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副題): 최보식 기자의 얕음... 요즘 언론의 문제점...
저 부제는 지난 6월 28일에 써두었던 글의 제목이다. 갑자기 한 숨부터 나온다. 그래도 힘을 내어 한 번 써본다.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의 칼럼(11월 1일자)을 보았다. 좌우(左右)의 극렬성(極烈性)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말을 앞세웠지만 우파(右派)의 지나친 ‘박근혜 편들기’가 역겹다는 취지다. 한편으로는 특정인의 발언을 들어 일부 우익진영(右翼陣營)을 맹비난한 것이다. 최기자의 성향(性向), 관념(觀念)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성향은 이른바 이념(理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연은 최 기자가 칼럼에서 굳이 ‘朴槿惠 대통령에 대해 한 줄 언급하면 내 이념부터 수상쩍게 본다’라고 지레 썼기에 하는 것이다.
최 기자의 칼럼은 내용도 문체도 대체로 감성적이다. 아무튼 그런 칼럼, 즉 성향에서 비롯된 소회(素懷) 정도에 대하여 시비를 한다는 것이 소모적이기는 하나 조선일보가 가지는 상징성, 파급력을 감안하면 그런 류의 칼럼 또한 평범한 독자에게 평가받아야 한다.
- 경상도만 동네북이냐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
최 기자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검찰총장·감사원장 등의 지역 편중 인사를 두고 말들이 분분해도, 우파 인사들은 “업무 능력이 중요할 뿐”이라며 끄덕 않는다. 과거 노무현 정권의 '코드 인사'에 대해 걱정했던 시절은 저 멀리 잊혔다. 오히려 “언론은 호남 눈치를 봐서 지역 편중 얘기만 나오면 경상도만 동네북이 된다”고 반격한다』
저 말은 여권(與圈) 및 제도권(制度圈) 관계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용 그대로 일부 우파인사들을 향한 것이라 느껴진다. 조선일보라는 제도권 안의 막강한 언론사 기자가 그 많은 세상사를 제쳐두고 비(非)제도권 인사(좌편향 기자들이 늘 ‘일부 계층에서만 지지를 받는 극단적 인사’라 폄하하는 편인 그런 인물)를 의식하여 기꺼이 지면을 할애한 것이다.
최 기자는 일부 야권(野圈) 정치인이나 좌편향 언론이 이 정부 인사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론이 호남 눈치를 본다’라는 누군가의 표현 자체가 어지간히 거슬렸나 보다. 평범한 시민의 귀에 그 표현은 ‘좌편향 이념을 가진 진영과 언론이 이심전심 호흡을 함께 하는 바가 많다’는 정도의 의미로 들리는데도... 거슬렸다면 그것은 그의 천성(天性)에서 오는 것이니 그렇다 친다. 헌데 이 정부 인사 문제 등에 대한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파급력 큰 메이저 언론사 기자이기 때문이다.
(1) 이 정부는 권력기관장 인사를 마음대로 한 바 없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인사는 능력위주로 하는 것이 옳다. 어떤 인물이 능력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임명권자의 고유권한이다. 물론 그 능력의 기준에는 이 세상이 통상적으로 기준 삼는 그러한 면 외에 정권과 호흡할 수 있는지 여부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주로 이 부분을 공격한다. 하지만 정권과의 호흡을 고려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는 임명권자의 고유권한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4대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는 임명권자가 온전히 마음대로 한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의 경우 널리 알려진 대로 총장에 임명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 내부 기수 문제 등이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권 마음에 든다 하여 외부인을 경찰 수장에 덜컥 앉힐 수도 없고 오로지 치안정감 중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정도에 이른 인물은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을 경우 치안감, 경무관급 인물을 어느 날 갑자기 승진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해당기관 내부문제와 그밖에 집권세력 내의 추천 갈등, 인사청문회 통과문제 등 여러 면을 고려하다보면 4대 권력기관장 인사에는 임명권자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 입맛대로 4대 권력기관장으로 기용(起用)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수긍한다면 이번 정부의 인사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몇 명 되지 않는 인물들 중 호남출신을 기용하지 않고 영남출신을 기용했다하여 무조건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더군다나 지금은 정권 초(初)다. 무슨 말인고 하니 권력기관장에 오를 수 있는 검사장급 인사, 치안감급, 지방국세청장급 인사 등은 과거정권부터 지금까지 알아서(?) 잘 승진해 있는 사람들이지 올해 집권한 이 정부가 뜬금없이 승진시켜 준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現시점에서 4대 권력기관장은 노무현, MB정권 때도 승진했었던 몇 안 되는 이 들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말이다. 이는 언론도 뻔히 알 것이다.
