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 측근 이춘상 씨의 죽음-꿈이 이뤄지려는 찰라에...

박정희 一家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朴正熙(박정희) 一家는 질풍노도의 역사 속에서 죽음과 늘 가까이 있었다. 박정희의 형은 우익 손에, 부인은 좌익 손에, 자신은 부하 손에 죽었다. 박근혜 후보도 2006년 유세 도중 목에 칼을 맞고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하였다.
12월2일, 朴槿惠(박근혜) 후보의 14년 측근인 이춘상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뉴스를 접하고 故人(고인)의 앳된 얼굴 사진을 보았다. 40代의 사고사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陰地(음지)에서 모시던 사람이 드디어 大望(대망)을 이루기 직전의 죽음이었다. 꿈이 이뤄지려는 찰라의 사고였다. 그가 맡았던 SNS 홍보 부문에서도 예상 외로 朴 후보가 文 후보를 이기고 있을 때였다.
李씨의 얼굴 사진을 보는 순간 박근혜 후보로선 혈육을 잃은 것보다 더한 충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두루 만나지 않아 '소통이 어려운 이'라는 평을 받아온 朴 후보에겐 이춘상 씨 같이 '부드럽고 맑은 私心(사심) 없는' 측근들이 있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었다. 이춘상 씨와 함께 사고를 당하였던 홍보단장 김우동 씨도 며칠 뒤 치료중 사망하였다. 더구나 김씨의 아버지는 김정일이 지령한 1987년의 대한항공 폭파 사건 때 죽은 機長이다.
두 측근의 사망은 朴 후보가 운명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자신도 목덜미에 칼을 맞고, 측근까지 事故死(사고사)했는데 대통령이 안 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운명에 대한 일종의 도전장 같은 생각이었다. 朴 후보의 승리가 확실해질수록 경호가 걱정될 때였다. 지지율에서 1등으로 달리던 후보가 선거기간중 죽으면 선거법상 代替(대체) 후보를 낼 수가 없다. 여러 번 한국 대통령의 목숨을 노렸던 북한정권으로선 암살의 유혹을 느낄 만할 것이란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춘상 씨의 죽음은 朴 후보의 경호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였다.



朴正熙(박정희) 一家는 질풍노도의 역사 속에서 죽음과 늘 가까이 있었다. 박정희의 형은 우익 손에 죽고 부인은 좌익 손에, 자신은 부하 손에 죽었다. 박근혜 후보도 2006년 유세도중 목에 칼을 맞고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하였다. 죽음과 늘 친하였던 박정희는 그러나 위대한 생명력을 한민족에 선물한 분이다. 그가 생명을 사랑한 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朴正熙 傳記(全13권) 작업을 일단 끝낸 뒤 아들 志晩(지만)씨를 만났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신 분이셨어요. 나무 꽃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버지를 쓴 글이 없더군요.'
志晩씨의 이 말이 이 분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朴正熙가 山林(산림)녹화에 성공한 것은 그가 숲과 나무를 사랑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성공한 것은 못 살고 힘없는 사람들을 사랑한 결과일 수가 있다.
그의 日記엔 낙엽, 꽃, 나무, 구름 등에 대한 감상적 표현들이 아주 많다. 작은 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느껴진다. 그의 일기는 권력자의 日記가 아니라 소학생의 日記처럼 순수하다. 너무 꾸밈이 없어 '대통령이란 분의 日記에 깊은 맛이 없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이가 들다가 보니 절대적 권력을 잡고도 초등학생과 같은 순수한 정신을 유지하였다는 것이 대단하게 보인다. 순진함은 物情(물정)을 모를 때의 마음상태이고 순수한 것은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다 겪고 나서도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 淸濁(청탁)을 다 들여 마시되 맑은 魂(혼)을 유지하는 자세이다.
朴대통령이 1973년 7월3일 경주 불국사 復原(복원) 준공식에 참석하여 내린 지시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불국사 주차장의 1~2호 변소 뒤편에 벚꽃나무를 植栽(식재)하여 미화할 것. ‘화랑의 집’ 뒤편 남산에 自生하고 있는 꼬불꼬불하고 클 수 없는 잡목은 제거하고 적합한 樹種(수종)으로 대체할 것.>
사람들은 “대통령이 화장실 주변에 나무 심는 것까지 간섭해야 하는가”라고 의아해 할 수 있다. 朴 대통령은 자동차로 지방을 다니면서 창밖을 살펴보다가 가끔 수행원에게 “저기 좋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누가 베었어?”라고 묻기도 하였다. 한국의 山野(산야)를 자신의 캔버스라고 생각하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975년 8월27일, 대통령은 이발을 하고 나서 기자실에 들렀는데, 한 기자가 “산림녹화의 비방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무도 사람과 같이 생각해서 대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산에 가보면 알겠지만, 나무도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해요. 등산로 근처의 나무들은 시들거나 축 늘어져 있는 데 반해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는 나무들은 싱싱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어요. 삼성의 李秉喆(이병철)씨가 龍仁공원을 만들기 전에 산림에 관계되는 대학 교수들을 만나 산림녹화 방법을 물어봤는데, 그때 어떤 교수가 아무런 수식사도 없이 ‘入山금지를 시키면 됩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병철씨는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하고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답니다. 뒤에 이병철씨가 일본에 가서 총독부 시절 산림에 관한 일을 한 관리를 만나보았는데, 그 사람도 같은 얘기를 했답니다.”
1936년에 발간된 <대구사범 교우회지>제4호에 실린 5학년생 朴正熙(당시 19세)의 ‘大自然(대자연)’이란 제목의 詩.

<1.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한 구석에 수줍게 피어 있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이
보다 기품 있고 아름답다.

2. 아름답게 장식한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에 지고 大地를 일구는 농부가
보다 고귀하고 아름답다.

3.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처럼
느긋하게, 한가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이상>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였다는 朴正熙가 가장 사랑한 것은 한국사람, 특히 가난하고 어렵고 약한 사람들이었다. 흔히 그를 평하여 ‘자신의 恨(한)을 민족의 恨으로 여기고 한풀이를 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발전시킨 사람이다’고 하는데, 민족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였다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1951년 朴正熙가 9사단 참모장으로 근무할 때 북한군의 포격과 기습으로 하루 평균 서른 명꼴로 戰死者(전사자)가 발생했다. 어느 날 두 명밖에 죽지 않았다는 보고를 사단장에게 올린 작전참모가 “오늘은 좋은 날이니 회식을 시켜주십시오”라고 했다. 金鍾甲(김종갑) 사단장은 박정희를 불러 준비를 시켰더니 그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 명도 안 죽었다면 모르지만 두 명밖에 안 죽었다고 축하하자는 데는 반대합니다. 그 두 사람의 부모는 아마 대통령이 죽은 것보다도 더 슬플 겁니다.”
1963년 그가 ‘국가와 혁명과 나’를 朴相吉(박상길)씨에게 구술, 代筆(대필)시킬 때의 일이다. 어느 날 朴 의장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이것을 좀 넣어줄 수 없습니까”라고 어색하게 말하더라고 한다.

<땀을 흘려라/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노래로 듣고.../2등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박노해 시인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그는 이런 ‘서민적 반골정신’을 권력자가 되고나서도 죽을 때까지 유지한 사람이었다. 朴대통령은 1972년 연두 순시 때 노동청을 방문, 이런 말을 했다.
“작년에 구로동 어느 수출 공단에 갔을 때입니다. 아주 정밀한 기계를 취급하는 職工(직공)인데, 그 작은 것을 들여다보고 작업하기 때문에 視力(시력)이 대단히 피로하기 쉽고 또 어두우면 아주 작업에 지장이 많고, 가보니 저쪽 구석에서 컴컴한 거기서 일하는데 불은 여기서 거꾸로 뒤로 비치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서 지적을 했지만, 책임자가 다니다가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한테는 電氣(전기)를 하나 따로 더 달아 준다든지 조명을 더 밝게 해준다든지 이런 것은 간단한 착안입니다.”
朴正熙는 울릉도를 방문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이던 1962년 10월 해군배로 울릉도를 찾았다. 그는 위험한 고비를 두 번 넘겼다. 도동 항구에서 작은 경비정을 타고 먼 바다에 떠 있는 本船(본선)으로 떠나려고 할 때 풍랑이 일었다. 경비정은 흔들리다가 전복될 뻔했다. 위기를 감지한 해군 참모총장이 “바다로 뛰어내리자”고 했다. 그때 풍랑은 더욱 거세어져 배를 해안에서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전송 나왔던 島民(도민)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밧줄을 던져 겨우 경비정을 해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해안 가까이 갔을 때 朴 의장을 비롯한 乘船者(승선자)들이 한 사람씩 바다로 첨벙 첨벙 뛰어내렸다. 다행히 水深(수심)은 사람의 키를 넘지 않았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朴 의장 일행은 산을 넘어 건너편 학동 항구로 갔다. 그쪽 바다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학동 항구에서 경비정을 타고 본선에 다다랐을 때 또다시 풍랑이 거세게 일었다. 朴 의장은 밧줄로 묶어 만든 줄사다리를 타고 本船에 오르는데 파도가 덮쳤다. 朴 의장은 비틀거렸고 하마터면 미친 듯이 출렁이는 바다 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동행하였던 동아일보 李萬燮 기자(국회의장 역임)는 “만약 그 자리에서 박 의장의 신변에 어떤 일이 발생했더라면 이 나라의 운명도 그날의 파도만큼이나 심하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朴 의장은 “이래서 국가 원수가 한 번도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야”라고 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號(호)가 없었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 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그는 '박정희란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고 거절하였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 대통령은 '박사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거절하였다. 朴 대통령은 18년간 재임했으나, 그 흔한 명예박사 학위가 하나도 없다.
朴 대통령은 私信(사신)을 쓸 때는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대통령은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그의 생일은 호적에 잘못 적혔다. 그날을 생일이라고 생각한 장관들이 축하 인사를 해도 그냥 받아주었다.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朴 대통령은 권위적인 것들을 생래적으로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가 지도한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불린다. 그는 특히 권력을 빙자한 횡포를 미워하였다. 그는 虛禮虛飾(허례허식)도 싫어하였다. 항상 淸貧(청빈)한 마음자세를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었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헤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屍身(시신)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戰時(전시) 부산에서 맞선을 보던 날 陸英修(육영수)는 朴正熙 소령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다고 한다.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는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으로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에요.”
궁정동 安家에서 朴正熙가 보여 준 최후의 모습이 바로 그의 뒷모습일 것이다. 가난과 亡國(망국)과 戰亂(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사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하여서는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면서 일체의 변명을 생략한 채, 총탄에 가슴을 뚫리고도 ‘체념한 듯 담담하게(신재순 증언)’ 최후를 맞은 이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혁명가 朴正熙였다.
李長春 대사(퇴임)는 이런 박정희를 평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 혁명가'라고 했다. 나는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단정하는 걸 반대하지만 어떤 시기에 그가 '독재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독재'엔 여러 종류가 있다. 700만의 人命(인명)을 희생시키고도 경제건설에 실패한 김일성-김성일 식 독재가 있고, 수천 만 명을 죽인 스탈린이나 모택동 식 독재, 경제활동이 가장 자유로운 싱가포르를 만든 李光耀(이광요) 식 독재도 있다.
세계사를 보면, 혁명적 변화엔 수많은 人命 희생이 따르는 게 보통인데 박정희 시절은 극히 예외였다. 朴正熙가 韓民族 2000년 역사상 최단기간 내에 最大(최대)의 변화를 몰고온 근대화 혁명을 주도하였음에도 자유와 人權을 최소한도로 제약하는 데 그칠 수 있었던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한 그의 마음과 관계 있을 것이다.
이춘상 씨와 김우동 씨의 죽음이 박정희 一家를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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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박근혜 당선 예상 기사이므로 퍼가면 안 됨.


