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문화의 효율성 확산
5. 朴正熙는 군사문화를 자신의 교양으로 체득한 사람이었다. 문민통치의 전통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다가보니 나라와 겨레가 文弱(문약)에 빠져 결국 亡國(망국)으로 전락했던 역사속에서 희귀한 지도자가 나타난 것이다. 군사문화의 핵심은 승리를 위한 과학적이고 치밀한 준비, 역량을 동원하고 집중시킬 수 있는 조직의 운영, 그리고 군사력의 본질인 지도력과 과학 기술이다.
이의 원리를 간파한 지도자는 국가나 기업의 운영에 유리하다. 명분과 말장난이 심한 문민정치와 달리 군사문화는 실천과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朴正熙로 대표되는 장교단은 5.16 군사 혁명 뒤 이런 선진 군사문화를 공무원 조직과 기업으로 전파시켰다. 한국 사회 전체가 효율적으로 변했고 생산성도 높아졌다.
남북 무장대결상황에서 군사문화에 젖었던 인물이 지도자가 되어 근대화를 추진함으로써 文이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武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신라통일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尙武(상무)정신의 재발견이었다.
신라통일을 가능케 했던 文武의 통합(그래서 통일대왕의 이름이 文武王이다)에 의한 놀라운 힘이 근대화를 가능케 했다. 이 文武兼全의 균형과 조화와 통합은 자유통일을 넘어서 국가선진화로 나아가는 데서도 필수적인 국력 요소가 될 것이다.
모범생과 총잡이도 함께 썼다
이상의 인간적인 특징을 지녔던 朴正熙는 어떤 사람들을 重用했던가.
1. 그는 인간의 단점을 덮고 장점을 이용하는 人事를 했다. 능력 있는 사람에 대한 험담이 들리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나. 유능하면 돈을 좋아하고 돈을 먹지 않은 사람은 무능한 경우가 많지 않나. 우선은 돈을 많이 벌어놓고 부패문제를 나중에 따지는 게 순서일 것이다.'
朴대통령은 부자가 되면 민주주의가 따라올 뿐 아니라 부패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 각국의 부패정도를 따지는 투명도 조사를 하면 잘사는 나라일수록 공직자의 부패가 덜하고 가난한 나라일수록 부패한 것으로 나온다.
그가 중용한 사람 가운데는 능력은 출중한데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朴대통령이 단점을 덮어주고 썼기 때문에 그들은 더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결백한 사람만 쓸 수 없었던 시대의 불가피한 人事였을 것이다.
2. 朴대통령은 모범생뿐 아니라 吳源哲(중화학공업 담당 수석비서관)이나 朴鐘圭(경호실장. 서울올림픽의 발상자)처럼 창조적이고 파격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 金炯旭(정보부장)처럼 권력지향의 충복型, 李厚洛(비서실장) 같은 재사형을 두루 썼다. 국가경영에는 여러 가지 인간형의 여러 가지 재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3. 朴正熙는 한번 믿고 쓰면 부하에게 재량권을 많이 주었다. 장관에게는 차관 이하의 인사권을 주는 대신 책임을 물을 때도 장, 차관이 같이 지도록 했다. 아래로 권한 위임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은 중요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챙길 수 있었다.
4. 朴正熙는 지시보다도 확인을 중시했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현장에 나가기도 했다. 대범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세부적인 점까지 확인했다. 부하에게 권한 위임을 한 뒤 방치해버리지 않고 반드시 결과를 점검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제가 가능했다. 그는 공사나 건설의 마감시간을 관리했다.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알고 있었다.
5. 그는 부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시할 때는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도록 신경을 썼다.
6. 그는 사안의 大小와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 투철했다. 朴대통령은 사소한 데 목숨을 걸지 않는 사람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신경을 쓰지 않고 중요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7. 朴正熙에게는 '하인에게는 영웅이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를 가장 존경한 사람들은 그와 가까이 있었던 비서, 운전사, 보일러공, 이발사들이었다. 朴正熙는 인간차별을 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혐오한 것은 특권과 특혜였다.
8. 이런 朴正熙이지만 말년에 가면 인사에 실패한다. 즉 우유부단한 金桂元 청와대 비서실장, 무능한 金載圭 정보부장, 오만방자한 車智澈 경호실장으로 권력의 핵심부를 짜는 바람에 권력기관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세 사람의 암투가 생기고 이것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 金載圭의 무능을 알고도 자르지 못한 안일함이 함정이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식 人事(2)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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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8-25, 2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