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란 무엇인가

[철이와 순이 이야기]

철이와 순이가 시험을 쳤다. 철이는 10점을 맞고 순이는 90점을 맞았다. 그런데 철이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순이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철이 엄마 아빠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닌다.
'우리 애는 엄청 어려운 문제를 맞췄대요!'
순이 엄마 아빠는 아무 소리도 않았다. 남이 물으면 마지못해 이렇게 말한다.
'제일 어려운 문제를 틀렸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철이를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과자를 사 주고, 순이를 만나면 슬슬 피하거나 못 본 척한다.

순이 언니가 조용히 물어봤다.
'얘, 순이야. 무슨 문제를 틀렸니?'
'언니야, 사실은 그게...'
'괜찮아, 비밀로 할게.'
'받아쓰기인데, '철이 아버지는 영등포의 왕이다.'를 쓰는 거였어. 울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내가 차마 그걸 어떻게 써?'

철이 아버지는 영등포의 조폭 두목이고 순이 아버지는 영등포의 큰 식당 주인이다. 순이 아버지는 철이 아버지가 한 번씩 찾아오면, 왕으로 모신다. 두툼한 봉투도 꼬박꼬박 바친다. 철이네의 대궐 같은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에는 왕 글씨로 이렇게 써 있다.
'철이 아버지는 영등포의 왕이다.'

------------------------------------

[반문(反問)의 비수]

북한인권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비분강개하면, 이윽고 ‘너도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졸개가 아니라면 양심의 싹이 파릇파릇 돋아나서 최소한 미국의 음모니, 반공세력의 마지막 발악이니’, 하는 해괴망측한 말은 더 이상 않고,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순간, 묵묵히 긍정인지 부정인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상대방이 다짜고짜 이렇게 비수를 던진다.

“그런데요, 도대체 인권이 뭡니까?”

이 반문의 비수는 세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전형적인 적반하장의 비수
둘째, 양비론(兩非論)으로 회의적 반응을 유도하는 비수
셋째, 나름대로 철저한 사상의 무기를 들고 골짜기 양옆의 숲에서 쥐 죽은 듯이 싸늘한 미소를 띠고 기다리는 적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맨 주먹으로 짙은 어둠 속을 전등 하나 없이 두 눈만 반짝이면서 정신없이 달려가는 순진무구한 인도주의자에 대한 염려의 비수

어느 쪽이든 체계적인 이론의 갑옷을 입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더라도 단 한 번의 기습 공격에 깊은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백만의 인간도 서슴없이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인민민주주의교 신도들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어서 이론 무장을 전혀 않고 그냥 뜨거운 가슴을 부둥켜안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동분서주하는 인도주의자들이 마침내 인권의 정상에 올라 득의만면할 때, 마왕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칠흑같이 검은 옷을 입고 불쑥 나타나 승리에 도취한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며 선혈이 뚝뚝 듣는 이론의 칼을 들이댄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교 신도는 자신이 백 번 옳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우물쭈물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살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

[승리에 도취한 ‘원쑤’을 노리는 저들]

이제 대세는 기울었다고 휴머니스트들이 승리의 깃발을 정상에 꽂으려는 그 순간까지, 아니 깃발을 꽂고 만세삼창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까지도, 저들은 은인자중하면서 온갖 질문을 다 생각해 내어 거기에 대한 '정답'을 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하여 ‘문제은행의 난수표’에 빼곡하게 적어둔다.

이윽고 '원쑤'가 승리를 만끽하려는 절정의 순간에 단 한 수로 급소를 제압해서 그가 배를 움켜쥐고 눈만 끔벅끔벅하면, 저들은 한여름 비온 뒤의 잡초처럼 순식간에 지상으로 겁나게 솟아올라 전국에 퍼져 있는 무시무시한 점 조직을 동원한다. 저들은 접선 장소에 은밀히 만나서 눈 깜짝할 새에 떼를 지은 다음 각개격파로 월등히 숫자가 많은 ‘원쑤들’을 한 명 한 명 사정없이 제거한다. 우물쭈물, 설마설마, 하다 보면 어느새 TV에선 시그널 뮤직으로 ‘적기가’의 멜로디가 태연히 흘러나오고, 여기저기 ‘붉은 기’가 빨간 스카프처럼 위장하여 나부끼고, 영화에서는 월남한 골수 반공주의자가 팔을 힘차게 내저으며 대통령 찬가로 착각하고 '수령님 찬가'를 부른다. 세상이 순식간에 뒤집힌 것이다.

