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3代 세습과 南의 3代 반역?

2000년 6.15 선언 당시 국정원 국내 담당 차장 金銀星씨 증언

“그날이 2000년 6월 10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러 방북하기로 한 6월 12일(월)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6월 10일은 국정원 창설 기념일이고 직원들은 오전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였고, 저는 오후에 골프를 쳤으므로 기억이 또렷합니다.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운동장 스탠드엔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 권진호(權鎭鎬) 해외담당 차장, 그리고 국내담당 차장이던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오전 10시30분쯤이었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김보현(金保鉉) 제5국장이 황급히 우리한테 왔어요. 그는 김대중-김정일 회담 준비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김 국장이 문서 한 장을 임 원장에게 건네면서 당황한 말투로 ‘정상회담 못하겠다고 합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원장도 문서를 읽더니 안색이 변해요. 일어서면서 ‘차장들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청 원장실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원장이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회람시켰습니다. 북(北)에서 보낸 전문이었는데, 두 문장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돈을 다 줄 때까지 회담을 연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컨대 수금(收金)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평양에 올 수 없다는 협박조 글이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난 표정이었는데, 권 차장과 저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남북회담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경험한 전례(前例)가 있어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북측에서 경호와 통신문제로 회담연기를 요청해 왔다고 발표하면 안 될까요.’ 북한과 회담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게 경호와 통신이었거든요. 임 원장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한 15분 요담한 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마 그날 우리가 북측과 급하게 협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을 거예요.”

6.15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증언

"평양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고, 올 필요도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가 오면 더욱 강해지십니다. 저에게 꾸중 한마디 않으시고 6월 13일 우리의 평양 착륙을 거부하겠다는 북측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출발하자’고 결정하셨습니다. 서울공항에서 환송식이 열리고 공식 수행원들은 전용기 앞에서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임 원장께서 황급히 서울공항 청사로 들어갔습니다.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임 원장의 미소가 보였습니다. 대통령께 뭐라고 귓속보고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임 원장께서 저에게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문제는 평양에 와서 논의하자는 북측의 통보를 받았다’고 알려줬습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증언: 2000년 6월14일 회담 시작 전 김정일이 김 대통령에게 한 말.

“남조선 대학가에 인공기가 나부낀 데 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건 뭐, 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대단히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공항에서 봤는데 남측 비행기가 태극기를 달고 왔고, 남측 수행원들이 모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우리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생각해 봤어요. 어제 김영남 위원장과 회담하고 만찬 대접도 했으니 헤어지면 되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주위에서 만류해서 오늘 제가 나온 것입니다.”('김대중 회고록')

김정일이 평양회담에서 노린 것은, ‘주한미군의 무력화(無力化)’ ‘국가보안법의 사문화(死文化)’ ‘연방제(赤化)통일방안의 합법화’, 즉 대한민국의 총체적 적전(敵前) 무장해제였다.

2000년 6월 평양회담엔 두 가지 합의가 있었다. 하나는 6·15 선언이란 공식적인 합의이고, 다른 하나는 김대중과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중립화 내지 무력화에 비공식으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이 평양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랑한 것이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은 통일 후까지 주둔해도 좋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실제로 한 말은 ‘지금의 주한미군이 북한에 적대적인 태도를 포기한다면(그리하여 평화유지군처럼 중립화된다면) 있어도 좋다’는 것인데 김대중은 전제조건을 빼 버리고 지금의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국민들을 속였다.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인공기를 올린 대학생 수사를 문제 삼은 것은 국가보안법 사문화를 주문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정원과 검찰이 친북세력에 보안법을 적용할 때 핵심적인 포인트는 ‘반(反)국가단체 고무찬양’과 ‘연방제 통일 주장’의 범죄였다. 김대중은 (6·15 선언을 통하여) 반국가단체 수괴와 ‘우리민족끼리의 통일’ 원칙과 ‘연방제-연합제 혼합 방식’의 통일안에 합의함으로써 보안법 집행의 근거를 허물었다. 6·15 선언은 명백한 헌법 위반인데, 정치권이 이를 막지 못하니 위헌적인 6·15 선언이 헌법과 보안법 체제 위에 올라타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일은 많은 몫을 챙겼다.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뇌물로 받고, 남한의 사상적 적전 무장해제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며, 대북(對北) 퍼주기라는 빨대를 남한에 꽂아 핵무기 개발 자금도 빨아먹었다.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얻었다.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종북(從北) 득세에 의한 내부 분열뿐이었다. 평양회담은 김대중,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희생시키고 각자 이득을 취한 장(場)이었다.