朴 후보는 좌편향 선동언론의 불공평한 보도라는 맞바람을 안고서 종북좌파 총연합 세력의 문재인 후보를 큰 표차로 껐었다. 맞바람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뒷바람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것은 서민의 힘, 역사의 힘, 아버지의 힘이었다.
'아버지의 딸' 朴槿惠(박근혜) 후보가 큰 표차로 당선이 확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1963년 朴正熙(박정희)가 민정이양을 앞두고 썼던 '국가와 혁명과 나'의 마지막 페이지 글이 생각 났다.
<가난은 본인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 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동시에 이것은 본인의 생리인 것이다. 본인이 특권계층, 파벌적 계보를 부정하고 군림사회를 증오하는 所以(소이)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人情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투표 전날 한 60대 퇴직 언론인이 마포 거리에서 구두를 닦았다. 40대 쯤 보이는 구두닦이가 시키지도 않는 말을 했다.
"박 대통령 봐서도 박근혜 찍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빨갱이 세상 됩니다."
이날 50대 직장 여성이 광화문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내리는데 운전기사가 가만히 "박근혜 찍으세요"라고 했다.
이날 인사동으로 가는 개인 택시를 탔다. "내일은 춥다는데 투표장에 갈 사람들을 공짜로 태워주세요"라고 했더니 기사는 "박근혜 찍을 분이군요"라고 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기사는 신이 나서 朴 후보 선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박 후보를 보면 서민은 아닌데 이상하게 서민 냄세가 납니다. 신뢰가 가고요. 뭔가 나라가 잘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명박 대통령도 잘한 일이 많지 않아요? 왜들 그렇게 욕만 하는지..."

투표 며칠 전부터 많이 들려 오는 말들이 있었다. "박 대통령 봐서도 박근혜 찍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빨갱이 세상 됩니다."
농민, 현장 노동자, 운전기사, 구두닦이, 할머니, 주부, 자영업자, 농민 등 서민층에서 특히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투표일 나흘 전 부산일보 강당에서 매월 토요일 열리는 '趙甲濟의 時局(시국) 강연'을 끝냈다. 올해 마지막 강연이고 투표를 앞두고 있어 강당이 꽉 찼다. 부산 民心은 압도적으로 박근혜 지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교육자 출신은 "父女가 代를 이어 나라를 구하는군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총으로 권력을 잡아 경제개발로 가난을 물리쳤고, 딸은 선거로 從北집권을 막아 나라를 지켜낼 것입니다."
北은 父子가 代를 이어 나라를 망쳤는데 이 父子에게는 한 마디 비판도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두 번 살린 父女만 욕한다고 흥분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들이 저절로 생존 본능을 보입니다. 이번 선거는 체제의 命運(명운)을 건 左右(좌우)대결입니다. 부산에선 할머니들이 박근혜 후보 운동을 자발적으로 해요. 80대 할머니들이, 아들 딸, 손자 손녀, 며느리, 사위들을 걱정하면서 챙기는 걸 보면 이게 民心이 아닌가 생각해요. 국가가 위기에 처한 현실은, 할머니, 어머니, 주부, 생활인들이 피부로 먼저 알아요. 머리로 아는 게 아닙니다. 요사이 '빨갱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빨갱이 세상은 안 돼'."
밤에 서울역에 도착,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기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선거 이야기를 꺼냈다. 77세의 노인인데, 열렬한 박근혜 지지자였다.
"아들, 세 딸한테 확인하였더니 다 박근혜 찍는데요. 안심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의 졸병 생활을 실감 있게 이야기하였다.
"그때는 북한군 방송시설이 더 성능이 좋았습니다. 맨날 그놈들이 휴전선 확성기를 틀어놓고는 고향 생각이 나도록 선전 방송을 왕왕 해대더니 지도자를 잘못 만나 저 꼴이 된 것 아닙니까? 좌익들이 北에 퍼주기를 하더니 미사일이 되어 날아온 거죠."

喪妻(상처)한 뒤엔 큰 딸과 함께 사는데 큰 사위가 몇년 전에 病死(병사)하였다고 한다. 당뇨증이 있지만 운동으로 견디고, 손자 손녀 공부 수발도 해준다고 했다. 그도 빨갱이 운운하더니 "박근혜가 이기겠지만 크게 이겨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의 대승은, 선거판이 좌우대결 구도로 바뀌자 역사의 원리와 국가생존본능이 작동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본능은 열심히 사는 이런 생활인들에 의하여 발휘되는 모양이다. 생활이 생존이므로 이들은 누가 공동체를 망칠 사람인지 일으킬 사람인지를 본능적으로 분별하는 지혜를 가졌다.


민주당은, 문재인이 ‘서민 후보’, 박근혜는 ‘귀족 후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하지만 잘 먹혀 들지 않았다. 유세장에 가 보면 朴 후보 쪽으로 서민층이 많이 모이고, 文 후보 쪽으론 학생들과 사무실 근무자가 많았다. 지지층을 들여다 보면 박근혜 후보는 서민층(저소득층, 저학력층, 생활인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며 文 후보는 고소득층-고학력층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지지층을 기준으로 하면 박근혜가 서민 후보, 문재인은 富者(부자) 후보이다.
투표 1주일 전에 실시된 동아일보(리서치엔리서치) 大選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 후보는 소득별, 학력별, 직업별 지지율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후보 지지율: 朴 45.3-文 41.4%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大在 이상: 朴 37.4-文 49.6%

원래 좌파는 서민층을 대변하고, 우파는 부자층을 대변하는 게 정상인데, 박 후보가 서민층을, 문 후보가 부자층 지지를 많이 받았다. 박 후보 지지층중 서민층이 많은 것은 이들 가운데 박정희-육영수 향수가 강한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서민 지지층을 의식하여 朴 후보는 보통 좌파들이 내어놓는 공약을 많이 걸었다. 한국의 大在(대재) 이상 고학력층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비율이 中卒(중졸) 이하보다 네 배나 높았다. 학력과 분별력이 반비례하고 있는 셈이다. 문 후보가 천안함 폭침이라 하지 않고 침몰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지지층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종북좌파 성향의 후보를 고소득층이 집중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또는 위선적인) 이념-심리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학력-고소득층은 주로 학생과 화이트칼라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 주도층이다. 언론, 정부, 법조계, 학교, 금융기관, 서비스 업종에 많이 들어가 있다. 정치인, 기자, 판사, 검사, 교사, 교수, 은행원, 시민단체원, 고위 공직자 등의 직업을 갖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성공자이고, 수혜자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의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反체제적 후보를 많이 지지하였다. 여기에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가진 근원적 불안 요인이 있다.


새누리당 朴槿惠(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大勝(대승)하여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가 이끈 새누리당이 지난 4·11총선에서 逆轉勝(역전승)하여,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 사사건건 적군 편을 들고 국군을 공격하는 從北(종북)좌파 연대(진보당+민주당)가 정권의 일각을 차지하는 것을 저지하였을 때 朴씨는 이미 ‘선거의 여왕’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총선과 대선 승리는 박근혜 씨의 거의 ‘원 맨 쇼’였다. 한 개인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命運(명운)이 걸린 두 차례 선거에서 이처럼 압도적 역할을 한 것은 외국에서도 찾기 어려운 사례이다. 그의 아버지는 銃口(총구)의 힘으로 역사를 바꾸었고, 딸은 투표의 힘으로 역사를 지켰다.
역사의 뒷바람을 받은 박 당선자는 좌편향 언론의 선동이란 맞바람을 극복하고, 종북좌익세력의 도전을 꺾고, 두 번이나 헌법과 체제를 지켜냈다. 아버지는 총구로, 그 딸은 투표로 나라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父女가 代를 이어 공산화나 내전적 상황으로부터 공동체를 구출한 것이다.

