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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15일자 <조갑제닷컴> 기사
<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의 공동대표 윤기진은 범청학련남측본부(利敵단체) 의장 출신이다. 범청학련남측본부는 利敵단체 한총련이 자신들의 상급 단체로 부르는 조직으로 주축멤버는 한총련 출신 선배들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었다.
[1] '대선(大選) 부정선거' 의혹 제기하는 '민권연대'
공동대표, 利敵단체 범청학련남측본부 출신 윤기진
범청학련남측본부(利敵단체) 출신이 공동대표인 한 단체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18대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면서 '국정조사'와 '청문회' 소집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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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연대는 성명에서 “이번 대선에서 벌써부터 과건, 탈법, 불법 부정선거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다”, “재외국민투표에서 발생한 탈법-불법 행태도 매우 심각하다”, “부재자 투표 역시 심상치 않다”면서 수사당국에 의해 100퍼센트 확인되지도 않은 여러 의혹들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모든 국민이 감시자가 되어 부정선거 저지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18대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내자”고 선동했다.
 
▲선거 이후인 2012년 12월29일 발표한 성명에서는 아예 제목을 ‘18대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나서: 총체적 여론조작, 부정의혹 선거를 박차고 국민주권, 자주통일 실현으로 내달리자’라며 부정선거 의혹을 아예 공론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글을 단체 명의로 발표했다.
민권연대가 이날 발표한 성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이번 대선은 친미보수세력들의 여론조작과 부정의혹선거로 얼룩진 추악한 선거였다. 독재자의 딸, 소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를 후보로 내세운 친미보수세력들은 이번에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자신들이 5년 동안 벌여온 추악한 몰골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해 최악의 여론조작, 부정의혹선거를 저질렀다.》
《진보당을 더욱 더 강화하고 국민주권과 자주통일을 열어내는 정치세력,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룩해 나가려는 정치세력이 자리잡아 갈 수 있도록 하자! 또한 개혁세력, 여러 사회, 시민단체들과 연대 운동을 활성화해 친미보수정권에 맞선 광범위한 연대전선을 구축해 범국민적인 저항을 조직하자! 당면해서는 이번 18대 대선에 드러난 여론조작,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힘찬 전 국민적인 운동을 벌여나가자! 부정선거 의혹 진상규명 운동은 국민주권의 요구이며 국민주권, 자주통일의 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다.》
▲민권연대는 지난 4일 이번 대선의 무효를 주장하는 한 모임 회원들이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 및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자, 7일 또 다시 성명을 발표해 “18대 대선 부정의혹은 국민들이 대선무효 소송까지 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면서 “막장선거의 첫 출발은 총선 전후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작왜곡에서 시작되었다”, “막장선거는 국정원, 국방부, 검경, 선관위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민권연대는 이어 “18대 대선의 모든 부정의혹 진상은 규명되어야 한다. 부정선거는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인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중략) 그리고 중선관위는 투명하게 투개표의 전 과정을 상세히 국민 앞에 공개하고, 수검표를 통해 선거부정 의혹을 철저히 진상규명해야 할 것”이라며 있지도 않은 대선 ‘부정의혹’을 확산시켰다. 
민권연대는 성명도 모자라 9일 오전에는 국회 정문 앞에서 ‘대선개입 부정선거의혹 국정원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 촉구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단체는 부정선거 ‘의혹’이라는 단어를 아예 부정선거 ‘사건’으로 규정하고 “최근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사실관계만으로도 대통령 탄핵사유가 될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라며 “국정원 대선개입 부정선거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청문회도 소집해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2] 대선 '재개표' 플래카드에 북한 글씨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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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14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지난 12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선 수개표 요구 집회에서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만들었다는 북한의 ‘광명납작체’ 폰트(서체)를 쓴 현수막이 등장해 충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서체는)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단체나 세력이 대량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찰 조사를 요구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촛불 집회 때 등장한 '전자 개표기 무효! 수개표 실시하라!!'고 적힌 플래카드의 활자체는 '광명납작체'와 매우 유사하다. 평양정보센터가 개발한 광명납작체는 정식 이름이 'PKS납작체'로 주로 북한 공식 문건 등에 쓰이고 있다.
이와 관련, 컴퓨터 업계 관계자는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서체는 광명납작체가 아니라 조선컴퓨터센터가 개발한 'WKW광명체'”라며 “WKW광명체는 납작체보다 획이 가늘고 접하기 쉽지 앉은 서체”라고 말했다.
그러나 WKW광명체를 비롯해 북한에서 쓰는 활자체는 인터넷을 통해 비교적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 등에 우회 접근하는 기술이 많이 보급돼 있고, 또 중국 사이트들을 통해 북한 서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안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죽 긁어다가 플래카드 제작 업체에 맡기면 얼마든지 인쇄할 수 있다고 한다”면서 “이번 집회에 등장한 게 그런 경우인지, 아니면 골수 從北세력이 북한의 활자 시스템을 도입해 조직적으로 찍어낸 것인지는 수사로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3] ''김일성 만세' 주장할 수 있어야 민주국가'
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의 남편 윤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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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敵단체 '범청학련남측본부' 의장 출신의 윤기진(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 남편)은 ‘김일성 만세를 주장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김수영(시인)의 미발표 유작을 언급하며 이를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2008년 징역 7년을 구형받았던 윤기진은 같은 해 7월21일 최후 진술서에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임의로 제약하고 처벌한다는 발상은 전근대적이며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지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윤기진은 (자신을) “처벌하려고 해도 인간의 생각을 몇 프로까지는 유죄, 몇 프로까지는 무죄라는 법적 기준을 세우기조차 난감할 것”이라며 “국보법이 새빨간 색안경을 쓰고 사상검증, 표현통제로 활개 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토론문화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발전도 요원한 꿈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양민학살·살인·강도·강간 벌인 범죄중독자”
 
