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憲裁), 곽노현 적용 '후보자 사후매수죄' 合憲 결정!

남은 형기 모두 채우고, 선거비용도 그대로 선관위에 반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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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이하 憲裁)가 27일 곽노현 前 서울시교육감이 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사후매수죄’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뉴시스’ 등 복수의 언론이 보도했다.

앞서 이 조항을 근거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곽노현 前 서울시교육감은 “사후매수죄는 위헌”이라며 憲裁에 위헌 여부를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는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사퇴 대가로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郭씨 측 변호인단은 “법 조항이 명확치 않아 처벌 범위가 자의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郭씨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직을 사퇴해준 대가로 선거가 끝난 뒤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郭씨는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돼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한편, 憲裁가 사후매수죄에 대해 합헌을 유지했기 때문에 郭씨는 남은 형기를 모두 채우고, 선거비용도 그대로 선관위에 반납하게 됐다. 선거비용은 모두 35억여 원으로 서울시 선관위는 최초 반납 통보 후 30일이 지나 해당 세무서에 징수를 위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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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조갑제닷컴

지난해 6월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교육감을 당선시키기 위해 從北단체 및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단체로는 한국진보연대, 민노총,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를 비롯한 195개 조직이 후보 단일화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주요 左派인사로는 백낙청(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 김상근(목사)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청화(승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등이 개입했다.

이들 단체 중 한국진보연대는(極左인사 오종렬 주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後身) 이적(利敵)단체인 범민련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비롯, 민노당, 민가협양심수후원회,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등 극좌 단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조직으로 ▲주한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김현희 KAL기사건 진상규명투쟁 ▲연방제 통일운동 등이 단체 주력사업이다.

단체는 또 ▲범민련과 한총련 등에 대한 利敵단체 규정 철회 및 자유로운 활동 보장 ▲6.15공동선언 이행과 자주적 평화통일 ▲민족자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국제 진보적 평화세력과의 연대 ▲국정원·보안수사대·기무사 등 공안기관 철폐 등을 기본 투쟁 강령 및 규약으로 하고 있다.

주요 활동가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오종렬을 비롯, 조준호 민노총 지도위원, 문경식(現민노당 전남도당 위원장) 전국농민회총연맹 前의장, 전과 6범 출신의 문성현 민노당 前 대표 등 NL(주체사상 신봉)계열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 한국진보연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사는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이다. 한국진보연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국연합은 1991년 출범 이래 南北聯邦制를 주장해온 단체로 재야에서 국보법 철폐·주한미군철수 및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구현 및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후 1민족1국가2제도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했던 從北단체였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채택한 바 있다.

곽노현 후보 단일화를 추대한 159개 단체 리스트

당시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중략)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소위 식민 지배 상태에 있는 남한을 해방, 南北聯邦制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집은 소위 ‘낮은단계의연방제를 거친 후 자주적민주정부를 수립해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료집은 구체적으로 ‘낮은단계연방제’에 대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주한미군철수 ▲국보법 철폐로 남북 連帶(연대)·聯合(연합) 합법화 ▲남북 諸(제)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민족통일기구 구성 등이 기초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방통일조국 건설’에 대해서는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과 미국의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하고,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이 ‘親美예속세력’의 대결에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이 승리한 뒤,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反帝鬪爭(반제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反帝戰線(반제전선)에 加勢(가세)·結集(결집)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전국연합은 이를 위해 2005년 사업목표로 “6·15공동선언 5돌, 광복 60년, 미군점령 60년을 맞아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 주한미군철수 원년으로 맞이하자”고 결의했고, 2004년 사업목표로 “미제(美帝)식민지배체제의 결정적 해체, 6·15선언이행을 앞당겨 連北(연북)·連共(연공)의식의 대고조 이룰 것, 事大賣國(사대매국)세력 한나라당 박살, 국보법·利敵(이적)규정·主敵(주적)규정철폐” 등을 결의했다.

전국연합은 국보법철폐에 대해 “하나의 惡法을 없애는 투쟁에 그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친미수구세력을 척결하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의 생명줄을 끊어 놓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는 투쟁” 등으로 정의해왔다.

전국연합이 주장하는 南北聯邦制統一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및 소위 ‘친미수구세력’으로 표현되는 보수 세력을 척결 또는 매장한 뒤,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에 加勢(가세)·결집(結集) 내지 連北(연북)·連共(연공)하는 赤化(적화)통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청와대 고위직 비서관을 비롯, 열린우리당·민노당에 다수의 국회의원을 진출시켜 온 전국연합은 2005년에만 ▲5월15일 광주미군철수집회 ▲7월10일 평택 미군철수집회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철거집회 ▲11월15일·21일 전국농민대회 ▲11월18일 부산APEC반대집회 등 대규모 반미(反美)활동을 사전기획·실행했었다.

보수진영에서 소위 ‘빨갱이 대장’으로 통하는 오종렬(現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前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전라남도 광주 태생으로 원래 교사가 직업이었던 인물이다. 1965년 광주사범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교육학 학사)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교원에 임용됐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가담, 이후 전교조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교조 광주광역시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지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에는 ‘여중생범대위’를 주도했으며, 2004년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보수진영에 대항해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

한국진보연대 참가단체 리스트

오종렬은 또 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 2005년 ‘반(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6년 말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를 추진하려 들자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및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등 좌파정권 등장이후 크고 작은 시위에는 늘 오종렬이 있었다.

오종렬의 부친 오정근(吳正根)은 일제시대 일본 유학파로 여운형의 건국동맹에서 활동했던 眞骨左翼인사이다. 오정근은 해방이후 여운형-박헌영 등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美군정이 들어서면서 나주인민위원회는 군정 당국에 의해 해체됐고, 오정근은 광주형무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 오정근에 이어 오종렬 집안의 反逆은 3대를 이어가고 있다. 오종렬의 아들 오창규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을 거치면서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생활을 시작해 장장 7년 동안을 수배자 생활을 했다. 오창규는 출소 후 ‘박승희 열사(분신자살) 정신계승사업회’에서 활동하다 2006년 민노당 후보로 광주 北구청장에 출마했었다. (조갑제닷컴)

金泌材(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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