지난 가을 언론이 연일 안철수, 문재인의 단일화 쇼를 생중계하듯이 띄우고 있을 때 나는 보수층 인사들로부터 ‘대선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걱정 서린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는 1987년 이후 이번을 포함하여 여섯 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결과를 다 맞추었다.
2007년엔 몇 달 전부터 ‘李明博(이명박) 후보가 500만 표 차로 이긴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었다(실제 표차는 530만 표). 그래서인지 선거 때만 되면 결과를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에 대하여는 그만큼 당선의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종북좌파 세력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하기도 싫어 ‘박근혜가 이기겠지. 역사의 힘으로’라고 말하곤 하였다. 취재를 온 타임지의 여자 기자에게도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박근혜는 박정희라는 역사의 부담과 後光(후광)을 같이 지고 있다. 아마도 後光이 더 클 것이기에 당선될 것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뽑힌 데는 ‘역사의 힘’이 작용하고, ‘국가생존의 본능’이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힘과 본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선거판이 左右(좌우) 정면대결 구도로 설정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선거판을 좌우 대결 구도로 만든 것은 안철수 씨였다. 11월 초, 그는 중도 독자 노선을 포기하고 좌파인 민주당의 문재인 씨와 단일화 협상을 시작하였다. 11월 6일 나는 조갑제닷컴에 ‘종북좌파가 뭉치니 대한민국 세력도 박근혜 중심으로 大同團結(대동단결)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문재인-안철수가 단일화 談合을 시작함으로써 대통령 선거판은 左右 대결장, 즉 從北좌파와 대한민국 세력의 결전장으로 변했다. 때맞춰 북한정권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하여 개입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번 大選은 한반도의 본질적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건 선진세력과 守舊세력, 연방제(赤化)통일 세력과 자유통일 세력의 싸움이 될 것이다. 선택은 명확해졌다. 從北 대통령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분열인가, 통합인가? 깽판인가, 건설인가? 北 대변인인가, 대한민국 챔피언인가? 이번 大選도 결국은 대한민국 편이냐, 북한정권 편이냐를 건 이념대결이다. 이념전장인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전략은 이념임을 박근혜 진영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기 전 언론은 2-1로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였다. 本選(본선) 진출이 확정된 박근혜와 준결승에도 올라가 않은 문, 안 두 사람을 同格(동격)으로 대우, 지면과 시간 배분을 1:1:1로 하였다. 文, 安 관련 기사도 주로 朴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한국 언론은 구조적으로, 생리적으로 좌편향되어 있었다. 박근혜의 ‘大選(대선)大勝’은 비우호적인 언론이란 맞바람을 안고 싸운 결과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단일화 협상은 지루하게 전개되었다. 집중적 보도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기 시작하였다. 나도 이때부터 공개적으로 ‘박근혜가 적어도 4~5% 차로 이길 것이다’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단일화가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부정적 전망을 하였다. 10월27일~11월2일 호는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돕기 위해서 자신의 기회를 희생하기엔 너무 큰 자존심이 걸려 있다>면서 <만약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출마를 포기하면 민주통합당의 존재 가치가 없음을 시인하게 돼 문 후보의 정치 경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誌는 <단일화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고, 된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50세 이상 유권자가 40세 이하 유권자보다 많아진 상황에서 박근혜의 표를 넘어서는 것은 만만찮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1월23일 저녁 8시30분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車中(차중) 라디오에서 안철수의 단일화 후보 사퇴 선언 중계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혀를 차면서 "끝까지 가든지 안 나오든지 했어야지···"라고 했다. 라디오에선 모 대학교수가 전화 인터뷰를 하는데, 환성을 질렀다.
"드디어 아름다운 단일화가 이뤄졌습니다. 안철수 씨가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할 것이니 박근혜 후보를 쉽게 앞설 것 같습니다."
선거는 사실상 끝난 듯 신들린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識字憂患(식자우환)이란 말을 떠올리면서 택시에서 내린 필자는 나의 생각을 정리한 다음 사퇴 선언 세 시간 뒤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써 올렸다.
<안철수의 눈물은 문재인을 찌른 원한의 匕首(비수)?'
nate와 경향, 한겨레신문에 실린 댓글들을 읽어보면 안철수의 사퇴는 문재인에 대한 치명상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철수 지지자들이 문재인에 대하여 증오감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안철수가 '백의종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문재인에게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동반자살의 비수를 찌르고 헤어진 모습이다.
1. 이른바 '아름다운 단일화'가 성립되려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법에 극적으로 합의,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였어야 했다. 오차 범위 안에서 뒤진 사람이 '통 큰 양보'를 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들을 열광시켰어야 했다.
2. 안철수는 일방적인 사퇴 선언을 하였다. 문재인의 손을 잡지도 들어올려 주지도 않았다. 술수 많은 민주당의 압박에 몰려 出口(출구)가 막히자 할 수 없이 사퇴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가련한 피해자의 모습이다. 안철수 지지자들이 문재인에 대하여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한 연출이었다.
3. 그의 눈물과 좌절은 박근혜 때문이 아니고 문재인과 민주당 때문이란 인상을 주었다. 安은 피해자, 文은 가해자가 된 셈이다. 특히 최근 열흘간 계속된 文, 安의 지리한 단일화 담합 끝에 나온 사퇴 선언이라 '아름다운 감동'을 조작하기란 불가능하다.
4. '아름다운 단일화' 연출에 모든 것을 걸었던 문재인은 '더러운 단일화 협상'에 이은 안철수의 逆襲(역습)으로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모든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 순 있지만 모든 국민을 항상 속일 순 없는 법이다. '단일화 쇼'는 상영시간이 너무 길었다.
5. 안철수 지지자들의 향방이 大選의 결정 요인이 될 것이다. 이들이 박근혜 지지로 돈다든지, 기권하면 文은 어렵다. 안철수의 가장 큰 강점은 젊은층의 투표율을 높인다는 점이었다.
6. 부산고 출신 안철수의 사퇴는 부산民心(민심)을 박근혜쪽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7. 윤창중의 名言: <안철수를 지지한 국민이 또 다시 문재인을 지지한다면? 안철수한테 두 번 속는 일이 된다. 두 번! 그리고 문재인한테도 또 속게 될 것이다. 왜? 문재인과 안철수는 같은 부류이니까!>






左右대결에선 역사가 움직인다!

안철수 사퇴로 18대 大選 판은 左右(좌우) 대결 구도로 굳어졌다. 대한민국 헌법은 從北좌파를 허용하지 않는다. 좌우 대결은,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세력 對 反대한민국 세력 구도이다. 삶의 양식, 국가의 進路(진로), 그리고 이념적 가치관과 인생관까지 걸린 큰 선거가 되었다. 체제의 命運(명운)을 결정하는 선거에선 역사가 움직인다. 역사의 원리가 작용하고 국가 생존 본능이 작동한다.
이 左右 대결 구도는 문재인 세력과 북한정권이 자초한 것이었다. 새누리당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내걸면서 이념 대결을 피하려 하였다. 문재인 세력이 이승만-박정희 노선의 현대사 부정, 종북적 통일관, 계급투쟁적 국민관(보통사람 대 특권층, 1 대 99)을 前面(전면)에 내세우면서 총공세를 벌이고 여기에 북한정권이 가세하니 새누리당과 우파세력이 정당방어 차원에서 반응한 결과가 左右대결 구도로 변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정상적인 국민들의 피를 逆流(역류)시킬 정도의 감정적 도발을 계속하여 좌우 구도를 굳혔다.

1. 그들은, 천안함 폭침을 '침몰'이라 부르고, '합리적 의심'이 있어 재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2. 낙동강 전선을 死守(사수), 조국을 구한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매도한 自黨(자당) 국회의원을 우수 國監(국감)의원으로 표창하였다.
3. 대한민국 헌법의 1, 3, 4조를 위반한 국가연합과 낮은단계연방제 실천을 公言(공언)하였다.
4.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하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비판은 없었다.
5. 간첩을 편하게 해주는 국가보안법은 폐지하자면서 북한주민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북한인권법 제정은 반대하였다.
6. 재발방지대책이 없더라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했다. 이는 死地(사지)로 국민을 들여보내는 일이고, 북한정권에 무기구입자금을 대주는 일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좌편향 이념의 틀에 갇혀, 상식과 헌법과 사실과 배치되는 언동을 해도 좌파 여론이 강하여 득표에 손해가 될 것이 없다고 세상을 오판한 듯하다. 민주당은 김일성 숭배자가 작사, 작곡한 黨歌(당가)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고 계속 불렀다.
대선판이 左右대결로 짜이자 朴槿惠 후보도 공세적으로 나왔다. 11월 말 지상파와 綜編(종편) 채널 등을 통해 생방송된 TV토론회에 나와 "주권, 영토는 협상 대상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지킨다는 생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천안함 장병 46명이 희생됐는데 이를 폭침이라고 안 하고 침몰이라고 하면서 북한 눈치를 보는 사람, 희생자 위로는커녕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정치에는 네편, 내편이 있지만 대통령에게는 그런 게 없다. 대통령이 되면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그는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분들은 남은 대선 기간도 삼십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매일 싸우다가 끝날 것이다"고 직격탄을 내렸다.

