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退愚의 '오늘 읽을 만한 글들' 目次 ▒
1.『국가보안법』헌재 합헌 결정의 의미
2. 3만달러시대로 가면 뭐하나
3. '친북 좌파' 동무들 에게...
4. 뇌무효의 추한 과거
5. 중국의 `북한 편입` 시작됐다
◈『국가보안법』헌재 합헌 결정의 의미 ◈
정창인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8월 26일 국보법 제7조 제1항 및
제5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개정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찬양 고무죄 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
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 조항으로
자주 인용하는 조항이다. 실재로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의 90%
이상이 제7조의 찬양 고무죄를 위반한 범죄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제7조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
위한 핵심 조항으로 개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조항이 헌법
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나 출판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위협하는
자유는 허용할 수 없다.
또한 법의 개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7조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헌법에서는 사상의 자유를 구체
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함 것처럼 보임에도 우리 헌법에서
이점에 대해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 이유는 공산주의
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부터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정권
및 이와 연계된 친북좌익 세력의 체제 위협은 계속되었다.
1948년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제주도 4.3 사건, 건국후의
여순반란, 1968년의 1.21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 등 북한
및 친북공산세력의 체제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가 허용하는 자유를 이용하여
친북공산세력이 교묘한 방법으로 북한의 공산군사독재 정권과
북한의 독재자를 찬양하고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따라
'민족'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면서 국가안보의 기본축인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사상전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 또한 북한의 기본전략에 속한다.
따라서 친북공산세력의 주된 사상전 수단이 바로 북한의 공산
군사독재 체제와 북한의 군사독재자에 대한 찬양 고무 선전
행위다. 국가보안법은 바로 이러한 간접침략 형태의 사상전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어적 성격의 자위법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 형법과
중복되므로 이를 폐지하여도 형법에 흡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 또한 교묘한 사상전의 일부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제7조
의 찬양 고무죄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형법만으로
는 찬양 고무 선전 행위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이와 관련하여 '형법상 내란죄 등 규정의 존재와는
별도로 독자적 존재의의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평화시대를 기조로 한 형법상 내란죄나 외환죄는 고전적이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가의 자기 안전 방어에는 다소 미흡하다'
고 판시한 1990년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적표현물죄와 관련하여서도 '단순한 학문연구나
순수 예술활동을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 보관한 경우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대법원 판례로 확립되어 있다'면서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소지한
경우 처벌토록 한 현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의
취지를 명백히 밝혔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국가보안법의 폐지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으며 또한 제7조를 근거로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따라서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불필요한 논쟁이란 것을 명확하게
하였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는 이번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며 북한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따름으로서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국가보안법 개폐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을
현행대로 존치하여야 마땅하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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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만달러시대로 가면 뭐하나 ◈
[우째 이런 일이!]
기사입력: 2004/8.27 13:54
뉴스앤뉴스 이승호 기자
자신만을 위해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대한민국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5일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행사에서 독립운동, 친일 진상규명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 가운데 특별하게 우리 관심을 끄는 부분을 골라보면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된)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받고 포상을 다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36년, 의병시기까지 따지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 왔는데 아직 1만명밖에 포상을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독립운동사도 아직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좌우 대립의 비극적인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 한쪽은 일부러
알면서도 묻어 두고 있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면 청산작업을 했다. 청산작업이라고
해서 그 땅에 못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다 감옥 보내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자기 나라와 공동체를 배반한 사람에게 새롭게
건립되는 사회, 새로 시작되는 사회의 소위 득세하지는 못할
수준으로 적어도 규제를 하는 것, 그런 정도의 청산은 꼭 있어
야 한다. 우리 한국은 그것을 못했다.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시대적인 흐름 때문에 직접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
실천은 못하지만 가슴 속에 불이 나거나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
을 다 한 번씩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현실
적으로 제대로 밝혀지고 평가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 시대를 거꾸로 살아오신 분들이 득세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냉소하고 이 역사가 계속되는
한 우리 한국 사회에 미래가 없다. 3만달러시대로 어떻게 갈 수
있으며 가면 뭐하나, 어떻게 지켜 낼 수 있겠느냐. 오로지 자신의
보신만을 앞세워서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국가가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말꼬리 잡자는 건 아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보인다.
