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국토 곳곳에선 조국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북한 지역에는 지금껏 수습하지 못한 국군 전사자 13만 명 중 3만9000여 명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지역 내 국군 유해는 북측의 협조가 없으면 수습할 수가 없어 국방부는 유엔을 통한 해결 등 다양한 대책을 검토해왔지만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단 1명의 전사자와 실종자라도 끝까지 찾아 귀환시키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합동사령부의 활동은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을 고국의 품으로 되돌아오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국가적 책무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Joint Prisoners of war, Missing in Action Accounting Command)가 내건 구호들이다.
  2003년 10월 미국 하와이의 히컴 공군기지 안에 창설된 이 부대의 임무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구호처럼 JPAC은 단 1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적진에 포로로 붙잡힌 미군이 언젠가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으로 믿었다‘는 굳은 신뢰의 원천이 바로 JPAC이라고 할 수 있다.
  JPAC의 전신은 베트남 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신원확인을 위해 1973년 창설된 미 육군의 중앙신원확인연구소(USACIL)다. 이 연구소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지역에서 2차대전 중 사망한 미 공군 전투조종사들의 유해 확인을 비롯해 동남아 지역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 발굴 임무에 주력했다.
  이후 사령부 조직을 확대 개편해 2003년 10월1일 JPAC 사령부로 명칭을 바꿨다, 나라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고향으로 귀환시키는 국가적 작업은 거의 4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2차 대전부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적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미군을 약 8만30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6·25 전쟁 중 실종된 미군은 약 8000여명으로 추산된다.
  JPAC의 사령관은 현역 육군 소장이 맡고 있다. 미 국방부와 육해공군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등 450여명으로 이뤄진 18개 발굴팀은 미군 전사 실종자의 유해를 찾아 매년 막대한 예산을 써 가며 세계 각지를 샅샅이 훑고 있다. JPAC은 세계 최대규모의 유해 감식연구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센터엔 수십 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을 보유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감식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작은 뼛조각과 조각난 유품을 단서로 끝까지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돌려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JPAC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 유해를 찾아내기 위해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 유럽, 파푸아뉴기니 등에 지역 분소를 운영하고 있다.
  JPAC의 활동은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국방부 자료와 관련 사료를 검토해 미군의 전사 및 실종 경위와 그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고고학자와 군 전문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돼 발굴작업에 착수한다,
  발굴팀은 대위나 소령을 단장으로 10~14명으로 시신검안 전문가와 폭발물 해체 전문가, 통역관, 사진 발굴담당기록관, 의사 등으로 구성된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하와이의 JPAC 사령부로 옮겨져 인류학자가 주축이 된 감식팀의 신원 확인을 거치게 된다.
  JPAC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JPAC 요원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발굴작업의 성과와 진척내용 등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올해 초 라오스에서 베트남전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불가리아와 벨기에에서 2차 대전 당시 추락한 전투기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내용도 올라와있다. 아울러 지난해 말 JPAC 요원들이 미국 알래스카 남부 앵커리지 인근의 빙하에서 60년 전 추락한 군용수송기 잔해와 탑승객의 뼈 조각 일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올해 5월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용사 12명의 유해가 62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도 JPAC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의 유해는 미국이 2000~2005년 북한의 장진호 전투 지역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에 섞여 하와이의 JPAC 본부로 옮겨졌다. 이후 유전자 감식과정에서 아시아계 인종으로 확인되자 JPAC은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이를 통보했다. 유해의 치아상태와 치아 보철과 함께 발견된 인식표 등을 볼 때 한국군 전사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양측은 서울과 하와이를 오가며 추가 조사를 벌여 유해들이 한국군 전사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추가 정밀감식작업을 벌여 최종 신원을 확인해 유족까지 찾아냈다.
  앞서 2008년 5월엔 JPAC 요원들이 서울 여의도 밤섬 주변 한강 일대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6·25 전쟁에 참여했다 이 지역에 추락한 F-7F 타이거 켓 전투기의 조종사와 레이더 관제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JPAC의 수중조사팀원들은 수중음파탐지기(SONAR)와 금속탐지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동원해 약 한 달간에 걸쳐 한강 밑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6·25 전쟁 이후 한강은 여러 차례의 대홍수와 1980년대 대규모 종합개발사업과 준설작업으로 미군 유해 찾기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으로 예견됐다.
  실제 이런 예견대로 수색결과 유해나 기체 잔해 등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JPAC 관계자는 “조국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수색하는데 확률은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탐사대상 지역을 좁힐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JPAC의 주요 조사지역으로 북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JPAC이 창설되기 전인 1995년부터 북한에도 들어가 1951년 1·4 후퇴 직전 중공군과의 격전지였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주변에서 발굴작업을 벌였다.
  미국은 2005년 5월 작업을 중단할 때까지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400여 구의 유해를 옮겨오는 대가로 북측에 모두 2800만 달러(약 330억원)를 지불했다. 이 작업에는 북한군도 공동으로 참여했다. 북핵사태로 북미관계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미군 유해를 단 한 구라도 더 송환하기 위해 막후에서 노력했던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담에서 미군 유해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올해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발굴 작업은 또 다시 중단된 상태다.
 JPAC은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국방부는 2000년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3년 시한으로 유해발굴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사업의 지속적 추진이 결정되면서 육군본부 내 전담조직이 편성됐고,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아지면서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공식 창설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가에 헌신한 영웅들을 끝까지 챙기는 JPAC의 노력이야말로 미국을 떠받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konas)
윤상호(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 이 칼럼은 월간 '자유' 11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