숨은 공로자 이명박

민주통합당 문재인 大選 후보는 11월28일 대전역 앞 유세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는 잘한 것이 하나도 없는 빵점”이라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빵점 정부’의 공동책임자”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이번 대선에서 이겨 정권을 지켜낼 수 있도록 한 숨은 공신은 李 대통령이었다. 그가 금융위기 때 國政 운영에 실패하여 실업률이 7%대까지 악화되었더라면 여당은 총선과 대선에서 참패하였을 것이다.
문재인이 빵점이라고 평가한 李明博 정부의 경제, 복지 정책은 국제비교에선 최우등으로 나온다. 영국 時事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엔 늘 '경제 및 금융 指數表(지수표)'가 실린다. 세계 42개 주요 국가의 경제 통계이다. 2008년 李明博 정부 출범과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 성적은 국제적 비교에서 늘 최우등圈(권)이었다. 지난 11월 넷째週 이코노미스트(11월17~23일) 지수표를 보자.
*한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은 2.6%로 예상된다. 중국의 7.8%, 태국의 6%, 인도의 5.8%보다는 낮지만 先進경제권에선 높은 편이다. 일본은 2.1%, 대만은 1.3%, 싱가포르는 2.4%이고, 유로圈에선 1% 대 성장국도 없다.
*실업률은 2.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선진경제권에선 싱가포르가 1.9%로 1등이고, 한국이 2등. 대만은 4.3%. 유로 지역은 실업률이 평균 11.6%다. 스페인은 25.8%, 그리스는 25.4%. 두 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는다. 한국은 7%대.
*한국은 黑字(흑자)예산을 운영하는 여섯 개 나라 중 하나이다. 한국, 사우디 아라비아, 칠레, 싱가포르, 홍콩, 노르웨이. 우리는 흑자율이 2.3%로서 노르웨이(13.5%), 사우디(12%)에 이어 3위이고, 대만은 2.8% 적자이다. 노르웨이와 사우디는 産油國(산유국)이다. 李 대통령이 복지 포퓰리즘 속에서도 나라를 알뜰하게 운영하였다는 증거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한 세계 111개국의 삶의 질 랭킹에서 한국은 30등이었다. 2012년엔 19등으로 올랐다. 2005년 유엔개발 기구의 삶의 질(인간개발지수) 랭킹에선 한국이 26등이었다. 2010년에 한국은 12등, 작년에는 15등이었다. 이 정부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향상시킨 사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2012년 한국의 무역총액 순위는 전해보다 또 1등이 올라 세계 8위가 되었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다음이다. 이명박 관리下의 대한민국은 노무현 관리 시절보다 국제성적이 훨씬 좋다.




박근혜 후보가 주장해온 '국민대통합'이 左右 대결 구도에선 '反종북 국민대통합'으로 정리되었다. 박정희 정권과 싸웠거나, 김대중 최측근이었던 사람들도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김영삼 계열을 비롯 한광옥, 한화갑, 김지하, 김경재, 김중태, 서경석, 김현장 씨는 종북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절박감이 과거의 원한 관계까지 넘어선 그런 결단을 내리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선거 때 형성된 '反종북 국민대통합'이 선거 후에도 작동한다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정치개혁은 反헌법-反국가적 從北세력을 政界(정계)에서 제거하고 대한민국 헌법 존중 세력들끼리 경쟁하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나타난 박근혜 후보

12월8일 서울 광화문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순신 동상 쪽으로 걸어가니 광화문 광장이 人波(인파)로 덮여 있었다. 박근혜 후보의 연설을 듣기 위하여 모인 군중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도 지지자들로 꽉 찼다.
이렇게 많은 유세 인파는 1987년 12월 여의도의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후보 연설 때 이후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통령 선거가 조직 선거에서 선전전으로 바뀌면서 수십 만 명씩 경쟁적으로 군중을 모으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는데...
대선이 체제의 命運(명운)을 건 좌우 대결로 갈리니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많이 모인 것이다. 평소 애국 집회장에서 자주 보던 분들도 만났다. 朴 대통령을 모시던 경호실 직원 출신 노인들도 보였다. 특히 서민들이 많았다. 朴 후보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중하층 서민들이다.
오후 3시를 지나 박근혜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단아한 얼굴, 깐깐한 목소리, 정리된 내용이었다. 그는 "여러분들이 지나놓고 보면 지금 이 자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현장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박근혜!"를 외치는 함성 속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맑게 개인, 눈 덮인, 싸늘한 광화문 주변을 울렸다.
朴 후보는 안철수, 문재인을 겨냥하여 이념과 정책이 다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 박근혜를 이기기 위하여 정치공학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요지의 비판을 하였다. 대중 연설장이니 '야합'이라고 쉽게 규정하면 될 터인데 굳이 '정치공학만 생각한다'는 표현을 썼다. 朴 후보는 政敵(정적)을 비판할 때도 과격한 용어를 피하려고 애쓰는 이다.
그는 연설에서 '民生(민생)'을 강조하였다. 선동보다는 설명이 많은 연설이었다. 가난한 사람, 빚진 사람, 병든 사람들에 대한 공약이 길었다. 안보에 대한 언급은 없없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5년 동안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였고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을 내세웠다. 朴 후보는 "서울 시민 여러분, 저를 밀어주실 거죠. 믿어도 되겠죠"라고도 했다.
朴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으니, 박정희 후보의 1963년과 1967년 대통령 선거 유세 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朴 대통령은 유세를 할 때 구체적 사례나 수치를 많이 들었다. 재미 없는 연설이지만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들어보니 유세 때 약속하였던 것들이 거의 다 실현된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그의 연설은 '미래를 위한 증언'이었다.
朴 후보도 이날 이번 선거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를, 소통이 잘 안되는 정치인으로 보는 언론이 많은데 이는 일면적인 관찰이다. 현존 정치인중 대중동원력이 가장 센 사람이 박근혜이다. 그가 나타나면 인파가 몰려 교통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인, 주부, 노동자, 농민, 생활인들 속에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朴 후보를 통하여 박정희, 육영수를 느끼려는 듯하다.
大選(대선) 운동장에서 勝機(승기)를 잡고 대군중 앞에 선 모습은 아름다웠다. 한 70代 기업인은 전철을 타고 왔다면서 "박 후보의 연설을 들으니 朴 대통령 생각이 나서 괜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와는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이었다. 이 순간이 대선 흐름이 결정적 고비를 넘은 날이었다.

한국 知性史의 일대 전환

12월8일 광화문 유세대결에서 태극기를 흔든 박근혜 측이, 관중수나 애국심 면에서, 태극기를 외면하고 촛불을 들고 나온 문재인 측에 이겼다. 그날 밤 KBS 토론회에서도 朴 후보 측이 사실과 논리로 文 측을 압도하였다. 이날 여론조사엔 안철수 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게 투표를 10일 앞둔 시점의 분위기였다. 박근혜 압승 흐름이 大勢化(대세화)되고 있었다. 언론은 '경합중', '접전중'이라고 보도하지만 '200만 표 차로 朴이 이긴다'고 단언하는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헌법 준수를 신념으로 삼는 우파는 '反從北(반종북)국민대통합'에 성공하였다. 박정희를 반대하고 고초를 겪었던 민주화 세력인, 한화갑, 김경재, 김지하, 김중태, 서경석, 노경규, 한광옥 씨들이 박정희의 딸 지지를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知性史(지성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대 전환이었다. 저항과 비판을 업으로 삼던 지식인들이, 국가, 헌법, 진실, 정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가치 앞에서 지역과 계층과 私益(사익)을 넘어 뭉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위대한 일이다. 이게 3.1 독립정신-건국정신-호국정신을 잇는 보수의 참된 행동윤리이다.
'反종북 국민대통합' 전선은 역사의 大勢를 타고, 헌법과 진실에 기초한 통일전선이므로 생명력이 강할 것이다. 한국인은 종북을 제외한 세력, 헌법을 지키겠다는 세력과는 누구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그런 국민대통합 속에서라야 진정한 의미의 보수 對 진보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反종북 국민대통합'은, 말장난이 아니라, 총선과 大選을 통한 거대한 국민각성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매우 力動的(역동적)인 정치세력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잘 되면 이 세력이 자유통일을 주도할 수 있다. 통합이 통일로 가는 관문이다.
새누리당이 투쟁력 있는 국민정당으로 재구성되려면 회비를 내는 당원을 수백만, 수천만으로 확대해야 한다. 대학에도, 노조에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당당하게 보수의 이념을 자랑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정당화가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국민들도 정당을 고르고 당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反헌법 세력의 공직취임을 제도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大選 압승의 후폭풍으로, 親盧從北(친노종북)극좌 세력을 결정적으로 정리하려는 운동이 汎국민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 운동은 진짜 민주화 세력이 주도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종북 논란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칭 진보의 맨얼굴을 알게 되면서 북한노동당의 2중대로 여겨졌던 민노당-진보당 세력이 궤멸적 타격을 받았다. 이번 大選은 종북의 本山인 親盧從北極左(친노종북극좌)세력을 정리할 것이다.

