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근처에 사는 출가한 두 딸이 세 아이들(외손녀 2명, 외손자 1명)을 데리고 와서 시끄럽게 놀다가 갔다. 일곱 살짜리 吳政錫(오정석)은 물고기 그림을 여러 개 오려서 방바닥에 깔아놓고는 몽둥이에 실을 매달아 낚시를 하고, 네 살 政娥(정아)는 보름달 구경을 가자고 졸랐다. 큰 손녀 裵兪進(배유진)은 열한 살이라 두 동생을 데리고 놀아준다. 정아는 달을 가리키면서 '달토끼'가 보인다고 고함을 질렀다. 신문로에 있는 '햄머링 맨' 조각을 보고는 즉석에서 '망치맨'이라고 作名한 아이다.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이 돌아간 뒤 보름달 구경을 나갔다. 북아현동 뒷산이 鞍山(안산)인데 이 산의 동쪽은 독립문 쪽으로 떨어진다. 동쪽 斜面(사면)을 따라 산책 길이 생겼다. 집 사람과 함께, 무악재와 서대문 형무소 및 독립문과 아파트 단지를 오른쪽으로 내려다 보면서, 보름달을 이고 걸었다. 남산과 여의도도 보인다. 청명한 한가위의 밤 풍경은 평온하였다. 산책길 곳곳에 운동기구를 설치했는데, 가족 단위로, 애완견까지 끌고 와서 철봉에 매달리고 허리를 돌리며 거꾸리를 타는 이들이 보였다. 비탈을 깎아 세운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 보니 人工 협곡 같다.
둘째 딸이 사는 아파트는 14층이라 산책길에서 마주 보인다.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전에 헤어진 외손자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 이리로 오세요!"라고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오늘은 못 가"라고 했더니 "내일은 꼭 오세요"라고 말한 뒤 방으로 사라졌다.
月光의 산책에 무드를 더할 방법을 찾다가, 삼성S3 핸드폰으로 YOUTUBE를 켠 뒤 'Moon River'를 틀었다. 며칠 전에 별세한 앤디 윌리엄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걸었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wherever you're going I'm going your way.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waiting 'round the bend,
my huckleberry friend,
Moon River and me.
문리버, 즉 '月江(월강)'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제곡이다. 1961년에 개봉한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부른 오리지널보다는 앤디 윌리엄스가 부른 게 더 유명하다. 조니 머서가 작사하고, 헨리 만치니가 오드리 헵번의 音域(음역)에 맞게 작곡하였다. 1961년 아카데미 주제가 상, 이듬해 그래미 상을 받았다.
한가위는 年中 가장 좋은 날이다. 기온도, 하늘도, 가을걷이도, 연휴도. 月光에 물들면서 '月江'을 들으면서 걷다가 문득 타계한 李炳注(이병주) 선생이 생각났다. 李 선생은 여러 신문에 소설을 동시에 연재한 적도 있는데, 주로 밤에 집필을 하고 낮잠을 길게 잔 뒤 저녁엔 광화문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분의 末年(말년)에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 자주 합석하였다. 자신이 한때 친했던 박정희를 왜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털어놓은 것도 그런 자리에서였다. 李 선생이 신동아에 연재한 '山河'란 소설엔 이런 副題(부제)가 붙었다. '月光에 물들면 神話가 되고 태양에 바래면 歷史가 된다'. 질풍노도의 한국 현대사를 드라마틱하게 체험하였던 한 낭만적 지식인의 墓碑銘(묘비명) 같은 문장이다.
月光에 물든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걸었다. "우리 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는 感懷(감회)가 저절로 우러나왔다.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키우고, 나라를 가꾸어간 뒷이야기들이 神話와 역사로 남아야 좋은 세상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이런 괜찮은 세상을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안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증오심을 퍼뜨리는 자들에 대하여는 오늘만큼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10시였다.
月光에 물들면서-나의 感傷(감상) 산책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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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30, 2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