(2) 야당(野黨)에 기울어 있는 언론
그러한 사정을 잘 알면서도 지금의 야권(野圈)과 언론은 이 정부의 인사에 대해 막무가내로 비난한다. 야권이야 자신들의 이념, 정치지향점에 대통령의 인사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렇다지만 언론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이 정권의 권한행사를 비판하는가? 산림청장을 데려다가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기라도 했는가?
사정을 잘 알면서 비판하기 위한 비판거리를 찾는 것은 정당한 사회적 감시가 아니다. 지나친 간섭이요 기고만장(氣高萬丈)한 오만(傲慢)이다. 언론은 걸핏하면 말한다. 언론의 사명은 감시, 비판이라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요즘 언론은 시대가 변했는데도 그 옛날 정부가 권위주의적 행정을 펼칠 때에 가지던 비판적 시각(視角), 투쟁적 근성(根性)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언론은 사회적 계도, 비판 외에 정권에 대한 양해 내지 격려도 과감히 할 줄 알아야 한다.
야권과 언론은 능력위주의 기용도 좋지만 지역적 배려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면 지역적 배려는 어떻게 해야 옳다는 말인가. 무조건 호남 출신 인물을 끼워 넣어야 지역적 배려인가? 지역인구에 비례하여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지역적 배려 아닌가?
인구에 비례해 보면 現고위공직자 출신지역 비율은 전혀 편파적(偏頗的)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야권 진영 정치인들 내지 좌편향 기자들은 인구 비례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한다. 설령 인구 부분이 거론되기라도 하면 ‘정치(政治)란 그런 것이 아니다’는 취지의 반론을 편다. 도대체 무엇이 정치인가? 어떻게 해야 야당(野黨)과 언론의 눈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인가?
(3) 정치적 불공정(不公正)에 눈감는 언론. 호남(湖南) 눈치를 살핀다는 말은 옳다
좋다. 한 번 따져보자. 행정기관장과 국회의원 중 누가 정치인(政治人)인가? 말하나 마나이다. 그런 국회의원의 정수(定數)는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최근 문상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충청권이 호남에 비해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 의원수는 오히려 훨씬 적다는 지적에 대해 “비례 원칙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명백한 정치적 불공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10월 14일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충청권과 호남권의 선거구수는 충청이 25석, 호남이 30석으로 충청권이 무려 5석이나 적다. 이는 표의 등가성과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며 “곳곳에서 지역 인구규모에 대한 선거구 재확정 언급이 나오지만 논의는 없다시피 하다. 세종시가 들어서고 자리를 잡아가는 만큼 충청권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되니 그에 따른 선거구조정 논의도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남 출신 유수택 의원은 “선거구 개편, 대의원 정수 조정 등은 호남의 어려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긋지긋하다. 또 호남 정치상황 타령인 것이다. 호남의 정치적인 상황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호남권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다면 호남 정치인들은 그간 무엇을 하였다는 말인가? 충청권과 세종시는 DJ, 노무현 정부시절에 발전, 탄생되었다면서? 언론은 충청권 사람들의 선거구 재확정 아우성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적 없다. 도리어 가만있는 경상도 때리기에 몰두한다. 사례를 들어 보겠다.
(4) 야당과 언론의 전형적 경상도 때리기
박근혜 정부가 지역 편중 인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주장한 바와 같은 말을 하는 편이다. 지난 7월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직 50명’ 및 ‘경찰청 본청 국장급 이상과 16개 광역시·도 지방경찰청장 등 고위직 33명’ ‘국세청 본청 국장급 이상과 6개 지방국세청장 및 서울·중부·부산지방국세청의 주요 국장급 이상 등 고위직 36명’ 그리고 ‘감사원 감사위원 및 국장급 이상 등 고위직 33명’ 등 4대 권력기관 고위직 인사 152명의 출신지를 모두 조사하였다.
조사결과 TK(대구·경북) 지역 출신자가 35명(23.0%)이고, PK(부산·경남) 지역출신이 27명(17.8%)으로 경상도 출신자가 40.8%였고,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출신자는 32명(21.1%),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출신자는 27명(17.8%), 대전·충남·충북 등 충청도 출신자는 21명(13.8%), 강원 등 기타 지역 출신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기관별로 보면, 검찰 고위직의 경우 총50명 중 TK 10명, PK 9명으로 경상도 출신자가 38.0%였고, 수도권 15명(30%), 호남 11명(22%), 충청 3명이었고, 국세청의 경우 고위직 36명 중 TK출신자는 14명, PK출신자는 4명, 수도권 출신자는 7명, 호남 출신자는 6명, 충청 출신은 5명이었다.
