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장성민氏의 궤변과 억지에 대하여

장성민씨의 발언은 지식없는 사람이 지식인으로 군림하는 몰지성의 시대에 대한 방증
(1) 장성민씨의 연방제 주장에 대하여

7일 TV조선 시사탱크 진행자 장성민씨는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와의 종북문제에 관한 대담에서 사회자의 권한을 넘어선 여러 가지 발언을 했는데 그중 특히 문제적이라고 보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장성민씨는 방송진행 도중 당당하게 "나는 연방제를 원한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의 연방제란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북한 우상정권이 그 입장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한 바탕하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연방헌법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장성민식 '연방제'란 무엇인지 그림을 보여주기 바란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북한은 김일성헌법을 그대로 갖고도 연방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그들의 수도 많지만 목소리도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백낙청 교수도 이런 부류의 대표적 인물이다. 백교수로부터 영산문(英散文) 강독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에로틱한 소설들, 특히 '채털리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D.H.로렌스를 전공한 백낙청 교수는 현 북한과의 연방제가 바로 그런 음란한 불륜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살아있는 한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돌아가서 장성민씨에게 다시 물어보자. 장성민씨가 말하는 연방제에서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국가 최고가치는 무엇인가? 지금 북한의 주인은 '수령님'과 '장군님', 그리고 '대장님'이다. 이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북한은 '자유'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당신이 말하는 연방제 국가에서는 '자유'를 포기할 것인가?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까지 포함한 모든 기본권적 가치를 북한은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의 연방제 국가는 바로 그런 나라인가?

장성민씨를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내세워 무례한 언동으로 '손님'을 박대하는 TV조선을 보며 일제말의 비애를 다시 느낀다. 일제말에는 총칼이 두려워서였겠지만 지금은 파퓰리즘이 조선일보의 비수가 되고 있는 것인가? 일제의 압박이 최고도로 달한 1940년 전후부터 친일에 들어갔던 조선일보는 그 짧은 기간의 본격적인 친일 때문에 아직도 오명에서 벗지나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자유를 위해 싸우다 지금 총칼이 아닌 파퓰리즘에 조선일보는 다시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조선일보 역사에서 친일을 종용했던 것은 불과 몇년이었으나, 이 기간은 일제하 발행된 우리말 신문으로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조선일보의 공적을 심히 깎아먹었다. 그 역사적 과오가 교훈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강압에 의한 신사참배보다 더 위험한 파퓰리즘의 마법에 빠져 스스로 우상정권과 잘못된 결혼을 서두르는 연방제적 발상에까지 조선일보가 노출되어 버린 현실이라면 우울한 일이다. 제발 필자의 침소봉대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장성민씨의 방송사고는 단순한 진행 실패가 아닌 것을 방송사측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사고라면 그가 다시는 방송진행자로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일보는 미래의 거울로 현재를 보기를 당부한다.1940년대 말 이광수도 임화도 김남천도 그들의 친일행로에 대한 변명이 "일본이 이렇게 쉽게 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는 말이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북한의 저 위험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오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정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요설을 서슴지 않는 이상한 지식인들이 남쪽에 많이 있을 뿐이다. 역사는 그들을 무시할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지식인들이란 시류에 편승하다 사라지고 마는 3류에 불과하다. 조선일보가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3류 지식인들로 인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2) '북한아사설' 증거 요청에 관하여

장성민씨는 1990년 북한의 대량아사가 사실이 아니라며 김성욱 대표에게 자료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렀다. 북한 대량아사에 대한 사실적 자료라면 법륜스님이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정토회, 또는 좋은벗들에 요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좋은벗들(대표 법륜)은 1990년대 말부터 북중 국경지대에서 광범위한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 1990년대 아사자수를 약 350만 명 선으로 발표했다. 영국의 유력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약간 보수적으로 추산하여 200만선으로 보았고, 북한에서 '대량아사 Mass Starvation'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전문가는 좌우 통틀어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350만 추산이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 또는 수명단축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도 물론 있다. 대량아사에 대해서는 북한도 적극적으로 시인해 왔다. 2000년에 조선중앙방송에서 방영된 영화 '자강도사람들'은 '자고 나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며 1990년대 대량아사 사태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며 시작된다. 다만 이 모든 고난이 '수령님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는 행군에 포함된다고 분식할 뿐이다. 어쨌든 사실은 인정했다.

