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이 8일 원희룡(英國 유학 중), 정태근, 홍정욱 등 舊한나라당(새누리당 前身) 소장파 출신 前 의원들의 영입 가능성에 대해 “전혀 가능성을 닫아놓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朴본부장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아직 그분들과 어떤 의사소통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적합하지 않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朴본부장은 “그 분들(원희룡, 정태근, 홍정욱) 만이 아니라 광범하게 계시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후보의 말씀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朴본부장의 이 같은 발언과 달리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태근 前 의원과 홍정욱 前 의원은 安캠프 합류 가능성을 강력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태근 前의원은 “올해 대선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며, 홍정욱 前의원도 측근을 통해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며 安캠프로 합류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전망을 일축했다.
[1] 원희룡 의원 6·15 실천史
“북한봉쇄? 바람직하지도 않고 불가능해”
(2011년 6월21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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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의원의 기존 발언은 대한민국을 한반도 唯一(유일)합법정부로 규정한 헌법 제3조를 부정하고 북한정권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북한 연방제가 수용된 6·15선언 실천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몇 개의 발언을 인용해보면 이러하다.
  
<“분단된 상황에서 영토규정은 의미가 없다”>
  
“국가보안법 제2조의 반국가단체 중 ‘정부 참칭’ 부분도 삭제해야 한다. 정부를 참칭한 것만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 실질적으로 남북한이 2개의 정부로 활동하고 있는 점에 비쳐볼 때 맞지 않는다. 분단된 상황에서 영토규정(편집자 주 : 헌법 제3조)은 의미가 없다. 통일된 후 영토규정을 넣으면 될 것이다” (2004년 9월9일. 연합뉴스 인터뷰)
  
“평화공존하고 교류협력을 전면화해야 한다. 김정일하고도 평화 공존해야 한다. 북폭이나 흡수통일은 현실성이 없다.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거치면서 북한에 자치권을 주는 시기가 필요하다.(…) 의욕을 앞세워 한국의 모델로 흡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베트남이나 중국의 모델이 좋을 것이다. 평화통일은 합의 하에 통일한다는 것이고, 김정일과 핵심 간부도 제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2005년 12월19일, 뉴스앤조이)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元의원 주장에 따르면, 북한 조선로동당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교체 내지 해체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파트너이다. 실제 元의원은 북한붕괴 내지 봉쇄 논리를 비판해왔다.
  
그는 지난 해 10월22일 연세동문회관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공동이사장 임동원·백낙청)’ 행사에서 “북한을 봉쇄해서 붕괴시킨다, 또 그것을 기다리느라 봉쇄한 채로 방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현정부 내) 상당히 중요한 정책결정 위치에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길게 보면 바람직하지도 않고 중국이 같이 봉쇄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결론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는 기간이 다 돼가는 것 같다”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국민적 요구, 국제정세 흐름과 언제까지 따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결의안에 서명>
  
元의원은 6·15선언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북한 공산집단을 헌법에서와 같은 反國家團體(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적 실체로 보는 입장에서 보면 북한식 연방제가 수용된 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2009년 1월2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용산 放火(방화)사건’ 관련, “책임자를 추궁해야 하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도 불가피하다”고 말한 뒤, 南北관계에 대해서는 “6·15 선언 문제나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화해와 신뢰회복 무드를 조성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元의원은 2007년 5월31일 당시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결의안에 같은 당 고진화·배일도 의원과 함께 서명하기도 했었다.
 
당시 발의안은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는 것으로서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념하기에 마땅한 의미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고 격찬했었다.
  
元의원은 2004년 6월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6·15선언은 남북이 吸收統一(흡수통일), 赤化統一(적화통일)을 포기하고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55년 분단사에서 남북화해협력과 긴장완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썼었다.
  
<'군인이 먹든, 학생이 먹든 충분히 (식량)지원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정권을 통일 파트너로 보게 되면 북한은 6·25사변,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 끝없이 국민을 죽이고 동족을 학살해 온 집단이 아니라 도와야 할 상대가 돼 버린다. 元의원의 발언들이다.
  
