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3국간 화해의 조건과 방법에 관한 연구

현재 한국정부는 과거 죄 많은 역사에 대하여 반성하기를 거부하는 일본정부와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한국국제정치학회 부산하계학술대회 발표논문• 일시:8.23.(금)~24.(토) 장소:부산 벡스코

머리말
현재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한중일 3국은 근래에 와서도 거의 좋다고 볼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 무척 애를 써왔다. 그러나 한국에 적대해온 북한과 피로 맺은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大國이기 때문에 어렵고 불편한 부면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근 북한의 핵무장과 핵실험 문제로 인하여 北中간의 관계가 냉각되었다고는 하지만 중국이 가장 가까웠던 동맹국을 어떻게 완전히 내버리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한국측으로서는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내쳐버려 한국측에게 내맡겨주기를 바라겠지만 그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 같다.
한국과 일본도 근래에 와서 관계가 더욱 악화된 상태이다. 한일관계는 이승만정권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좋지 못한 상태였다. 박정희・전두환정권에 와서는 經濟지원으로 협조관계로 진입하였지만 노태우정권이 북방외교에 주력하게 되면서 일본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면이 없지 않았다. 김대중정권부터는 크게 개선될 조짐도 보였으나 노무현・이명박 정권하에서는 다시 냉각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쟁점으로 올라 있는 것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이다. 일제하 종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감정대립도 다시 거론되고 있으나 일본 보수정권은 침략사실을 부인하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고집하여 한국의 대일감정은 다시 악화되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이 중국과 일본의 관계인 것 같다. 중국은 1894년 淸日戰爭에 패배하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영토를 빼앗겼다. 그 후부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신은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잠자는 사자’로 알려진 중국이 일본같이 표독한 늑대에게 패하고 망신을 당하고 나니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들도 서로가 눈치를 봐가며 중국에서 보다 좋은 이권을 차지하려고 血眼이 되어 있었다.
중국의 수많은 미래지도자들이 나라를 일으키는 법을 배우고자 일본으로 찾아 들어갔다. 孫文 蔣介石 등도 한때 일본유학생들이었다. 1912년 중국은 辛亥革命(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국민당정부가 들어섰지만 國共(국공)세력 대립을 거쳐서 중국공산당 주도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일본은 淸나라가 멸망한 후 아시아의 盟主(맹주)자리에서 서양세를 몰아내어 아시아 지배를 꿈꾸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제2차 대전에서 패전함으로써 그 꿈도 좌절되고 말았다.
근래에 와서는 중국이 급성장하여 미국과 맞먹은 G-2국가로 올라서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놓고 맞붙게 되자 양국은 다시 긴장관계로 들어섰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서 무력대치 상태를 계속하고 있다. 양국은 외부세계의 눈치를 보아가며 최악의 상태로 가지 않으려고 서로가 힘들여 대립감정을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1.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 설립이 가능할까?

21세기에 들어서 동아시아 지역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통합은 중요성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어 굳이 새삼스러운 논증이 불필요할 정도이다. 이 지역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의 최강국들이 모여 있으며 상호 대치한 가운데 끊임없이 상호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 국가이익의 충돌을 방지하려면 당연히 유럽에 EU(유럽공동체)와 유사한 아시아태평양공동체라는 국제기구가 설립되고 가동됨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그 필요성에 관한 논의만 분분할 뿐 실제로 그런 지역공동체가 생겨나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과 일본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2008년 일본의 하토야마 수상이 동아시아공동체안을 다시 제안하였다. 하토야마 수상이 사임한 후에 그의 후임인 간 나우또 수상이 하토야마의 제안을 뒤풀이하면서 한중일 3국협력위원회 설립안을 관철하였다. 한중일 3국의 외무장관이 그 제안에 동의하면서 2010년 그 본부를 한국 외교부의 한 부서로 설치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한중일3국 협력사무국’은 개점휴업 상태를 계속하다가 일년 후 설치를 기리는 공식모임과 학술세미나가 서울에서 열었으며, 그 1년 후부터 다시 한번 형식적인 기념행사를 하는 데 그친 것이다.
이처럼 지역공동체를 설치해야 한다는 제안은 있었으나 각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움직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관련된 아무런 제안조차도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아무런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어가는 추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의 독도 점유를 계속 문제 삼아 왔다. 그러다가 한국 대통령이 2012년 독도방문으로 일본을 자극하였다. 그 후에도 한국 언론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나 주장을 빈번하게 보도해 왔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개정하지 않은 데 대하여 격렬하게 공격을 계속 해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日本 政界의 보수화 회귀를 노골적으로 문제 삼는 등 한국과 일본간의 국민감정은 계속 악화 격앙 일로에 들어서 왔던 것이다.

중국도 일본이 중국침략을 미화하며 일본제국주의의 죄업을 역사교과서에 사실대로 서술하지 않는 점, 또 일본의 보수계 정치인들의 妄言(망언) 등에 흥분하며 반일폭력 시위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적대행위가 일어난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선박들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여 그로 인하여 일본과 중국해군이 무력대치 하는 위급상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관계는 극악의 사태로 악화되어 왔던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설립할 목적으로 탄생한 한국 중국 일본의 3국협력위원회가 설치되었음에도 순조롭게 가동되지 못해온 이유도 밝혀져야 한다. 동시에 그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의 악화가 지역공동체 설립을 단념하는 좋은 구실이 되지 못한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설립하려는 이유가 애초에 이 지역의 국제관계를 개선하여 평화롭고 순조로운 지역평화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 지역국가간의 관계악화로 인하여 지역공동체 기구의 설립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무사안일을 좋아하며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해당 부서 공무원들의 구실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시아 국제관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理想(이상)과 當爲(당위), 아시아 국제관계의 악화와 긴장고조라는 現實과 實際간의 괴리를 마주하며 궁리의 머리를 짜내었던 것이다. 한편에는 이상과 당위 또 한편에는 현실과 실제, 이것이 우리 인간이 안고 사는 人生苦의 실상이며 또 국제정치연구의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우리가 누구인가?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에 놀라거나 겁내며 도망치는 사람들이라면 오늘의 한국인들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러한 현실에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려는 것이 우리들 한민족의 소임이 아니던가?
동아시아공동체가 되든 아시아태평양공동체가 되든 이 지역기구를 창설하려면 중국 일본, 남・북한, 미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대양주의 여러 나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처음부터 참여하고 협의에 참가하려면 일이 너무 어렵고 번거로워 일 추진이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한중일 세 나라 대표가 모여서 예비적으로 협의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3년 전에 3국협력위원회가 출범한 것이 이 때문이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국가의 공식대표가 모여서 협의하는 지역공동체를 위한 트랙Ⅰ 어프로치 보다는 우선 민간단체의 대표들이 모여서 일을 추진하는 트랙II 어프로치에 의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관료는 국가의 모든 연관과 다른 부서의 입장까지도 고려해야 하므로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을 기하게 된다. 그러자면 자연 몸가짐이 무겁고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반면에 민간단체의 대표자들은 타국인들과 교류 협력 거래를 하는 데도 효과적이며 또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利點(이점)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외교전략을 구상하고자 한다. 아시아 각국의 공식기구가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출현할 수 있게 되려면 첫째, 동아시아의 관련국가를 대신하여 한국 중국과 일본 등 3국의 민간단체로 구성되는 국제적 시민운동단체 연합체를 구성해야 한다. 둘째, 동아시아공동체의 결성을 목적으로 한중일 3국은 자국내에 민간단체 협의회를 조직화하고 우선적으로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촉진하는 여론조성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나 과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아무도 회피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셋째, 각 나라의 민간 亞太共시민운동단체는 우선 이웃 나라와의 교류 협력⃚ 지원업무를 가능한 범위내에서 추진하여 나감으로써 실천의 경험과 실적을 쌓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2. 亞太共국제시민운동의 성격과 그 활동목표

