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悳祐(남덕우) 전 총리 별세

2년 전 南 전 총리는 "요사이 젊은이들과 이메일로 대화를 한다"고 했었다. 한국 現代史에 대하여 젊은이들이 질문을 해오면 직접 이메일로 설명을 해주는데, "의외로 명석하여 빨리 이해를 한다"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개발年代의 主役중 한 사람인 南悳祐(남덕우) 전 총리가 오늘 별세했다. 향년 89세였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며, 장례는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영결식이 거행된 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1년 10월 全經聯 50주년 기념식에서였다. 南 전 총리는 "요사이 젊은이들과 이메일로 대화를 한다"고 했다. 한국 現代史에 대하여 젊은이들이 질문을 해오면 직접 이메일로 설명을 해주는데, "의외로 명석하여 빨리 이해를 한다"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南 전 총리는 재무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로서 朴正熙 대통령을 보좌하였다. 그는 "석유파동 뒤의 1970년대는 주로 外資를 끌어들이는 일을 하였다"면서 朴 대통령을 시스템 운영의 鬼才(귀재)라고 평했다. 1972년 10월17일의 유신조치로 朴正熙 대통령은 '國力을 조직화하고 능률을 극대화하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소신으로 밀어붙였다. 경제발전을 위하여 정치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南 전 총리는, "박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하셔요. 정치는 내가 맡을 테니 안심하고 일하라고. 70년대의 정치 안정이 없었더라면 중화학공업 건설 등 획기적 발전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내가 "그 분의 생애와 역할을, 교육자, 군인, 혁명가, 행정가로 요약한다"고 했더니 南 전 총리도 동의하였다. 위대한 CEO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육정신이다. 李承晩, 朴正熙, 李秉喆은 본질적으로 교육자였다. 南 전 총리는 가장 성공한 교수 출신 관료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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