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槿惠 대통령-아베 신조 日총리 "對北정책 긴밀공조"

“韓日 양국,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희망”... 아베 총리

朴槿惠 대통령은 지난 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58세) 일본 총리와 취임 후 첫 전화통화를 갖고, 北核 문제 등 對北문제에 관해 긴밀한 공조를 이어나가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朴대통령 취임에 대해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인 한일 양국이 21세기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아베 총리는 自他가 공인하는 일본의 右派 정치인이다. 그는 계파 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이 되어 있는 일본 政界에서 출신부터가 眞骨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戰後 일본 政界의 오랜 실력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본명: 사토 노부스케) 前 총리이다. 기시는 야마구치 縣廳(현청)의 관리였던 사토 히데스키(佐藤秀助)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중학교 3학년 때 父親의 친척인 기시(岸) 가문의 代를 잇기 위해 양자로 들어갔다. 그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는 훗날 총리가 된 뒤 韓日국교정상화를 주도했다. 아베 총리의 父親은 1980년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이다. 그는 자민당 주류 후쿠다派의 보스로서 확실한 총리 후보였으나 1991년 췌장암으로 67세에 사망했다.

아베 총리는 1954년 기시 前 총리의 장녀 요코(洋子)와 아베 신타로 前 외상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인은 모리나가(森永) 제과의 마쓰자키 아키오(松崎昭雄) 前 사장의 장녀인 아키에(昭惠)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내 유력자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세이케이(成蹊大学)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의 서던 캘리포니아大(USC) 정치학과에서 2년간 수학했다. 1979년 미국에서 귀국해 고베 製鋼(제강)에서 3년 반 동안 일한 뒤, 1982년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父親의 비서관이 되어 정치수업을 받았다. 父親이 사망 이후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37세에 중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재임시절 내각관방 부장관에 취임했으며, 이후 출범한 2001년의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유임됐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을 수행하고,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북한과의) 안이한 타협은 안 된다”면서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03년 9월에는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되어 黨內 제도 개혁을 주도했으며,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10월31일 발족한 제3차 고이즈미 내각 에서는 관방장관에 취임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가 끝난 뒤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 투표에서 경쟁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郎) 외상 등을 큰 표 차로 제치고 제21대 총재가 되어 같은 해 9월26일 제90대 총리로 지명됐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발생 두 달 만에 제정된 일본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재연장 문제가 난항을 겪으면서 持病(위장질환)이 악화되어 2007년 9월12일 “내각총리대신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통해 사의를 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 사임 이후 지난 6년 동안 총리가 평균 일 년마다 바뀌는 등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2012년 12월16일 진행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정치인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은 2005년 3월24일 趙甲濟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明治維新(명치유신)의 志士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주로 인용했던 孟子(맹자)의 “성의를 다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 없다(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라고 밝힌 바 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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