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비 젖은 그 날의 임진각, 自由는 승리했다

“자유는 그냥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 토마스 제퍼슨
10월 22일 오후 6시 정각, 포성은 울리지 않았다. 저녁 노을을 넘어 창공 높이 솟아오른 자유의 정신은 높디 높이 날아올라 억압의 땅으로 유유히 향했다. 그 앞을 막을 존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렇게 숭고하고도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자유의 정신은 마침내 승리했다.

그리고 그들은 패배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남녘 땅은 조준격파 사격의 대상이 될 것” 운운하던, 10여년 전 300만 우리 민족을 그토록 무참하게 학살하고도 정당화를 위한 몸부림을 멈출 줄 모르던 민족반역 집단의 협박은 결국 그렇게 ‘비겁한 자의 최후의 발악’으로 끝을 맺었다.

이 날 7천만 한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오랜 세월을 투신해온 민주주의의 전사(戰士)들이 쟁취한 승리는 그토록 의미가 높고도 높았다.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 소속 80여 임원단의 이번 강행군은 죽음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死生決斷) 고된 길이었다. 10월 10일 한라산에서 출발해 국토를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해 거슬러 올라 분단의 벽까지 다다른 임원단은 녹슬고 망가진 몸을 쉬일 틈도 없이 민족반역자들의 불의(不義)에 분연히 맞섰다.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한 도덕이다” 1789년 인류가 피로써 투쟁한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의 역사를 북민연 임원단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자유는 그냥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의 절규를 기억한다.

북녘 땅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 2천3백만 한민족의 자유를 위해,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임진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말이다.


<비 내리는 임진각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갑자기 한무리의 경찰이 나타났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자유북한방송>


<전·의경 대원들이 임진각으로 향하는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취재를 위해 이미 대기하고 있던 내외신 기자단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임원단이 탑승한 파란색 트럭을 에워싸고 있는 전의경 대원들. ⓒ자유북한방송>


<무수한 경찰 차량을 배경으로 전의경 대원들이 도열해 있다. 이 날 임원단의 임진각 강행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은 북한 정권이 정말로 포문을 개방한 탓에, 그리고 일부 정부 고위층의 착오 탓에 길은 막히고 말았다. ⓒ자유북한방송>


<기자가 탑승했던 차량도 이내 곧 경찰의 포위 범위에 들어가고 말았다. ⓒ자유북한방송>


<경찰 병력의 포위와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 앞에 여성 임원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그들이 임진각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한 남성 임원이 내외신 기자단 앞에 호소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유효했던 파주경찰서의 집회 허가서를 들어보이며 울분을 쏟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박상학 대표의 손에 들린 허가서에 '파주경찰서' 글씨가 선명하다. ⓒ자유북한방송>


<인근에서 열린 반(反) 북민연 시위. 이들은 굴욕과 복종을 통한 평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북한방송>


<한 전의경 대원의 손이 전단지가 실린 트럭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봉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이 날 임진각으로 향하는 길은 먹구름이 드리운 어두운 하늘 만큼이나 참담함과 무력함으로 뒤덮였다. ⓒ자유북한방송>


<박상학 대표가 거세게 쏟아지는 장대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로 자유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우리의 적은 북한 정권이지 경찰이 아니다' 북민연이 결국 임진각에서의 철수를 결정한 가운데 김성민 초대 상임대표가 침묵의 국토대행진 해단식을 선포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참담한 심정을 감출 길 없는 임원단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자유북한방송>


<그러나 자유는 굴욕적이고 복종적인 평화와 양립될 수 없는,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였다. 북민연 임원단의 입에서 터져나온 구호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북녘에 자유를'이었다. ⓒ자유북한방송>


<강화도 역사박물관 인근으로 향하는 길. 희뿌연 차장 너머 임원단을 줄곧 미행한 경찰 차량의 모습이 보인다. 이 날 임원단의 강화도 이동 과정은 자유를 쟁취하려는 자들과 굴욕의 평화를 갈구하려는 자들 간에 펼쳐진 한 편의 첩보전이었다. ⓒ자유북한방송>


<짙은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한 오후 6시 무렵 강화도에 도착한 임원단이 자유의 메시지를 억압의 땅 북녘에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의 투혼이 저 하늘에도 닿은 것일까. 노을로 뒤덮인 강화도의 하늘은 비 내리던 임진각과 달리 장엄함 그 자체였다. ⓒ자유북한방송>


<이 시각 임원단은 북한군이 포문을 개방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이미 접한 상태였다. 황해도와 마주 보고 있는 강화도에서 치솟아오르는 풍선은 곧바로 북한군의 감시망에 포착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임원단의 분주한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유북한방송>


<'자유의 희망이여, 저 북녘 땅에 닿아 민주화 투쟁의 불씨가 되어라' ⓒ자유북한방송>


<'훨훨 날아 올라라. 그리하여 메마른 땅의 단비가 되고 공포의 땅에 희망이 되어라. 너의 염원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을지니 자유(自由)여, 모든 고난을 넘어 훨훨 날아 올라라' ⓒ자유북한방송>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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