그는 이어 촛불시위를 언급하며 “극우세력들이 어김없이 ‘친북세력’ 배후설을 퍼트리고 극렬반북시위를 조장하는 것처럼, 이남에서 역사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면 버릇처럼 들고 나오는 방패막이로 사용됐다”고 지적한 뒤, 이처럼 “잘못된 인식들이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들마다 민주화의 발목을 잡았다”고 해석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38선을 긋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부추긴 침략과 전쟁의 나라인 미국에 분노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수 십 만에 달하는 양민학살에 이어 윤금이 누이부터, 효순·미선이 까지 살인·강도·강간 등의 강도적 행각을 매일 평균 5건씩 60여 년간 일삼아 온 범죄중독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천문학적 액수의 자국군대 주둔비를 강요하고 군사주권도 모자라 경제주권까지 앗아가는 미국을 반대하는 저는 분명 ‘반미주의자’입니다”라고 고백한 뒤, “저의 대안은 민족공조입니다... (중략) 남북공조·조국통일만이 21세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유일한 출로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기진은 또 “반미자주와 민족공조가 이념을 넘어 실현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지향과 반미·민족공조에 대한 원칙에 대해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저는 민족공조론자이며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선언, 10정상선언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밝혔다.
 
“김일성 사망, 민족전체에게 안타까운 비보”
 
윤기진은 앞서 수배기간 중인 2007년 10월 인터넷 홈페이지(범청학련남측본부)를 통해 김일성의 유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노무현·김정일이 주도한 10.4선언을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한 통일의지의 산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것을 “민족전체에게도 안타까운 비보”라며 94년부터 2000년까지를 “지금과 같은 6.15 시대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무겁고 어두운 반통일의 기운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기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른바 ‘선군정치’로 헤쳐 나갔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의 북한 정권 찬양은 1996년 11월24일에 김정일이 했다는 ‘결심’에 대한 조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판문점 시찰을 나온 김정일이 그곳에 있는 김일성의 親筆(친필) 서명을 보고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을 결심했다는 것. 그때의 결심을 바탕으로 6.15선언과 10.4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윤기진의 주장이다.
 