노 대통령 발언이 의도하는 바를 짐작 못할 것은 없다. 백성들이
얼마든지 논전을 벌이면서 한쪽을 두둔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나 학자가 아닌 이 나라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통성을 지키고
적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해야할 대통령이 왜 이토록 의도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분열과 갈등를 확산시키고 있느냐는
걱정이다.
우선 대한민국이‘오로지 자신의 보신만을 앞세워서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국가’라는 황당한 주장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물론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그런 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케이스를 전부인 양 일반화, 보편화
시키는 것은 국민통합을 이룩해야 할 대통령의 발언은 아니다.
그런 식의 편가르기라면 대통령에게 득될 것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6.25와
같은 위기에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바치면서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공산도당들과 싸웠다.
대한민국은‘오로지 자신의 보신만을 앞세워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국가’가 결코 아닌 것이다.
프랑스에서 30만명이 레지스탕스로 인정받아 포상받았다는
얘기를 굳이 우리 경우에 적용한다면 북한의 남침에 맞서
싸운 6.25 참전용사와 그 이후의 무장공비 피해자, 서해교전
희생자들을 포상함을 의미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 인민군이
진주한 곳에서 동네 사람을 학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골수 공산주의자야말로 반역자,
배신자의 오명을 써야 하고 대통령의 말차럼 그 후손은 이
사회에서 득세하지 못하도록 규제되어야 한다.
반민특위와 관련해 젊은이들의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얘기도
지나치다. 젊은이들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 어디 그뿐이겠냐마는,
젊은 시절 반민특위 활동에 피가 거꾸로 솟았을 대부분의 젊은이
들은 세월의 무게속에서 어느덧 대통령이 지칭하는 기득권세력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런 역사를 읽고 분노하는 지금의 젊은이들도
부모 덕에 고생 모르고 세련된 삶을 살면서 월드컵 때 시청 앞
에서 '대한민국’외치며 즐거워 하던 사람들이다.
전제가 있긴 하지만‘3만달러 시대로 가면 뭐하나'는 자조적인
말에는 아연할 따름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그럴진대 우리는 무슨
목표를 갖고 미래를 향해 정진해야 할까. 대통령이라면‘우리는
반드시 3만달러시대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된다’
고 국민을 리드해야 옳다.
좌익 독립운동도 물론 정확하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하겠지만 서훈문제는 전혀 다르다. 북한에서는 우익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왜곡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건설의 아버지인 이승만을
저주하고 6.25를 북침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람들
이다.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을 폄훼하고 우리 역사상 5대장군이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이순신, 김일성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을 멸했다고 김유신을 제외
시키면서 수백만 동족을 죽인 김일성을 이순신의 반열에 올려
놓는 그들은 아마 강감찬이나 이순신을 빼고 천출(天出)장군
김정일까지 5대장군에 포함시킬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좌익
독립운동자에 대한 서훈문제는 통일 후에나 고려할 일이다.
왜 할 일이 태산 같은 대통령이 친일행위 진상규명, 역대 정권의
이른바 의혹사건 재조사 등 과거문제에 그토록 집착하고 좌익
독립운동 포상, 국보법 폐지 등 좌파(左派)편향적 정책에 몰두
하여 분열을 확대재생산하는 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하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으니까 행여나
친북좌파세력이 대한민국 수립, 6.25전쟁, 냉전시대를 거쳐
오면서 당한 (물론 억울한 경우도 많을 터이다) 그동안의
설움(?)을 복수하고 기득권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반공(反共)
세력을 궤멸시키겠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다.
그러니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겠다고 궐기하여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화에 성공하고 남북 격차를 추월 불가능
한 상태로 벌여놓은 5.16 박정희 세력이 제1의 타깃이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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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북 좌파' 동무 들에게...◈
이제, 더이상 배후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당신들은 적지 않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의 반미감정 만큼...
미국에서도 반한감정이 활성화 되었다고 하니...
서울 한복판 미대사관 앞에서, 미부대 앞에서 다년간
노력한 끝에 결실을 맺게 되는 군요.