從北 시대에서 終北 시대로

2012년의 두 차례 선거로 역사적 전환이 始動(시동)한 느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탄압받았던 이들이 종북 규탄에 앞장 서는 모습은 소설처럼 감동적이었다. 이런 大選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가 감동적인 건 아무도 미리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박근혜 진영과 국민들이 친노종북 세력의 도발에 체제수호-국가생존 차원에서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내부의 敵(적)을 확인하고 이를 민주주의적 제도, 즉 선거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진압하였다. 동시에 북한정권의 개입을 거부한 민족적 결단이었다. 이 힘은 북한노동당 정권을 해체, 북한동포를 해방하는 자유통일의 길을 열 것이다. 모택동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지만, 한국인은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전쟁에서 이긴 것과 같은 효과를 보려는 것이다.
나라 세우기, 나라 지키기, 나라 키우기, 나라 가꾸기-선배 세대가 피, 땀, 눈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이란 세계사의 금자탑은 끊임 없이 保守하고 補修(보수)해야 한다. 親盧從北세력이 쓰러뜨리려 하였던 대한민국이 일어나 선거를 통하여 스스로를 바로 세웠다. 이제는 從北(종북)을 終北(종북)시킬 것이다.

이코노미스트誌의 한국 대선 비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기관으로 꼽힌다. 월남전 때 미군사령관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회고록에서 미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비판하면서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한국 大選을 다룬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몇 번 읽었는데, 寸鐵殺人(촌철살인)의 통찰력을 느꼈다. 이 잡지는 한국언론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연일 띄우고 있을 때 '어려울 것이다'고 예측하였다. 두 사람의 自我(자아) 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타협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이 잡지는 한 달 전에 펴낸 2013년 연감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단정적으로 예고하였다.
지난 12월8~!4일자에선 '오랜 습관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한국 大選을 분석하였다. 칼럼은 <안철수 씨가 '조건 없이' 文 후보를 돕기로 한 것은 자신의 캠페인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칼럼은 <한국 정치는 너무나 內向的(내향적)이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이라 나라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불투명성을 논의하는 일조차도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정도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였다.
잡지는 또 <좌파는 朴 후보가 아버지처럼 독재자가 되려 한다고 비방하고, 우파는 文 후보가 '비밀 공산주의자'라는 암시를 던진다>고 썼다. 칼럼은 <북한 문제를 포함한 그의 생각이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더 크고, 더 좋은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욕망을 드러냈다>고 정리하였다















박근혜의 국민대통합이 정치적으로 결실되려면 국민속으로 파고든, 이념무장이 잘 된 보수정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박근혜 중심으로 뭉친 보수는 정통보수, 중도보수, 중도좌파 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이 오히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새 세상을 여는 거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할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문제는 이 에너지를 새 정치 구조를 만드는 데 쓸 것인가, 낭비할 것인가이다.


이정희가 기분이 좋아지면 국민은 기분이 나빠진다

기자는 대선 기간중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최대한 빨리 사건의 성격을 분석하고 파급 효과를 예측하는 글을 써 조갑제닷컴에 올렸다. 지난 12월4일 대선 후보 제1차 토론이 끝난 40분 뒤에 쓴 글이다.
<오늘 대선 후보 3者(자) 토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표독한 발언으로 다소 어눌한 박근혜 후보가 가장 큰 得(득)을 볼 것 같다.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도 문재인 후보일 것이다.
1. 이정희 씨는 자신의 존재 목적이 박근혜 씨를 낙선시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오늘 토론은 문재인의 ‘아바타’ 노릇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정희 씨는 從北(종북)정당의 후보답게 철저하게, 시종일관 북한 정권과 북한軍 편을 들면서 대한민국과 國軍(국군)을 괴롭혔다. 그는 천안함 爆沈(폭침), 연평도 도발, 南北관계 악화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렸다. 북한 정권의 책임은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셈이다.
3. 따라서 그는 이번 토론에서 문재인과 북한 대변인 역할을 동시에 했다.
4. 이정희 씨는 토론을 상당히 유쾌하게 즐기는 듯했다. 문제는 이정희가 기분이 좋으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기분이 나빠진다는 사실이다. 이정희 지지율이 오르면 문재인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정희 씨는 從北(종북)좌파 계급정당의 후보임을 분명히 했다. 사물을 계급적 적대감을 깔고 인식하며 국가와 法治(법치)를 부정하고,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한없이 굴종적이고, 대한민국·국군·미국에 대해서는 악의적이었다.
5. 그는 反헌법적이고 反국가적인 6·15/10·4선언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선언은 북한의 核(핵)실험과 천안함 爆沈(폭침) 등에 의하여 사실상 失效(실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敵軍(적군)이 지키지 않는 약속을 我軍(아군)만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利敵(이적)행위이고 사기다.
6. 이정희 씨는 법을 지키지 않는 습관 그대로 토론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불리하면 동문서답 했다. 박근혜 씨가 제기한 천안함 爆沈과 연평도 사태 때의 이상한 행동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았다.
7. 박정희를 친일파, 박근혜를 유신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한 이정희 씨는 한 번도 김정은 3代 세습을 비판한 적이 없다.
8. 토론이 박근혜-이정희 공방전으로 진행되면서 문재인 후보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졌다. 문재인 후보가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려면, 3者 토론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데 이정희 때문에 빛이 바랐다. 이번 토론은 저조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별 소용이 되지 않을 것 같다.
9. ‘惡(악)은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 이정희 씨가 이 名言의 가치를 實證(실증)했다. 국민들은 왜 국민행동본부가 두 차례에 걸쳐 민주노동당과 그 後身(후신)인 통합진보당을 헌법상의 違憲(위헌)정당으로 규정, 정부가 해산절차를 밟아 줄 것을 법무부에 청원했는지 이제 짐작이 갈 것이다. .

합참의장 출신 김진호 장군의 임동원 전 국정원장 利敵혐의 폭로

지난 12월5일 오후 2시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국민행동본부 주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공개 촉구 국민대회'엔 약 1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국민행동본부는 조직적 동원을 하지 않고 신문광고에 주로 의존한 홍보를 하였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많이 모인 것이다. 전날 있었던 대통령 후보 토론회 때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몰상식한 언동을 보인 데 흥분한 老壯層(노장층) 시민들이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朴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상당한 차이로 이기고 있어서 그런지 군중들의 표정도 밝았다.
이날 연사는 애국집회의 단골 손님인 김동길, 서경석, 조영환, 필자였는데 특이한 인물이 한 분 등장하였다. 김대중 정부 초기 합참의장을 지낸 김진호 육군 예비역 대장이었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우렁찬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이번 대선 기간 이뤄진 폭로 가운데 새누리당 鄭文憲(정문헌) 의원의 盧-金 대화록 다음으로 뉴스성이 높은 내용이었다.
그의 표적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었다.
<2012년 11월23일 전직 국정원장 임동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한반도평화포럼’이라는 단체가 모여 '한반도 평화포럼의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천안함 폭침사건 발표에서 북한이 공격했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도 의심하는 국민이 있는데 이를 좀 더 과학적으로 입증해줄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국민의 합리적 의심”이니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나”라고 말을 에둘러 완곡하게 표현하였으나 결론은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재조사 요구라 하겠습니다. 이날 한반도평화포럼에 참가한 사람은 지난 정권 및 현 정치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거물들입니다. 이들이 모인 11월23일은 북한군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하여 우리 군 장병과 민간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김진호 장군은 <연평도 포격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북한의 도발이므로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희석시키려고 느닷없이 천안함 폭침 사건 발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聲東擊西(성동격서)의 전형적 종북세력 수법을 동원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어서 <오늘 저는 천안함 폭침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한반도평화포럼’의 공동대표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정부의 안보정책 고위 책임자로 근무할 당시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의 사상적 실체를 폭로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1998년 제가 합참의장으로 부임했을 때 임동원이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부임하여 이념적으로 본인과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부터 예기치 못한 이념적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첫번째로 그는 정책간담회에서 ‘북한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戰力이 강하기 때문에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력 보강이므로 駐韓(주한)미군을 UN평화유지군으로 역할변경 시켜야 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휴전 이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유지는 韓美연합군이 맡아 북한이 전쟁을 도발치 못하도록 전쟁억제력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사람이 주한미군의 무장을 해체시키는, PKO로의 역할 변경 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주장이었습니다.>
한국군의 최선임자였던 이가 국정원장을 지낸 인물을 거명하여, 북한이 對南공산화 전략의 제1 목표로 삼는 주한미군 철수에 사실상 동조하는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이다. 문명국가에서 보기 힘든 폭로이다. 더 희귀한 일은 이 폭로를 보도한 신문, 방송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은 종북좌파에 불리한 기사는 작게, 대한민국 편에 선 사람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크게 취급한다. 이는 생리적이고 구조적인 언론의 좌편향성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란, 對北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이 아니라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군대, 즉 평화유지군으로 역할을 바꾼다는 뜻이다. 평화유지군은 대대 규모만 되어도 충분하므로 이는 주한미군 철수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그런 역할의 군대를 주둔시킬 이유가 없으므로 한국이 그러자고 우기면 韓美동맹은 파기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을 보호하던 핵우산도 사라질 것이다. 이는 핵무장한 敵軍 앞에 我軍을 벌거벗겨서 내어놓는 일이다. 가장 심각한 利敵행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합참의장 출신이, 이런 반역 행위를, 김대중 정부 아래서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이 저질렀다고 군중 앞에서 고발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동원의 주한미군 역할 변경 음모가 결실을 보았다는 점이다.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평양회담 때 두 金씨는 이런 주한미군 중립화에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래놓고는 서울로 돌아와 국민들에게, '김정일 위원장은 주한미군이 통일된 후에도 주둔해야 한다고 말하였다'는 요지의 거짓 보고를 한 이가 김대중이다. 누가 들어도 김정일이 현재의 주한미군에 대하여 그런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이해된다. 김정일이 통일 후에도 있어도 좋다고 한 주한미군은 평화유지군으로 중립화된 미군이었다.

끝까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안철수-너무 늦었다!