“北선군정치는 민족에 대한 긍지, 자신감 크게 안겨”
 
윤기진의 이 같은 ‘횡설수설’은 선군정치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선군정치를 “남한과 해외의 동포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안겨 주었다”고 평한 윤기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결단’이 미국의 대북전쟁정책이 무력화되고 통일의 조건을 유리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윤기진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9년간 수배생활을 하다 2008년 2월27일 구속됐다. 국보법상 잠입탈출, 利敵단체 가입, 회합통신, 利敵표현물 제작 및 반포, 利敵표현물 소지, 고무찬양 등의 혐의를 받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법정공방을 벌였다. 윤기진은 같은 해 9월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의 실형(2011년 2월26일 출소)을 선고받았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4] 利敵단체 출신의 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
 
노무현 정권 시절 민노당 부대변인을 지낸 黃羨(황선)은 98년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해 실형을 받았던 인물로 ‘범청학련 남측본부’(利敵團體)와 ‘통일연대’의 대변인을 지냈다.
  
황 씨가 대변인을 맡았던 범청학련 남측본부는 김정일을 가리켜 “7천만 재결합할 민족지도자”, “구국의 영웅” 등으로 칭송하는 등 극단적 從北·從金성향을 보여 온 利敵團體이다. 통일연대 역시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親北團體(친북단체)이다.
  
황 씨는 2005년 10월 滿朔(만삭)의 몸을 이끌고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나섰다가,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인 10월10일 북한의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출산했다. 김정일 정권은 이를 소재로 단막극 <옥동녀>를 상영하는 등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6년 11월24일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갓난 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륙로로 가되 차를 천천히 몰아 어머니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親부모심정으로 헤아려 주시였다”면서 김정일의 각별한 관심을 적기도 했다.
  
황 씨가 통일연대와 민노당의 대변인 및 부대변인 자격으로 발표한 논평들은 “북의 핵무기 보유는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이라느니 “미국은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등 골수 親北·反美 논리로 일관돼 있다.
 
이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북의 핵무기 보유는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두 나라(美北)의 관계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가장 당연한 대응 인 것이며 또한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이다.” (2005년 2월11일)
  
△ “근거가 모호한 미국의 人權공격이 과거 미국이 적대하는 나라들에 공공연히 쓰인 일종의 공격행위... 人權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나라로 손꼽히는 미국이 온갖 야유를 들으면서도 以北에 대한 모략을 중단하지 않는 것”(2005년 8월21일)
  
△ “청하기만 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反美투쟁사에 대해 우리 동포 이북에 대해 논조 하나 흐트러지지 않으시고 쩡쩡 말씀해 주셨는데… 선생님 자주통일원년인데 전 민족 공동의 反美투쟁 그 결정판이 펼쳐질 해인데 이렇게 가시면 어쩝니까…”(2005년 1월 간첩 김남식 추모시)
  
△ “보수 언론이 일부 탈북자들의 의견을 들어 人權문제를 반복해 이야기하는데, 북에서 일부 탈남자들의 의견만으로 남쪽을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을 덮어놓고 일반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7년 9월21일)
  
△ “미국,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미군 지휘부 차원에서 저질러진 일... 전쟁 시기 미국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학살과 오늘날까지 축소 은폐한 것에 대해 미국정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저지른 전쟁범죄만으로도 국제전범재판에 서기에 충분하다.” (2007년 4월14일)
  