자, 이제 미국이 한국을 싫어하게 되면...
주한미군의 영향력이 감소되면...
간도와 만주문제가 터질때는 일본과 협의를 하겠지요.
독도문제가 터질때는 일본과 중국과 협의를 하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화염병이나 던지고 촛불이나 들면서
우리만의 집단적, 몽환적 성취감에 젖어들면 되겠지요.
여러분, 민족을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평화를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인권을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민주를 말씀하셨습니까?
언제까지 우려먹으려 하십니까?
언제까지 북쪽의 인권과 민주를 외면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부자세습의 봉건적 왕조,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을 자임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두 얼굴을 가지고서 민족의 평화
통일을 멀어지게 당기려 하십니까?
얼마 안있어서 진정으로 어부지리를 노리는 나라가,
저절로 국력이 신장되는 나라가 당신들의 곁으로
다가 갈 것입니다.
이완용이 따로 있습니까?
사대주의의 원조인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 시키시려고
반미와 미군철수를 외치셨던 당신들의 의지가...
이제 결실을 맺을수 있게 된때에... 때 맞추어,
역사를 왜곡하기 정신없는 군국주의 일본도
더불어 강성해지도록 노력하신 귀 단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20세기, 반외세를 외쳤던 친일의 을사오적은
21세기의 시대, 당신들 속에서 부활했다고...
p.s. - 미국은 믿을수 없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처럼 남의나라 영토를 탐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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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무효의 추한 과거 ◈
글 쓴이 : 강 철
작성 일 : 2004년 8월 28일 오전 8:16:00
첫째 : 로 노무효의 장인이 6.25때 양민 11명 죽인것과
둘째 : 6.25시 강진에서 살다가 노무효의 아버지가
우익몰살하고 진영와서 살 은 것
세째 : 노무현 절도전과자 & 신체장애자의 한국루윈스키와
그 딸들에대한 노무현의 입장은?
목차-
1) 충격제보] 노무현, 절도죄로 수감경력(퍼나르세요) 추천하기
2) 한국판 루윈스키 지체장애자의 범죄와 그의딸 그주인공 노무현
1) 지금부터 제가 제보하는 내용은 제가 믿을 수 있는
정보제공자로부터 입수한 것이니 그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노무현이 군대를 제대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72년경
노무현은 수험준비를 하느라 생활이 곤궁하여 친구와 공모한 후,
야음을 틈타 당시 부산시내의 모 재력가의 주택에 침입,
그의 사금고에서 당시 돈으로 수십만원의 현금을 강탈하였습니다.
이후 추적해온 경찰에 의해 노무현과 그의 친구는 체포되었고
미결수로서 2개월간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중 공범인
친구의 친척이 합의금을 지불함으로써 공소기각 결정을 받고
석방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법원에 근무하는 유력한 정보원으로부터 입수
하였고 지난 대선때에도 한나라당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보가
되었으나 한나라당 수뇌부는 네가티브 전략의 효과에 의문을
품고 있던터라 이를 정치쟁점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절도
사건과 함께 지체장애자 여비서 성추행 사건(여비서 성폭행 후
임신을 하게 되자 그 아이를 자신의 형인 노건평의 호적에 입적
시킴) 등의 확실한 제보도 있었습니다만 이회창 후보측은 너무
지저분한 사건이어서 공개적으로 거론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로 이러한 다양한 제보들을 묵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무현은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이러한 전과기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이 민주화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투옥된 것처럼
적당히 둘러댄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은 변호사 출신인지라 자신
의 전과기록을 은폐하는 작업도 치밀하게 진행했었습니다.
노무현 집권 직후 본 절도 사건의 수사기록은 열람금지가 되었고
사건의 당사자들도 침묵을 지키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활이 곤궁한 고시생이었다 하더라도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여
금고를 터는 흉악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한나라당 측에서는 지금이라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여
자격미달 절도범이 이 나라를 통치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하루 빨리
종료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절도 전과가 있는
파렴치범이라는 사실을 다른 나라의 언론들이 알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국치는 없을테니까
2)한국판 루윈스키 지체장애자의 범죄와 그의딸 그주인공 노무현
(특종) 노무현 지체장애자 여인의 ...(펌)
놀이공원에서 가족들과 단란한 한 때 '
(신동아 2003년 1월호에 있음) 신동아 싸이트에서 퍼옴 -
근데! 실력이없어 사진이 안퍼지네요!