1980년 작성된 중앙정보부의 '金大中 연방제 판단 보고서' 요지는 이렇다.

<북괴 연방제안과 金大中의 주장을 비교해 보면, 표현상 차이를 제외하고는 同 연방제안의 성격, 활동(기능) 및 기구 구성 면 등에서 쌍방이 일치하고 있다. 金大中의 연방제는 '한반도의 外軍 철수'를 주장함으로써 同 연방제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려는 북괴의 전략적 기도에 영합하였다. 북괴는 그의 이 같은 태도를 중시, 그를 '민주인사'로 규정하였고, "민주인사 집권時 연방제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金大中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평화적 통일이 실현되었을 것"(1975년 5월17일 金日成·日 마이니치신문 기자회견)이라고 피력하였다. 金大中은 북괴가 對南적화 전략 추진의 여건 조성책으로 제시해 온 '남북연방제'안에 사실상 동조함으로써 북괴를 고무시킴은 물론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敵을 이롭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일의 주한미군 중립화 제안을 받아들인 김대중

2000년 6월14일 김대중, 김정일이 평양에서 만났을 때 김정일-임동원 사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주한미군 지위 변경’은 남북한의 최고 권력자 사이에서 하나의 密約(밀약)으로 굳어진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이렇게 말하였다.
"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하기로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임동원씨는 (김정일이) 미국측에 전한 말은 "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여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였다고 회고록에 썼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가관을 가진 이라면 駐韓미군의 無力化(무력화)를 요구한 김정일의 말을 듣고 화를 내든지 이렇게 말하였어야 했다.
"그런 평화유지군은 1개 대대로 족한데, 1개 대대로 어떻게 남북한 사이 전쟁을 막습니까? 미국 정부가 미쳤다고 그런 제안을 받습니까? 주한미군은 6·25 남침과 같은 재도발을 막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이 문제는 남북간에 논의할 성질이 아니고 한미간에 결정할 문제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김정일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를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에게도 안정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 즉 韓美동맹 해체를 겨냥한, 敵將의 주한미군 중립화-無力化(무력화) 제안에 감동하여 '탁월한 식견'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거짓말

2000년 9월3일 ‘방송의 날’ 기념 방송3社 공동초청 특별대담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南北 頂上회담時 자신과 金正日 사이에 駐韓美軍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다시 한 번 밝혔다.
“(김정일의) 답변이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金正日 위원장이 ‘나도 남쪽신문에서 대통령이 말씀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대통령이 나하고 똑같이 민족의 장래를 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큰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駐韓美軍이 있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북한에 가서 그 문제를 확실히 한 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문제라든가 우리의 국가이익, 東北아시아의 안정 등 큰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은 여기서 김정일의 발언 중 핵심인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 변화 조건을 전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김대중씨가 은폐한 김정일의 본뜻을 정확히 전달한 이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었다. 그는 2001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洪思德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金正日 위원장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대통령께서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을 우리가 읽었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용순이 아놀드 캔터를 만나서 최초의 美北(미북) 고위급회담을 할 때 ‘주한미군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는 점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敵對(적대)관계에 있는 미군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敵軍(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고 한참 이야기를 했어요.”

代를 이은 반역

2002년 선거 때 노무현 후보는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는 말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고(이 발언에 화가 난 鄭夢準 의원이 지지를 철회하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된 뒤엔 동북아 균형자론을 들고 나오더니 드디어 韓美동맹 해체의 제1단계로 갈 가능성이 있는 韓美연합사 해체 작업을 강행하였다. 그것도 북한정권이 核(핵)실험을 한 직후에. 김정일-김대중의, ‘주한미군 중립화(=無力化)에 의한 韓美(한미)동맹의 실질적인 해체 합의’는 노무현 정부에 계승된 것이다.
6·15 선언 2항은 김대중식 연합제안과 김정일의 연방제안을 절충한 통일방안에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식 연합제안은 북한 연방제안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합의는 사실상 연방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 한다. 연방제안은 주한미군 철수용이다. 연방제를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해체에 합의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김대중, 김정일은 ‘주한미군 無力化(무력화)’ 密約(밀약)을 실천적 약속으로 만들기 위하여 6·15 선언 2항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의 폐기를 선언하지 못하였다. 韓美연합사 해체 합의도 취소시키지 못하였다. 남북한 좌익들은 ‘6·15 선언 실천’을 ‘미군철수와 赤化(적화)통일’의 同義語(동의어)로 쓰고 있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합작하여 대한민국을 함정으로 빠뜨린 게 ‘6·15 선언’인데 이의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이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김대중 密約(밀약)은 한국에서 代(대)를 이어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노무현의 代를 이은 逆謀가 문재인으로 이어져 3대 반역이 될지는 오는 12월19일 밤에 결정될 것이다.