△ “미국이 횡행하게 자행해왔고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세계각지에서의 총기난사와 패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묵인 또는 동조까지 해 주면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성을 촉구하기는커녕 단식까지 하겠다는 태도가 과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무슨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2007년 4월21일 조승희 사건에 대한 논평)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5] 利敵단체 출신 윤기진 '야권연대 완벽하게 성사시켜야'
(2012년 10월11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利敵단체 ‘범청학련남측본부’(범청남) 의장 출신의 윤기진(尹基眞)이 대선을 앞두고 활동을 재개했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2008년 징역3년을 선고받았던 尹씨는 법정 최후진술서에서 ‘김일성 만세를 주장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김수영(시인)의 미발표 유작을 언급하며 “이를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던 인물이다.
尹씨는 지난 4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등 3개 從北단체가 주최한 <6.15/10.4선언 완수를 위한 민족운동의 당면과제> 토론회에 참석, 이번 대선과 관련해 “야권연대를 완벽하게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尹씨는 구체적으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 있도록 진보세력들이 앞장에 나서야 한다”면서 “촛불 없는 선거승리 없다는 공식은 지난 역사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다. 촛불의 힘으로 反수구보수투쟁을 성과적으로 벌이고 야권연대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 평화와 정권교체, 이 구호를 전면에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중략) 전쟁과 평화, 유신시대와 통일시대, 독재회귀와 국민권력시대를 가르는 대전”이라며 “온 힘을 다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해전 ‘6.15/10.4 국민연대’ 상임대표는 <우리는 6.15/10.4선언 완수할 통일대통령을 원한다>는 제목의 발제에서 “6.15/10.4 선언의 완수는 그 누가 집권을 하든 여야, 좌우,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우리 국민 모두의 역사적 책무”라며 “대선후보들은 모두 정당 정파를 떠나 공동으로 6.15 10.4 거국내각과 개헌을 공약하고 누가 통일대통령의 적임자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승우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은 <6.15/10.4선언 참담하게 짓밟은 이명박 정권>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대북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했다”며 “특히 천안함 사건을 객관적 증거가 미흡한 상태에서 북한 소행으로 단정 짓고 응징적 대북정책을 편 것 등이 남북관계를 크게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통일연구원이 ‘북핵과 남북관계를 연계하지 않고 분리 대응하는 투트랙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며 “이는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 위원장이 언급한 통일연구원 ‘연구보고서’는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기범 초청연구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장형수 한양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것으로 골자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보고 對北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맞춰져 있다.
한편, 강상기 ‘6.15/10.4 국민연대’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개회사를, 임수경 민통당 의원과 전창일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박덕신 6.15서울본부 상임대표, 김한성 6.15학술본부 상임대표 등의 左派인사들이 축사를 했다.
(조갑제닷컴/2011년11월26일자 보도)
黃羨(황선) 前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25일 본인의 블로그 및 페이스북에 ‘내가 방북신청을 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노무현 정권 시절 민노당 부대변인을 지낸 황선 씨는 1998년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해 실형을 받았던 인물로 利敵(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와 親北(친북)단체 ‘통일연대’의 대변인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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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황선 블로그 |
