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박정희)와 민주투사들은 모두가 愛國者(애국자)다!

성숙해진 국민들의 역사관을 정치선동꾼들이 깨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자.
*정치권에서 ‘維新(유신)체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동아일보가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약68%)가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연령, 이념, 소득, 학력의 차이를 뛰어 넘어 全계층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1972년 10월17일의 유신조치는 불법적으로 憲政(헌정)을 중단시킨 점에서 朴 대통령의 두 번째 쿠데타였다.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제약되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평가는 이런 법적 측면을 포함하여 國政(국정)과 국민의 삶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7년의 유신 기간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입체적으로 균형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유신기간(1972~79년)에 세계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맞아 큰 타격을 받았으나 朴 대통령은 정치 코스트를 최소화하고 國力(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중화학공업 건설, 自主(자주)국방력 건설, 새마을 운동, 중동 진출, 의료보험 도입이 이 기간에 이뤄졌다.
*維新기간에 건설한 중화학공업-전자, 조선, 종합제철, 석유화학, 자동차, 기계공업은 오늘의 한국을 세계 10大 경제대국으로 밀어올리고 一流(일류)국가를 꿈 꿀 수 있게 한 기반이다. 한국인들이 장기간 먹고 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유신기간 중 노조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1977년 7월1일부터 시행된 의료보험은 세계적 성공사례이다. 朴 대통령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없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유신기간의 경제발전으로 성장한 중산층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主力軍(주력군)이 되었다.
*유신시절 용감하게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던 사람들은 빵과 자유를 다 같이 누리는 민주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애국자들이다. 당시엔 서로 맞섰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이제 역사적 관점에서 서로의 역할을 평가하고 힘을 모을 때이다. 역사논쟁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종북좌파 세력이 建國(건국) 60주년 행사를 거부, 조국을 생일 없는 나라로 만들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광화문에 李承晩(이승만) 建國 대통령 동상을 세우고, 8.15를 건국절로 기념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성숙해진 국민들의 역사관을 정치선동꾼들이 깨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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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휴일을 맞아 公事多忙하신 가운데서도 최성건-정은심 씨의 장남 최우석 군과 전성환-유양순 씨의 장녀 전하연 양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많이 왕림해주신 여러분들께 兩家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신랑이 근무하는 月刊朝鮮의 편집장을 지낸 인연으로 주례를 맡았습니다. 주례를 하기 위하여 신랑 신부를 만나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 때 두 사람은 그 밝은 인상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이렇게 야외에서 보니 더욱 아름답습니다.

신랑 최우석 군은 월간조선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른 세 살입니다. 세종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고 재학중 동해안 철책선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신랑은 후배의 소개로 신부를 1년여 전에 만났다고 합니다. 올해 스물일곱인 신부 전하연 양은 광운대학교를 졸업하여, 신발 가게 옷가게를 운영한 적도 있고 지금은 한국 최대의 밥솥 회사 쿠쿠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신랑은 신부 덕분에 평생 밥 굶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80년대엔 한국 주부들이 일본에 가서 전기밥솥을 대량으로 사오다가 공항에서 걸려 말썽이 되기도 했는데 요사이는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쿠쿠밥솥 쇼핑을 하는데 이를 밥솥관광이라고 한답니다. 이상은 신부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제 집사람한테 확인한 바 우리 집도 쿠쿠밥솥을 쓰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밥솥 밥을 먹게 된 것은 신랑이 먼저 프로포즈를 하고 신부가 기다렸다는듯이 이를 접수하여 成事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신부는 無男獨女이고 신랑은 여동생이 있습니다. 신랑의 아버님 최성건 어머니 정은심, 신부의 아버님 전성환, 어머님 유양순 이 네 분은 모두 1950년대 출생이십니다. 6.25 전쟁 직후에 태어나 어린 시절 배고픔도 맛보았을 것입니다. 개발연대를 맞아 일을 가장 많이 한 세대이고, 배고픔을 아는 마지막 세대요 풍요를 즐기기 시작한 첫 세대일 것입니다. 신랑 아버님 가족은 원래 황해도에 살고 계셨는데, 6.25가 나고 중공군이 쳐내려오던 무렵, 즉 1.4 후퇴 때 월남하셨다고 합니다.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그래서 최우석 씨는 아름다운 신부를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6.25는 수많은 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재앙으로 위장한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랑 아버님은 국립극장에서 일하시다가 정년퇴임하시고, 신부 아버님은 현대건설과 삼환기업에서 일하시면서 중동 등 해외 근무를 오래 하셨다고 합니다. 신부가 전한 말에 따르면 오늘부터 장인과 사위 사이가 된 두 분은 만나면 대화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최우석 기자는 정치 부문 취재를 많이 하고 장인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서로 죽이 잘 맞는 모양입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는 대화가 어려운데 여하간 부럽습니다.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오신 네 분이 오늘 남의 아들을 사위로, 남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사돈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결혼이 두 집안의 행복과 복지를 더욱 증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주례사를 할 때 써 먹으려고 무슨 家訓이나 좌우명 같은 건 없느냐고 물었더니 신부가 말하길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게 家訓이라고 했습니다. 주례사를 가장 짧게 하는 방법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부부가 되지 마십시오"라고 딱 한 마디 하면 됩니다. 한 마디를 더 붙인다면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또 한 마디를 더한다면 '凡事에 감사하라'가 될 것입니다. 이 말만 하고 주례사를 끝낸다면 모처럼 여기 오시고 이 날을 수십 년가 기다려온 두 분을 실망시킬 것 같아 좀 더하겠습니다.

