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민주통합당과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주장을 받아쓰기에만 바빴던 <동아일보>가 마침내 1975년 張俊河(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목격했던 金龍煥(김용환) 씨를 인터뷰했다.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 기사를 처음 게재한 8월17일 이후 일주일 만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여전히 ‘타살 의혹’을 제기한 이들의 주장을 받아쓴 기사뿐이다.
<동아일보>는 8월24일자 A12면 톱기사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핵심 인물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장 선생이 사망할 당시 등산에 동행, 失足死(실족사)를 유일하게 목격한 전직 교사 김용환 씨는 8년만의 언론 인터뷰에서 “선입견을 갖고 보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다. 사실상 종결된 것 아니냐. 두 번에 걸쳐 철저하게 조사를 했으니(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말함. 위원회는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판정) 이미 결론 난 것과 다름없다. 내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같은 이야기를 또 반복하라고 강요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더 이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지난 1일 장준하 선생 묘 이장을 참관하며 장 선생의 유골을 검안했던 이윤성 서울대 의과대 법의학연구소 교수의 인터뷰도 함께 게재했다. 이 교수는 “팩트만 말했는데 좌우 제각각 해석한다”며 유골을 검안한 뒤 인터뷰를 스무 번도 더 했지만 자신의 말을 정치색 없이 보도한 매체는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검안 후 “(장 선생) 유골의 머리뼈 골절은 (망치 같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지만 加擊(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다. 서울대 법의학연구소에 장 선생의 유골 검사를 의뢰했던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 소견을 듣고도 “장 선생의 사망 원인은 절대 추락사가 아니며 외부적 가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왜곡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장 선생의 죽음이 망치 등의 둔기로 인한 타살임을 단언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
▲타원형 골절 바깥의 방사형 골절은 일반적으로 망치 加擊보다 훨씬 큰 충격에 의해 발생한다.
▲망치에 맞은 시신에는 여러 차례 내리친 상처 자국이 흔히 발견되는데 장 선생의 경우 한 개 뿐이다.
▲시신 두피에 망치 가장자리 모양으로 찢어진 상처가 남아야 하는데 故(고) 조철구 박사가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에 낸 검안 소견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다.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는 8월23일 <동아일보> 종편채널 ‘채널A’의 ‘박종진의 快刀亂麻(쾌도난마)’에 출연, “(내가) <月刊朝鮮(월간조선)> 편집장이던 1993년 초에도 같은 의문이 제기됐었다. 기자 4명에게 심층취재를 시켜 그 해 5월호에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지금 제기되고 있는 모든 의문이 해명, 반박 되어있다. 장준하 선생은 추락사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의문이 있다고만 이야기한다. 전국의 기자가 2만 명인데 어떻게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 씨를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 사람의 反論(반론)을 쓰지 않나. 대한민국이 정보화 사회인데 기자가 게으르기 때문에 부지런한 정치인의 선전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李知映(조갑제닷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