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것의 엄숙함



민주투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대체로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正義가 서지 않는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취지의 막말도 한다. 그들은 다수 국민들이 반대한, 100조가 들지 200조가 들지도 모르는 遷都를 헌재의 위헌 판결 이후에도 단념하지 않고 있다. 도롱룡을 위해서 고속전철 공사도 중단시켜 수천억원 규모의 손해를 끼쳤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4대악법 통과에는 목숨을 건다. 공산당 활동의 자유화를 몰고올 국보법 폐지, 학원의 좌경화를 구조화할 私學 규제, 김정일 비판의 자유를 저해할 조선 동아일보 탄압, 국가정통성을 훼손할 대한민국의 과거캐기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것을 어렵게만 할 뿐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이를 경제 복지 안보 자유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고 인간의 삶, 또는 人生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먹고사는 것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은 인간과 인생을 모독하고 경멸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人生의 집합체인 역사도 우습게 본다. 이 자들은 인간애가 없으므로 역사를 바로세운다면서 역사를 파괴한다. 인간의 먹고사는 문제를 경멸하는 자는 인간을 경멸하는 자이다. 그런 자들이 내세우는 개혁 민주 평등 진보는 전부 가짜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이 엄숙한 주제를 우습게 보는 자들이 개혁에 성공한 예는 역사상 한번도 없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박정희의 근대화 혁명은 '잘 살아보세'라는 쉬운 말로 요약되었다. 민족사상 가장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은 주체사상, 진보, 개혁, 평등, 통일이란 현란한 말장난으로 일관했다.
日帝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욕하고 박정희 시대를 오욕의 시대라고 저주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암흑과 오욕의 시대에도 인간은 먹고 살았으며 행복했고 생명들을 생산했고 그 생명들이 어른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우고 근대화했으며 민주화도 했다. 한 시대를 몽땅 부정하는 것은 역사의 파괴이자 단절이며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경멸이고 결국은 그 자신의 부정인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을 주제로 하지 않았던 개혁은 모두 실패했다. 그 이유는 인간애가 결핍된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을 냉소적으로 보는 인간은 개혁 무자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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