경찰 고위직 33명에 대한 출신지를 보면 PK 9명, TK 6명이었으며, 그밖에 충청 7명, 호남 5명, 수도권 4명, 강원은 2명이었고, 감사원의 경우는 고위직 33명 중 TK지역 출신이 5명, PK 5명으로 경상도 출신자가 10명이었으며, 수도권 6명, 충청 6명, 호남 5명이었다.
민병두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한 '대탕평 인사'라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 조사결과를 인용하여 “대탕평책으로 분열과 갈등 고리 끊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호언은 결국 헛말임이 드러났다”고 썼다. 이는 전형적인 야당과 언론의 경상도 때리기이다. 그러나 저 조사결과는 오히려 이 정부의 인사가 특정지역에 편파적이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본다.
(5) 야당과 언론의 왜곡된 통계 해석
현재 충청권 4개 시·도 인구는 총 526만 명 정도이고, 호남권 3개 시·도 인구는 약 524만 명으로 합계 1050만 명 정도다. 이에 반해 경상권 인구는 1320만 명 정도다. 고위직 152명 중 경상권(부산, 대구, 울산 포함) 인사가 41% 정도이고 호남, 충청(광주, 대전 등 포함) 인사가 32% 정도면 인구 비례로 볼 때 잘 맞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인구 비율로 보면 서울, 경기지역이 홀대 받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수십 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수도권 출신 고위공직자가 인구에 비례해 적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고위직 인사들은 대학시절이나 공직(公職)에 들어선 후부터 수도권으로 이사 와서 20년~30년 이상 거주한 경우가 많다. 고위공직자 뿐 아니라 우리나라 인재(人才)들의 상당수는 출생지를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직장도 서울에서 다니는 편이고 배우자도 서울에서 만나게 되는 편이다. 그런 현상 등으로 수도권 인구가 늘었다. 반평생이상 서울에서 살았으면 서울사람인데도 단순히 출생지에 따라 분류하니 저런 통계가 나온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지역차별, 지역 관련발언을 하지 말자고 외치고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에 가서는 으레 ‘여기 주소를 두고 살면 여기 사람이다’라고 하던데, 서울에서 20년 이상 산(배우자, 자녀와 살고 있는 곳 기준) 사람을 서울, 경기 출신으로 간주한다면 고위공직자 수의 75% 이상은 수도권 출신자일 것이다. 현재 5급 이하 공무원의 상당수는 서울, 경기지역 출신자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고위직인사는 영, 호남 출신자들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인구 비례적인 측면, 인사청문회가 존재하는 점, 4대 권력기관장 후보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점, 특히 그 후보군을 미리 양성(?)한 바 없는 정권 초기(初期)라는 점 등을 놓고 보면 지금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전혀 과(過)하지 않다.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경상도를 동네북으로 삼고, 호남을 성역(聖域)으로 삼는 식의 언론보도는 또 다른 지역감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최보식 기자는 이런 사실 등에 관해 발로 뛰어서 조사를 한 번 해보기나 하고 기사를 써보기를 바란다. 늙도젊도 아니 하면서 가만히 앉아 논평만 하지 말고.
- 최보식 기자는 우파(右派)를 혐오(嫌惡)하는 듯
최 기자는 『얼마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 그런 우파 단체 대표들을 따로 불러 “국가 정체성을 위해 함께 싸워 달라”며 식사 대접을 했다고 한다. 정권 차원에서는 백번 고마워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보면 이런 정치 이념 과잉 풍조에서는 상식과 합리, 성숙도가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판단 기준은 하나의 도식(圖式)에만 맞춰진다. 우리 쪽인가, 저쪽인가?』라고 하였다.
그래, 어떻게 해야 합리적이고 성숙한 것인가? 이왕 가만히 앉아서 논평(論評)을 하는 김에 대안까지 한 번 제시해 보라. 말하는 것이야 어려운 것이 아니니 한 번 말해 보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또 한 가지. 청와대에서 우파단체(右派團體) 대표들에게만 식사대접을 했다고 보나? 장담할 수 있나?
