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전향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사망자에 대한 제2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결정'을 둘러싼 물의는 8월1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날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서 있었던 제5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 대통령이 최근 첨예한 정치적 현안으로 등장해 있는 '친일 반민족행위'뿐 아니라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도 '진상규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서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만들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의문사' 문제는 물론 이승만(李承晩) 정권이래 역대 정권 하에서 있었던 '국가 공권력의 오·남용에 의한 일체의 인권침해 및 불법행위'들을 소위 '친일 반민족행위'와 함께 일괄해서 다루는 포괄적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설치하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8.l5 제안에 따라 원내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포괄적인 '과거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거론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문제가 지금 여야 간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17대 국회에서 원내 소수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은 속으로는 이 같은 '과거사 진상규명' 입법에 반대하면서도 여론을 의식하여 거죽으로는 '총론에는 찬성, 각론에는 이견'이라는 엉거주춤한 입장으로 '흥정'(?)을 통해 정부·여당이 내놓는 법안의 내용을 가급적 완화시켜 보겠다는 실리작전(?)으로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포괄적인 과거사 진상규명' 입법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과거사'는 시기적으로 1)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기간(1910-45년)과 2) 해방 후 현재까지의 기간(1945-현재)을 망라하는 것이지만 이에 더하여 3) 특히 조선왕조 말엽의 '동학란'까지도 대상으로 제기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이 가운데 몇 건의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입법조치가 이루어진 것이 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혁명군 명예회복법'을 필두로 '친일 반민족행위'와 '의문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전야의 '제주 4.3 사건,' 6.25 전쟁기간 중의 '노근리 사건'과 '거창 사건,' 그리고 1980년의 '5.18 광주사태'등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법들이 그 것들이다. 지금 17대 국회에서는 이들 이미 제정·공포된 법들 가운데 일부를 포함하여 도합 15건 전후가 '제정' 또는 '개정'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의문사 진상규명'은 1·2기 '의문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이 종료된 상태에서 3기를 발족시키기 위한 법 개정 여부가 지금 뜨거운 정치적 현안이 되어 있고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은 지난 3월2일 16대 국회에서 재석 163명, 찬성 151명, 반대 2명, 기권 10명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되고 3월22일 공포되어 9월23일 발효를 앞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7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이 법의 발효 이전 개정을 추진, 재적(299명)의 과반수를 초과하는 171명(열린우리당 151명, 민주노동당 10명, 한나라당 6명, 민주당 4명)의 공동발의로 개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사실은, '조선왕조 말엽,' '일제강점 시기,' 그리고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3개 시기의 '과거사'를 단일 법률로 묶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 것은 같은 '과거사'지만 지금 정부·여당이 이들 '과거사'들을 '대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진상'의 '내용'과 '성격'은 '시기'별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선 '조선왕조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가 '명예회복'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동학군' 문제가 가지고 있는 주목할 점은 이 법의 입법 의도의 저변에 '동학란'의 '성격'을 단순한 '항일 운동'이 아니라 '반봉건 운동'으로 '정의'하고 이에 입각하여 '명예'를 '회복'시켜주자는 의도가 농도 짙게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주장의 주체는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민노당)의 '친북(親北)·좌파(左派)' 세력들로 그 저변에는 '동학란'의 '성격'을 '계급사관(階級史觀)'에 입각하여 '재해석'함으로써 이를 통해 북한과 남한내의 '친북·좌파' 세력이 남한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실제로는 공산화 혁명이론인, '반제반봉건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反帝反封建民族解放人民民主主義革命)' 이론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이 같은 역사 '재해석' 시도의 노림 수는 북한과 '친북·좌파'들이 주장하는 대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격하'시키고 그 대신 북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격상'시키려 하는 데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당의 '진상규명' 강조엔 다른 의도 숨어
그와는 달리 '일제강점 시기'를 대상으로 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은 훨씬 더 '정략적'인 '복선'을 깔고 있음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그를 떠받치고 있는 정부·여당은 '건국 초기 '반민특위(反民特委)' 활동이 미흡'했기 때문에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통한 역사바로잡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새삼스러운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론의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 '진상규명'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역사바로잡기'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자신'이나 '후손'들의 '고백'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여당의 주장에는 문자 그대로 '양두구육(羊頭狗肉)'적인 이중성이 숨겨져 있다.