黃 씨는 2005년 10월 滿朔(만삭)의 몸으로 북한의 아리랑 공연 관람에 나섰다가,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인 10월10일 북한의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출산했다. 김정일 정권은 이를 소재로 단막극 ‘옥동녀’를 제작, 상영하며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6년 11월24일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갓난 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륙로로 가되 차를 천천히 몰아 어머니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親부모심정으로 헤아려 주시였다”고 적기도 했다.
남편인 윤기진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9년간 수배생활을 하다 2008년 2월27일 구속된 인물이다. 국보법 상 잠입탈출, 利敵단체 가입, 회합통신, 利敵표현물 제작 및 반포, 利敵표현물 소지, 고무찬양 등의 혐의를 받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법정공방을 벌였다. 윤 씨는 2008년 9월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2011년 2월26일 출소했다.
“평양은 지금 비탄이 거리마다 가정마다 넘치고 있을 것”
黃 씨는 ‘내가 방북신청을 한 이유’의 글에서 평양 방문 당시 들었던 북한 노래 ‘보란듯이’를 떠올리며, “19일 정오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소식을 듣고 난 후 며칠째, 이 노래를 부르던 십여 년 전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북의 노동자 농민이 이 노래를 부를 때 노랫말처럼 ‘큰 소리로 보란 듯이’ 부르던 모습이 역력하다. 남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여대는 말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지 ‘보란 듯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 봐도 딱 알겠는 거다.
삭막하고 경직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핍박받는 민중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들은 씩씩하고 당당하다. 명랑하고 발랄하다.
…배가 고프고 전력난이 몇 해 더 있다한들 그들은 사회주의를 그 고난과 맞바꿀 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애착의 뿌리에 지도자에 대한 존경이 있다>
黃 씨는 1998년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한 당시 구경했던 평양시가행진도 회상했다. 黃 씨는 김정일에 환호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에 대해 “빈정거리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 때 내가 목격했던 모습들도 모두 쇼라고 주장하겠으나 그 모든 것이 쇼라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사람의 무엇을 움직이면 저런 사회적 동원이 가능할 것인가.’ 동원이라고 하기 전에 연극이라고 함부로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그것이다>
시가행진 중에 나타난 김정일에 대해서도 “언론으로만 접했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환한 웃음, 밝은 얼굴”과 북한 주민들의 환호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런 지도자를 잃은 평양은 지금 그 때와 달리 ‘갑작스럽고 커다랗고 긴’ 비탄이 거리마다 가정마다 넘치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평양 할아버지한테 절하러 안 가?’
黃 씨는 김정일을 “평양 할아버지-아이가 태어났을 때 참 기뻐하셨던”라고 지칭하며 평양산원에서 출산한 자녀에게 ‘겨레’라는 이름을 붙였을 당시 北측으로부터 받은 팩스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평양 할아버지한테 절하러 안 가?’라고 묻는다고 적었다.
<“애기의 이름을 같은 핏줄을 이은 자손들이나 민족을 뜻하는 '겨레'로 지은 것은 의미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축하합니다. 통일옥동녀인 겨레가 무럭무럭 자라나 가정에는 효자동, 이웃에는 화목동, 나라에는 꼭 통일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아이의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이 북에 전해졌는지 어느 날 북에서 ‘대긴급전달바람’이라는 급박한 주문을 달고 남쪽에 팩스가 도착했다. 숱한 돌잔치에 다녀보기도 하고 나 역시 자라면서 많은 덕담을 듣기도 했지만 ‘건강하게 공부 잘 하고 훌륭한 사람이 돼서 돈 많이 벌어라’ 라는 수준이 가장 일반적인 덕담이자 소망이었다.
그런데 북의 동포들이 보내온 덕담은 가정에는 효자동, 이웃에는 화목동, 나라에는 통일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지 않는가>