(1)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설립을 목적으로 하는 아태공시민운동단체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공영에 기여하는 自利利他의 시민단체이다. 그 내용인즉 자선・신행 봉사단체이며 국제적인 교류협력단체이면서 자신의 인격과 도덕성을 높이는 정신수양단체로 자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아태공동체 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 그 지역공동체가 가져 올 수 있다고 예상되는 개인이익이나 국가이익을 강조함으로써 꾸준한 홍보선전 활동을 벌이는 일이다.
(2)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시민활동 목표, 계획 그리고 구체적인 추진 방법과 그 결과를 논증하는 국제적 학술회의를 계속적으로 개최하고 연구책자를 발간한다. 이것도 홍보와 교육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각 시민운동단체는 타국이나 타지역 시민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자유롭게 상호 예방하며 종교적 문화적 접촉 및 경제적인 교류 협력 및 물자의 주고받기 또는 봉사활동의 실적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과 성과를 자국기관의 홈페이지에 올리며 또 타지역에 발송하는 등 모든 계획 실천 그리고 결과를 홍보함으로써 열기를 가중해 나간다.
(4)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회원국가는 자연재해나 대형사고를 예상하며 대비한다. 또 자연재해나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정부기구와 협의하며 상호 협동을 통하여 봉사활동을 최대화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를 위해 시민활동을 미리 조직화해 나가야 한다.
(5) 각국의 시민단체는 그들의 평화증진과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그들의 평화활동이나 봉사활동이 단순히 자국과 이웃 나라 및 지역공동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향상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활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자신의 인격향상과 神佛(신불)에 대한 헌신 봉사와 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집착으로 보편적인 화해와 협력을 沮碍(저애)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자제하며 조심해야 한다.
(6) 아시아태평양지역은 儒彿仙 3敎에다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힌두교까지 공존하며 모두가 활발한 지역이다. 지역공동체는 특정종교에 대한 집착도 제민족간의 화해와 협력을 저애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 반면에 敬天愛人(경천애인) 弘益人間(홍익인간) 善因善果(선인선과)란 한국인의 일상용어는 어느 특정종교에 국한된 종교교리와도 상극하지 않을 보편적인 진리, 윤리도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보편적 취지에 배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시민활동이 활성화됨이 바람직하다.
(7) 불교교리에 四攝法(사섭법)이란 가르침이 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 애정 협력을 얻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가 布施(보시)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주는 givingness를 뜻한다. 둘째가 愛語(애어)로 사랑의 말을 하는 것이다. 셋째가 利行, 이롭게 하는 것이다. 넷째가 同事, 남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시민운동은 타국가나 타인종에게 이런 利他行을 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사회봉사 밑 利行활동에 기여하는 보편적인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각국 시민단체의 창의성을 살려나감이 바람직하다.
(8)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성패는 그 일을 추진하는 간부 요원들의 열성과 강화 훈련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시민운동을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간부 요원들을 합숙 훈련을 통하여 정규적으로 간부요원을 양성하는 프로그램과 시설의 설립이 요구된다. 이런 시민운동의 간부요원들은 주기적으로 타국의 연수시설에서 교육을 받으므로 국제적인 교류협력망을 확대하며 효율화해야 할 것이다.
(9)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창설의 成敗(성패)는 한중일 3국의 협력과 단합에 달려있다. 우리들 시민운동연합은 韓中日 3국간의 협력과 단합을 훼손 방해하는 상호오해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활동을 전개하며 또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10) 어느 나라에도 정치사회지도자들 중에는 이상주의자 온건파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현실주의자 강경파가 있기 마련이다.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창설하는 일에는 이상주의자와 온건파가 일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기구를 운영해 나갈 때는 차츰 현실주의자 열성헌신파가 등장하는 수순을 지켜나감이 바람직하다. 일의착수와 운영의 어느 단계에 가서는 이런 사회지도층의 역할 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사전에 일본인과 중국인들의 성격이나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 통찰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3. 한중일 3국 화해의 조건과 방법에 관한 원리