김씨가 유포한 글의 제목은‘노무현 지체장애자 겁탈'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노무현이 이르기를 내가 대통령하기 위해서 마누라를 버려야
합니까? 자신의 마누라는 그렇게 소중히 여기면서 지체장애자
여자를 겁탈하여 한 여자의 신세를 이렇게 망쳐 놓아도 된단
말입니까?
겁탈은 자신이 하여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그 여자를 형님과
결혼시키는 이 부도덕하고 이 철면피한…아 세상에 이럴 수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히고 어안이 벙벙할 뿐이군요.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979년 대전지방법원 판사직을 퇴임한
후 1980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 당시 이 사무실의 여직원이 s여상 출신 민미영씨였다.
민씨는 지체장애자였다. 노무현 후보는 민씨를 겁탈했고,
민씨는 1981년에 딸을 낳았다. 노 후보의 앞길을 걱정한
그의 형 노건평씨는 민씨와 결혼했다. 세무공무원 재직중
뇌물 수뇌혐의로 파면당한 노건평씨는 1942년생인데 첫 부인
과는 사별하고 둘째 부인과는 이혼했다. 노무현 후보의 실질
적인 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진 노건평씨는 1983년에 자기보다
14살 아래인 민씨와 혼인신고한 후, 이보다 2년 전인 1981년
에 출생한 노무현-민미영 사이의 딸 노희정을 자기 호적에
입적 시켰다.
민미영은 현재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725번지에 자기
명의의 땅 473 평방미터를 갖고 있는데, 이곳은 1층이 커피숍
이고 2층은 살림집이다. 또 민미영의 남동생 민상철(1963년생)
은 거제시 구조라리 710번지 일대에 3000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땅의 원 소유주는 노건평씨였다.
처남에게 3000여 평의 땅을 공짜로 줄 자형이 있을까.
짐작컨데 이는 노무현이 민미영을 겁탈한 사실과 그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무마 차원에서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동기는“노희정은 노무현의
딸이다. dna 검사를 하면 확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노 후보의
형 노건평씨와 민씨는 호적상 부부로 등재되어 있으나 실제 동거
여부는 불분명하다. 몇몇 일간지에서도 이 사실을 취재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했으나 쉬쉬하고 있다
노무현의 숨겨진 딸
여러분 부추연 대통령비리 1923번을 보면은 숨겨진 딸의 사진이
있고 관련 증거들이 있다 노무효는 파렴치범이다 당장 자결하라
경선 당시 이인제 캠프 쪽에서 노 후보의 여자문제 관련해서
꼬집은 바 있지만 노 후보는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는 식의 발언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응을 보였다'며
'또 이런 유사한 소문이 많았지만 노 당선자는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는 게 강력한 증거'라며 '공인은 도덕적으로 투명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 판결이 끝난 것이 아니다. 검찰은 내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자의 사생활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도 이뤄졌어야 한다'면서 '머리카락이나
체모로 dna검사가 이뤄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의 유죄 여부
를 알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재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노무현 당선자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래 기사는 노무현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민모씨와 불륜섹스한 후에 낳은 자식이 있다고 주장한 기사.
노무현은 사실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노무현의 공인으로서의 확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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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관련 의혹 '대통령이 나서 해명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처남인 민경찬씨가 투자회사
'시드먼’을 통해 650억원을 모은 일이 알려지면서 <독립신문>
에는 민씨 일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민씨 일가에 대한 본지 취재
내용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막대한 투자유치 자금과 관련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의혹을
받고있는 민경찬(44)씨는 노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의 아내
민미영(48)씨의 동생으로 그에게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언론에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동생 상철(41)씨가 있다.
