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언론이나 국방 당국에 비해 처음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사고를 이용해서 남북대결상태를 복원하려는, 다시 대결상태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선거를 앞둔 단기적인 정략적 계산도 겹쳐 정부 안팎에서 득세하면서 일을 벌이다 보니까 이제는 이 나라를 온통 딴 나라로 바꿔놓거나 아니면 외교와 국내정치에 있어서의 참담한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천안함 가지고 장난치려 했는데...'

백낙청의 비아냥거림은 계속된다. 그는 李明博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가지고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 게 돼버렸다”고도 주장했다.

“5월 11일 시점에서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종의 永久未濟(영구미제) 상태로 끌고 가면서 北의 소행이라는 냄새만 잔뜩 피우다가 선거가 끝나면 적당히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정부의 과감성이랄까 저돌성을 내가 과소평가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웃음)···(중략)···그러니까 나쁘게 보자면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 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추가 자료를 제시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망신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길이 없어졌다.”

백낙청은 철저히 김정일을 옹호한다. 그는 ‘그래도 北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극렬분자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망동을 누가 저질렀을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데다가 지금 어려운 고비에 와 있다. 또 내부에 극렬분자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망동을 누가 저질렀을 수 있다. 따라서 北의 소행일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김태영 국방장관 말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는 게 맞다.(웃음) 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부가 발표한 사실을 포함해 관련 사실을 하나씩 좁혀가다 보면 北 공격설의 입지가 점점 위축되지 않는가 한다.”

무기 팔려고 이명박 정부의 조작을 미국이 지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백낙청의 음모론은 계속된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미국이 전폭 지지했다. 왜 그렇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다르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미국이 밝힐 의무가 없다”, “당장 무기를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답했다.

정부는 북한이 하지도 않은 천안함 도발을 조작해 발표하고, 미국은 무기를 팔기 위해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는 말이다.

“(전략)…단기적으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미국이 전폭 지지해서)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게 너무 많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다르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미국이 밝힐 의무가 없다. 한국 정부가 우기면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고 하니 우리가 우방으로서 밀어 주겠다’고 하면 되고, 그렇게 해준 만큼 한국 정부에 대해 채권 하나를 더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방면에서 나중에 한국 정부를 압박해서 代價(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 당장 무기를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해군력 증가하겠다고 하면 어디서 무기를 사오겠나?”

그는 이어 “단기적으로 볼 때는 미국이 실속을 차리고 있는데, 그러나 만약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조단 발표가 진실이 아니라면, 더구나 충분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알고도 한국에 동조했다는 게 장차 밝혀진다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국민들은 19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1980년 광주 사태 당시와 비교했다.

“2012년 대선은 대단히 중요, 새로운 세력 키워가야”

백낙청은 천안함 사건 民軍합동조사발표 직후인 5월24일 李明博 대통령의 對국민 담화에 대해 “초법적 조치”,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憲政질서를 변질시키려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통령 담화는 거의 초법적인 조치였다.···(중략)···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내놓은 7·7선언 이래 남북관계 22년의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어온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다.···(중략)···박정희는 말하자면 일시불로 정변을 일으켰고, 전두환은 12.12와 5.17의 2회 할부로 憲政질서를 뒤집었다. 이번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안하는 대신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憲政질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백낙청은 인터뷰 내내 황당한 음모론을 일삼지만 사실에 가까운 주장도 말했다. 예컨대 그는 “나는 2006년 말부터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이 남쪽 사회 내부로 옮겨 왔다”고 평가했다. 백낙청은 같은 맥락에서 2012년 대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 뒤 “그러나 2012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에 역행하는 정부권력, 그리고 여기에 맹종하는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회 등 지금의 조건이 몹시 열악하지만, 정부의 일방통행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고 새로운 세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左派단체 행사에서 “나도 북한공작원 접촉했다” 시인

백낙청은 2010년 8월12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공개적인 自首(자수)'를 선언하였다. 2010년 8월13일자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낙청은 “한충목 대표가 北의 공작원, 김지선, 리창덕, 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고 말했다. 백낙청이 언급한 한충목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指令(지령)을 받고 맥아더 동상 파괴 난동,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회합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한충목은 북한의 指令(지령)에 따라 좌파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9월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열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反美집회를 주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은 한충목에게 ▲ 김일성 수령님을 본받아 대중사업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 ▲김영삼·황장엽 역적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 ▲미군철수공대위를 결성할 것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에 심각하게 대처할 것 등의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공작원들은 또 “FTA, 평택 미군기지 등 공감을 같이하는 투쟁, 大衆(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을 반미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시민·環境(환경)단체 등 새롭게 합류하는 단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낙청은 당시 행사장에서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서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당시 행사에는 백낙청을 비롯,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민노당 대표, 최병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배우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 함세웅: 송두율에게 안중근 賞 준 인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 출신의 咸世雄(함세웅, 1998년 참여연대 자문 역임) 신부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송두율석방대책위 상임대표, 한총련 합법화대책위 상임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온 친북단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1991년 출범)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사이다. 함세웅이 몸담았던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채택했던 조직이다.