3국 화해와 협력의 조건은 일반적 화해 협력 친교 단합의 조건과 다를 바가 없다. 타인 또는 타국에 대한 좋지 못한 記憶이나 印象을 마음에 담지 않으며 반대로 좋은 기억과 인상 그리고 도움이 되는 지식이나 인식을 의도적으로 노력해야만 화해 협력이 순조롭게 진척될 수가 있는 것이다. 단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오로지 후덕하며 福있는 사람들뿐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다. 또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여하에 따라 타인에 대한 인식 태도 기억은 어느 정도 달라질 수가 있음을 유의하면서 노력함이 바람직하다.
좋은 기억이나 인상을 오랫동안 간직할수록, 곧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사람들이라야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며 신뢰 화친하고 협력하기도 쉬워지며 그런 사람들이라야 소망하는 업무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가 있다.
한중일 3국은 2~3000년 이상의 오랜 접촉을 경험하여 왔다. 그러므로 그에 관한 좋고 나쁜 인식이 오랫동안 또 많이 누적되어 왔다. 이 세상에는 후덕한 사람들은 적고 반대로 박덕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한국인들의 3분의 2 이상이 후덕한 사람들처럼 거동할 수 있을 때 일본인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을 존경하며 따르게 될 것이다.
또 薄德(박덕)한 사람들일수록 남들에 대한 평가점수도 짜고 박하다. 박덕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박복한 경우가 많다. 평소에 입에 담는 나쁜 말들이 모두 業障(업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주변국가 사람들을 늘 중국놈・떼놈들, 일본놈・쪽발이・왜놈들이라고 부르는 나쁜 입버릇을 계속한다면 이것은 이웃 나라 사람들을 낮게 또 부정적으로 보고 대하는 악습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계속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과반수 아니 3분의 2 이상이 品位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나라 運도 좋아질 수가 있는 것이며 薄德 薄情한 국민이라면 어떻게 크고 좋은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三國 화해의 조건으로써 우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사실상 모든 종교가 강조하는 덕목이다. 남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고 용서할 수가 있어야 복을 받는다. 삼국 화해나 親交의 첫째 조건도 인류전반에 대한 깊은 자비심과 우호감정이다. 그런 우호감정이나 자비심은 이웃나라 사람들에 대한 악감정이나 나쁜 기억에 의하여 誤導되지 않아야만 지속될 수가 있다.
이런 우애감이나 자비심을 한국의 신흥종교에서는 解寃 相生 協力 造化의 철학으로  풀이해 왔다. 여기서 해설할 필요가 있는 것은 解寃(해원)이란 말이다. 피차간의 원한이나 억울함이 남아 있었다면 먼저 그것을 풀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에 맺힌 恨이나 원망을 풀어주는 것이 화해를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造化란 말을 쉽게 풀이한다면 ‘만들어낸다’ ‘창조한다’는 뜻이다.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①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사물, 또는 그런 사물을 나타나게 하는 재간. ② 남이 모르게 이리저리 꾸며 만들어 놓은 일, 또는 그런 일을 꾸며내는 재간 능력.’이라고 풀이 된다. 여기에는 神佛(신불)의 작용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4. 일본인, 그들은 누구이며 또 어떻게 살아온 민족인가?

일본인들은 크게 보면 세 인종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가 시베리아나 캄차카 반도 등지에서 내려 왔던 아이누족의 후예들이다. 어떤 이들은 구몽고 인종과 신몽고 인종으로 구분하기고 한다. 둘째가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온 말라이족이나 배를 타고 가다가 귀착하게 된 인도나 아랍계통의 후예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주민들은 매우 소수였으며 인구의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渡來(도래)인들이나 그 후손들이었다. 이들 압도적인 다수가 몽고인종에 속하는데 다른 지역으로 퍼진 몽골인종과 비교한다면 근・현대사회에서 한국과 일본만이 유일하게 선진국 사회에 사는 부류에 속한다.

일본열도에 와서 사는 여러 인종들 중에서 한반도의 가야와 백제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 등지에 다른 시기와 다른 고장으로부터 건너온 渡來(도래)인 집단이 일본에 높은 문화를 가져왔다. 또한 이들이 일본열도를 지배하는 상위계층을 이루어 왔다. 다만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고려상황은 한반도에서 건너갔던 사람들의 사회성분과 성격 등이다. 그 도래인들의 대부분은 한반도 여러 지역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났거나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피신하다시피 빠져나간 부류와 그 후예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두 가지 유형을 볼 수가 있다. 현존하는 지역에서는 살아나가기가 힘들어서 보다 좋은 생활환경과 보다 나은 여건 또는 기회를 찾아서 나가는 경우와, 또 주어진 여건 속에서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어서 밀려나거나 도망치기 위해서 살던 주거지를 떠나서 미지의 타향으로 떠났던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옛 고향에 대한 惡意 怨恨을 가슴에 품고 떠나게 되므로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옛 고향에 대한 해악행위를 하려는 적대의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며 이들이 바로 일본의 조상들이기 십상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살펴보면 한국은 끊임없이 일본에서 오는 倭寇(왜구)로 인하여 害惡(해악)을 입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한반도의 여러 나라가 왜 이렇게 끊임없는 침탈과 해악을 받아온 것일까? 그것은 한반도의 여러 나라가 모두 부유하고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또 피습을 받은 곳이 곡창지대나 도읍지가 아니라 빈촌 僻巷(벽항) 또는 가보아도 가져올 만한 것이 없는 지역인데 왜구들의 침탈행위는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그들이 받은 해악에 대한 원한풀이의 성격이 더 강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오랫동안 살다가 떠나온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기회만 있으면 옛 故國으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을 가졌거나 또는 자신들이 받은 해악에 대한 원한풀이나 보복심 때문에 왜구활동에 합류하였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 倭寇(왜구)침입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언제나 왜구의 침공에 시달려 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런 倭寇(왜구)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신라의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서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묻어라. 자신은 죽어서 龍(용)이 되어서 왜구의 침입을 막아 보겠다고 遺言(유언)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文武王(문무왕)의 海中陵(해중능)이다. 일국의 국왕이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묻은 예를 외국에서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국의 출현배경과 그들의 역사, 그리고 일본의 천황제와 관련된 정치신화
일본의 역사는 BC 3세기까지가 빗살무니 토기를 사용하던 繩文(죠몽)시대, 그 다음이 AD 300년까지가 철기가 나오고 미곡농사를 시작했던 彌生(야요이)시대, 300년부터 600년까지가 야마타이국 이즈모국 등 제법 큰 부족국가가 탄생하였던 시기이다. 이 기간이 학술적으로는 古墳시대로 분류된다. AD 500년이 지나면서 近畿지역에 大和(야마또)시대가 열려서 과거에 무수하게 분산되었던 지방의 작은 倭國들이 天皇制 아래 통합되기 시작한다.
7세기에 본격화된 것이 일본인들의 역사서 저술과 간행인데 <日本書紀>와 <古事記>가 그 대표적인 문헌이다. 이때부터 일본의 自畵像(자화상) 내지 국가적 正體性(정체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그들의 야심찬 모습도 역사의 서술로 나타났다. 다만 그것을 현대 학문적 시각에서 보면 역사라고 하기보다 神話(신화)로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唐나라와도 對等한 관계로 끌어올리는 한편 한반도를 자국의 손아귀로 끌어들이는 기도가 드러난다. 또 일본이란 나라가 한반도의 4국(고구려 백제 신라, 3국에다 가야국까지)도 진작 정복한 일이 있었다는 듯이 <일본서기>는 역사를 왜곡했다. 그 내용인즉 자신들의 조상이 한때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국 등지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렇게 간접적으로 기술한 것이었다. 일본이 그렇게 역사를 조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天皇(천황)제도를 신설함으로써 중국의 황제제도에 맞먹는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러자니 중국처럼 일본에게 朝貢(조공)을 정기적으로 바치는 종속국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모두 <일본서기>의 억지 조작(?)이었다.
일본의 開國神話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불분명하다. 일본의 초대천황이라는 神武天皇도 믿을 만한 자료에 의하여 밑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의 역사와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에서 神話같은 2000년 역사가 억지로 만들어졌다. 그 후대에 의해서 꾸며낸 신화도 역사적 사실이나 사료들에 의하여 밑받침되지 못하는 그들의 夢想(몽상)이었다. 그 神話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본시 神國이다. 萬世一系의 천황제도 그러한 역사의 뿌리에서 나왔다. 천황가가 神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일본은 장차 조선반도와 중국대륙을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지배할 운명과 사명을 지닌 나라임이 암시되어 있다. 이것이 일본의 정치신화로까지 발전하여 八宏一宇((팔굉일우), 곧 세계정복의 夢想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일본의 武士道(무사도)와 한민족의 선비정신
과거 조선사회의 이상적인 人間型은 한마디로 선비이었다면 일본사회의 理想的인 人間像은 武士 곧 사무라이였다. 조선에서는 朱子學이 최고도로 숭상되었으며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다음 國王을 보필하여 민생을 챙겨주는 것을 理想시 하였다. 선비든 사무라이든 智仁勇을 갖추어야 하는 데는 다름이 없었으나 그 德目들의 발휘형태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조선의 선비[士]들이 知와 仁을 더 중요시 하였다면 일본의 武士들은 勇과 仁을 더욱 존중하였지 않은가 생각된다. 조선의 선비들은 일상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처신하기를 바라며 노력한데 비하여 일본의 무사들은 국가・천황과 상관들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버림을 멋있는 인생으로 여겨왔다.
朝鮮朝에서 金宗瑞(김종서), 南怡(남이) 장군 그리고 林慶業 등이 그들의 충성심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非命으로 가게 된 것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忠武公 이순신 장군은 戰勝(전승)이 확정된 다음에 왜 의문의 戰死(전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도 예사로 볼 일이 아닐 것 같다. 그에 훨씬 앞서서 백제의 階伯(계백) 장군은 오천의 군졸들로 신라의 5만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戰死하였다. 왜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非命에 가야 했는지 백제・朝鮮朝 조정의 횡포 비리로 인하여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례였다.
일본의 武士道 禮讚(예찬)은 일본학자 渡戶 稻造(니토베 이나조)의 말에서 볼 수가 있다. “과거의 일본은 武士들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武士들은 국민의 꽃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뿌리였다. 모든 하늘이 내려 준 좋은 선물들도 武士들의 손을 통해서 흘러 들어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민중들보다 超然(초연)하게 처신하였으며 道義(도의)의 표준을 세워서 자신들의 모범을 가지고 민중을 지도해온 것이다.
나는 武士道(무사도)가 대내적으로 또 대외적으로 교훈을 주어왔음을 인정한다. 후자는 사회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福利(복리)주의적 입장이며 전자는 도덕을 위한 도덕을 실천하자는 순수도덕의 입장이지만 武士(무사)들은 전민족의 바람직한 理想(이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꽃이면 벗꽃이요, 사람이면 武士들’ 이라는 노래들이 나돌았다. … 武士들은 처음에 엘리트로 받들어졌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국민전체의 선망이며 靈感(영감)이 된 것이다. 평민들은 사무라이들의 도덕적인 높이에 이르지 못했지만 大和魂(야마또 다마시)는 섬나라 전체의 민족정신을 표현하는 말이 된 것이다.”