12월6일 오후 4시 채널 A(동아일보 종편) '이언경의 대선만사'에 출연하기 위하여 동아일보에 갔더니 안철수 씨가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에 동참할 것이란 긴급 뉴스가 들어왔다. 이게 생방송 인터뷰의 주제가 되었다. 필자는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안철수 씨는 끝까지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고 싶다면 지난 11월23일에 했어야 했다. 그때 문재인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지원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2주일을 낭비하였다. 안철수는 자신이 기적을 만드는 예수 쯤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대선에선 기적이 없다. 그의 문재인 지원 선언이 大選에 영향을 끼치기엔 너무 늦었을 뿐 아니라 보수결집이란 反작용을 부를 것이다.
그는 새 정치를 들고 나오더니 헌 정치의 本山(본산)인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손을 잡았다. 對국민 사기이다. 단일화 약속을 깬 이후엔 자신의 안보관과 이념이 문재인과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념적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지원하는 건 정체성의 부정이다. 이번 선거는 역사, 체제, 노선이 걸린 큰 규모의 선거이다. 안철수 씨 같은 사람의 기교로 좌우되지 않는다. 포니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서지만 항공모함이나 20만 톤 유조선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관성으로 1km 이상 더 나간다. 소규모 선거에서는 이변이 있지만 대선엔 없다. 투표자가 2600만 명 쯤 될터인데 누가 호루라기를 분다고 우~하고 따라가서 투표하나?
안철수 씨는 후보가 아니지 않는가. 지원 운동가를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인들의 경우, 부통령 후보가 좋다고 싫어하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진 않는다. 보수층은 가만 있나? 더 결집할 것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동영상이 폭로되었을 때 보수층이 결집하여 李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아졌다.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에 목을 매는 바람에 자신의 정책과 노선을 알리는 데 실패하였다. 안철수 집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등 너무나 굴욕적이고 종속적인 모습이다. 대통령은 고독하고 결단하고, 역사와 마주 하는 자리인데, 저런 모습의 사람이 되겠나? 오늘 동아일보 조사에 따르면 투표 의향층 가운데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이들이 약280만 명이라고 한다. 문재인 후보가 이기려면 이들중 90%를 가져와야 한다고 계산되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안철수는 너무 늦게 나왔다."

광화문 광장에 나타난 박근혜 후보

12월8일 서울 광화문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순신 동상 쪽으로 걸어가니 광화문 광장이 人波(인파)로 덮여 있었다. 박근혜 후보의 연설을 듣기 위하여 모인 군중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도 지지자들로 꽉 찼다.
이렇게 많은 유세 인파는 1987년 12월 여의도의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후보 연설 때 이후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통령 선거가 조직 선거에서 선전전으로 바뀌면서 수십 만 명씩 경쟁적으로 군중을 모으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는데...
대선이 체제의 命運(명운)을 건 좌우 대결로 갈리니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많이 모인 것이다. 평소 애국 집회장에서 자주 보던 분들도 만났다. 朴 대통령을 모시던 경호실 직원 출신 노인들도 보였다. 특히 서민들이 많았다. 朴 후보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중하층 서민들이다.
오후 3시를 지나 박근혜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단아한 얼굴, 깐깐한 목소리, 정리된 내용이었다. 그는 "여러분들이 지나놓고 보면 지금 이 자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현장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박근혜!"를 외치는 함성 속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맑게 개인, 눈 덮인, 싸늘한 광화문 주변을 울렸다.
朴 후보는 안철수, 문재인을 겨냥하여 이념과 정책이 다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 박근혜를 이기기 위하여 정치공학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요지의 비판을 하였다. 대중 연설장이니 '야합'이라고 쉽게 규정하면 될 터인데 굳이 '정치공학만 생각한다'는 표현을 썼다. 朴 후보는 政敵(정적)을 비판할 때도 과격한 용어를 피하려고 애쓰는 이다.
그는 연설에서 '民生(민생)'을 강조하였다. 선동보다는 설명이 많은 연설이었다. 가난한 사람, 빚진 사람, 병든 사람들에 대한 공약이 길었다. 안보에 대한 언급은 없없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5년 동안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였고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을 내세웠다. 朴 후보는 "서울 시민 여러분, 저를 밀어주실 거죠. 믿어도 되겠죠"라고도 했다.
朴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으니, 박정희 후보의 1963년과 1967년 대통령 선거 유세 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朴 대통령은 유세를 할 때 구체적 사례나 수치를 많이 들었다. 재미 없는 연설이지만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들어보니 유세 때 약속하였던 것들이 거의 다 실현된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그의 연설은 '미래를 위한 증언'이었다.
朴 후보도 이날 이번 선거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를, 소통이 잘 안되는 정치인으로 보는 언론이 많은데 이는 일면적인 관찰이다. 현존 정치인중 대중동원력이 가장 센 사람이 박근혜이다. 그가 나타나면 인파가 몰려 교통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인, 주부, 노동자, 농민, 생활인들 속에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朴 후보를 통하여 박정희, 육영수를 느끼려는 듯하다.
大選(대선) 운동장에서 勝機(승기)를 잡고 대군중 앞에 선 모습은 아름다웠다. 한 70代 기업인은 전철을 타고 왔다면서 "박 후보의 연설을 들으니 朴 대통령 생각이 나서 괜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와는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이었다. 이 순간이 대선 흐름이 결정적 고비를 넘은 날이었다.

한국 知性史의 일대 전환

12월8일 광화문 유세대결에서 태극기를 흔든 박근혜 측이, 관중수나 애국심 면에서, 태극기를 외면하고 촛불을 들고 나온 문재인 측에 이겼다. 그날 밤 KBS 토론회에서도 朴 후보 측이 사실과 논리로 文 측을 압도하였다. 이날 여론조사엔 안철수 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게 투표를 10일 앞둔 시점의 분위기였다. 박근혜 압승 흐름이 大勢化(대세화)되고 있었다. 언론은 '경합중', '접전중'이라고 보도하지만 '200만 표 차로 朴이 이긴다'고 단언하는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헌법 준수를 신념으로 삼는 우파는 '反從北(반종북)국민대통합'에 성공하였다. 박정희를 반대하고 고초를 겪었던 민주화 세력인, 한화갑, 김경재, 김지하, 김중태, 서경석, 노경규, 한광옥 씨들이 박정희의 딸 지지를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知性史(지성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대 전환이었다. 저항과 비판을 업으로 삼던 지식인들이, 국가, 헌법, 진실, 정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가치 앞에서 지역과 계층과 私益(사익)을 넘어 뭉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위대한 일이다. 이게 3.1 독립정신-건국정신-호국정신을 잇는 보수의 참된 행동윤리이다.
'反종북 국민대통합' 전선은 역사의 大勢를 타고, 헌법과 진실에 기초한 통일전선이므로 생명력이 강할 것이다. 한국인은 종북을 제외한 세력, 헌법을 지키겠다는 세력과는 누구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그런 국민대통합 속에서라야 진정한 의미의 보수 對 진보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反종북 국민대통합'은, 말장난이 아니라, 총선과 大選을 통한 거대한 국민각성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매우 力動的(역동적)인 정치세력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잘 되면 이 세력이 자유통일을 주도할 수 있다. 통합이 통일로 가는 관문이다.
새누리당이 투쟁력 있는 국민정당으로 재구성되려면 회비를 내는 당원을 수백만, 수천만으로 확대해야 한다. 대학에도, 노조에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당당하게 보수의 이념을 자랑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정당화가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국민들도 정당을 고르고 당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反헌법 세력의 공직취임을 제도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大選 압승의 후폭풍으로, 親盧從北(친노종북)극좌 세력을 결정적으로 정리하려는 운동이 汎국민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 운동은 진짜 민주화 세력이 주도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종북 논란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칭 진보의 맨얼굴을 알게 되면서 북한노동당의 2중대로 여겨졌던 민노당-진보당 세력이 궤멸적 타격을 받았다. 이번 大選은 종북의 本山인 親盧從北極左(친노종북극좌)세력을 정리할 것이다.

從北 시대에서 終北 시대로

2012년의 두 차례 선거로 역사적 전환이 始動(시동)한 느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탄압받았던 이들이 종북 규탄에 앞장 서는 모습은 소설처럼 감동적이었다. 이런 大選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가 감동적인 건 아무도 미리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박근혜 진영과 국민들이 친노종북 세력의 도발에 체제수호-국가생존 차원에서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내부의 敵(적)을 확인하고 이를 민주주의적 제도, 즉 선거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진압하였다. 동시에 북한정권의 개입을 거부한 민족적 결단이었다. 이 힘은 북한노동당 정권을 해체, 북한동포를 해방하는 자유통일의 길을 열 것이다. 모택동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지만, 한국인은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전쟁에서 이긴 것과 같은 효과를 보려는 것이다.
나라 세우기, 나라 지키기, 나라 키우기, 나라 가꾸기-선배 세대가 피, 땀, 눈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이란 세계사의 금자탑은 끊임 없이 保守하고 補修(보수)해야 한다. 親盧從北세력이 쓰러뜨리려 하였던 대한민국이 일어나 선거를 통하여 스스로를 바로 세웠다. 이제는 從北(종북)을 終北(종북)시킬 것이다.

