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은 기로에 서 있다

386은 기로에 서 있다. (글쓴이: 홍진표)


일본에는 지난 10여년의 ‘잃어버린 세월’이 있다면 중국에는 ‘잃어버린 세대’가 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의 홍위병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전국적으로 최고 1,100만에 달했던 홍위병들은 초기 두달 북경시에서만 1,000여명을 폭행하여 죽였다. “울며 자비를 구하는 흰 머리의 늙은 수학 선생님, 얼굴에 검은 페인트 칠을 당한 중년의 여교장, 배신자로 낙인 찍혀 거리를 끌려다니는 전 인민해방군 사령관 등을 구경하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몰랐다.” 최근 번역된 홍위병 출신 자서전의 한 구절이다.
지금 50대인 이들 홍위병 세대들은 대체로 하층민으로 살아가면서 말 그대로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청년기에 몰려다니며 주자파(走資派) 타도활동을 벌이고 결국 농촌으로 하방하여 공부를 하지 못했다. 지적활동에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1981년 중국공산당은 ‘건국 이래의 역사적 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은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극좌적 오류라고 규정하였다. 길게는 청년기의 10년이 잘못된 삶이었다는 당의 결정은 홍위병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한국의 386세대들은 지난 소련동구의 붕괴를 계기로 한차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맑스레닌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겪는 당연한 진통이었으나 극소수의 공개적인 자기비판이 있었을 뿐 대부분 치열한 자기 검토 없이 적당히 넘어가고 말았다. 사회적 압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386들은 법적 제약과 국민의 반공정서를 피해 밀실에서는 맑스주의를 신봉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민주화만을 외쳤다. 더구나 6월항쟁을 통해 군사정권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이른바 ‘좌경용공’은 정권의 악의적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적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역시 집단은 도덕성이 없다는 말처럼 운동권을 떠나는 자는 속출했으나 진정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져보는 풍조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맑스주의는 결코 틀림이 없지만 그 현실 적용이 잘못된 것이라는 변명이 난무했고 심지어 문화혁명을 찬양한 것으로 유명한 리영희교수는 사회주의라는 진리를 수용하지 못한 인간의 천박한 이기심(?)에 공격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386세대에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북한이라는 덫이다. 김정일정권 주도하의 개혁개방이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대북포용정책이 시작되면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무제한적인 관용은 미덕이 되어버렸다. 386세대는 대북포용정책의 가장 열렬한 지지기반이 되었으며, 어느새 북한주민의 참혹한 삶을 외면하고 독재자를 감싸는 도덕적 타락에 빠져버렸다. 이처럼 지난 수년간 추진된 대북포용정책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한국의 좌파세력과 북한정권은 운명공동체로 묶여버린 것이다.
이들의 바람대로 김정일정권이 핵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성공시킨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친북세력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 김정일체제의 온갖 만행이 밝혀질 경우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처럼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라는 질문앞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북한쇼크는 소련붕괴와 달리 친북세력들에게 도피처나 변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친북의 너무 분명한 증거들이 존재하고, 정치인들은 이를 주제로 표를 얻고 경쟁세력을 이른바 수구냉전파로 몰아붙이는 정쟁을 벌여왔다. 문제는 정치권의 386뿐만 아니라 386세대의 상당수가 이런 사고에 빠져 살아왔다는 것이다.
386세대는 80년대에 수천명이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자농민속으로 들어가는 엄청난 열정을 보여주었고 이는 세계 공산주의운동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 열정이 공동체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되느냐 아니면 잃어버린 세대로 추락하느냐의 준엄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