국민행동본부의 대통령 노무현 고발장 발췌

<고발인은 취임 이래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언동을 거듭하는 한편 職權을 남용하거나 職務를 유기하여 북한정권의 對南적화노선에 동조하는 정책들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북한정권은 형법상의 內亂집단이고 국가보안법상의 反국가단체이며 간첩죄 적용시의 準적국입니다. 이를 전제할 때, 피고발인의 집권 이후 일관된 언동 및 정책들은 外患罪 중 一般利敵罪 및 與敵罪에 해당하며, 內亂罪의 경우에도 그를 主犯으로 한 법리구성과 從犯으로 한 법리구성 모두 가능하다고 볼 것입니다.

1. 군사적 利敵행위

(1) 피고발인은 북한정권이 핵실험을 한 시점을 택하여 절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對北억지력의 핵심인 韓美연합사 해체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韓美양국이 共有하고 있는 戰時작전통제권을 마치 미군이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여 『작통권 환수(還收)』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등 韓美연합사를 해체하는 全과정에서 反美를 선동하고 소위 自主를 내세워 국민을 속여 왔습니다.
△韓美연합사 아래서 共同결정권을 갖는 한국 대통령이 『어느 시설에 폭격할 것인지도 마음대로 결정 못 한다(2006년 12월21일)』는 말이나, △NATO 등도 韓美연합사와 같은 체제로 운용됨에도 『한국만이 작통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2006년 12월21일 外)』라는 주장, △韓美연합사 해체로 최소 621조원의 추가비용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작통권 환수로 들어가는 예산은 미미할 것(2006년 8월9일 발언)』이라는 말도 피고발인의 계속되는 거짓말 중 하나였습니다.
(2) 2006년 10월8일 북한의 핵실험은 피고발인의 오판과 방관, 은폐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피고발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다(2004년 11월12일 발언)』,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2006년 5월29일 발언)』이라는 등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한편, 對北퍼주기를 강화하여 북한의 군비증강을 지원했습니다.
피고발인은 심지어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행위(2006년 7월11일 발언)』, △『포용정책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이 아니다...지나친 안보민감증도 위험한 것(2006년 10월9일 발언)』이라는 등 북한의 미사일도발과 핵실험 직후에도 對北제재는 커녕 북한정권을 두둔하며 퍼주기를 계속해야한다고 나섰습니다.
(3) 피고발인은 그가 견지해 온 반역적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2007년 10월4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가로지르는 海域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등을 설치키로 북한정권과 합의, 수도권 방어의 최일선을 무너뜨리는 시도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海上휴전선인 NLL에 대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영토선이라는 것은 국민 오도(以上 2007년 10월11일 外)』라는 등 주권적 지배가 미치는 「영토(Territory)」를 북한에 양여하고,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이 미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양보하는 위헌적인 NLL 무력화 선동에 나섰습니다.
(4) 피고발인은 △主敵개념을 없애 군대의 존립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2005년 국방백서), △군대를 『썩는 곳』으로, 軍원로들을 『거들먹거린다』고 비방하는(2006년 12월21일 外) 등 反軍선동에 앞장서는 한편, △일방적 감군(減軍)을 선언하고 사병 복무기간을 단축(短縮)했으며, △『미군은 감축해도 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국방개혁에 대해서는 『특별히 돈 들것 없다』며 국군과 미군 감축을 보완할 무기개발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피고발인은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중단시켜 김정일의 골치덩어리를 제거하고 북한군인들의 외부 정보源을 없애버렸으며(2004년 6월15일), △북한정권의 군사력 강화에 쓰이는 북한의 달러위조 등 국제범죄에 미국이 단속에 나서자 이에 협조하지 않고 사실상 방해했고, △김정일 눈치를 봐가면서 군사훈련을 축소하는 한편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위한 노력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선 적대적이고 主敵인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던 이 같은 행태는 △主敵의 내란행위인 對南적화공작을 방조하는 것인 한편 △대한민국의 군사상이익을 해(害)하고 主敵의 군사상이익을 공여하고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下略).>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