민씨 일가를 언론에 처음으로 데뷔시킨 것은 <독립신문>이었다.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 16일 ´오노 뉴스´ 운영자 김세동(45)
씨는 대통령 선거기간 중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씨가 세칭
인권변호사 시절인 1980년에 자기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여직원과
성관계를 맺어 딸을 낳았고, 이 딸이 현재 노무현씨의 형 노건평
씨 호적에 입적돼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상에 유포한 혐의
로 구속, <독립신문>이 이를 보도한 것이 민씨 일가의 언론 첫
데뷔다.
- 노건평 호적등본, 첫째 부인과 사별, 둘째 부인과 이혼,
민미영씨와 1983년 1월 14일 혼인신고를 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노건평씨 호적등본에 따르면(사진 참조), 그는 1983년 2월14일
민미영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당시 노건평씨는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둘째 부인과 이혼해 법률상 총각이었고, 나이는 41세
였다. 민미영씨는 1956년생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는 27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 민미영 호적등본, 1983년 1월 14일 노건평씨와 혼인신고를
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 노희정 호적등본은 1981년 생인데
1983년에 출생신고를 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 왼쪽은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710번지 등기부 등본,
오른쪽은 이 땅이 민상철(노건평씨의 부인 민미영의 남동생)씨
에게 근저당 설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노건평-민미영은 1983년에 혼인신고를 했는데, 노건평씨
호적에 따르면 딸 노희정은 1981년 9월에 태어났으나 혼인신고
가 된 그 날(1983년 1월14일) 출생신고를 했으며, 혼인신고 후
노건평씨는 자기 명의의 땅을 처남 민상철씨 명의로 근저당
설정한 후 넘겨 주었다(사진 참조).
여기서 몇가지의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노건평씨는 무슨 이유로
자신의 땅을 처남 민상철에게 넘겨주었을까. 또 노건평씨의 딸
이라는 노희정은 1981년생인데, 왜 1983년에 출생신고를 했나.
두 번이나 결혼한 41세의 남자에게 왜 27세의 젊은 여성이 결혼
을 결심했을까.
이러한 의혹 때문에 노씨 일가에게 말못할 사연이 있다는 의혹
으로 번져, 대선 당시 <독립신문>은 세간에 떠도는 의혹들을
확인하기 위해 노 후보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민미영씨가 어떻게 하여 노건평씨와 결혼하게 되었나
-노건평씨의 딸이라는 노희정은 1981년생인데, 왜 1983년에
출생신고를 했나
-노건평씨는 무슨 이유로 땅 3000여 평을 처남 민상철에게
주었나
-노건평씨와 민미영씨는 현재 같이 살고 있나
등의 질문을 했으나 노무현 후보측은 '선거철이 되면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네티즌이 많다. 구속된 네티즌도 허위사실
을 유포한 것'이라고만 답해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독립신문>은 <노무현, 정말 숨겨진 딸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당시 김대중 정부는
<독립신문>의 기사와 관련, 직접 지시를 내려 사건을 조사토록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노 대통령의 친척 중 그다지 가깝다고 볼 수 없는 사돈인,
민씨 일가에 돈이 몰리고 있고 노 대통령의 재산형성에 관련된
수많은 의혹에 민씨 형제가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통령
은 하루 빨리 민씨 일가와 관련된 의혹을 해명해야 할 것으로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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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노건평씨의 딸 노지연이라고 밝히며 ´노무현 숨겨진 딸´
관련기사 삭제 요구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부추연)은 31일 자신을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딸 노지연이라고 밝히면서 '노 대통령의 가족 사진'
관련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고 밝혔다.
이날 부추연은 <신동아> 2003년 1월호 노 대통령 당선 특집으로
화보가 실린 노 대통령의 가족사진을 게재하고 '노 대통령의
가족은 1남 1녀인데 왜 사진에는 여자 아이가 하나 더 있는지
가족사진 치고는 어색하다' 며 의문을 제기했다.
목소리가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오전 11시 20분쯤
자신을 노건평씨의 딸 노지연 이라고 밝히면서 부추연 게시판
´핫이슈´ 에 올라있는 가족사진과 관련된 게시물과 ´노무현
숨겨진 딸´ 관련 게시물은 사실과 다르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
하며 '만약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청와대를 통해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항의했다고 부추연의 윤용 대표는 말했다.