[반전(反轉의 까닭]

왜 이렇게 대세가 급격히 기울었을까? 그들의 수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 단계는 명분을 선점하여 교두보를 마련한다.
민주, 진보, 평등, 민족, 평화, 자주, 개혁 등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선점하여, 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와는 정반대로 쓰면서 이를 집요하게 순수한 젊은이들과 게을러서 가난해진 불평불만자들의 무의식에 주입시킨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부화뇌동하여 계층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우르르 몰려들어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최면을 건다.

두 번째 단계는 ‘원쑤’가 무장해제하길 기다렸다가 한 명씩 공격 목표를 정해서 벌떼처럼 공격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당연히 이긴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세계적 대세라고 생각하고, 절로 좌익들이 안개처럼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린다. 때가 무르익으면 교묘하게 저들이 주장하는 바에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한다. ‘바보상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한다. 열심히 대한민국을 욕하고 저주하게 유도한다.

한국에선 자유민주주의자들도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전제 조건을 갖고 있으니, 출발점에서부터 밀린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덩달아 한국은 친일파, 군부독재, 미국 식민지(군대가 주둔하니까), 정경유착, 천민 자본주의, 불평등, 부정부패 등으로 매도한다. 그 사이 자칭 진보세력과 민족 세력은 밤이면 북한은 독립운동한 사람이 세운 나라, 일제청산한 나라, 정통성의 나라, 주체의 나라, 자주 국가,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세금이 없는 나라, 자립 경제의 나라, 평등의 나라 등으로 치켜세운다. 낮에는 이심전심 그런 암묵적 동의를 공유한다. 골수들은 한국은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보고 도리어 북한은 정통성 있는 합법적 국가로 본다.

미국 박사만 해도 3만 명이 넘지만, 한국의 지식인은 1인당 실질국민소득(구매력 기준) 2만 불과 공기처럼 넘치는 자유와 거의 서구 수준의 소득 분배(지니계수 0.320~0.350)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을 당당히 긍정하고, 1인당 실질국민소득 1백 불과 보석처럼 희귀한 자유와 조선시대보다 더한 불평등을 조금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마적 집단 같은 북한을 가차없이 부정할 고유한 새로운 사상이 없다. 서양의 합리주의, 중국의 중화사상, 일본의 실용주의, 북구의 사회주의, 동구의 공산주의,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무분별하게 다 끌어왔지만, 그것을 앵무새처럼 외기만 했지 그것을 이해하고 비판한 후에 취사선택하고 분석하고 종합하여 새로운 이론을 창제하여, 우리 현대사를 매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바로 이 약점을 저들은 노린 것이다.

저들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전통과 맥락이 닿는 나름의 고유한 사상이 없는 대한민국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순진한 대학생과
권력에 환장한 정치세력과
정당 못지 않은 정치세력으로 변질된 여러 시민단체와
세 번 연속 정권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덕분에 군대나 경찰보다 막강해진 노조를
‘주체사상’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수십 년 공을 들여 부지불식간에 교묘하고 은밀하게 야금야금 접수한 다음,
이윽고는 그 사상의 혼란 상태 또는 진공 상태를 파고들어 민주화의 열기와 그 쟁취에 도취하여 10년이 지나도록 갈지자걸음을 걷는 대한민국을,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2천 년 동안 전세계의 부 가운데 30%를 차지했던 중국보다 열 배 잘 살고 중국보다 열 배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거의 무혈점령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래서 90점짜리 순이가 10점짜리 철이의 숨쉴 틈 없는 공격에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인권은 생존권 더하기 행복 추구권]

본론에 들어가서,
인권은 크게 생존권과 행복 추구권으로 나눠진다.
그런데 생존권을 위해서는 행복 추구권을 일부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빌미로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또는 서남 아시아처럼 도리어 민중을 호도하고 착취하는 세력이 독버섯처럼 자라기 때문이다. 생존권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최고의 행복은 배불리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 이를 성취한 나라는 거의 없다. 이른바 아시아의 4룡과 등소평 이후의 중국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이걸 겨우 숨쉴 만한 상태라고 해서 소강(小康)이라고 한다. 진작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택한 말레이와 태국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앞서 있다.