黃 씨는 “3천만의 동포가 불시에 상주가 되어 슬퍼하고 있는 곳에 가장 인간적인 마음으로 위무를 주고 응원을 전하는 것으로 우리, 평화의 역사를 다시 써보면 안될까?”라고 쓰며 이것이 본인이 방북을 신청한 이유라며 글을 맺었다.
다음은 내용의 全文(전문)
http://blog.daum.net/615615615/
<내가 방북신청을 한 이유>
노래의 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평양에서 ‘보란 듯이’라는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때로부터 벌써 십 수 년이나 흘렀다.
『노래를 불러도 큰 소리로 보란 듯이
걸음을 걸어도 씩씩하게 보란 듯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회주의 내 나라
남들이 부럽게 떨쳐가자 보란 듯이
한 그루 나무를 심어도 보란 듯이
한 포기 곡식을 가꾸어도 보란 듯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회주의 내 나라
남들이 부럽게 가꿔가자 보란 듯이
우리 장군님 이끄시는 사회주의 내 나라
남들이 부럽게 지켜가자 보란 듯이
보 란 듯 이』
평양 방문 시 처음으로 듣고 접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유독 이 노래가 깊이 남았다. 가무를 중시하는 그 곳에서 이 노래는 특별한 편도 아니었다.
누구나 쉽게 흔하게 부르는 그야말로 대중가요였는데, 이 노래를 그곳의 광산 노동자나 농장의 농부들이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 해 간 이 노래를 잊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지난 19일 정오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소식을 듣고 난 후 며칠째, 이 노래를 부르던 십여 년 전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북의 노동자 농민이 이 노래를 부를 때 노랫말처럼 ‘큰 소리로 보란 듯이’ 부르던 모습이 역력하다. 남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여대는 말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지 ‘보란 듯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 봐도 딱 알겠는 거다.
삭막하고 경직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핍박받는 민중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들은 씩씩하고 당당하다. 명랑하고 발랄하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자부심의 중심에는 사회주의가 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사회주의를, 다 망했다고 공공연히 선언해온 사회주의를, 그 어려운 속에서도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선언이나 이념이 아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생활이다. 어떤 생활? 조상 대대로 보습대일 한 뙈기의 땅을 가져보지 못하고 소작을 살거나, 지주의 행패를 피해 산 속에서 화전을 일구거나, 외세 침략에 이중 삼중의 겁박을 당하거나... 했던 삶을 비로소 청산하게 해 준 새로운 생활. 나라가 사회주의를 하니 1가구 1주택이 제도가 되고 가진 자의 식솔만 배우는 것에서 전 국민 고등의무교육과 무상교육으로 바뀌고, 무상의료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생활 말이다. 배가 고프고 전력난이 몇 해 더 있다한들 그들은 사회주의를 그 고난과 맞바꿀 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애착의 뿌리에 지도자에 대한 존경이 있다.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것이 식자들의 이론논쟁으로 승패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상과 그에 따른 제도를 만들고 지킨다는 것은 그 사회 성원들이 열망하는 사회상을 깊이 공감하는 정치인과 당의 지도와 결합되는 투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북의 동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자본과 제국주의의 압력 속에서도 조선의 사회주의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그들이기에 한 포기 곡식을 가꾸면서도 뿌듯하고 지도자의 영도와 함께 한다는 것에 든든해하는 것이다.
북의 명랑한 노래자락 하나만 들어도 그들이 이 엄동설한에 겪고 있을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된다. 아니 그들이 느끼는 아픔의 1% 쯤 감지하는 것일지 모른다. 신기한 장면인 듯 보도하는 외신들의 카메라 속에서 울부짖는 남녀노소는 하나같이 ‘아버지’를 외치고 있다. 북녘의 동포들은 지금 모두가 상주인 셈이다.
98년 9월9일 북의 건국50주년기념 평양시가행진을 구경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봤을 당시가 생각난다. 지금 비탄에 빠져있는 동포를 향해 연극이다, 쇼다, 빈정거리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 때 내가 목격했던 모습들도 모두 쇼라고 주장하겠으나 그 모든 것이 쇼라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일이다. 평양시민들이 저마다 차려입고 나와 건국일을 축하하며 ‘무상의료의 나라’ ‘무상 교육의 나라’ 등의 구호를 펼쳐들고 꽃술을 들고 행진을 하는데 참 대단한 행진이었다. 동원이라면 그 동원력이야말로 모든 나라 정부가 부러워 할 성질의 것이었다. ‘사람의 무엇을 움직이면 저런 사회적 동원이 가능할 것인가.’ 동원이라고 하기 전에 연극이라고 함부로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그것이다.