이에 윤 대표는 '노건평씨의 딸임을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증
사본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여성은 이에 응했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며 '현재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중'이라고 밝혔다.
윤 대표는 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으니 관련게시물을 삭제
하라´는 정보통신부의 전화가 있었다'며 '그러나 사진을 삭제
하는 일은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밝혀, 당장 사진을 삭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시사
했다.
한편 노건평씨는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둘째 부인과 이혼해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1983년 2월14일 민미영씨와 혼인신고 후
막내인 노희정을 호적에 올려 지금의 가족인 1남 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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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숨겨놓은 딸 이야기
오늘 아침에 눈떠보니 인터넷 신문에 이 기사가 싣렸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쓴내용입니다.
일개의 잡지가 아니라 인터넷 신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문의
운영자가 쓴 글인데 이것은 분명히 밝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밝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긴급속보>'오노 뉴스' 운영자 긴급 체포
노무현의 숨겨놓은 딸 이야기 유포 혐의 '오노 뉴스' 운영자
긴급 체포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씨가 세칭 인권변호사
시절인 1980년에 자기 사무실에 근무하던 여사원과 성 관계를
맺어 딸을 낳았고, 이 딸이 현재 노무현씨의 형 노건평씨 호적
에 입적돼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상에 유포한 혐의로
'오노 뉴스http://ohnonews.net)’운영자 김세동씨가 12월16일
밤 10시 반경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긴급 체포되었다.
본지는 긴급 체포된 김씨의 전화를 받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씨는 전화에서“노무현씨는 자신이 쓴 책에서 여자 문제와
관련해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이
상당 부분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고 믿는다. 대통령 후보는 자신
의 모든 것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이 이
글을 읽고 노무현 후보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1000
여군데 사이트에 올렸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내가 올린 글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이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무죄다.
노무현 후보는 결백하다면 공개적인 dna 검사에 응해 진실을 밝
혀야 할 것이다.‘노사모’나‘오 마이 뉴스’에서 이회창 후보
를 그렇게 비난하고 욕해도 내버려 두던 경찰이 나만 긴급 체포한
것은 균형을 잃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체포된 후, 민주당
설훈 의원 보좌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 등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 4명이 이를 어떻게 알고 새벽에 경찰서에 나타나 나를
위협한 것은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이해 이 정권이 민주당과
같은 편임을 입증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긴급 체포된 김씨는 친북 및 친 노무현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오 마이 뉴스’에 대항하는‘오노 뉴스’운영자로, 인터넷상에서
는 유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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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한 편입` 시작됐다
최근 '국경협력협정'체결
유사시 중국군 투입 가능,
군사 경제 지원 확대·
楊斌 석방·부동산 투자 진출
김범수기자
2004-09-01 오후 4:45:00
중국이 군사, 경제적 방법을 통해 북한을 본격적으로 자국의
정치적 영향권 안으로 편입시키기 시작했다.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 시도와 같은 이론적 수단 뿐 아니라
무기지원 재개와 대북투자 및 경제지원 확대 그리고 북한의
신의주특구 행정장관 양빈(楊斌)의 석방을 통한 북한개발 관여
등 군사·경제분야 지원 및 개입을 통해 북한을 예속화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북정상회담 이후
급속히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지도부는 4월 김정일의 방문을 받은 자리
에서 내년까지 J7E전투기 45대를 북한에 인도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약속은 중국이 1998년 이후 중단했던
대북 군사원조를 재개함으로써 러시아를 제치고 북한의 최대
군사지원국으로 부상해 대북영향력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J7E기는 80년대 모델인 미그19를 개조해 성능을 향상시킨 것으로
중국해군이 실전배치하고 있는 기종이며 북한에 배치될 경우 북한
이 미국의 근접공격을 막아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북회담은 종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
으로 진행돼 주목을 받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총서기,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각각
김정일을 따로 만나 김정일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정리하고 대북
지원 정책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장쩌민 주석은 대북군사지원 재개방안을 논의하면서 J7E전투기
외에도 제4세대 항공기로 불리는 최신예 J10A전투기 지원 가능성
을 논의했고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김일성 사후 중단
됐던 대규모 무상원조 재개방안과 양빈의 석방 및 신의주개발건
등 경제문제에 대해 논의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6월 중순경 중국은 인민군 총참모장을 평양에 보내 유사시