(1) 윤석열 검사 항명사태(抗命事態)를 바라보는 최보식 기자의 관점
최 기자는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사의 소위 '항명 사건'이 터졌을 때, 우파의 본능적인 첫 반응은 “정치 검사”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사로 임관된 그의 이력을 들춰내 재빨리 '좌파' 딱지를 붙여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항명은 소영웅주의인지 고뇌에 의한 결단인지, 그와 직속상관 중 누가 검사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는지, 그가 맡은 국정원 댓글 수사는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이런 사실 자체를 따지는 것은 소용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이런 사실 자체를 따지는 것은 소용없어졌다니? 면밀히 따진 끝에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윤석열에 대한 우파의 본능적인 첫 반응은 ‘정치 검사’였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것인지, 그렇게 말한 우익인사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정치 검사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 성취욕, 자기주장이 유난히 강한 놈이라고만 하더라. 노무현 정부 시절 검사로 임관된 이력을 들춰내 좌파 딱지를 붙였다고? 참 지엽적인 지적이다. 윤석열의 임용 이력 관련소문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만 어쨌든 그런 것들은 우익(右翼), 좌익(左翼)진영에 흔히 있는 일종의 공세적 레토릭이다. 우익진영이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 때문에 윤석열이 항명까지 하면서 국정원을 죽이려하는가 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최우선시 하는 관념(觀念)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 기자는 자신의 감정이 가는대로 우파를 비난하는 것 같아 보인다.
(2) 윤석열의 모순적 잣대
윤석열이 좌편향적 인물이냐 아니냐, 정치적 인물이냐 아니냐를 떠나 상식 있는 시민들이 그의 항명을 비판하는 것은 그 모순적 잣대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번 댓글과 관련하여 종북세력(從北勢力)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하였고, 윤석열과 박형철은 ‘국정원직원이 정치개입을 한 것이다’고 보았다.
윤석열은 국정원 직원이 법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기소를 하려 했으나 윗선에서 외압을 행사하기에 부득이 항명을 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그럴싸한 변명을 하긴 했지만 검찰청법 등을 어긴 것은 틀림없다는 말이 많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은 국정원직원이 국정원법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처벌하기 위해 검찰청법을 어긴 것이다.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상식 있는 시민들은 그의 모순적 잣대, 그의 자기 생각밖에 모르는 꽉 막힌 태도 등을 비판하는 것이다.
최 기자님! 윤석열의 주장이 참이라면, 그는 왜 조영곤 검사장에 대하여 법에 규정된 정당한 권리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조 검사장의 행위가 위법이라면 위법에 맞설 법규정이 존재하는데도 그는 왜 위법하게 항명했을까. 시시콜콜한 온갖 것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도 유독 외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을까. 최 기자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왜 언급하지 않고 단순 양비론인가?
조영곤 검사장이 명백히 위법한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면 수사에 대한 판단은 윤석열이 마음대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럴 바에야 검사장이 왜 필요하나? 제 잘난 놈들이 혼자서 다 판단하면 되지. 법은 왜 검사장이 검사를 지휘하도록 규정하고 있겠나? 그런저런 것들을 다 따진 끝에 일부 우익인사는 윤석열을 두고 한 마디로 정치 검사라 표현한 것이지 우파 전체가 본능적으로 곧장 ‘정치 검사’라 한 것이 아니다.
최 기자는 하태경 의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품(性品)과 기질(器質)에 비추어 타인들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 같다. 메이저 언론사 경력기자라면 매사를 필부(匹夫)의 내면(內面)을 헤아리는 얕은 관점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충고한다.
(3) 하태경 의원은 우파(右派)의 상징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최 기자는 『학생운동권 출신인 하태경 의원도 비슷한 경우다. 한때 그가 “임수경은 종북(從北) 아니다” “국정원장의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잘못된 것”이라고 발언했을 때 다시 살아나기 어려울 뻔했다. 우파 진영으로부터 ‘위장 전향’ ‘이중간첩’이라는 욕설과 비방이 끊이질 않았다. 그 뒤 그가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 통과를 촉구하자, 이번에는 ‘우파의 상징’처럼 대접받았다. 그의 입장은 바뀐 게 없는데 평가는 극과 극이 됐다. 그는 “나라가 온통 뭔가에 씐 것 같다”고 말했다』라고 하였다.