왕년의 敗戰국가가 국제사회의 지도국가가 될 수 있는가?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여 무조건 항복했던 일본은 미국의 점령하에 민주체제로 변모하였다. 일본경제는 1950년 한국전쟁의 特需(특수)혜택을 입어서 빠른 속도로 경제적으로 부흥을 이룩하였으며 단시일 안에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과학수준과 근면성 그리고 산업기술이 그들의 급성성장을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1960년대의 월남전쟁의 전쟁특수에 힘입어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에 오른 일본은 국제기구의 활동비용이나 미국의 전쟁비용 및 평화유지 활동에 가장 많은 금액을 출연하여 왔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의 후진국가, 특히 경제적 빈국에 막대한 원조와 지원활동을 계속해 왔던 결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은 매우 높아진 상태이다.  
이에 대하여 가장 배 아파 하고 속상해 해왔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인 것 같다. 과거의 침략행위와 대동아전쟁에 대한 죗값과 보상도 충분히 치루지 않았던 일본이 戰後 세계의 강대국 틈에 껴들어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들어서 되겠는가? 일본은 경제성장으로 大國化하면서 미국의 경제이익과 부딪치게 될 때마다 물러서야만 했으며 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동반자 노릇을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일본이 주변국가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할 때 미국은 일본을 보호해주지 못하며 가끔 일본을 때리는 편을 두둔하고 나서는데 일본은 속이 터지는 모양이다. 왜 일본이 늘 戰犯(전범)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아야 하는가?
근래에 와서 독도문제나 센카쿠 열도의 영토분쟁에서 밀리게 되자 일본의 보수세력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상당수의 일본국민이 이에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2012년 일본의 중의원선거에서 하원의 압도적인 과반수 의석을 얻어 당당하게 일본 수상에 오른 아베 신조는 외쳐댔다. 왜 일본이 戰犯국가인가?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속담에 쥐도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든다고 한다. 중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온 세상이 일본의 온갖 죄악을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규탄만 하니까 보수성향의 일본 국민들, 특히 보수계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발악하는 상태로 몰려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본래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신을 믿고 따르는 아수라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방법은 일반인들과 같지 않은 면이 적지 않다. 일본이 日支事變에서 만주나 중국지역에 출병한 것은 서구열강의 아시아 침략을 방지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려고 한 것이었다. 영국과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은 英美 등 국가가 중국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중일전쟁이 끝이 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켰으나 오랫동안 끝까지 계속할 생각은 없었다.
또 英美국가는 1930년의 군축회의에서 일본의 군비를 억지하는 불공평한 결정을 만들어서 일본을 압박하였다는 불만도 작용했다. 또 일본의 전쟁물자 조달을 영미양국이 계속해서 방해를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에서 군사행동을 한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태평양전쟁도 영토침략을 하려고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본의 침략주의를 부정하는 일본 측의 주장이었다.
일본이 일본의 침략주의를 부정하는 논리가 또 있다. 조선이나 중국이 尙武(상무)의 나라, 일본과의 군사적인 충돌에서 패배의 수모를 겪었다면 그 책임은 어느 쪽이 져야 하는가? 침략한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한국인 중국인들의 사고방법일 것이나 일본 측은 생각을 달리 한다.