그 대단한 시가행진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타난 것이다. 행진하는 인민들과 참으로 가까운 자리에서 한참동안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 때 사람들의 열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언론으로만 접했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환한 웃음, 밝은 얼굴에 큰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북의 동포들이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토록, 지축이 흔들리도록, 열광하고 흠모할 수 있는지 그 때처럼 ‘갑작스럽고 크고 긴’ 환호성을 평생 다시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지도자를 잃은 평양은 지금 그 때와 달리 ‘갑작스럽고 커다랗고 긴’ 비탄이 거리마다 가정마다 넘치고 있을 터이다.
94년 북에서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고 남쪽의 몇몇 통일인사들이 조문을 주장했다가 이후 조문파동이라 부르는 대대적인 공안탄압으로 흐르고 남북관계는 파탄으로 흐른 일이 있다. 그 때로부터 근 스무 해가 흐른 오늘 각계에선 전과는 다른 따뜻한 조의가 표현되고 있다. 그간 남과 북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숱한 상봉과 협력 사업들을 진행했고, 방북해서 북녘의 사람들과 굳은 포옹을 해 본 인사들만도 헤일 수 없이 많다. 남쪽의 벗이 상주가 된 북의 벗을 찾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배워왔다.
평양의 벗과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의 기쁨을 열배 백배로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2005년 10월 오랜 시간 수배자인 아들 덕에 인생의 낙이 없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효도관광 차 떠났던 평양 아리랑 관광 길에 평양산원에서 딸 겨레를 얻었을 때 일이다.
평양의 벗들은 산모인 내가 관광객 명단에 있는 것을 알고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주의 깊게 보살펴주었고 평양산원이 쉬는 날이었음에도 산원의 의료진과 구급차를 공연장에 대기시켰다.
약 15분 만 늦었어도 지난 수술자리가 열려 내출혈이라는 상황이 왔을 수 있다는 의료진의 설명이며, 의사선생님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수술을 하더라는 이야기 등은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평양 당국과 산원의 각별한 관심과 조치가 아니었다면 그 해 나의 평양 관광 길은 축복이 아니라 비극으로 남았을 것이다.
“애기의 이름을 같은 핏줄을 이은 자손들이나 민족을 뜻하는 '겨레'로 지은 것은 의미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축하합니다.
통일옥동녀인 겨레가 무럭무럭 자라나 가정에는 효자동, 이웃에는 화목동, 나라에는 꼭 통일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아이의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이 북에 전해졌는지 어느 날 북에서 ‘대긴급전달바람’이라는 급박한 주문을 달고 남쪽에 팩스가 도착했다. 숱한 돌잔치에 다녀보기도 하고 나 역시 자라면서 많은 덕담을 듣기도 했지만 ‘건강하게 공부 잘 하고 훌륭한 사람이 돼서 돈 많이 벌어라’ 라는 수준이 가장 일반적인 덕담이자 소망이었다.
그런데 북의 동포들이 보내온 덕담은 가정에는 효자동, 이웃에는 화목동, 나라에는 통일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지 않는가.
서울 할아버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아이는 덕수궁 돌담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고집스럽게 절을 하고 가겠다며 버텼다. 왜 그런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국화꽃을 바치고 절도 했다.
평양 할아버지-아이가 태어났을 때 참 기뻐하셨던-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며 평화를 먼저배운 아이들이 묻는다.
‘평양 할아버지한테 절하러 안 가?’
평양 할아버지는 갓난아기의 이름이 지어진 것을 듣자 대긴급전문을 통해 북녘동포의 축하를 보내셨고 서울 할아버지의 통일부는 집으로 탄생 축하 꽃바구니를 보내주셨다.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혼자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효자동으로 화목동, 통일동으로 크는 꿈을 남과 북의 어른들이 함께 꾸면 얼마나 좋겠는가. 3천만의 동포가 불시에 상주가 되어 슬퍼하고 있는 곳에 가장 인간적인 마음으로 위무를 주고 응원을 전하는 것으로 우리, 평화의 역사를 다시 써보면 안될까?
나와 겨레가 평양 조문을 위해 방북을 신청한 이유다.
<조갑제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