최 기자! 어느 우익인사가 하태경 의원을 우파의 상징처럼 대접하던가? 근거를 대보라. 지면으로 말하기 어렵다면 조선일보에 방문해서 듣겠다. 누가 그렇게 하던가? 점차 최 기자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내 보기에 그것은 우익진영을 폄훼(貶毁)하기 위해 꾸며댄 말 같다. 적어도 나는 이석기 체포 동의안 통과 촉구와 관련, 하태경 의원을 우파의 상징처럼 띄워준 우익인사를 본 적이 없다. 하 의원에게 협박성 소포가 도착한 것을 보고 자작극이 아닌지 의심하는 시민만 보았을 뿐이다.
(4) 최보식 기자의 편파성(偏頗性)
또한 최 기자는 『어떤 우파 인사도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대선 불복’과 다르다. 선거에 대한 영향과 상관없이 군과 국정원이 의심받고 있다면 중대한 문제”라고 먼저 나설 리가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쯤에서는 분명해진다. 최 기자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정당한 활동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최 기자!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대선불복과 다르다. 그러나 지금 야권의 주장취지를 보라. 누가 들어도 대선불복 아닌가? 근래 들어 설훈 의원이 했던 말을 보라. ‘선거 결과가 승복할 수 있는 것이었느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느니 ‘대선 불복이 아니라 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게 대선불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군다나 설훈이 누구던가? 김대업과 명콤비 아니던가?
그리고 누가 야당의 의혹제기조차 못하게 한 적 있나? 의혹제기를 했으니까 지금 검찰이 기소까지 한 것이고 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기소를 한 이상 법원으로 넘어간 기록대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이지 지금 그 누가 법원에 이미 넘어간 기록을 손대겠는가? 의혹을 제기해서 재판이 벌어졌으면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고 국회에 들어와 활동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에 대한 국정감사도 이미 한 마당에 언제까지 국민이 반대하는 투쟁만 할 것인가? 국정원 직원들의 재판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옳은 것이지 매일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재판에 간여(干與)하듯 해야 하는가?
최 기자는 『우파진영에서 ‘軍과 국정원이 의심받고 있다면 중대한 문제’라고 먼저 나설 리 없다』고 하면서도 좌익진영에 대해서는 『‘과거의 늪에 목까지 빠져있다는 걸 세상에서 당신들만 모르고 있다’며 한방 먹일 리 없다』고만 하였다. 우, 좌익 진영에 대한 양비론인 듯이 하면서도 실은 軍과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뉘앙스다. 우익을 향해 ‘왜 우익은 군, 국정원이 의심받는데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요 좌익에게는 ‘군,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사실로 보이지만 너무 과거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참으로 교활한 편파(偏頗) 칼럼인 것이다. 이 정도면 조선일보가 야당(野黨) 편을 들고 있다고 갖다 붙여도 될 지경이다.
최 기자! 따질 것이 많지만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우선 말한다. 예컨대 윤석열은 자신이 검찰청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 야권 역시 ‘검찰청법을 어겼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여러 면에서 따져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파진영에서는 ‘국정원이 섣불리 국정원법,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익이나 좌익이나 자기주장을 하기는 매일반 아닌가? 이런 식의 상황인데 왜 우익만이 軍과 국정원을 향해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꾸짖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한 표현은 좌편향적 사고관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5) 과거 우익진영의 盧武鉉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었다
최 기자는 우익진영 비판을 구실로 이 정부의 인사 문제를 에둘러 비판하였고 굳이 노무현 정부시절까지 대비시켰다. 평소 그의 글에서 노무현에 대한 흠모의 면을 많이 느꼈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정부의 인사에 대한 우익진영의 자세를 놓고 노무현 정부 때의 그것과 대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는 점을 말해 둔다.
노무현 前대통령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임명했던 것은 물론 그의 권한이다. 우익이 맹비난한 것은 노무현의 권한행사 그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인사로 말미암아 우리 체제(體制)가 흘러갈 방향을 염려한 것이었다. 이재정, 이종석 등을 장관으로 임명한 결과 어떻게 되었던가? 즉 우익의 노무현 정권 인사에 대한 비난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수호의지의 하나였던 것이다.
(6) 최보식 기자는 이념(理念)의 특성(特性), 인간의 본질(本質)에 대해 간과(看過)하는 듯
말미(末尾)에서 최 기자는 『우파는 우파를 향하고, 좌파는 좌파를 마주하며, 경상도 인사는 경상도를 비판하고, 전라도 인사는 전라도를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장벽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그렇게 노력해도 작은 구멍 하나 겨우 뚫을지 모른다』라고 하였다. 이는 이념의 특성, 인간의 본질을 간과한 감상적인 말일 뿐이다.