결혼의 본질적 의미는 생명과 사랑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이 결혼인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물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두 사람이 이 지구 위에 새도 아니고 돌고래도 아니고 인간으로 서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휴전선 북쪽에서 태어나지 않는 게 기적인 것입니다.

결혼의 첫 페이지는 詩로 기록되지만 나머지 페이지는 전부가 散文(산문)으로 기록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열정과 사랑은 결혼생활의 도입부이고, 順航(순항)고도에 들어서면 理性과 신뢰가 일상적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人生이란 한자어를 풀면 뜻이 이렇습니다. 生, 즉 인간의 삶은 소牛가 외나무다리(한 一자)를 지나가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므로 人, 즉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은 완벽한 상대를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대끼리 만나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너그럽고, 든든한 아내를 둔 남편은 그 어떤 시련이 있어도 위기를 돌파해내고 든든한 남편을 둔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생은 결국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건설하였는가로 평가될 것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의 참뜻은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는 마음대로, 멋대로 살면서, 주저 없이 일하고 일한 뒤에 후회 말라,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만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고통이 아니라 못해 보고 죽는 게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괴테는 “위험하게 살아라, 그게 옳게 사는 법이다”라고 도전적 삶을 격려하였습니다. 용감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두 신랑 신부는 그러나 저 남태평양의 통가나 피지가 아니라 휴전중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군사적 대치 속에서 이념전쟁이 계속되고 시장경제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조국입니다. 한국인으로 산다 함은 경쟁과 투쟁을 숙명적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새의 둥지가 뒤집어지면 그 안에 있는 새알은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공동체라는 둥지를 뒤엎으려는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일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요, 일터를 지키는 일이요, 사랑과 행복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인생을 좀 살아 보니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성격이 모든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특히 겸손입니다. 겸손은 고귀함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겸손해야 고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낮추어야 나중에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분처럼 모든 것이 정상적이고 유복한 사람들에게는 겸손과 봉사가 의무사항입니다.
공자는 論語에서 말하기를 “富者가 겸손해지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 원한을 품지 않는 것보다 쉽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경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정상적으로 태어나고 정상적으로 자라고 정상적으로 결혼하고 정상적으로 일합니다. 이보다 더한 행운은 없습니다. 따라서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선행도 자선도 아니고 정상인의 의무인 것입니다.

결혼은 결국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품속을 떠나 未知(미지)의 大洋으로 항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친 풍랑이 두 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荒天(황천)항해를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떠나야 합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 두려움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힘이 생기고, 사랑을 받으면 용기가 생긴답니다. 제가 최근에 재미있게 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디 임파스블 드림'이란 노래의 한 句節을 두 분에게 선물로 드립니다.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사랑을 믿고 따르라. 잡을 수 없는 별을 향하여 내 팔을 뻗어라!" 신랑, 신부, 여러 분, 인생이란 무대에서 용감하고 위험하게 후회 없이 마음껏 살아 가십시오.

하객 여러분, 두 신랑 신부의 人生항로가 성공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웃과 사회와 나라가 그 득을 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두 사람의 거취를 계속 지켜봐주시고, 응원과 충고를 아끼지 말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두 분의 행운을 빌면서 경청해주신 하객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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