행복 추구권은 차별 없이 교육받을 권리, 법에 따라 세금을 내고 사유재산을 보호받을 권리, 법에 의해 정당하고 투명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 정치에 참여할 권리, 신나게 돈을 벌고 마음대로 소비할 권리; 거주이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선전선동, 중상모략 등 어떤 방식을 쓰든 표만 얻으면 단숨에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인 정치 자유이자 그 권리이다. 정치가와 권력을 사모하는 자들이 속셈을 숨기거나 자기 최면을 걸어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 확신하고서 이를 집중적으로 퍼뜨린 탓이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져 대한민국의 모든 성취를, 빛나는 인권 향상을 철저히 무시하고 원균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듯이 대한민국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을 일삼았다.

그런데 아시아 4룡 특히 우리나라는 200년 민주주의 전통이 있는 서구에야 비할 바 없었지만, 그 어떤 후진국보다 이 정치적 권리도 많이 누렸다. 어느 때든 야당이 거의 여당과 의석 수를 반반씩 나눠가졌으니까.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한 마디로 독재 시대라고 매도되는 그 때 당시도 정치적 민주주의가 싱가포르나 대만을 월등히 능가했었다. 생존권과 행복 추구권이, 인권이, 인간개발지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괄목상대로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이코노미스트지(2004. 11. 18.)에 따르면, ‘삶의 질’이, 소득?건강?실업률?기후?정치적 안정성?직업적 안정성?남녀 평등?자유?가족 가치?지역공동체 등의 항목을 고루 반영한 ‘삶의 질’이 111개국 중에서 싱가포르 11위, 미국 13위에는 많이 뒤떨어지지만, 프랑스 25위, 독일 26위, 영국 29위와 비슷한 수준인 30위를 차지한다. 이것이 일조일석에 이뤄졌을 리가 만무하다.

[수치화한 인권]

인권이 뭐냐고 묻는 자들은 불의의 질문에 상대방이 당황할 것을 알고 기선을 제압한다. 혹, 뭐라고 대답하면, 좋다, 그러면
미국은 인권 문제가 없냐,
한국은 인권 침해가 없냐,
독재 시대의 인권 탄압은 또 무엇이냐, 등으로 숨쉴 틈 없이 공격의 고삐를 잡아챈다.

10점짜리는 잘한 것만 떠들고 90점짜리는 못한 것만 까발린다. 그래서 마치 10점짜리가 90점짜리보다 잘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양비론으로 유인하여 회의의 늪에 빠뜨린다.

인권도 점수가 있다.
미국이 90점이었다면 한국은 경제개발 시대에도 70점 정도 되었다고 본다. 지금은 75점 정도. 더 악화된 것도 많다. 지금 일반 사람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차마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통화감청이 무차별로 늘어나고 계좌추적도 마구잡이로 이뤄진다. 김일성 김정일은 아무리 찬양해도 괜찮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택시 안이나 술집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감히 바른 소리 쓴 소리를 내뱉으면 당장 ‘호랑이보다 무서운 순사’도 잡아간다.

김영삼 정권 이래 현실로 나타난 바대로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이미 다른 나라에서 70년 이상 실험해서 다 검증이 된 사실이거니와, 거꾸로 빈민층이 광범위하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노태우 정부 시절만 해도 취직 걱정한 젊은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었던가? 전기요금을 못 낸 가구가 몇 가구나 되었나? 행복 추구권에 훨 앞서는 생존권이 당장 위협받는다는 말이다.

북한은?
첫째, 생존권이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전 주민의 약 절반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둘째, 행복 추구권은 거의 빵점이다.
이 둘을 합쳐서 우리가 75점이라면 북한은 10점도 안 된다. 중국은 모택동 황제 시절에는 10점도 안 되었지만, 등소평 아저씨 이후 급격히 신장되어 60점 정도 된다고 본다. 우리는 유신 시대에도 야당을 거의 반이나 허용했지만, 중국은 아직도 1당 독재이기 때문에 야당 국회의원은 13억 인구 중에 단 한 명도 없다. 70점이 될 리가 없다.

그러면 북한의 구체적인 인권 실태는 어떠한가?
이 경우에는 미국에서 발표한 것은 잘 믿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미국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마련한 UN의 인권 실태 조사와 대북 인권 결의안을 보여 주면 된다. 거기엔 북한만이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 쿠바, 수단 등의 예도 넘치도록, 독사모(독재를 사모하는 사람들)가 아니라면 가슴이 절로 미어지도록 자세히 담겨 있다. 그에 대한 반론도 공정하게 실려 있다.
(2004. 11. 20.)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