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문성근: 김정일에게 조의(弔意) 표명했던 18대 대선 패배 책임자

시리즈/민주당 인물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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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문성근 상임고문은 자신이 조직한 左派단체 ‘국민의 명령’을 통해 ‘100만 民亂(민란)’을 선동하며, 反헌법적 통일방안인 ‘남북국가연합’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文 상임고문의 ‘100만 민란’의 목적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左派가 재집권하는 것이었다.

文 상임고문은 2010년 8월26일 ‘100만 민란 프로젝트 제안서’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暴擧(폭거)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며 “시민의 힘으로 민주, 진보진영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내자”고 주장했다. 이어 文 상임고문은 소위 민주·진보진영 통합정당의 비전으로 “서민 경제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南北관계의 파탄을 불러온 한나라당 정권을 2012년에 끝장내 다시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을 제시했다. 과거 노무현·김대중 정부 시절의 南北관계, 親北·從北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文 상임고문은 2011년 2월19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초기에 우리 100만 민란 운동에 대해 ‘2만을 넘지 못한다’, ‘3만 넘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등의 폄훼의 말이 많았다”고 말한 뒤, “다음 단계로 10만 회원을 달성하면 ‘백만민란의 소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文 상임고문의 ‘100만 민란 프로젝트’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前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 시장으로 당선 된 이후 활동이 주춤한 상태이다.
 
‘백만민란가’ 작곡-작사가는 김일성 찬양가 만든 윤민석
 
‘100만 민란’은 民亂歌(민란가)도 만들어 놓았다. 작사·작곡자는 민중가요 제작자인 윤민석이다. 尹 씨는 ‘fucking U.S.A’, ‘또라이 부시’, ‘反美반전가’, ‘反美출정가 2002’ 및 2004년 노무현 탄핵 당시 반대집회 主題歌(주제가) 역할을 해 온 ‘너흰 아니야’, ‘탄핵무효가’, ‘헌법 제1조’, ‘격문1’, ‘격문2’ 등을 만들었다. 尹 씨는 ‘100만 민란’ 홈페이지를 통해 “반역과 야만과 몰상식의 시대, 그 모진 칼바람 속에서도 늘 건강하셔서 승리의 날에 모두 함께 만나 뵐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라며 제작 취지를 밝혀 놓았다. 이 민란가는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새로운 민주정부 다시 세우자”는 가사로 되어 있다.

尹 씨는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해 김일성 찬양 노래를 작곡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1993년 3월 안기부가 발간한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수사白書(백서)》에 따르면, 윤민석은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의 노래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白書에는 自筆(자필)악보도 실려 있다.

독재자 김정일 죽자 弔意
 
문성근 상임고문은 2011년 12월2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政見(정견)발표에서 “내년 총선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단을 꾸려서 訪北(방북)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단 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다음 민주정부 5년 동안 남북 간 ‘국가연합’까지 성취해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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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文 상임고문이 주장한 ‘(남북한)국가연합’은 反헌법적 통일방안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본다. 북한 지역이 헌법 제3조(‘영토조항’)에 의해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기 때문이다. 헌법은 평화적 자유통일(제4조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원칙) 이외의 어떤 통일 방안도 不許(불허)하고 있다.

文 상임고문은 2003년 노무현 前 대통령의 親書(친서)를 가지고 비밀리에 訪北했던 적도 있다. 그는 2011년 6월16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2003년 가을 訪北했던 사실을 전하며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과 의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文 상임고문은 구체적인 친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방북하게 된 배경에 대해 “盧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는데, (임기) 초기에 對北송금 특검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하셨을 것”이라며 “(2002년)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저도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1989년에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과 남북통일방안에 대한 협의를 했었는데,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2000년 6·15 선언에 그대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文 상임고문은 또 “남북정상회담은 실제로는 임기 말(2007년 10월 4일)에 이뤄지기는 했지만 盧 대통령은 임기 말이 아니라 임기 초반이나 중반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원했던 것은 맞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 의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文 상임고문은 또 북한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하자 弔意(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19일 文 상임고문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후 12시30분 대한문에서 민주통합당 黨(당) 대표 출마선언에 앞서 다음과 같이 조의를 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상호번영을 위해 6ㆍ15선언과 10ㆍ4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신은 이후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文 상임고문은 2011년 19대 총선 당시 낙동강 벨트를 만든다면서 부산 북·강서을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선패배 책임 한명숙-이해찬-박지원-문재인-문성근 順”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는 2013년 4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黨대표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8대 대선 패배의 원인을 밝힌 <대선평가보고서>를 공개했다. 당시 평가위는 당내 설문조사를 통해 지도부의 대선패배 책임소재를 밝힌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평가위가 4·11 총선부터 18대 대선까지 민주당을 이끈 지도자들에 대해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정치적 책임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본 결과 4·11 총선 당시의 한명숙 前 대표의 경우 76.3점, 대선 당시의 이해찬 前 대표는 72.3점이었다. 박지원 前 원내대표는 67.2점, 문재인 前 대선 후보는 66.9점, 문성근 상임고문(前 대표대행)은 64.6점 순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文 상임고문의 부친은 1989년 密入北해 김일성을 만난 문익환 목사(1994년 사망)이다. 文 씨는 당시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文 씨는 利敵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의 결성준비위원장을 지냈다.

정리/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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