이코노미스트誌의 한국 대선 비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기관으로 꼽힌다. 월남전 때 미군사령관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회고록에서 미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비판하면서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한국 大選을 다룬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몇 번 읽었는데, 寸鐵殺人(촌철살인)의 통찰력을 느꼈다. 이 잡지는 한국언론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연일 띄우고 있을 때 '어려울 것이다'고 예측하였다. 두 사람의 自我(자아) 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타협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이 잡지는 한 달 전에 펴낸 2013년 연감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단정적으로 예고하였다.
지난 12월8~!4일자에선 '오랜 습관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한국 大選을 분석하였다. 칼럼은 <안철수 씨가 '조건 없이' 文 후보를 돕기로 한 것은 자신의 캠페인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칼럼은 <한국 정치는 너무나 內向的(내향적)이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이라 나라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불투명성을 논의하는 일조차도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정도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였다.
잡지는 또 <좌파는 朴 후보가 아버지처럼 독재자가 되려 한다고 비방하고, 우파는 文 후보가 '비밀 공산주의자'라는 암시를 던진다>고 썼다. 칼럼은 <북한 문제를 포함한 그의 생각이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더 크고, 더 좋은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욕망을 드러냈다>고 정리하였다

박근혜의 촌철살인 逆攻(역공)에 당한 이정희

12월10일 두번 째 대선 후보 토론도 박근혜-이정희 중심으로 가는 바람에 문재인 후보의 이미지가 가려졌다.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려고 나왔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문재인 후보 떨어뜨리려 나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날 가장 기억될 장면은 李 후보의 질문에 대한 朴 후보의 촌철살인 같은 반격이다.
李 후보는 상호토론에서 “그런데 8월7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후보는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올해 최저임금과 내년 최저 임금이 얼마인지 그동안 파악했느냐, 그리고 최저임금을 못받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朴 후보는 “당시 옆에 ‘아르바이트 평균 시급이 얼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평균 시급을 생각한 것이고, (대답을 정확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미 다 설명을 했는데,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朴 후보는 이어 “올해 최저임금이 얼마냐”는 李 후보의 질문에 “4580원입니다”라고 답했고, 李 후보가 곧바로 “내년은 얼마인가요?”라고 묻자 “4860원”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가 또 “최저임금 못 받는 노동자는 몇명인가요?”라고 묻자 朴 후보는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대선후보 토론에 나와서 스무고개 하듯이 (질문을) 하고, ‘이걸 모르면 골탕먹여야지’ 하는 식으로 (토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대선 토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큰 비전을 놓고 어떻게 하면 희망을 주고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이야기) 하기도 바쁜데, 이거는 얼마 저거는 얼마 하는 것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숙제해왔느냐’ 이야기하는 느낌이 듭니다. 대선 후보 토론이 (이렇게 진행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정희 씨는 오늘도 33년 전에 있었던 청와대 6억 원 문제를 끄집어내었다. 朴 후보는 '이미 말씀 드린 내용이고 과거 일이 아닌가. 코 앞에 닥친 문제를 갖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계속해서 李씨가 물고 늘어지자 또 정색을 하고 물었다.
“대선 끝까지 완주할 계획은 없으시죠. 끝까지 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국고보조금) 27억원을 받고...국회에서 논란이 된 먹튀법에 해당합니다.”
박 후보는 李 후보가 자신의 답변 과정에 끼어들며 질문에 나서자 “지금도 룰을 어기면서 얘기하는데 이런 식으로 토론이 흘러서는 안된다”며 “우리가 사회자에게 주의도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보였다. '부자감세'라는 말을 남발하였는데, 朴 후보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감세 혜택을 더 보았다'고 반박하였다.
이날 朴 후보는 말을 정확하고 온건하게 하려고 애썼다. 특히 이명박 정부 비판에 편승하지 않고 예봉을 노무현 정부 실패로 돌리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준비된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실패한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를 선택하자'는 마무리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한 기업인의 전화, "겁이 나서 한국에서 사업 하겠나?""


두번째 大選(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재벌'이라 하지 않고 '대기업'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돈이 돌아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名言을 남겼다. 이 토론을 보고 한 중견 기업인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을 했다. 自手成家(자수성가)한 이 분은 기업 경영을 깨끗하게 하기로 유명하고 300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운영한다.
"어제 토론을 보니 문재인, 이정희 후보는 재벌뿐 아니라 부자와 기업에 적대감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한국에선 사업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집권하면 기업가들은 회사를 해외로 옮기려 할 겁니다. 일자리가 달아나는 거죠. 돈은 자유로운 곳을 향하여 흐르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나마 박근혜 씨가 적절하게 대응하여 안도가 됩니다만, 앞날이 걱정입니다."
조선조가 망하여 백성들을 이민족 지배로 밀어넣은 여러 이유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士農工商(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이다. 지식인들이 권력을 잡고 기술자와 장사꾼을 억압하니 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돈이 없으니 군대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어제 토론회는 현대판 士(정치인)가 工商(기업인, 과학자, 기술자들)을 겁주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민주화 속엔 조선조적인(수구반동적인) 요소가 끼여 있다. 한국의 기적적 발전은 이승만, 박정희가 자본주의의 위대성을 간파하고, 기업인 과학자 기술자를 응원, 富國(부국)강병 노선을 걸었던 덕분이다.

국보법 폐지와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는 두 후보

정부 安保부서의 한 고위직 공무원은 北의 對南전략이 6.25 남침 전쟁 실패의 교훈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北은 김일성의 남침이 공산화 통일이란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미군의 개입이고 둘째는 남로당 조직의 無力化이다. 남로당 건설자인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남침하면 20만 지하당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미군 참전은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결단 덕분이다. 남로당 지하조직이 남침에 맞춰 반란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은 1948년 10월의 여순14연대 반란 사건 직후 국회가 국가보안법을 제정, 종북주의자들을 소탕한 덕분이다.

6.25 실패의 뼈아픈 교훈을 살리기 위하여 북한정권은 그 뒤 한미동맹 해체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對南공산화 전략의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북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정권이 나타나면 그 정권을 상대로 공산화 통일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북한정권은 對南用으로 1국가2체제의 연방제 통일안을 내세우지만 이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한미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전술적 방안에 불과하고 내부적으로는 '무력赤化통일'만을 강조한다.

북한정권은 주한미군 철수와 보안법 폐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從北정당의 건설에 수십 년의 세월과 막대한 공작비를 투자하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한미동맹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정당 후보이다. 문재인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한 정당의 후보이다. 진보당과 민주당은 총선 직전에, 집권할 경우 추진할 공동정책 합의문을 작성한 관계이다. 유력 후보 세 사람중 두 사람이 한미동맹 해체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자이다.

上記 안보 부서 고위 공직자는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국군이 좌경화되지 않은 덕분"이라고 했다. 사회와 정권의 좌경화 흐름 속에서도 국군은 반공정신을 지켜가면서 좌경화된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정신을 정상화시킨 다음 사회에 내 보내는 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하였다.

국군이 敵의 공작에 넘어가 좌경화되지 않도록 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機務부대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 민정수석일 때 기무부대 사령관에게 "국군보안법 폐지에 총대를 메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부탁을 받은 송영근씨(현 새누리당 의원)가 인터뷰를 통하여 폭로한 내용이다. 기무사령관이 다른 공안기관은 반대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총대를 멘다는 것은, 형사가 형법 폐지 운동에 앞장 서는 격이다. 기무부대는, 국군 안으로 北의 대남공작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부대이다. 이런 부대가 스스로 반공 방첩의 수단인 보안법 폐지에 앞장 선다면 국군을 대남공산화 전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게 되고 북한정권엔 '기무사령관은 우리 편이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된다. 더 나아가서 6.25와 같은 남침의 초대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韓美동맹 해체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두 후보는 현재 合 4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한 상태이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안보의 울타리였다. 이 울타리를 헐어버리면 이리떼가 들어와 양들을 덮칠 것이다. '양들의 침묵'!





투표확실층은 朴 49.0 文 41.4… M7Q 예상 투표율 67.8%

동아일보 조사에서 大選을 8일 남긴 11일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단순 지지도에서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투표확실층에선 朴 후보가 오차 범위를 넘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이날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45.3%를 얻어 문 후보(41.4%)를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이내인 3.9%포인트 앞섰다. 이는 지난 5일 東亞 여론조사의 격차(3.3%포인트)와 비슷한 수준으로서 안철수 효과는 거의 없었다.

R&R가 개발한 한국형 투표율 예측 모델인 M7Q를 이용해 가려낸, 반드시 투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투표확실층에서는 朴 후보(49.0%)와 文 후보(41.4%)의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7.6%포인트로 벌어졌다. 지난 5일 조사의 투표확실층 내 격차(8.6%포인트)보다는 약간 줄었다. M7Q가 예측한 투표율은 67.8%로 5일 조사의 65.9%에 비해 조금 올라갔다. 종북성향의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단순 지지도에서 1.3%로 5일 조사(1.5%)와 별 차이가 없었다. 浮動層(부동층)도 8.2%로 5일 조사의 10.7%보다 줄어들었다.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어느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朴 후보 51.0%, 文 후보 31.0%. 朴 지지자는 84.9%가 朴 후보의 당선을, 文 지지자는 66.7%만이 文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다. 이 조사는 유선 및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이뤄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13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개표 이전까지는 공표할 수 없다.


각성된 여론이 편파 언론을 이기고 있다!趙甲濟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상당한 차이로 앞서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언론의 좌편향을 감안하면 이는 기적이다. 구조적으로, 생리적으로 反朴-反보수 편향성을 보이는 한국 언론은 지난 1년간 朴 후보 측에 불리한 기사는 키우고, 문재인과 안철수에 불리한 기사는 줄이는 한편, 양적으로 文-安을 우대하였다.

큰 논란이 될 일도 아닌 정수장학회 건은 키우고,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재인의 갖가지 反헌법적 언동(낮은 단계 연방제 주장 등)은 아예 기사화하지 않는다. 특히 포털이 심하다. 朴 후보가 후보자 토론 때 아이패드로 커닝하였다는 허위의 주장과 사진이 포털을 매개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나마 TV 조선 등 종편 채널이 비교적 공정한 대선 보도를 하고 있다.