300만까지는 아니라고 우기는 한총련이나 좌경 종북 단체나 매체조차도 대량아사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 10분의 1 수준이라고 우기는 때가 있었으나 이들 종북 단체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굶고 있으니 식량 보내자"로 캐치 프레이즈를 바꾸었을 뿐 대량아사자체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TV조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장성민씨가 1990년대 북한 대량아사를 부정하는 지식인으로 드디어 등장한 셈이다. 그가 북한 문제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함량의 초미달 인물이 중대한 현안을 다루는 TV조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등장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선일보와 TV조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 지식인으로 군림하는 몰지성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덧붙이자면 '진실'에 눈감는 시대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또 한 번 각성시켜 주는 경종이다. 한때 한총련은 좋은벗들 등의 350만 아사설에 반기를 들며 20만에서 30만으로 주장했다.

20만은 적은가! 체제 실패로 굶어죽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스캔들이 아닌가? 우상정권 유지를 위한 대량아사는 제노사이드임에 틀림없다. 이 체제와 연방제를 꿈꾸는 장성민씨! 그 꿈은 진실에 눈감은 사람의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3) '탈북행렬 햇볕정책 공적설'에 관하여

장성민씨는 7일 대담에서 남북교류협력이 진작됨에 따라 탈북이 늘었다고 주장하며, '탈북' 자체가 햇볕정책의 공적이라는 새로운 설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대북포용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북한인권단체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장성민씨의 '탈북' 자체가 햇볕정책의 공적이라는 주장은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견해가 아닌가 한다.

장성민씨는 '탈북'을 '이민'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교류가 없었는데 어떻게 탈북이 있었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정권이 탈북에 너그러워졌거나 아니면 '이민'을 묵인하고 있다고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햇볕정책을 폈던 매우 '박애적'인 정권이 탈북비자라도 발행해 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1990년대 탈북 사태는 김성욱 대표의 주장대로 식량난으로 인한 것이 맞다. 대량아사와 대량탈북은 같이 일어난 현상이다. '죽거나 탈출하거나'의 선택에서 죽는 이와 탈북하는 이가 있었을 뿐이다. 햇볕정책과 탈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탈북에 새로운 현상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단순 인도적 위기로 인한 탈북과는 다른 양상이 생겨난 것이다. 가족단위의 탈북 뿐 아니라 누적된 탈북자들로 인해 북한 내에 정보 유입량이 늘어나면서 북한내에서 탈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서독 통일 직전의 탈출행렬과는 숫자나 양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의 탄압이 여전히 심하고, 남한은 돕지 않으며, 접경국인 중국이 동독의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과 달리 탈북을 방해한다는 점 때문이다. '탈북'은 여전히 매우 어렵다. 감옥과 고문 등 죽음의 고통을 거쳐서 성공하는 것이 탈북이라는 것이다.

실패율도 적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든다. 탈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민이 아니었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수백만원에서 '목숨'까지 여전히 매우 크다.

장성민씨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햇볕정책도 대한민국 헌법과 역사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김정일 정권과 손잡고 평화를 사보려 했을 때도 사람들은 자유와 생존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햇볕정책 당국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적어도 헌법의 통치력이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은 탈북자들을 내쫓을 수 없었다는 것.

탈북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헌법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준엄한 진실이다.

햇볕정책 당시나 지금이나 헌법 제3조와 제4조는 있다! 김성욱 대표는 그것을 거듭 말하는데 사회자는 알아듣지 못한다. 과문한 것인가, 무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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