“대북 화해와 협력, 포용 기조로 가서 경제‧사회‧문화 부문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나중에 정치 분야에서도 통일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을 압박하고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을 중국의 ‘동북 제4성’으로 내모는 길이다.(…)식량지원을 핵문제 진전과 연계시키고 ‘북한 군인이 먹을 가능성 때문에 못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군인이 먹든, 학생이 먹든 취약계층에 갈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현금은 한 푼도 안 주겠다는 극단적 논리는 문제가 있다.” (2009년 9월23일, 흥사단 주최 통일포럼)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대북 포용정책 자체에 물어서는 안 된다.” (2006년 11월15일,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창립 2주년 기념 토론회)
  
“북한에 진출한 남한 기업들이 ‘법인세’ 형식의 세금을 북한 측에 내도록 하는 현금 지원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
  
“통일외교 문제에서 북한 인권만을 문제 삼는 것은 일면적 접근이다.”(2005년 4월26일, 서강대 특강)
  
“북한의 인권개선이나 개혁개방은 기아문제부터 해결한 뒤 시간을 갖고 해도 늦지 않다.”(2005년 6월9일 불교방송)
 
북한은 6·15선언을 ‘남한이 永生不滅(영생불멸)의 主體思想(주체사상)이 구현된 고려민주연방제를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6·15선언이 곧 赤化統一(적화통일)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이전은 물론 이후도 남측이 6·15선언만 이행하면 앞으로 다시는 충돌(?)이 없을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한국을 홍콩式으로 집어삼키면 북한이 도발할 이유는 사라질 테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절단 나 있을 것이다.
 
6·15선언을 ‘열렬히’ 지지해 온 인물이 한나라당 대표까지 장악하면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것인지...불쾌한 越南의 상상에 잠만 설친다.
 