불공정 언론이란 맞바람을 안고도 朴 후보가 앞서는 건 각성된 여론이 불공정 언론을 이기고 있다는 뜻이다. 개방 사회에선 거짓의 양적 효용도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인간의 본성에 숨은 정의감이 폭발할 때가 있다.

이번 大選(대선)은 善이 惡을, 진실이 거짓을, 헌법이 불법을, 正義가 不義를, 자유가 억압을, 여론이 언론을 이긴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12일
趙甲濟(조갑제)‏@chogabje1

從北이란 惡은 늘 스스로를 드러낸다. 세상이 바뀌면 자신을 죽이게 될 증거물을 남기는 것은 그들이다. 지금 이들이 하는 言動 하나 하나가 자필 고발장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문재인이 ‘서민 후보’, 박근혜는 ‘귀족 후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하지만 잘 먹혀 들지 않는다. 유세장에 가 보면 朴 후보 쪽으로 서민층이 많이 모이고, 文 후보 쪽으론 학생들과 사무실 근무자가 많다. 지지층을 들여다 보면 박근혜 후보는 서민층(저소득층, 저학력층, 생활인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文 후보는 고소득층-고학력층에서 지지율이 높다.
지지층을 기준으로 하면 박근혜가 서민 후보, 문재인은 富者(부자) 후보이다.

어제 실시된 동아일보(리서치엔리서치) 大選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 후보는 소득별, 학력별, 직업별 지지율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후보 지지율: 朴 45.3-文 41.4%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大在 이상: 朴 37.4-文 49.6%

원래 좌파는 서민층을 대변하고, 우파는 부자층을 대변하는 게 정상인데, 박 후보가 서민층을, 문 후보가 부자층 지지를 많이 받고 있으니 희한하다. 박 후보 지지층중 서민층이 많은 것은 이들 가운데 박정희-육영수 향수가 강한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서민 지지층을 의식하여 朴 후보는 보통 좌파들이 내어놓는 공약을 많이 걸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大在(대재) 이상 고학력층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비율이 중졸 이하보다 네 배나 높다. 학력과 분별력이 반비례하고 있는 셈이다. 문 후보가 천안함 폭침이라 하지 않고 침몰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지지층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종북좌파 성향의 후보를 고소득층이 집중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또는 위선적인) 이념-심리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학력-고소득층은 주로 학생과 화이트칼라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 주도층이다. 언론, 정부, 법조계, 학교, 금융기관, 서비스 업종에 많이 들어가 있다. 정치인, 기자, 판사, 검사, 교사, 교수, 사무실 노동자, 고위 공직자 등의 직업을 갖는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의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反체제적 후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여기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근원적 불안 요인이 있다.

고학력층일수록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선동에 속는 경우가 많다. 저학력층일수록 건전하다. 이는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는 고학력층의 분별력이 어떤 수준인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교육이 건전한 민주시민을 키우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朴槿惠 후보는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광장 유세에서 “당선 직후부터 새정부 출범 전까지 여야 지도자들이 만나서 대한민국의 새 틀을 짰으면 좋겠다”며 핵심적인 언급을 했다.
“우리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야당 지도자들과 민생문제, 한반도 문제, 정치쇄신 문제, 국민통합을 의제로 머리를 맞대겠다.”

문재인-이정희 세력은 대한민국 헌법 1, 3, 4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국가연합 식 통일방안' '낮은 단계 연방제'(이상 문재인) '코리아 연방'(이정희)을 주장한다. 민주당과 진보당은, 북한정권의 對南 공산화 전략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폐지(문재인)와 韓美동맹 해체(이정희)도 공약하였다. 朴 후보는 야당과 대화를 하더라도 이런 反헌법 세력과는 하지 않고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정치인' 만 國政 파트너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의 우파 정치인중 이처럼 말을 분명히 한 이는 일찍이 없었다. 이는 박근혜의 '국민 대통합'이 反헌법적 從北세력까지 포용하려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 것이다. 朴 후보가 선거를 통하여 한반도 전체의 지도자로 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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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의 역사적 의미(메모-인용 금지)


한국인들은 종북좌파 진영의 두 후보를 낙선시키고 자유민주 진영의 여성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종북은 안 돼"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1. 한국인들은, 국군의 적들이 정권을 잡는 사태를 막았다. 박근혜 후보가 이긴다면 국군이 주적으로 간주하는 종북세력이 국군을 지휘하는 것을 막은 게 된다. 이는 내전적 사태나 유혈사태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 한국인들은, 좌편향 언론의 선동을 극복하고, 헌법 존중자를 대통령으로 뽑음으로써 민주시민의 자격을 입증하였다.
3. 한국인들은, 복지확대 시기에 낭비를 최소화하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4. 한국인들은, 북한식 연방제 통일론자를 낙선시키고 합헌적인 자유통일론자를 당선시켜 통일로 가는 기차의 궤도이탈을 막았다.
5. 한국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및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는 진영의 후보를 거부,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종북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지켜냈다.
6.


이정희 사퇴로 문재인은 종북좌파 단일후보가 되었다!종북좌파 세력의 정책과 공약을 종합하면 국가보안법 해체, 연방제 적화통일, 한미동맹 해체가 핵심이다. 즉 대한민국 해체이다.趙甲濟
종북 진보당의 이정희가 박근혜 후보의 예상대로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오늘 TV토론에 불참한다고 한다. 국가가 대주는 27억원의 선거 자금을 반납할지 먹고 튈 것인지 주목된다. 이로써 문재인은 從北(종북)좌파 진영의 단일 후보가 된 셈이다. 종북좌파 세력의 정책과 공약을 종합하면 국가보안법 해체, 연방제 적화통일, 한미동맹 해체가 핵심이다. 즉 대한민국 해체이다. 이번 선거의 형식은 좌우 대결인데, 본질은 대한민국 세력이냐, 反대한민국 세력이냐의 결전이다. 안철수도 이정희의 친구로 남을 것인가, 궁금하다. 북한정권이 지지하는 종북 정당, 그들이 지지하는 민주당과 한 덩어리가 된다면 安도 反大勢(반대세)가 된다. 12월 19일 자정이 되면 문재인과 민주당은 안철수, 이정희 때문에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게 역사가 내리는 오묘한 天罰(천벌)이다.

이정희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보 민주 개혁 세력이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실현하라는 국민의 열망을 이뤄내기 위해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북한정권의 3代 세습이나 인권탄압을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는 그는 "친일의 후예, 낡고 부패한 유신독재의 뿌리,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재집권은 국민에게 재앙이자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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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6일 토론을 보고

민주당원들의 국정원 여직원 불법감금 사건에 관한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토론문을 읽어보면 朴 후보가 人權(인권) 변호사 같이 말하고 문재인은 독재자 같다.

<[TV토론]朴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文 "피의자 옹호는 수사개입">
上記 이데일리의 제목을 놓고 보면 박 후보가 인권 변호사, 文 후보는 인권유린자이다.

문 후보는 "박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했다, 인권유린했다고 말하는데 왜 국정원 여직원을 변호하나. 국정원 여직원이 오히려 경찰이 문을 열어달라 요구했는데도 문 걸어잠그고 응하지 않았다. 떳떳하다면 왜 문을 안 열어주고 안에서 농성을 하나"라고 했다. 이건 사실 왜곡이다.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는 여성이 사는 오피스텔 앞으로 몰려온 사람들에게 협박당한 여직원을 대통령 후보가 변호하는 게 나쁜 짓일까?

"자꾸 왜 박 후보가 두둔하나. 그 분은 피의자다."(문)-감금 당한 피해자를 '피의자'라고 멋대로 불러놓고는 피의자의 인권을 부인하는 투의 문재인 막말은 '장발장'의 악질 형사 자벨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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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갤럽 3%, MBN 2.8%, 새누리당 3~5%, 극약처벙 안 써도 이긴다고 판단. 투표율 71%라도. 투표일 영하 10도 예상.

질 수 없는 게임이다. 두 측근의 죽음이 생각 났다. 더구나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 희생된 기장의 아들! 대한민국이 미치지 않았다면...

궁금해 하는 전화가 많았다. 군인표, 일산 등 경기도 북부 지역의 민심, 김문수 지사의 역할과 관계 있다.

택시 운전사, 교육감 후보는 어떻게 찍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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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民族 역사에서 여자가 왕이었던 적은 세 번이다. 모두 新羅이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다. 진성여왕의 在位기간은 서기 887~897년. 朴槿惠 후보가 내일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1115년만에 처음으로 여자가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르는 게 된다.

AP 통신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다면 신라시대 진성여왕 이후 첫 여성 지도자가 되어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AP는 17일 “한국의 박근혜가 당선된다면 선진국 중 성차별이 심한 국가인 한국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AP는 <한국의 여성들은 동일근로를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으며 저임금 직종에 여성 노동력이 집중돼 있고 높은 교육을 받고도 일과 가정의 兩立이라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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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어제 자료가 문자 메시지로 확산되고 있다. 필자가 받은 메시지에 따르면 6개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3.7~5.8%p 범위에서 문재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오차범위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文 후보 측에선 역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16일까지 격차가 약간 좁혀지던 추세가 17일부터 다시 벌어진 것은 부동층이 줄어든 것, 국정원 여직원 무혐의 발표 등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필자는 지난 14일 TV 조선에 출연, 150만 표차(오차범위 플러스 마이너스 50만 표, 즉 100만~150만 표) 정도로 朴 후보가 이길 것이란 예측을 한 적이 있다.
[ 2012-12-18, 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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