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휘호
1. 왜 ‘촌스럽게’ 반공(反共)인가?
2013년,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어떤 의미일까? 국민통합시민운동(국통시)에서 말하는 ‘반공(反共)지양’이라는 가치는 왜 위험할까? 반공(反共)은 60-70년대에만 유효했던 시대착오적 주장인 것일까? 지금 왜 대한민국에서 반공논쟁이 중요한지 살펴보도록 하자.
공산주의 근대국가인 중국,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근본 가치로 세워 근대중국을 세우고자 했던 손문(孫文)은 진화론과 인민주권설 그리고 영국의 사회학설을 중국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런 가치를 기본으로 1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던 1923년, 손문은 연소용공(聯蘇容共-소련과 연합하고 공산주의를 용인한다)을 외치며 공산주의와 손을 잡는다. 심지어 공산당과 국민당의 당적으로 이중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용인하는 수준까지 공산주의를 적극적으로 용인하게 되었다.
국민당이 공산당화 되어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장개석은 반공(反共) 쿠데타를 일으켰고 국공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937년, ‘서안(西安)사변’을 거치며 강제적 국공합작이 이루어진다. 국 1920년대는 공산주의의 시대였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낭만적 공산주의에 빠져있었고 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를 용인하는 근대국가가 세워지고 있었다. 인품과 지도력이 뛰어난 손문은 근대중국의 창시자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듯하다. 손문의 연소용공 정책이 중국을 중공(中共)으로 변모시켰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거쳐온 과거로 미래를 가정(假定)하며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1920년대 공산주의가 유령처럼 전 세계를 휩쓸 당시, 유일하게 강력한 반공(反共)사상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 이승만이다. 공산주의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승만과 손문은 크게 대조된다. 이승만의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은 심지어 처칠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의 위대함은 반공국가(反共國家) 수립에 있다.
아시아에서 근대국가를 세운 두 명의 국부(國父) 이승만과 손문, 그들이 이룩한 국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반공(反共)과 용공(容共), 그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2. 왜 ‘촌스럽게’ 국가보안법인가?
모택동 치하에서 죽은 사람이 3천만 명이다. 김일성 치하에서 죽은 사람은 7백만 명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죽은 사람은 300만이다. 만일 이들을 자유롭게 찬양하고 고무하는 것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면?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만일 누군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토히로부미 만세’를 외친다면? 그는 그날로 바로 ‘신상이 털릴 것’이다.
국가의 영혼은 선악의 기준이다.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지키는 가디언(수호자)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영혼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고무 찬양의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일부 세력의 주장은 황당할 뿐이다.
국가에서는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절대적 기준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우리는 구 소련 붕괴, 동독 붕괴 그리고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볼 수 있다. 공산주의의 특징은 사람들의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 결코 촌스럽지 않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사탕발림을 덥석 삼켜 이가 다 썪어버린 국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3.경험한 적 없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鄕愁)
20세기 모든 지식인들이 다 빠져 든 공산주의(Marxism)의 매력은 어디 있는가? 왜 실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사상이 아직도 유령처럼 한반도를 떠도는 것일까? 한국의 ‘서구 콤플렉스’ 때문이다. 공산주의를 서양문명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은 절대 물질적 문명이 아니다. 문명세계를 규정할 수 있는 더 강력한 힘이다.
고대, 봉건사회를 떠오르게 하는 북한의 수령독재 체제는 공산주의도 아닌 기형적 전체주의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鄕愁). 농촌사회에 대한 막연한 향수.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박정희를 보자. 그가 제시한 국가비전은 ‘잘 살아보세’였다. 방법은 ‘하면 된다’였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라’라고 외쳤다. 지금 이 비전에 동의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이것이었다. 국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비전이다. 2013년, 대한민국의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외쳐야 할 국가비전은 무엇인가? 촌스러워도, 낭만적이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반공(反共)을 외쳐야 할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