[2] 脫黨한 정태근 위해 후보 내지 않은 박근혜黨
새누리당의 '保守학살'과 다가올 '깽판' 대한민국
(2012년 3월21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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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삼민투'(三民鬪)라는 극좌단체에서 활동하다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鄭 의원은 출소 후 親北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99년 ‘한국의 미래-제3의 힘’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 같은 해 1월24일 박원순(現서울시장) 변호사가 주도했던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99년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가 됐다. 실제로 2006년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었다.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鄭 의원은 2003년 4월27일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같은 三民鬪 동지였던 허인회 등과 함께 서명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성명은 “우리는 학생운동의 선배로서 한총련 문제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총련 후배들이 수배 받고, 고통 받을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또 “국민들의 성숙된 민주의식으로 ‘참여정부’를 탄생시켰고, 한총련 후배들 스스로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 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용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鄭 의원은 2005년 11월1일 “‘6·15시대의 참언론’ 통일뉴스 5주년 기념행사”에도 오종렬-한상렬-이종린 등 종북인사 및 三民鬪 동지였던 고진화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참석했었다(출처: <통일뉴스> 2005년 11월1일자).
[3] 한나라당의 오렌지족, 홍정욱 의원
한-EU FTA 기권으로 국익 저해
(2011년 10월28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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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이 김일성의 ‘재간둥이’라면 洪政旭(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남한 좌파의 ‘귀염둥이’라 불릴만한 인물이다.
洪의원은 2009년 2월8일 保守성향의 玄仁澤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 청문회에 앞서 배포한 질의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玄 내정자는 통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중략)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통일 지향의 의무를 분명히 하고 있다…(중략) 현 내정자의 통일관은 명확히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과 배치된다…(중략)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대외적으로 표출해 온 현 내정자를 통일부 장관에 기용하는 것이 대북정책 수행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洪의원은 또 북한의 對南기구인 ‘반제민전’이 인터넷을 통해 ‘반북대결분자(김태효)를 들어내야’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낸 지난 9월14일 국회 류우익 통일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와대 통일안보라인이 현인택 통일특보,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 강경정책 고수 인사로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류우익) 후보자가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중략) 현 정권 출범 이후 남북관계 경색은 북한의 대남도발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중략) 현실과 동떨어진 ‘비핵·개방·3000’의 기조에서 과감히 벗어나 유연성을 발휘하는 실용적 입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洪의원은 이처럼 “좌우를 넘나든다”거나 “現정부의 對北정책 수정” 등을 거듭 주장해왔다.
그는 2009년 2월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라는 칼럼에서 “좌우를 넘나들며 국익을 추구하는 게 실용”이라며 “저는 작년부터 정부의 경직된 대북정책을 수정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을 되찾으라고 강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요한 건 친북·반북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입니다. 좌우를 넘나들며 국익을 추구하는 게 ‘실용’ 아닙니까?”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8년 10월30일 ‘귀공자의 대북관?’이란 칼럼에서 “(북한에) 버틸 건 제대로 버티고, 줄 건 확실히 주자는 거지요. 그런데 전자는 ‘진보’진영의 마음에 들지 않고, 후자는 ‘보수’진영의 귀에 거슬리나 봅니다. ‘좌충우돌’이란 말이 실감나네요. 그러나 안보와 통일중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소신껏 좌우를 넘나들기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고 했다.
洪의원의 주장은 “북한에 버티는 것”이 안보이고 “줄 건 확실히 주는 것”이 통일이라는 식이다.
김정일 독재정권에 확실히 주는 것이 왜 통일인지 그리고 그 통일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도 없다. 그는 左右를 넘나들어서라도 국익을 챙겨야 한다고 했지만 韓(한)·EU FTA 체결이라는 국익 앞에서는 기권을 던졌던 인물이다.
당시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FTA 비준 동의안 표결에서 기권한 洪의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洪의원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30세를 넘긴 나이로 부모가 모두 환갑을 넘겼고 누나가 모두 분가한 이유로 육군 제30사단에 입대했다. 4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6개월간 서울 용산초등학교에서 전산요원으로 공익근무를 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洪의원. 참고로 케네디는 애초 美육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했으나 선천적인 척추질환으로 인해 입대를 거절당했다.
몇 달 후 케네디는 해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부친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입대가 거의 불가능한 케네디를 해군에 ‘집어넣은’ 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남태평양에서 PT-109 고속 어뢰정의 해군 장교로 근무했는데, 자신의 배가 일본군에게 격침되자 위협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해 영웅이 됐다.
<홍정욱 前 의원 문제발언록>
▲ “현 정부가 북한에 총리급 회담 또는 장관급 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특사 파견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현 정부가 6.15합의, 10.4선언 등을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2008년 10월23일 보도자료)
▲ “저는 작년부터 정부의 경직된 대북정책을 수정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을 되찾으라고 강조했습니다...중요한 건 親北(친북), 反北(반북)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입니다. 좌우를 넘나들며 국익을 추구하는 게 ‘실용’ 아닙니까?”(2009년 2월4일 현 정부의 對北정책 수정을 요구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라는 칼럼)
▲ “현인택 내정자는 ‘통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통일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명확히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과 배치된다. 정책도 경험도 리더십도 의문투성이로 아마추어에게 프로의 무대를 맡기는 꼴.”(2009년 2월8일 <뉴시스> 현인택 당시 통일부장관 내정자 관련 국회 보도자료)
▲ “玄(현인택 통일부장관)후보자는 과거 북한을 대명천지에 같이할 수 없고 결국 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북한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중략) 내가 진의를 찾기 힘들면, 김정일은 찾기가 얼마나 힘들겠냐…(중략) 군사적 제재 가능성을 언급한 사람이 실용정부의 실용외교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혹시 우리 대북정책에 족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2009년 2월9일 현인택 당시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미국 대북(對北)군사제재 용인 주장’비난 발언)
▲ “대화라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 중에도 가동 되어야 하는 것이고 물밑 대화의 여지는 남겨둬야 하는 것인데, 개성공단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남북경협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고 또 실용외교를 천명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서도 절대로 실패하게 놔둬서는 안 되는 상황.”(2009년 4월1일 <노컷뉴스> CBS 라디오 인터뷰)
▲ “한-EU FTA를 적극 지지하지만 물리력이 동원된 일방적 강행처리 입장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며 작년 12월 예산안 폭력국회 이후, 향후 어떤 경우에도 물리력을 동원한 일방적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고 생떼와 폭력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어떤 비판의 소리도 달게 받아 드리겠다.”(2011년 4월15일 한·EU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표결 이후 가진 기자회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