우선 해방 후 59년이 경과한 지금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중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고백'하고 '반성'할 당사자들은 거의 모두 이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상규명'은 불가피하게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물론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의 '방법'과 '내용'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겠지만, 작금의 '여론조작'의 흐름으로 본다면 이들에 대한 '조사'는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결코 완전할 수 없는, 많은 경우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증거'와 '증언'들에 의거하여 '인민재판'의 형태로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이른바 '친일 반민족행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려해야 할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건국 초기 '반민특위'의 활동이 미흡했고 그 결과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리가 미흡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겨준 역사의 한 단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심각한 인재난에 직면해야 했던 건국 초기의 특수한 상황 하에서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계속 국가에 활용되어 특히 치안과 국방 및 행정 영역에서 그들의 공헌이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데는 그들의 기여가 없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도 우리는 지워버릴 수 없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경우 비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오늘날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파산·국가파탄은 정권 초기 '친일파' 숙청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나머지 국가관리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데서 초래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우리의 경우 문제의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국가건설과 수호 그리고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공로'를 따로 치하해 주지는 않더라도 '장공속죄(將功贖罪)'의 차원에서 '정상참작(情狀參酌)'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물론, 정부·여당은 입으로는 이번의 '진상규명'이 이들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미 땅 속에 묻히어 이미 당사자 본인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은 물론 '고백'하고 '반성'할 수도 없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은 불가피하게 '연좌제(連坐制)'의 망령을 부활시켜 필연적으로 이들 당사자들의 '후손'들에게 '불이익'을 강요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최근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원의 불의의 낙마(落馬)를 통해 실증적으로 부각되었다.
박정희 끌어내 박근혜 침몰시키자는 것
사실은,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은 표면에 들어낸 '명분'은 무엇이든지 그 숨은 주목적이 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새삼 부각시켜 이에 대한 '인민재판'식 재조명을 통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大權走者)의 하나인 그의 딸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의 '낙마'를 강요하겠다는 것이고 이와 아울러 반노(反盧)의 논지를 고수하는 조선(朝鮮)·동아(東亞) 양대 신문을 무력화시킴으로써 3년 뒤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현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여건과 상황을 조성하겠다는 데 있는 것임이 정부·여당 인사들의 언행을 통해 분명하게 들어 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여당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우선 명백한 '위헌' 행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은 제13조 ①항에서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한 소추를 금지'할뿐더러 ②항에서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하거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③항에서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이 헌법 제13조의 각 항목을 달리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단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록 '처벌' 조항을 직접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①항의 저촉을 우회적으로 회피해 나간다 하더라도 문제의 '과거사' 입법들이 '친일 반민족행위자' 본인들은 물론 그 '후손'들의 '참정권' '제한'과 더불어 그 '후손'들에게 '본인이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한 '불이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그에 앞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숨겨진 '입법취지'임이 들어 나고 있는 이상 그러한 입법은 당연히 제13조 ②③항에 저촉되는 위헌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는 '과거사 진상규명'은 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수반한다. 이 기간 중에 발생한 일로 '진상규명'의 '대상'이 되는 '과거사'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좌(左)·우(右)'의 이념대결 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이고 또 하나는 이승만 정권이래 역대 정권, 특히 그 가운데서도 196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박정희(朴正熙) 정권과 그 후속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반독재·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가 그 것이다. '반독재·민주화' 투쟁 차원에서 발생한 '과거사' 가운데 특히 1980년에 발생했던 5.18 '광주사태' 문제는 이 '사태'가 하나의 '민주화운동'으로 봉헌되면서 이에 따른 법적·행정적 '신원(伸寃)' 조치들이 이루어져 왔다.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광주 민주유공자 예우법' 등이 그 것이다. .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좌·우' 이념대결의 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한 가지 핵심적 진실이 심각하게 호도되고 있다. 