당시 오종렬(現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중략) 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全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남북연방제(南北聯邦制)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전국연합이 주장하는 南北聯邦制統一(남북연방제통일)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및 소위 ‘친미수구세력’으로 표현되는 보수 세력을 척결 또는 매장한 뒤,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에 加勢(가세)·結集(결집) 내지 連北(연북)·連共(연공)하는 赤化(적화)통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청와대 고위직 비서관을 비롯, 열린우리당·민노당에 다수의 국회의원을 진출시켜 온 전국연합은 2005년에만 ▲5월15일 광주미군철수집회 ▲7월10일 평택 미군철수집회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철거집회 ▲11월15일·21일 전국농민대회 ▲11월18일 부산APEC반대집회 등 대규모 반미(反美)활동을 사전기획·실행했다.

북한 공작원 송두율에게 '안중근 평화상' 준 사람

위와 같은 좌파 인맥을 배경으로 함세웅은 2002년 7월18일 ‘한총련합법적활동보장을위한종교인1천인’ 선언, 2004년 3월11일 ‘송두율교수의무죄석방을촉구하는사회원로인사선언’, 2003년 10월23일 ‘송두율교수석방을요구하는시민사회1000인 선언’,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폐지를촉구하는각계인사공동선언’, 2010년 12월13일 4대강 사업 관련 정진석 추기경 비난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제목: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 2011년 7월22일 ‘한진 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시국회의 200선언’(김상근, 박원순, 백낙청, 청화 등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과 함께 참여) 등 각종 左派운동에 참여해왔다.

이와 함께 함세웅은 2004년 3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당시 구속수감 중이었던 송두율을 제3회 안중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기념사업회는 “송 교수의 고난이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상징하는 한 지표로서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면서 선정 이유를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구체적으로 “송 교수가 다원적이고 대화합의 시대에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사고와 법규로 재단당하여 과거 정약용이 겪었던 것과 같은 부자유의 고난을 되살고 있다”면서 송 교수를 “정약용과 그의 친구들의 21세기 동지”라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는 또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이바지할 ‘진정한 접점’으로서 송두율 선생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서 송두율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보안법 유지론자를 독재 세력으로 매도

함세웅은 또 2004년 10월9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열린 세상과 오늘’에 출연, 국보법 폐지 반대 운동을, “성서에 대한 문자적 맹종”, “인간을 법체계에 예속시키는 현대판 우상” 등으로 비유하며 “그런 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구체적 사례”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같은 해 9월16일 자유진영의 ‘9.9국가원로시국선언’에 대응, 이른바 ‘민주화원로71인선언’을 갖고 “보안법 고수론자들은 일제와 독재의 잔존세력”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보안법 폐지를 위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함세웅이 공동대표를 지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2002년 ‘한(조선)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6·15선언이 한(조선)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방안임을 인정한다”면서 “북의 고려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제(남북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한(조선)반도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던 종교단체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또 다른 유명 인사로는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소위 '평화미사'를 주도해온 문정현-문규현 신부 형제가 있다.  이들 형제는 그동안 反美-從北단체 시위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맹활약을 해왔다. 문정현은 2000년 주한 美공군 空對地(공대지)사격 훈련장인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사격장폐쇄를 주장하며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 범(汎)국민대책위원회’의 상임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2005년 2월22일 만들어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에는 문정현이 從北인사인 오종렬·홍근수·정광훈(사망)·한상렬·문경식 등과 함께 상임대표를 맡았었다.

문정현의 동생 문규현은 ▲1989년 임수경과 함께 방북, 국보법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98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해 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 궁전 방명록에 “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빈다” 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지 못한 단체로 천주교회의 공식 조직이 아니다. 다른 非(비)인준 천주교 평신도 단체인 나라사랑기도회 등에서는 사제단을 “주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교회 정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 김상근: 미국까지 가서 천안함 爆沈 부정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선거캠프 고문으로 활동했던 金祥根(김상근, 사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참여연대 자문을 지낸 대표적 친북인사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정부 외곽단체인 제2건국위원회 상임의장으로 활동했고,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그는 또 極左인사 오종렬이 주도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을 거쳐, 2009년에는 박원순, 백낙청, 함세웅, 김민영(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의 인사들과 함께 ‘희망과 대안’을 결성해 2010년 6.2 지방선거를 겨냥한 좌파진영의 선거연합을 주도했었다.

