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과 히틀러 노무현



「마지막 희망(letzte Hoffnung)!」 독일국민은 제1차 대전 패전의 무기력과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 Weimar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청산의 새로운 희망을 히틀러에게 걸었다. 히틀러는 서둘러 부호가 통하는 사람들을 곳곳에 심었다. 한 때 유럽의 총아(寵兒)로 脚光 받았던 그는 군은 물론 독일국민을 동원하여 전쟁(2차 대전)까지 일으켰다. 희대의 선동 꾼이며, 권총자살을 하기까지 히틀러 곁을 함께 한 국민계몽 및 선전상 (Reichsminister fuer Volksaufklaerung und Propaganda) Joseph Goebbels는 그와 암호(코드)가 직통했다.



상징적인 그들의 전위대조직은 뭐니 해도 「청소년들은 영도자를 받든다」를 표어로 한「히틀러 청소년 隊, (Hitlerjugend 약자 HJ, 10 ~ 18세까지)」일종의 국민士官조직이다. 유태인 학살 등 만행을 일삼은 인류의 반역아인 히틀러는 아직도 게르만민족역사의 수치이며, 인류의 멸시와 혐오를 받는다. 히틀러∙괴벨스의 선동∙동원주의는 독일인들의 역사反面先生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은 법치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법치는 다름아닌 (정부조직상) 견제와 균형이다. 아직도 그의 뒤를 따르는 조직(Neonazis)이 있지만 독일법의 제지를 받는다.



노무현은 히틀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하는 聯想형태다. 언론장악음모와 노사모 패거리들의 떼거리난동이 그렇다. KBS와 MBC의 선동과 거짓말 지어내는 수법은 바로 괴벨스가 前轍이다. 노무현의 前衛隊長 명계남이 즐겨 쓰는「악랄한 전진」은 1930, 1932년 괴벨스가 국회의원선거에 날마다 사용한 지지세력 결집선동문구「공격!(Der Angriff)」에 脈을 댄다.



절실한 건 언론개혁을 위한 홍위병들의 악랄한 전진이 아니라 국가경제부흥과 역사진전을 위한 영도력이다. 영도력은 국민이 다 함께 목적을 향하여 서두르는 통합 외 다름 아니다. 히틀러의 영도를 흉내 낸다면 파멸이다. 소수파였던 히틀러는 한 때 일부 독일인들의 열광적인 환영과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신문과 라디오 등이 차례로 그에게 접수된 후 감시와 억압의 철권통치였다.



영도력은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하도록 만들고 그 일을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Leadership is the ability to get men to do what they don’t want to do and like it. -Harry S. Truman-). 영도자는 희망장사꾼이다. (A leader is a dealer in hope. -Napoleon Bonaparte-) 나폴레옹은 승전희망으로 장•사병의 臨戰士氣를 북돋웠다.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살펴보건대 그가 청년시절에 흠모했다던 나폴레옹과 똑같은 독재의 오명을 감수해야 하지만 박정희는 노무현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노무현이 자나 깨나 증오하는 박정희는 그의 비교상대라기 보다 더욱 왜소해 보이게 하는 큰 풍경(파노라마)이다. 두 사람의 역사적 환경과 배경이 다른 것 또한 確然하다. 박정희가 가진 것이라곤 전무한 상태였지만 노무현에게는 아직 퍼줄 게 있다. 그 퍼줄 것이란 그가 증오하는 박정희가 장만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의 박정희 증오는 오히려 그의 패거리들 외 일반인들의 그에 대한 향수를 부추긴다.



박정희는 희망을 구체적으로 제시, 국민을 통합, 국력을 집중한 데 반하여, 노무현은 증오와 남의 탓, 말장난 –별놈의 철학- 의 羅列로 국민을 四分五裂, 국력을 이리 저리 찢어 발겨 탕진한다. 각 헌법기구는 搖動친다. 헌법과 헌법기구를 무시하여 탄핵을 당했다.



『그 동안(서울을 옮기는)에 서울을 자꾸 정비하고 건설하고 가꾸어나가면 현재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그런 서울이 된다, 이런 전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심리적으로 아주 대단히 차이가 있다. ...우리가 교통망을 건설하는데 있어서도 앞으로 철도를 어떻게 놓는다, 전철을 가설한다, 고속도로를 어떻게 건설한다 할 때도 .....계획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1천만, 1천100만 그럼 서울의 인구가 만원이 돼서 사람 못살 도시가 될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대책이 있고...』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시수도이전에 관한 1978년 연두기자회견 내용이다.



그의《임시수도》에 주목해야 한다. 적어도 서울시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게 했다. 수도를 임시로 옮겨 간다 하더라도 서울시민들에게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는 걸 잊지 안 했다.

그가 계산한 서울인구의 적정선은 800만, 200만~300만 초과선을 넘은 지 오래다. 서울인구과밀해소와 지방균형발전은 여전한 국가사안임에 틀림없다.



노무현은 지난 대선 당시 10%대의 충청민심을 약삭빠르게 看破, 수도이전을 공약, 희망을 팔았다. 언필칭 지방분권화와 지역균형발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지배계급을 바꾸기 위한 왕조시대에나 가능한,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는 천도다. 목표를 향한 동력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다. 천도철학(?)의 뿌리이고 內幕인 증오는 분열의 씨앗이다. 때맞춰 갈등을 부추긴다. 찬반세력간의 조정보다 間隙을 넓히는 데 앞장선다. 서울시민들의 절망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충청도를 부풀려 놓은 어리석음은 대한민국 국민합의문서인 헌법에 걸렸다. 이미 많은 국민혈세를 축냈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희망의 수레(Omnibus)를 바쳐야 한다. 노사모와 제 편 패거리들만 대한민국 국민인가? 그들의 희망, 지향처는 어딘가? 겨우 대한민국적화인가? 외국신문은 열우당의 4대입법을 북괴를 대신하는 행태로 지적한다.

구름 같은 사람들이 天子(=수레)에게 몰린다. 덕과 믿음을 찾아 몰리는 세상이치다. 우리관습에 영도력의 일차 조건은 덕 있는, 믿음 가는 언행이다. 덕과 믿음은 사람을 움직인다. 바로 권위다. 잦은 상말과 말장난은《대한민국 대통령권위》를 허물어 버렸다. 그를 지지하는 자들은 서민대통령이 권위시대를 청산했다고 말하지만 엄청난 시각차이다. 권위(authority)는 권력의 명령과, 억압의 수단을 빌리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권위를 갖춰야 한다. 김정일이 자랑하는 권위와 전혀 다른 관념차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 그들은 마침내 움직인다. 예나 이제나 평범한 이치이고, 走狗는 먹이를 주면 뛴다. 이는 고전이다.

호루라기 패거리집결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암호가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정치라면 조폭이다. 못 해먹겠다고 했지만 정말 못 해먹고 있다. 더 두었다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가경쟁력이 急降 曲線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조사기관이 잘 못 됐다는 탓 타령은 결국 나라를 거덜 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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