'일본이 침략을 하였으며 한국이나 중국이 침략을 당했다고 해도 그 책임은 침략한 일본보다도 自國을 지키지 못했던 한반도나 중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 아수라들은 인생이 투쟁이며 인간 사회는 생존경쟁이 행해지는 전투장이라고 믿고 살아온 족속들이다.
일본이 만주나 중국에서 군사행동을 하였지만 이것은 중국의 주권을 빼앗는다거나 영토를 탐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려고 하는 일본의 좋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반대하고 방해를 하려고 들기 때문에 응징을 한 것인데 이것을 침략이라고 볼 수가 없다. 생존경쟁에서 졌으면 끝난 것인데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패자들이 계속해서 덤비는가?'


일본인들은 과거 한국인들을 괴롭히고 억압한 데 대하여 별다른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아수라와 같은 일본인들의 사고방법은 단순하다. 생존경쟁에서 패배했으면 패배자들이다. 敗者들은 억압받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勝者(승자)가 패자들을 혼내 주고 응징한 것이 무슨 잘못이며 왜 죄가 되는가? 국제사회에서도 패배하고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한국 사람들은 몰상식하며 골치 아픈 족속들이다(죠센징 와 시요우가 나이). 일본인들의 이런 아수라다운 생각은 부분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이러한 정신상태나 사고방법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부합되지 않음을 깨닫고 재고 반성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한일관계는 자고로 天敵관계였던가?
일본열도의 주민들 상당부분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반도에 거주할 수가 없게 되어서, 특히 생존경쟁에서 밀려나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와 일본도에 정착한 사람들 또는 그의 후예들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 떠나온 고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본의 수많은 섬에는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지방에서 다른 집단들이 흘러들어오니 사회적인 갈등은 武力수단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武士道(무사도)가 발달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이 일본 ‘사무라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일설에 의하며 한반도에서 고구려가 羅唐연합군에 의하여 멸망당하자 고구려의 무사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 왔다. 그리고는 그들이 갖는 무술 또는 폭력기술을 가지고 ‘싸움아비’로 각 지역으로 편입되어서 일본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시 일본으로 도래한 ‘싸움아비’란 말이 일본의 ‘사무라이’라는 말의 語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武士道도 그 뿌리가 한국이었음도 알 수가 있다.
물론 고구려에서 도래한 사람들만이 ‘싸움아비’ 노릇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이런 말은 다른 지역민들에게도 적용될 수가 있었다. 3국과 가야, 4국 등지에서 흘러들어간 자들이 싸움의 전문직을 가지고 일본에 정착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국내에서 싸울 일이 없어졌을 때 흔히 倭寇(왜구)의 모습으로 옛 고국에 대한 앙갚음을 하러 나가기 일쑤였던 것 같다. 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워서 천황을 모시며 단결하게 되니 일본 무사도의 발달도 한국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일본이 한반도보다도 우월한 국가임을 과시하려고 역사조작을 만들어 나간 사정도 능히 상상할 수가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일관계는 늘 갈등관계로 남게 되어서 양국은 어느 새 거의 天敵의 관계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天敵(천적)관계가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남북한도 천적관계이다. 그렇다고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을 죽여 없애야만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天敵(천적)관계도 잘만 다루게 되면 당사자들에게 훨씬 더 좋은 은혜자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들은 이야기지만 인용해 보겠다. 뉴질랜드의 나라 새는 키위새라고 하는데 그 새의 특징은 날개는 가졌지만 전혀 날지 못한다. 그 원인은 그 새를 죽이는 천적이 없어져서 하늘을 날 필요가 없게 되어 날개가 퇴화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새는 천적이 없어진 것이 퇴화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韓中日 3국은 서로 자국을 해치려는 天敵(천적)을 가졌기에 세계에 어떤 種族(종족)과 싸우더라도 패망하지 않을 만한 지능과 저력 그리고 생존능력을 개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적이라고 다 미워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다.
한국말에 ‘가시가 꽃이 된다’는 말도 있다. 가시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놓기 때문에 꽃은 더 아름다워짐으로써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므로 일본이든 북한이든 天敵(천적)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자기 향상의 기회로 만드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의 처신법이다. 좌우익, 남북한도 잘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더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본인들은 과거 전통사회에 있어서는 한국이 문화적인 선진국으로서 일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음을 알고 있다. 현대화 서구화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한국이 急成長 하여 적지 않은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으며 심지어 부분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후배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후배이며 일본은 선배로서의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한국이 그런 예의를 지켜주지 않을 때 일본은 외면적으로 표시는 안했더라도 내면적으로는 매우 실망하고 노여워하기 때문에 다시 차가워지는 것이다. 원수들, 특히 천적들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 줌은 하늘에 복을 짓는 선행이다. 한국인들은 하늘의 복을 짓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神位(신위) 菩薩(보살)의 지위로 오르는 계기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중일 3국간의 불화요인이나 의혹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만하고 한중일 3국간의 오해와 불신 그리고 적대감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분석하고 논의했던 일본 산케이신문 특파원 黑田勝弘(구로다 야스히로)라는 사람의 지적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한국인들의 反日감정과 그 뿌리에 대하여 상세히 실감나게 논하고 있으므로 언급하고자 한다. 그가 쓴 책 중의 하나는 <日中韓-新三國志>(2003년)이고 또 하나는 <日韓大變: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2001년)이라는 책이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日韓갈등의 원인과 관련하여 ‘한국 측은 늘 일본의 반성부족을 탓해 왔다. 그러나 일본이 아무리 사죄해도 반성 부족을 질타하는 태도나 말투나 버릇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들의 죄과에 대하여 사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국인들은 본시 일본을 용서하면 매우 불안해지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그의 이런 말투 속에 가시가 들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님을 실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이에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웃 나라와 영원히 원수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인가. 또 그래야만 한국인들의 노여움과 앙금이 풀린다는 것인가? 사실을 말하면 좋지 않은 것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 무심코 한마디 화내며 욕한다는 것, 이런 것이 쌓이면 업이 되고 그것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다. 善因(선인) 善果(선과), 惡因(악인) 惡果(악과) 이것이 인연법의 법칙이다. 나중에 재앙으로 돌아오는 악업에 왜 그토록 매달리려는가? 남들을 미워하며 욕해대면 그 악과는 남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먼 옛날에 한국은 君子不死의 나라라는 말을 들었다. 작은 怨恨(원한)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큰 원한이 된다는 말도 있다. 남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군자가 못되는 소인 잡부들의 정신상태이다. 필자는 한국의 언론기관들이 나라의 잘 사는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이웃 나라 국민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부채질함으로써 한국 국민대중의 정신상태를 저질화하고 끌어내리는 일을 하면서 삼가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풍토를 늘 걱정해 왔다. 불교에서는 탐진치의 심성을 하급인간 곧 중생의 표식으로서 경계하는데 말이다.
동족이나 이웃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부채질함으로써 한국을 小人不死의 나라, 저질국가로 내려 앉히려는 언론의 생리가 문제이다. 한국은 좀 더 높은 품격의 나라, 더 어질고 신성스러운 국민처럼 거동할 수는 없는 일인가? 사람의 사고나 행동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더 주목하고 개인이나 나라가 어느 쪽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 성하느냐 또는 망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韓日양국 관계도 두 나라의 신문이나 방송이 어느 쪽을 자주 그리고 크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한일양국의 관계가 과거보다 개선되기도 하고 또 더 나빠지기도 한다. 한국의 언론은 지금까지 악한 쪽은 크게 보도하고 과장 논평함으로써 양국관계를 계속 악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해 왔음을 반성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공동체의 成敗(성패)도 이 지역내 언론의 활동 여하에 달려 있는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 시민운동단체가 이러한 추세를 교정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5. 중국이란 나라와 그들의 패권의지