그 것은 '좌·우' 대립의 와중에서 발생한 '과거사'는 대부분이 북한 및 남한사회의 '친북·좌경' 세력들이 불법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무시하고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활동을 전개한 데 대해 대처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주 4.3사건을 필두로 해서 '좌·우' 대립의 차원에서 발생한 모든 '과거사'들은 이 때문에 '반독재·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와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반국가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발동되는 과정에서 '인권유린' 차원에서 적지 않은 '과잉행위'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적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과잉행위'는 문자 그대로 '과잉행위'의 부산물로 '인권유린'의 차원에서 다루어질 사안일지언정 '공권력의 과잉행사'로 인하여 사망했다고 해서 이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의 대통령 직속 2기 '의문사위원회'는 '사상전향' 거부 과정에서 발생한 3명의 남파간첩 및 빨치산 출신 사망자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하는 '반(反) 대한민국'적 작태를 보여주었고 이 위원회의 직속 상급기관인 노 대통령은 이 '결정'을 시정함이 없이 수용함으로써 남한사회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이에 더하여, 더욱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다. '의문사위원회'가 고용한 남파간첩 및 빨치산 출신 조사관들이 군 내부의 '의문사 진상조사' 과정에서 4성 장군인 현역 군사령관을 조사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남쪽 논란에 환호하는 평양
문제의 '과거사 진상규명' 입법은 오는 9월 정기국회의 최대 정치적 이슈가 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이 어떠한 장애를 무릅쓰고라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과거사 진상규명'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결의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8.15 제안에 따라 여야협상을 통해 모든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포괄적으로 통합하는 노력을 전개할 태세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이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절충 실패로 어려워질 때는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개정안'과 국회 제출을 준비중에 있는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라도 강행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굳혀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장은 3년 후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절박한 포석이다. 4.15 총선거의 석권으로 의석 40여 석의 군소정당에서 원내 과반수 정당으로 '벼락부자'가 된 열린우리당의 장기집권 기반 구축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즉, 열린우리당의 계산은 우선 장기집권 가도의 제1관문(關門)인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로 어떻게 해서든지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의 테두리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문제삼아 그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도중 '낙마'시키겠다는 것인 듯 하다.
그러나 박 대표의 '낙마'가 여의치 않을 때의 대안이 필요하다. 이 때는 '의문사 진상규명'의 대상 시한을 1961년 5.16 '군사쿠데타'때까지로 연장하고 그 뒤에 일어난 19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 1972년의 '유신개헌,' 1980년의 5.18 '광주사태'와 '삼청교육대' 사건 등의 '과거사'를 계속 파상적으로 들춰내어 한나라당을 그 때의 '권위주의 정권'의 '적자(嫡子)'로 부각시킴으로써 한나라당과 전체 인구의 34.5%를 차지하는 2030세대의 젊은 유권자층과의 접점(接點)을 차단하여 한나라당을 계속 수세(守勢)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열린우리당의 계산이 적중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도 노 정권 하에서 경제난국의 심화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최근의 민심이반 추세의 심각성은 노 정권에 우호적인 <내일신문>이 8월24일자에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신문이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58.3%가 '과거사 청산은 필요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현 정부의 방식은 틀렸다'는 대답이 50.5%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이 신문은 2002년 대선과 금년의 탄핵정국 및 4.15 총선 때 '친여 또는 중립' 성향이었던 40대의 한나라당 쪽으로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어서 정당지지도에서도 열린우리당 지지가 28.2%인 데 반해 한나라당 지지가 29.8%, 민노당 지지가 14.4%로 나타났다면서 이를 '40대의 반란'이라고 명명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민심이반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과연 '과거사 청산'의 고삐를 무작정 계속 죄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로 인하여 정기국회에서의 여야대치가 격화되어 2005년도 예산안을 비롯하여 긴급을 요하는 경제입법에 지장이 초래될 때 노 정권이 과연 그로 인한 여론의 지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는 달리, 최근의 남한사회의 '좌향좌(左向左)' 성향에 대해서는 북한이 '이제 남조선에서는 사회의 주류였던 반공보수 세력이 밀려나고 탄압 당하고 숨어살던 진보적 운동세력이 네 활개를 펴고 주류로 등장했다'고 호언하면서 '지금 남조선에서는 역대 파쇼 당국이 우리를 걸어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처형했던 각종 사건들이 탄압사건으로 재조명되고 오히려 지난 시기 탄압사건을 조작했던 교형리(絞刑吏)들이 처벌되고 있다'고 주장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도 그 같은 남한사회의 '좌향좌'를 주도해 온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1960년의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심화되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1958년12월24일 성탄절 전야(前夜)에 2.4 '보안법 파동'을 일으켰던 자유당(自由黨)은 그 것으로도 모자라서 3.15 정·부통령 선거 때는 이기붕(李起鵬) 부통령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일념으로 '4할 사전투표'라는 공전(空前)의 부정선거까지 감행한 끝에 4.19 학생의거를 촉발시키고 급기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로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 궁지에 몰렸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그 때 자유당이 했던 것처럼 결사(決死)의 각오로 '과거사 진상규명' 입법을 강행할 것인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끝]
'過去事 眞相糾明'의 虛와 實 [<월간 헌정> 제267호 (2004년9월호) 게재]
-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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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9-06, 15: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