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刊] 趙甲濟의 광주사태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33년 이야기

趙甲濟의 광주사태

趙甲濟(조갑제)

464쪽 | 신국판(15*22.5cm) | 15,000원 | 2013년 6월3일 출간 | 978-89-92421-90-4 03340
정치사회>정치/외교>정치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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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4일(火)부터 전화주문(02-722-9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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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조갑제의 30년 이야기

광주사태가 발생한 지 33년, 이 사건을 둘러싼 온갖 추측과 억측은 끊이지 않는다. 6공화국 이후 출범한 정부들은 광주사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그 결과 많은 의혹들이 해소됐지만 ‘북한군 개입說’이 또 나왔다.

趙甲濟 기자는 광주사태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얼마 안 되는 경상도 기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후 ‘시민군’과 ‘계엄군(공수부대)’을 모두 취재해 광주사태를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분석해왔다. 광주사태의 全貌(전모)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최근 불거진 루머에 종지부를 찍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趙甲濟의 광주사태》(464페이지, 1만5000원, 조갑제닷컴)를 출간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진실 위에 正義를 세워야지, 正義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하면 자기 부정으로 自滅(자멸)한다”고 경고한다. 이념과 정파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오직 사실에만 기초해 광주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군 개입설’을 믿고 싶은 사람들

저자는 일부 사람들이 盲信(맹신)하는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說’을 사실에 근거해 반박한다. 趙甲濟 기자는 계엄령下의 광주는 市界(시계)가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어 있어 수백 명에 달하는 북한군이 침투할 수 없었으며, 이는 ‘투명인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광주 시민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2000명 사망說’ 역시 사실이 아니며, 정부 측이 발표한 ‘191명 사망(注: 광주사태 직후 계엄사가 발표한 사망자 수. 1995년 7월 서울지검은 193명으로 발표)’이 정확하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는 이런 논란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속성을 예로 든다. 이런 사람들은 記者(기자)들의 취재자료나 정부가 발표한 통계는 무시하고, 자신의 이념이나 주관적 인식에 진실을 꿰어 맞추려는 특징이 있다. 趙甲濟 기자는 “狂信者(광신자)들을 이기려면 우리는 狂信者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조지 오웰의 警句(경구)를 인용하며 이들의 覺醒(각성)을 촉구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조작

이 책에는 광주사태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사실 왜곡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화려한 휴가’는 2007년 개봉 당시 73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與野(여야)를 막론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격찬했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해 극화했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하지만 계엄군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무릎 쏴’ 자세로 亂射(난사)하는 장면 등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영화는 공수부대를 ‘살인기계’로, 시민들을 ‘영웅’ 또는 ‘천사’로 대비시키며 反軍감정을 자극했다. 이 책은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이었던 安富雄(안부웅) 씨의 증언과 검찰 수사 발표문을 통해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민군이 저지른 계엄군과 경찰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 책에는 광주에 투입되었던 대대장들, 戰警(전경), 시민군, 屍身(시신)을 수습했던 공무원의 手記(수기)와 ‘5·18 수사보고서 全文(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 刊)’이 실려 있어 광주사태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다.


| 책 속으로 |

문제는 이렇게 황당한 주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2000명 사망설이 퍼진 것이나 북한군 개입설이 퍼진 배경엔 믿고 싶어 하는 감정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2000명 사망說을, 좌파나 호남에 反感(반감)을 가진 이들은 북한군 개입설로 기울었다. 광주사태를 聖域視(성역시)하여 일체의 비판을 거부하는 데 대한 반감,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반발, 특히 좌파 세력이 광주사태를 악용하는 데 대한 거부감, 선거 때의 호남 몰표에 대한 경계심, ‘어떻게 민간인이 총을 들고 교도소를 습격할 수 있나’라는 의문 같은 게 터무니없는 북한군 개입설의 확산을 도왔다.
-34페이지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했다’는 자막을 내어보냈다. 집단발포 장면은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造作(조작)한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없는 내용을 극화’한 것이다. 첫째, 영화에서는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고 탄창을 M16 소총에 일제히 끼운 뒤 무릎 쏴 자세를 취한 다음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히 사격한다.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가장 정밀하게 조사했던 1995년의 서울지검과 국방부 검찰부도 사격명령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79~80페이지


| 차례 |

머리글\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33년 이야기

1\북한군은 오지 않았다!
2\영화 ‘화려한 휴가’의 ‘화려한 造作’
3\공수부대의 광주사태
4\全斗煥 단죄는 正義를 구현했나?
5\공수 3여단 15대대장 朴琮圭 手記
6\최초 투입 7여단 현장 지휘관들의 手記·證言
7\총을 들었던 ‘시민군’ 崔英哲의 증언
8\屍身 수습 공무원의 증언
9\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5·18수사보고서(全文)

| 저자· 趙甲濟 |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전 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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