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解前史》집필에 참여한 주요 필진의 이념적 성향
▲김남식(金南植): 충남 논산 출생으로 본명은 김동만(金東滿, 2005년 사망)이다.《解前史》 제5권 집필에 참여한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의 스승으로 알려져 왔다. 6·25 전쟁 당시 월북(越北)했다 1963년 간첩으로 남파된 후 당시 방첩부대(現기무사)에 검거됐던 인물이다. 이후 對共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풀려났으나, 1980년대 후반 들어 親北的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발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金日成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先軍)정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2004년 7월9일 통일뉴스 ‘북한의 영생(永生) 10년의 이해를 위하여’), “(북한) 주체(主體)의 사회주의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귀중히 여긴다.”(2004년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 “선군(先軍)정치는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영원한 수령’ 金日成 주석이 개척하고 전진시킨 주체(主體)혁명위업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정치방식이다.”(2004년 12월30일)
▲강만길(姜萬吉):《解前史》 필진인 송건호와 함께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1991년 2월 설립)의 지도위원을 지낸 인물로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학계에서 줄곧 국보법폐지, 주한미군철수,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해왔다. 상지대 제5대 총장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현채(朴玄埰): 전남 화순 태생으로 6·25전쟁 당시 16세의 어린 나이로 빨치산에 가담했다. 그는 20세 미만의 소년들이 중심이 된 소년중대의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동했는데, 훗날 이는 조정래의 장편소설《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위대한 戰士’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재야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자립적 민족 경제의 건설을 변혁운동의 과제로 삼고 이를 사회구조의 혁명이론으로 연결시켰다. 1964년 박현채는 인민혁명당 조직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도예종 은닉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 후에도 1979, 1980년에 2차례 복역과 구금을 당했다. 1989년 조선대학교에 자리 잡기 전까지 여러 대학을 돌며 경제학 강의를 했다.
▲백기완(白基琓): 사회주의자 백기완은 1964년 韓日협정반대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1970∼1980년대 재야 운동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 명 서명운동’을 주도, 긴급조치 1호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9년에는 ‘YMCA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해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72∼1980년 백범사상연구소 소장, 1984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1992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저서로는《통일이냐 반통일이냐》, 《백두산 천지》등이 있다.
▲이종석(李鍾奭): 1958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출생하여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부산대,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강사를 거쳐,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제32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성균관대 78학번으로 고시준비를 하다 실패한 후 일반 기업체에서 잠시 일하다 스물아홉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종석은 석사 2년차이던 1988년 8월 최장집(고려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손학규(現 민주당 대표) 등이 이끄는 좌파성향 ‘한국정치연구회’에 가입,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집중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李 씨는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을 차용하고 김남식 등과 교류하며, 북한에 대한 냉전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난 ‘내재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내재적 접근방식’이란 ‘북한원전을 통해 북한을 먼저 이해한 뒤 비판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임헌영(任軒永):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본명 임준열)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등 수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남민전 사건은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된 지하공산혁명조직이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간첩사건으로 관련자만 해도 84명(불고속자 포함)이 넘었다. 구체적으로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 등이 월북(越北),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통제를 받았으며, 남한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를 제작하기도 했다.
▲임종국(林鍾國): 1956년 《이상(李箱)전집》을 출간하면서 재야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한국시인전집》을 발간하면서 문인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던 중, 대한민국 문단의 유명 문인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親日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오랜 기간 자료를 모아 親日派 연구의 효시가 된 《친일문학론》을 1966년에 펴냈다. 임종국은 《친일문학론》을 시작으로 다른 분야의 친일파에까지 연구를 확장해《실록 친일파》등 여러 저서를 계속 펴내면서 친일파 연구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임종국이 행적을 발굴해 親日派로 지목한 인물 가운데는 아버지 임문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親日派 인물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할 계획으로 《친일파총사》를 집필하던 중 1989년에 사망했다.
▲이동화(李東華): 평안남도 강동(江東) 출생으로 1936년 동경대학(東京大學) 정치학과를 졸업, 1938년부터 혜화전문강사로 재직하다가 左翼지하운동과 관련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위원·평양민보주필, 1946년 조소(朝蘇)문화협회부위원장을 지내고 6·25 때 월남, 1961년 통일사회당위원장을 거쳐, 민족통일촉진회최고위원·독립동지회지도위원을 지냈다. 번역서로는《볼셰비즘 정치이론의 비판》이 있다.
▲안 진(安 眞):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출신으로 현재 광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도한 親日인명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저서 및 논문으로는 《미군정과 한국의 민주주의》,〈5·18항쟁에서 여성주체들의 특성〉,〈미군정 사법체제의 재편에 관한 연구〉,〈5·18항쟁의 사회경제적 배경〉등이 있다.
▲이효인(李孝仁): 중앙대 대학원 영화학 박사 출신으로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계간 <독립영화> 편집장,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영상자료원장 등을 거쳐 현재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북한의 수령형상창조영화 연구-연작〈조선의 별〉과 연작〈민족의 태양〉의 신화양식을 중심으로》가 있다. 이창동, 김정환 등과 함께 노동운동가 전태일[분신자살]을 그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썼다.
▲염무웅(廉武雄):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으로 활동 중인 염무웅은 강원도 속초(束草) 출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 및 同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최인훈론〉(崔仁勳論)이 당선되어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부터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에 참여, 1972년부터 주간(主幹)이 되고 1978년에는 발행인이 되어 잡지 경영 책임을 맡았다. 영남대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평론집 《한국문학의 반성》, 번역서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백낙청과 共譯), 카프카의《성(城)》등이 있다.
▲송건호(宋建鎬):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1991년 2월 설립)의 지도위원을 지낸 인물로 1953년 조선일보 외신부기자를 시작으로 1958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됐으나 1975년 동아일보 기자 집단해고에 반발해 사임한 후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작업에 참여해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解前史》 제1권의 필진인 백기완과 함께 80년대 대표적 재야세력 연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의장 문익환)의 부의장을 지냈다.
▲장상환(蔣尙煥):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연루자로 1979년 한명숙(前 국무총리), 황한식(부산대 교수), 이우재(前 국회의원), 신인령(前 이화여대 총장), 김세균(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이들 가운데 황한식은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7개월 후 남민전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은 간첩사건은 아니었으나 지식인들에 의한 체제변혁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1979년 4월1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이우재 등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들을 중심으로 아카데미 내 불법지하용공서클을 구성, 아카데미에 입교하는 농민, 근로자, 청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중간집단이론 강의를 교육하여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변혁함으로써 사회주의 실현을 획책했다”고 발표했다.
▲정해구(丁海龜):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외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이 석사 2년차이던 1988년 최장집(고려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손학규(민주당 대표)등이 이끄는 좌파성향 ‘한국정치연구회’에 가입,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집중 공부했을 당시 함께 교류했던 인물이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으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前 서울남부지검장)가 2010년 발표한 ‘친북(親北)-반(反)국가 행위자 100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최 열: 1956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미대(美大)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재학 시절인 1976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를 결성, 1981년 《한국근대사회미술론》을 간행했으며 민족미술협의회,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을 조직하면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주도의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세종연구원 발간 국가전략연구 계간지 'Global Affairs' 2011년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