중국군이 사전통보 없이 북한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조중국경협력협정’을 체결하고 구체적인 양국간 군사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은 한·미·일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
이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며 한반도 분단이 자국의 이익에 유리
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의 고민은 북한이 핵개발 문제로 미국
의 직접적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과 취약한 김정일정권이 붕괴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 상실과 동북지방에서 자유민주
세력과 직접 대치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역할을 중국측에 꾸준히 강조해왔다.“미국, 일본,
한국을 막고 있는 우리가 무너지면 중국도 곤란해질 것”이라는
내용이 베이징회담에서 한 김정일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지난해
3월에도 북한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명록이 중국을 방문해 북한의
이러한 역할론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은 또한 지난 베이징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2002년
10월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된 지 10여일 만에 전격 구속
됐던 양빈의 석방을 요구하고 신의주특구 개발의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중국은 최근 양빈 전 장관을 가석방하고 랴오닝성 선양시
허란춘에 가택연금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23일 중국의 소식통을 인용 양빈 전 장관의 가석방 사실을 보도
했다.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한 양빈의 전기작가 관산(關山)은
양빈 전 장관이 지난해 비밀리에 풀려나 공안의 감시하에 일정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석방된 양빈 전 장관은 조만간 신의주특구 개발 책임을 다시
맡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번 ‘손보기’를 한
양빈 전 장관은 중국에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고 중국이 북한
경제개발을 중국 동북3성개발에 편입해서‘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평양의 온실농원 건설을 위해 5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손실을 감수한 양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
다는 북한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한편 최근 중국의 북한 내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평양시내 목 좋은 곳은 대부분 중국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평양 보위부 출신의 김영우 씨는(가명)“평양과 남포는 이미 올
초부터 외국인 개방구로 지정됐으며 외국인도 돈만 내면 40~50년
간 토지를 사용할 수 있게 돼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진출이 활발
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중국은 늘 북한에 대한 고삐를 풀었다 조였다 하는데
지금은 북한의 필요를 본격적으로 채워줄 필요성이 있는 시기”
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북한을 ‘속국화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북한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기조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지난 4월 12일 딕 체니 미 부통령의 방중이 마쳐지자 마자
중국이 김정일을 급히 불러들인 것도 미국의 대북강경 대응
의지를 북한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러한 자국의 정책을 실현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문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중국의 최종선택이“북한의
철저한 위성국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그것은 첫째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한다면 그 전에 김정일을 직접 제거하고
북한에 주둔해 북한을 통치하는 것이며, 둘째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경제적 붕괴가 예측되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
라고 김정일정권을 당분간은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북한에 군사지원 및 대규모 경제원조 개시, 그리고 대북
투자와 양빈석방에 따른 신의주 공동개발계획 등은 모두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김정일은 중국의 위성화의도가 자신의 신변 및 정권안정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함으로써 정치력 저하와 정권붕괴요인
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의 절대적
영향력을 희석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에 가서는 중국식 개혁개방 등을 통한 문제해결 노력을 강조
하고 돌아서서는 러시아와 관계개선 노력을 하는 이중적 행동을
'국제정치’로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격월간 외교잡지‘전략과 관리’최신호가‘북한이 중국의
지지와 경제지원에 감사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중국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나타내지 않는다’면서 북한에 대한 전면지원
철회를 요구한 배경도 김정일의 이중적 외교에 대한 불만때문이라
는 지적이다.
정일화 세종대 교수(정치학)는“중국이 경제교류 증대 등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를 말하면서 뒤로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북한을
영향권 안으로 편입하려는 명백한 의도”이며 한국이 단기적 경제
이익을 보고 친중화되면 중·일 사이에서 외교적 입지가 극도로
좁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김정일정권이 붕괴돼 북한에 권력공백이 일어날 경우
중국은 북한에 개입할 법적근거와 실력이 있지만 한국은 북한에
영향을 미칠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退愚의 "오늘 읽을 만한 글들"
- p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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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9-05, 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