그는 또  ▲利敵단체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선언(2002년 7월18일)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공동선언(2004년 9월16일) ▲국보법 폐지 기독교 원로 선언 및 기자회견(2004년 10월6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 ‘각계원로, 나쁜 투표 거부운동 지지 선언’ 기자회견(2011년 8월3일) 등에 참여하였다.

일례로 2004년 기자회견에서는 “기독교인은 수구매국세력의 도구가 되어온 국제적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야 한다”면서 “2005년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원년으로 삼아 전진하자”고 주장했다. 2005년 8월1일 ‘광복60주년-민족 자주와 평화를 위한 선언’에서는 “광복 60년이 되는 오늘에도 우리가 완전한 독립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데는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대미관계 탓이 크다”면서 “우리는 미군 없는 한반도를 적극적으로 준비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에 가다

金씨가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과 김정일이 합의한 反헙법적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2005년 조직됐다. 이 단체는 2007년 10월1일 산하 언론본부 성명을 통해 “국가보안법은 세기의 악법이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의 화해와 협력, 교류를 저해하는 反통일, 反민족 악법이다. 냉전 수구 反통일세력을 위한 국가보안법은 국제사회에서도 폐지를 촉구하는 악법”이라며 줄곧 국보법 폐지 운동을 벌여왔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온 국보법을 북한정권의 시각에서 비방한 셈이다.

단체는 2008년 7월11일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하자, 8월15일 특별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는 6자 외무장관 회동 등에서 금강산 피격사태를 對北(대북)압박용으로 사용하려 하는가 하면, 8월 중 訪北(방북) 교류를 신청한 민간단체의 방북을 불허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과거의 대결과 반목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면서 오히려 남한 정부를 비난했다.

단체는 또 “남북관계 경색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사건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고, 북측은 이 사건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납득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남북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연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그 실천 강령인 10.4선언의 이행을 확고히 다짐하고, 아울러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등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金씨는 2010년 7월 정현백(성균관대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과 함께 미국의 워싱턴을 방문, 한반도 평화포럼에 참석해 북한에 의한 천안함 爆沈(폭침) 사실을 부정하는 對美(대미)선전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이라면서 “전제조건 없는 北美직접대화, 전향적인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 냉전시대로 회귀하지 않는 미래지향적 韓美동맹, 한국 시민사회와의 한반도 정책 소통” 등을 주장했다.

▲ 박재승: 18대 총선에서 전대협 출신 대거 공천

민통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통민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낸 박재승 前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개혁공천’이라는 명분하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들을 대거 공천시켰던 인물이다. 당시 통민당 공천 결과 전대협 출신 현역의원 10명이 모두 공천을 받았다.

1기 출신 이인영(李仁榮)·우상호(禹相虎)·김태년(金太年), 2기 출신 오영식(吳泳食)·정청래(鄭淸來)·최재성(崔宰誠)·백원우(白元宇), 3기 출신 임종석(任鐘晳)·이기우(李基宇)·한병도(韓秉道) 의원이 그들이다. 이밖에도 전대협 출신인 김성환(金星煥), 오중기(吳仲基), 정진우(鄭鎭宇), 박형룡(朴亨龍) 김만수(金晩洙), 박완주씨가 각각 노원 丙, 포항 북구, 부산北강서乙, 대구 중남구, 부천 소사, 천안乙에 공천됐다.

전대협은 1987년 설립 이래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고려연방제 등 북한의 對南적화노선을 추종해오다 지도조직인 '정책위원회' 등이 利敵團體(이적단체)판정을 받았다. 역대 정부 공안기록은 물론 전대협 출신 전향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대협은 金日成주의 지하조직에 의해 장악됐었다고 한다. 전대협 출신 의원들은 17대 국회에서 국보법 폐지를 위해 총력 투쟁했었다.

김태년(성남 수정)의 경우, 전대협과 이적단체 한국청년단체협의회 간부 출신으로서 2004년 8월4일 결성 국보법폐지 입법추진委, 2004년 12월17일 국보법연내(年內)폐지 촉구 결의문작성, 2004년 12월20일 국회 앞 국보법폐지 농성단 격려방문, 2004년 12월23일 국보법폐지 촉구 시민단체·국회의원 공동(共同)기자회견에 참여했었다.<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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