다음은 한국의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을 말할 차례이다. 중국은 자고로 아시아의 최강대국이었으며 현재도 역시 미국과 맞먹는 세계의 G-2, 최강대국 중의 하나이다. 과거 2000년 역사를 통하여 중국은 한국문화의 宗家(종가)로서 우리 민족은 그 나라로부터 종교와 학술 문화 그리고 예술이 유입되어 세계 최고의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가 중국대륙에 가까이 위치함으로써 입은 혜택이었다.
먼저 우리는 여기서 중국이 어떤 나라이며 국민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은 크게 보아서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의 혼합체이다. 고래로 55개 부족이 합쳐진 거대한 대륙국가이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 이른바 漢족이라고 하나 그 국토의 크기와 너비로 보아서는 그들 역시 아시아 제민족의 혼합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의 美國을 세계 각인종의 융합처(melting pot)라고 말하듯이 중국도 아시아 제민족의 융합처라고 보아도 좋을 성 싶다.
중국에 최초의 국가라고 할 商(상)나라 殷(은)왕조가 들어선 것이 BC 1500년경이었다. 이때부터 중국의 역사가 시작되어 언어와 문화의 동일성에 기초한 민족이 형성된 것은 秦(진)나라와 漢(한)나라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단일민족 국가라기보다는 아시아합중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중국인은 누구이고, 또 그 영토가 어디까지인가? 중국은 마땅히 이런 기본문제를 분명하게 결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中華라 했으며 그 이외의 오랑캐들을 東夷(동이), 南蠻(남만), 西戎(서융), 北狄(북적)이라고 호칭하였다. 그런 구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그 후대 황제들은 그 萬里長城(만리장성)을 계속 보수하고 확장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런데 14세기에는 北狄(북적)에 속하는 蒙古(몽고)가 南宋(남송)을 무너뜨리고 元(원)나라라는 이름으로 중국을 100년 동안 통치한 것이다. 또 16세기에는 만주의 여진족이 다시 중국을 침공하여 20세기 초까지 중국을 지배하였다. 그것이 淸(청)왕조이다. 결과적으로 中華(중화)민족은 北狄(북적)에 속했던 오랑캐들과 그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고 1949년 중국공산군이 중국대륙을 점령하게 되자 西戎(서융)에 속했던 新疆(신강) 위그르 지역과 티베트까지 강제로 중국영토로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신강지역과 西藏(서장, 티베트)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이는데도 중국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추가하여 중국정부는 東北工程까지 감행했으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와 인구를 갖는 초강대국으로 확대 변모하였던 것이다.

中國에 대한 한국의 국민감정과 태도
필자는 앞에서 한국정부는 그동안 중국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나 국민들 중에는 불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신뢰나 우호감정도 미국에 대한 혈맹의지를 능가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기서 왜 한국국민이 중국을 마음속 깊이 신뢰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이 한국에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血盟(혈맹)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체제를 전복하려는 敵性(적성)國家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나라를 마음 속 깊이 신뢰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북한의 핵무장이나 군사적 도발을 제어하는데 중국은 표면상 미국 일본 한국에 동조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것이 모두 건성이며 위장이 아니냐 하는 의심도 받아 왔다.
둘째, 중국이 현재 세계 초강대국인데다가 앞으로 많은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가로 올라설 것이 예상되며, 또 그런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데 대하여 주변국가가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졌지만 국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어서 시민들이 정부나 정부 지도자들에 대하여 불안감이나 불신감정을 갖지 않는 것과 크게 대조가 된다.
셋째, 중국이 추진해온 동북공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에 대한 호감, 애정 또는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나라도 너무 크면 주변국가에 위협감을 준다. 크다는 말 속에는 보기 싫다,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큰 것 앞에서 작은 것들은 불안하고 자존심을 느끼기 어려우며 초라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중국이 이처럼 권력에 집착하고 패권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이유는 과거에 굴욕과 패배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12세기에 몽고족의 침공을 당했고, 14세기에는 만주족이 들어와서 淸(청)나라의 통치를 받아왔다. 그러다가 청나라가 쇠퇴하면서 유럽의 열강들에 의하여 중국의 국토를 분할 점거하였다. 거기에 일본까지 청나라에게 선전포고하며 청나라의 영토와 도서를 탈취해 갔다. 국토는 넓고 인구도 세계 最多였지만 국가로서 너무 무르며 결속도 느슨하였기 때문이었다.
1911년 辛亥(신해)혁명으로 중국인(한족)들이 淸나라로부터 국가권력을 탈환하였다. 그리고는 장개석의 中華民國과 중국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다가 국가적 결집력, 정치적 응집력이 훨씬 강한 중국공산당이 國府軍을 몰아내며 통치권력을 탈취하였다. 中華民國이 대만으로 쫓겨난 후,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공산군은 중국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중국대륙의 주인이 된 것이다.
모택동은 秦始皇(진시황) 이후 가장 강력한 鐵拳(철권)통치를 집행해 왔다. 그러나 太剛則折(태강즉절)이라는 말처럼 중국의 형세는 위태로웠으며 실제로 문화혁명으로 풍지박살날 뻔하였다. 다행히도 문화혁명은 毛澤東의 사망으로 끝이 났다. 그 후 周恩來(주은래)의 지원을 받은 鄧小平(등소평)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옴으로써 다시 성장 발전의 길로 올라선 것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이어졌다. 중국은 초강대국으로 고속성장을 계속한 결과 세계의 유일초강대국인 미국과 동격인 G2의 패권적 지위에 올라섰다. 현재의 성장 발전 속도로 보아서는 중국은 쇠잔해가는 미국을 대신하는 세계의 유일초강대국의 지위로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까지도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韓中관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전망
현재로부터 3200년 전에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천하를 평정한 후 殷(은)나라의 귀족이며 賢人(현인)으로 알려진 箕子(기자)를 찾아가서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가르침을 구했다. 그 후 그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뜻으로 기자를 朝鮮王으로 봉했다는 것이 史記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기록의 眞僞(진위)에 관계없이 중국이 한반도의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 중국과 조선과의 관계는 大國과 小國, 중심국가와 인접국가의 관계로 4000년 역사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大國과 小國, 대인과 소인의 차이가 없는 平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인도 한 표, 젊은이도 한 표이다. 아무리 소국이라도 중국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국가간의 시비도 다수 집단여론의 추이에 따라 옳고 그름, 또 雌雄(자웅)이 판가름 난다. 중국도 한국과 그 주변국가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바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북한이 중국과 혈맹관계를 유지해 왔고, 한국은 세계 최강인 미국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면 중국은 과거 아시아 대륙국가의 중심국가였지만 현재는 대륙국가보다도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해양국가들과 맞서 있다. 중국이 그 영향력을 전세계로 확장하려면 그 길목에 위치한 한국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북한이 남한을 흡수 통합해 주면 일이 가장 쉽게 해결되지만 그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북한을 남한에게 넘겨주는 방법으로라도 한국을 자국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과거 중국의 장쩌민과 후진타오와는 달리 시진핑은 북한을 대신하여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지고 남한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지배하려고 드는 것이 북한이다. 그런 방법으로 중국공산당 내부의 동의와 지지를 받기가 어려울 것인즉 시진핑의 한국선택을 쉽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한중일 3국의 협력을 통한 지역공동체의 출현을 앞당기는 일이다.

