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광주사태 당시 부산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셨죠?
趙甲濟(이하 성명 생략): 네.
*사회부 기자로서 회사의 방침에 불복하고 광주에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불복했다기보다는 제가 그 당시에 釜馬(부마)사태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광주사태가 났기 때문에 직업적 호기심에 휴가를 내고 광주에 갔습니다.
*그래서 해고까지 되셨죠?
그것 때문에 해고되고, 그 뒤에 新軍部(신군부)가 해고된 걸 모르고 解職者(해직자) 명단에 넣어서 확인射殺(사살) 당했습니다.
‘북한군 개입說’이 나온 지 7년… 아무도 檢證하지 않았다!
*‘광주는 당시에 어땠다’라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제가 광주사태에 대해선 지금까지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5월23일부터 27일까지 취재를 했습니다. 시민들도 만나고 진압한 공수부대원들도 만났습니다. 정치적으로 그 상황을 관리했던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이것은 그 성격이 이미 確定(확정)된 사건입니다. 최근에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루머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계속 바로 잡는 과정을 통해 광주사태의 眞相(진상)이 확정되었다고 봅니다.
아까 TV조선에서 보도한 것도 광주사태를 정확하게 알리는 데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특종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탈북자들의 주장이 나온 지 7년이 됐습니다. 7년이 되었는데 단 한 명의 기자도 그 말을 檢證(검증)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이 여기까지 커졌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습니까? 광주에서 북한군을 보셨습니까?
광주사태가 마치 山中(산중)에서 일어난 것처럼 오해가 많아요. 이것은 수 백 명의 기자들이 보는 데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그리고 금남로라고 하는 무대가 있어요. 여긴 크지 않아요. 이런 데에서 일어난 사건이 감춰질 수가 없어요. 그동안 다섯 번의 국가적 조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황도 증거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간단합니다.
제가 처음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說’) 이야기를 들은 게 2008년인데, 들었을 때 첫 인상이 ‘황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는데 6년 동안 커졌습니다. 이런 정치적 사안이 반박되지 않으면, 거짓말은 진실이 됩니다. 반박해야 할 사람이 반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커졌습니다. 반박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 첫째 기자입니다. 기자들이 그 주장을 檢證(검증)했어야 해요. 오늘 墓域(묘역)에 가서 검증을 하니까 금방 드러났죠? 또 광주 희생자 분들도 반박하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계엄령 下에서 ‘600명 침투’는 ‘투명인간’ 아니면 불가능
*왜 희생자 유족들이나 희생자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나요? 너무 황당해서 그런가요?
그런 것 같아요. 국가기관이 여기에 대해 반박을 했어야 합니다. 누가 했어야 했느냐? 국방부가 했어야 합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600명의 특수부대가 흔적도 없이 나타나서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국방부는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 당시 계엄령下에서 철통같은 포위망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광주 주변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500~600명이든 광주로 들어갔다면 에워싸고 있던 군인들은 완전 허수아비였다는 이야기인데요?
1980년대 계엄령 下입니다. 계엄령 下에서는 간첩 한 사람이라도 上陸(상륙)하면 끝까지 추적해요. 그때 해안의 모래沙場(사장)을 깨끗하게 밀어서 발자국 하나만 있으면 온 부대가 動員(동원)이 됩니다. 그리고 광주는 또 다시 봉쇄가 됐죠. 二重(이중)봉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1·21사태 때 김신조 씨가 내려왔을 때, 총 34명이 내려왔습니다. 온 국군이 동원되어 그 사람을 잡는 과정에서 약 30명이 죽었습니다. 1968년 11월에 울진·삼척에 130명의 무장공비가 내려왔습니다. 이 사람들 잡는다고 그 숫자만큼 우리가 희생되었어요. 600명이면 그 다섯 배 아닙니까? 다섯 배 되는 사람이 내려왔는데 흔적도 없다? 이건 투명인간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 커졌느냐? 반박해야 할 사람이 반박하지 않아서입니다. 모든 루머에는 이것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주에서 191명이 죽은 것이 아니고 2000명이 죽었다고 나왔을 때, 그걸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여기서 우리가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왜 믿고 싶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군의 개입을 왜 믿고 싶어하는지 그 심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아마 여론조사를 하면, 지금도 북한군의 광주사태 개입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반 이상일 것 같아요. 왜 믿고 싶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죠. ‘어떻게 민간인이 총을 잡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민간인이) 교도소를 습격할 수 있냐?’고 이야기 합니다. 광주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군이 민간인들을 몽둥이로 打殺(타살)할 수 있느냐?’, ‘때려 죽일 수 있느냐?’, ‘帶劍(대검)으로 찔러 죽일 수 있느냐?’ 여기에 광주사태의 두 가지 큰 쟁점이 있어요. 시민이 본 광주사태, 공수부대가 본 광주사태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자들은 양쪽을 다 써주고 종합이 되는 그런 상황이 이미 다섯 번의 조사를 통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요. 어느 한 쪽만 봅니다. 저는 다행히 현장에 가서 시민들을 취재했고, 공수부대를 취재했어요. 제가 공수부대원들에게 물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이) 경상도 사람이었습니까?
