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名 산책/역사의 아픈 상처를 품은 梨泰院(이태원) 이야기

도성 인근 4개의 院 중 하나

용산구 梨泰院 洞名(동명)은 조선조 때 公務(공무)여행자 및 사신에게 숙식∙편의를 제공하는 驛院(역원)인 梨泰院(이태원)이라는 공용숙소에서 유래됐다. 동대문 밖의 普濟院(보제원), 서대문 밖의 弘濟院(홍제원), 광희문 밖 箭串院(전곶원)과 함께 도성 인근 4개의 院 중 하나였다.

15~16세기까지는 李泰院(이태원)으로 표기되었다. 마을 주변에 자두나무[李, 오얏(자두) 이]가 많아서인지, 조선왕조 왕실의 姓氏(성씨)를 따서 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孝宗(효종) 때 주변에 배나무가 많이 있어 앞 글자를 梨(배나무 이)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원은 임진왜란 後 항복하고 귀화한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던 지역이기도 했다. 왜군-조선인 혼혈들이 거주한 지역으로 異胎院[다를 이, 아이밸 태, 집 원]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간 여인들이 ‘還鄕女(환향녀)’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버림받고 모여 살던 지역이란 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을 水道町 二丁目(수도정 2정목) 일본인 전용 거주지 구역으로 지정했으나 주민들은 ‘이태원’이라 불렀다. 광복 후, 서울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 문화촌∙해방촌으로 불렸다. 6.25전쟁 때 미군 부대가 한국에 배치되면서 미군들의 慰樂(위락)지대로 번창했다. 미군 부대 주변에 이태원 상가 등이 생기면서 외국인 및 관광객을 위한 거리가 형성됐다.

이태원은 같은 용산구에 위치한 한남동 다음으로 외국인 거주지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洞 내에는 아르헨티나, 덴마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많은 국내 駐在(주재) 대사관이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 음식점도 많아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체험하고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이태원을 찾는다.

용산구청은 이태원 거주 외국인과 관광객을 위한 축제를 기획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태원 주말 문화축제’는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토요일마다 소규모 공연형식으로 열린다. ‘이태원 세계문화축제’는 9월에서 10월경 개최된다. 퍼레이드, 국내∙외 전통공연, 퓨전공연과 세계음식축제가 함께 진행된다. 2012년에는 10월 12~14일간 이태원 테마거리(이태원로~녹사평역)에서 열린다.

 이태원동에는 2012년 8월 기준, 9,879세대에 1만 492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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