일본의 협력을 얻어서 중국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야
1950년대 한국전쟁 때에는 중국은 강대국, 한국은 약소국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은 산업화 선진화의 길로 들어섰고 중국은 마오쩌뚱의 문화 혁명으로 외부세계에서 멀리 뒤쳐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 왔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한국도 국제적 행사를 벌이는 경우에도 중국과 거의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현재 중국은 시진핑 영도하에 있다. 우리는 왠지 모르지만 시진핑을 존경하며 그를 신뢰하고 싶어진다. 시진핑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숭배자인 덩샤오핑의 오른팔이며 중국을 발전시키려고 애쓰다가 좌천당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인물이다. 시진핑도 그 때문에 고생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시진핑과 박근혜 대통령은 서로 좋아하며 존경하는 관계라고 알고 있다. 시진핑은 모택동이나 장쩌민, 후진타오보다는 더 풍부한 인간성의 소유자로 보이며 중국을 올바로 이끌어갈 소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진핑도 박근혜도 젊어서 고생하며 모진 시련을 겪고 나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래로 나라 형평이 매년 발전하며 좋아져 왔다. 그러나 그들의 약점이나 문제점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강대국의 覇權主義(패권주의) 의식이 되살아나서 주변국가를 위협하며 압박하려는 버릇도 생겨났다는 소문이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주변국들의 경계심도 커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중국의 강압적인 태도를 경계하며 재무장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한국정부의 태도는 매우 신중하며 예의바르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들 중 중국을 불신하고 경계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중국의 국내사정도 매우 복잡해져서 과거처럼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중국 인민들도 과거와는 달리 지방이나 중앙정부에 맞서서 자신들의 의사와 권리를 주장하려는 태도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 중앙에 불복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 가고 있다.
멀지 않는 장내에 중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게 된다면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의 유일초강대국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중국의 정치력이나 문화파워가 세계를 지배할 정도로 강화될 수 있겠는가? 중국인들이 이점에서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현재는 문화력이 군사력을 압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영토는 國勢(국세)의 消長(소장)에 따라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中華(중화)지역만이 중국이고 동이・남만・서융・북적은 변두리 오랑케 지역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과거의 변두리 오랑케 지역이 모두 중국으로 합류하여 통합되어 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恐龍(공룡)이 되면 오랫동안 榮華(영화)를 누리겠는가 아니면 다른 나라보다도 더욱 빨리 쇠퇴 멸망하게 될까?
과거에는 自國(자국) 영토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모두 자국의 노동력이며 兵力이라고 믿어왔다. 또 국가가 실제로 국민들을 국가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부리고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또는 미래사회에서는 다르다. 그들을 잘 먹이고 많은 비용을 들여서 후하게 대접하지 않으면 국가권력에게 저항하며 괴롭힌다. 그 넓은 국토, 많은 인구도 모조리 비용지출과 복지비용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들은 자국의 병력이 아니라 오히려 적군의 동조세력이거나 우리 진영으로 잠복해 들어와 있는 敵性(적성)세력처럼 국가권력에게 벌주며 국력을 갉아먹는 마이너스 兵力구실을 할 수 있는 세력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3억의 미국시민들을 먹이며 돌보느라고 대통령 취임 2년도 안되어 많이 늙었다. 미국과 중국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시진핑 주석도 15억 또는 그 이상의 식구들을 먹이고 잘 돌보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또 자칫 그 많은 사람들의 비난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지속적으로 관철하려다가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이 全無(전무)일 것이며 도리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國勢(국세)의 커짐은 오히려 나라의 負債(부채)가 되며 부담의 증가임을 아는 것이 선진화의식임을 助言해 주고자 한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을 최고로 좋은 이웃되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6. 韓中日 3국이 앞으로 화해 협력 단결, 가능할까?

