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 루터



1517년에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써붙여 종교개혁에 불을 지른 독일 작센공국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1520년 교황청이 파문하겠다고 위협하자 반격을 시작한다. 그는 '기독교 재산에 대해서 독일 민족이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독일어로 써 돌렸다. 이 글에서도 그는 독일사람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한다. 당시는 '독일민족'이란 개념은 없었고 독일의 제후 국가들만이 존재했다.
<어떻게 우리 독일 사람들이 우리 재산이 교황들에 의해서 그런 강도질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도둑을 목매달고 강도의 목을 벤다면서 어떻게 로마의 탐욕은 그대로 두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편지를 보내 그 개인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했지만 교황청의 反성경적인 요소와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사정 없이 공격했다.
<당신은 하인들중의 하인이다. 당신에게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대를 높이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말고 그대를 낮추는 사람을 믿으시라>

교황이 루터를 파문하자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학생들이 교황의 칙서 사본을 불태우게 했다. 수도사가 교황을 파문한 격이었다. 교황은 세속 권력의 대표자인 神聖로마제국 황제의 칼5세의 도움을 청했다. 칼5세는 1521년1월27일 독일 보름스에서 제국의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고 루터를 소환했다. 황제는 교황청의 고발에 대하여 증언하라는 초청장을 루터에게 보냈다. 칼5세는 루터에게 통행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도 했다.

루터에게 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터는 '지붕 위의 기왓장만큼 악마가 많다고 해도 나는 보름스에 가겠다'고 말했다. 역사의 흐름과 生과 死를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교황과 황제라는 유럽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상대로 도전장을 냈던 한 수도사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교황청에 대한 분노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그해 4월17일 루터는 수도사 복장을 하고 의회에 나아가 의장인 황제 앞에 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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