호남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처음 투입된 부대가 제7공수여단인데 그게 전북에 있었어요. 자연히 호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게(광주사태) 지역감정적 구도를 갖고 있다가 요새는 약간 이념적 구도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루머가 오래가는 것입니다.
사망자 수도 정부가 공식발표한 191명이 맞다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과거와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 ‘2000명이 죽었다’는 說이 확산될 때에는 ‘군인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전두환 정부에 대한 反感(반감)이 있었죠. 反感이 있었기 때문에 2000명이… 그래서 <월간조선>이 혼이 났습니다. <월간조선> 1985년 7월호가 ‘정부에서 발표한 191명의 숫자가 맞다’고 했더니 광주에서 不買(불매)운동을 당했습니다. 결국은 <월간조선>의 주장이 맞았습니다. <조선일보>·<월간조선>, 이번에 TV조선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봅니다만, 광주사태에 관한 보도를 가장 정확하게 했습니다. 정확하게 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럼 왜 그런 주장을 믿고 싶어하느냐? 지금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광주에 대한 어떤 불만…
*광주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있을 수 있죠. 너무 聖域(성역)시 한다든지요. 최근에 5·18기념식에서 있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것에 대한 불만, 또 호남 지역에 대한 불만, 이런 게 뒤섞여 있다고 저는 봅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민간인이 총을 들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한 불만입니다. 이런 걸 가지고 북한군과 연결시키니까 (사람들은) ‘아, 그러면 그렇지. 북한군이기 때문에 교도소를 습격했을꺼야’라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그런데 루머가 너무 확대재생산 되어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고, 이게 인터넷에서 돌아다녔지 않습니까? 인터넷에 돌아다녔는데 기자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마치 그게 사실인 것처럼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먹혀들었죠. 그런데 TV조선 기자가 어제 作心(작심)을 하고 취재를 하니까 하루 만에 판가름이 났습니다. 더구나 작년에 국정원이 별도로 조사를 했습니다. 물론 비공개로 조사를 했는데…
언론과 국방부의 방관이 루머 확산에 一助
*궁금한게 탈북자들은 왜 자꾸 ‘북한군 개입說’을 이야기 할까요?
그건 남의 일이기 때문에 추측할 뿐인데, 탈북자들의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에요. 그 분들 생활이 아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탈북해서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매우 조심해야 됩니다. 어떤 쟁점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사실관계에 대한 合意(합의)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진실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증거능력인 거 아닙니까? 저런 이야기를 상식에 비추어보면 간단하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언론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전부 기자의 책임입니까?
언론의 책임이고요. 언론이 이것을 사실과 구별했어야 합니다. 우리 국방부가 이 정도까지 오기 전에 이미 책임있는 이야기를 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 피하다 보니까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필하지 않았습니까?
광주사태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날조·조작
*이번 사건의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광주사태는 지금도 살아있는 사건입니다. 이것을 어느 쪽이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광주 문제는 自重自愛(자중자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左든 右든 누구든지 정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고 하면 ‘2000명 사망說’도 거짓말로 밝혀지고 ‘북한군의 개입說’도 거짓말로 밝혀집니다. 그래서 신념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고요.
그 다음에 지금까지 광주가 안고 있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증오심도 있고, 분열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도 있고요. 다 종합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광주라는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분열과 증오로 이용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 광주사태 때 군인 23명이 죽었습니다. 경찰관 네 명이 죽었습니다.
제가 제일 분노하는 게 하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북한군에 의한 광주사태說’이라는 황당한 루머보다 더 나빴던 게 2007년에 나온 ‘화려한 휴가’란 영화입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造作(조작)입니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엎드려 쏴’ 자세로 누구의 명령을 받고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하는 장면입니다. 꼭 나치 친위대원이 유태인 학살하듯이 하이라이트로 했어요. 그런 장면은 없었습니다. 학살 장면은 없었어요. 더구나 그 영화를 시작할 때 앞에 ‘이 영화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영화를 1000만 명이 봤느냐? 또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도 그걸 보면서 여러 가지 동정적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루머가 확산된 것도 그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가지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정리/趙成豪 조갑제닷컴 기자
*방송 다시보기(3분 미리보기, 전체 영상보기는 유료)
http://tv.chosun.com/sisa/pan/sub/menu_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