한중일 3개국의 화해와 협력은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설립의 전제조건이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존경 받고 추종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이 아시아 전지역으로 전파했던 儒彿仙 3敎의 높은 정신도덕문화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생겨난 漢字(한자)와 문화 그리고 그 교리가 퍼뜨리는 높은 정신도덕문화 등은 아무리 찬양해도 지나침이 없는 고상한 인류의 文化資産이다.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은 각기 그 나라의 정신문화를 이루고 꽃피워 주던 그 정신문화에 의거하여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만들고 발전하는데 합심 노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반론에도 응분의 고려를 하며 그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1) 그렇게 훌륭하고 고상한 정신문화를 가졌던 아시아 여러 나라가 왜 서구 열강에게 무릎을 꿇고 패망했는가? (2)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어떻게 유불선 3교보다도 더 威勢(위세)부리는 종교가 되었던가? (3) 현실과 理想의 괴리, 고상한 교리와 다중의 힘이 지배하는 현실의 다름은 변함없는 진실이 아니더냐?
이러한 물음에 답변하겠다. (1) 고상한 정신도덕문화와 험난한 현실세계 간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름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현실도 오래 지속되는 것 같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으며 고상한 이상은 현실적으로는 늘 지는 것 같으면서도 끝내 이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러한 괴리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계속 거리가 좁아진다. 21세기 세계는 20세기 이전의 세계에 비해서 훨씬 더 가까워져감을 보여주었지 않았던가?
(2)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그 정신내용으로 보아서 유불선 3교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5대 종교란 것도 형태는 다르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형식보다 내용, 가짜[假色(가색)]보다도 진실이 더 중요하다.
(3) 진실을 추구하는 고상한 교리와 힘이 지배하는 현실은 그 거리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계속 좋아져 간다. 21세기 세계는 16세기 18세기 20세기에 올수록 더욱 가까워져감이 증명되어 왔다.


7. 한국외교의 중심과제와 당면과업 

무릇 한국외교의 목표가 무엇이겠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안전보장과 더불어 이 나라의 국가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 행복 그리고 경제이익을 보장하는 가운데 세계평화를 위하여 국민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겠다. 오늘날 한국외교의 당면과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여 안전보장에 만전을 기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통하여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중국에게는 군사적 제재보다도 경제적 압박을 통하여 북한의 핵무기나 유도탄 개발을 중지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그 외에 한국외교가 따로 맡을 역할과 임무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여러 국가의 참여와 지지를 최대화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아시아태평양공동체 회원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여기서 한국의 선도역할을 기대하려는 것이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나라가 한중일 3국임은 이미 말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에 대한 우리국민의 지식과 정보가 그동안 너무나 미흡하고 부족했던 것이 아닌지 매우 염려가 된다. 옛말에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백전)이 不殆(불태)라는 말이 있어왔다. 특히 일본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지나친 증오, 악견, 편견 등에 의해 많이 가려져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문제의 해결은 쉬어진다.
지난 5월31일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에 “세계인은 일본이 좋다고 한다”는 글이 나왔다. 그 요지는 요즘에 한국에서는 일본인들의 파렴치한 과거사 부정이 논란되고 있지만 선진외국에서에서의 일본인 평가가 늘 상위권이며 어떤 경우에는 최상위에도 오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그런 일본인에 비하면 한국은 유럽측 평가에서 늘 중위권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예로서 영국 BBC방송이 해마다 실시하는 국가평판조사를 들었다. 또 말하기를 “일본이 독일처럼 하지 않는데도 독일과 비슷하게 국제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 현실, 바로 여기에 한중일 과거사 문제의 한 근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이웃 나라이며 천년 이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웃과의 외교관계는 항상 좋을 수도 항상 나쁠 수도 없는 법이다. 분명한 것은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보다 더 고상한 인격이며 고상한 인격에서 나오는 인내, 포용 그리고 용서의 미덕이다. 이것을 구비할 수만 있다면 삼국간의 협력과 단합의 활동은 저절로 잘 풀려 나간다. 우리는 기쁘다. 우리가 바로 그 변화의 실체이며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마지막으로 만일 한국이 3국간의 협력과 단합을 제의한다면 각국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며 또 얼마나 큰 이익이 기대되겠는가? 우선 한국이 무슨 동기로 3국간의 긴밀한 협력과 단합을 제안하고 추진하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인가? 우선 일본의 아베 수상과 보수우익정치인들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음에도 정중하게 제안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우리가 상대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선량한 과반수 국민이지 특정정파의 계략으로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天敵(천적)도 껴안으려는 우리의 착안이나 발원에 동조해 올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의 보수우익 정치인들과 좋게 지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서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일본정부의 정책여하에 따라서 한국의 경제적인 애로가 여러모로 뚫리고 풀릴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매우 어렵고 전망도 밝지 못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악화될 것인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많은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인데 정치지도자가 일본과 기싸움에 너무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처지이다.
한국이 또 일본과 화해해야 하며 틀어져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서민들의 경제이익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정부가 관계가 너무 틀어지면 한국의 天敵(천적)인 북한 공산집단과 손을 잡게 됨으로써 한국을 크게 골탕 먹일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누르고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그럴수록 북한은 일본에 접근하여 자국의 급한 경제난을 해결하고자 기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력도 먹히지 않을 수가 있다.
또 한국은 天敵(천적)인 일본과 손을 잡어야 중국과의 협력도 큰 힘을 받게 된다. 중국이 무엇 때문에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원하겠는가? 중국은 현재 여러 모로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 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이나 한국의 지원이 매우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과 수질악화, 중국의 괴질(조류 인플루엔자 등)의 방지 그리고 여러 가지 산업기술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의 과학기술과 한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일본이 과거에 지어왔던 罪惡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안정에 기여함으로써 탕감 보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마침 일본의 하또야마 수상은 동아시아공동체안을 제안하였으며, 현재 한중일 삼국은 그 구상을 실천할 목적으로 ‘한중일3국 협력사무국’을 한국 외교부에 설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한일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오늘의 국제여건으로 인하여 가동이 중단된 상태일 뿐이다.
필자는 2년 전에 만들어졌던 기구가 활발하게 재가동되어 오늘의 국제적인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불교의 華嚴經(화엄경)에서는 有와 無, 眞과 僞, 法과 非法도 깊이 알고 보면 하나이듯이 나와 남도 하나라고 설하고 있다. 이런 진리를 한일관계에 적용해 본다면 일본을 살려주고 좋게 함도 내 자신을 좋게 하며 살게 하는 도리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리를 따름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추진하는 아시아태평양공동체는 옛날에 공자가 바라고 근세에 와서는 칸트가 설계하던 ‘영구평화론’의 철학사상에 밑받침되어 있다. 내심 미래의 패권국가를 희망하던 나라라도 이러한 理想사회로의 전진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남북한과 한국의 좌우익이 모두 협력해야 한다. 그 일은 앞으로 우리의 실천 노력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정부는 과거 죄 많은 역사에 대하여 반성하기를 거부하는 일본정부와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일본 보수주의정권의 입장도 일본이 東洋의 평화를 위하여 善意로 행동했던 것을 왜 惡行(악행)이나 침략행위로만 曲解(곡해)하느냐고 노여워하며 보수화정책을 더욱 강화하려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한국과 중국이 협력을 통하여 일본이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중일 3국간의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도록 제안하는 바이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이사장) 최종수정 201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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