예수의 부활(復活)을 믿고 기도(祈禱)하는 사람과 윤회(輪廻)를 믿고 업장(業障)을 소멸하려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방이 믿는 종교(宗敎)의 교리(敎理)를 인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사람은 북한괴뢰에 의해 수많은 우리 국민이 목숨을 잃은 사실이 없다하더라도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운운하는 대선 후보를 인정할 수가 없다.
불교도 기독교도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양(兩) 종교에서 추진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 중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상(佛像)에 절을 하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 한다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불교 신자(信者)들은 경계한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가끔 무당집에 들러 점을 보고 부적을 받는 사람을 기독교 신자(信者)는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우리사회에는 우익이 있고 좌익이 있고 중도(中道)도 있다. 중도인 사람들 중에 스스로 진보성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익진영을 납득하지 못한다. 마치 불교를 믿지 않지만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우익진영에서 좌익 외에 중도 진보인사들을 향해 이따금 공세(攻勢)를 펼치는 것은 무조건 빨갱이로 보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상당부분 좌익이 퍼뜨린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일단 좌익과 더불어 경계하는 것이다.
우익진영 인물이라 하여 정의롭고 옳지만은 않다. 그러나 우익인사는 우리 헌법(憲法), 우리 체제에 위협적이지는 않다. 좌익과 진보는 다르다. 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는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다 안다. 좌익은 말살(抹殺)되어야 한다. 인정을 해주어야 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얼치기들은 우익과 좌익이 서로 다투지 않고 대화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순진한 소리다. 좌익과 얼치기 진보는 내 이념이 옳았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과 타 진영을 이기겠다는 것에 집착하는 편이지만 우익은 자유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것에 치중할 뿐 좌익과 싸우는 것을 원(原)목표로 삼고 있지 않는다. 만일 이 땅에서 좌익이 사라진다면 우익은 자칭 진보와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좌익이 있는 한 우익은 진보조차 경계할 수밖에 없다.
- 조선일보 편집국장. 독자 말 한 번 들어 보소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壓勝)을 거둔 것을 놓고 언론은 대부분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이 못해서라는 논평을 내어놓았다.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을 두고는 정치권의 정쟁(政爭)에 대한 국민의 경고(警告)라고 한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은 중요한 점을 빠뜨리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는 언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재보궐 선거는 원래 투표율이 낮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대한 표 차이를 감안하면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은 예년 선거에 비해 낮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에 그런 투표율이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당은 서청원 의원을 향하여 박근혜 심복이니 뭐니 비리전력자니 하며 現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외쳤건만 왜 철저히 외면 받았을까. 결국 장외투쟁(場外鬪爭) 등을 심판받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하여 여러 여론조사는 부정적 결과를 내놓았는데도 언론은 장외투쟁을 강력히 비난하지 않고 청와대와 야당을 균등하고 완만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여러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장외투쟁, 국회파행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의 습관화 된 양비론을 믿기 때문이다. 바로 최보식 기자와 같은 언론인들이 대부분이라서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작년 4.11총선 前 각종 여론조사와 포털사이트에 실린 선거관련기사, 댓글 등은 모두 現민주당의 압승을 점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의 참패였다. 그뿐인가. 요 근래 벌어졌던 선거마다 민주당은 거의 참패했다. 물론 언론은 선거를 앞두고 그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끼리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당장 보이는 언론보도, 여론조사결과, 포털사이트 댓글들로만 판세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즉 참 民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까닭이었다. 거대한 실체적 民心은 여론조사나 언론보도 등으로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우익진영은 근래 벌어졌던 선거, 지난 대선 결과를 비교적 제대로 예측한 편이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익은 침묵하는 民心, 실체적 民心을 읽어냈던 것이다. 언론은 우익진영의 목소리를 民心이라 인정한 적이 없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혐오하고 미워하기만 했을 뿐이다. 심지어 좌익을 싫어하는 보수진영 언론인들조차 우익진영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것은 언론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유(特有)의 기질(器質) 때문이리라.
언론은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주문은 별로 없다. 자기네들의 기회주의적 양비론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눈치다. 언론은 우익이 왜 강경해졌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웰빙 언론은 우익의 목소리를 우습게 듣지 말고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야당(野黨)과 함께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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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기자가 하태경 의원과 관련하여 참고하였으면 하는 글
http://www.chogabje.com/board/column/view.asp?C_IDX=52065&C_CC=BC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의 칼럼을 읽고
- 민족중흥의 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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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3, 0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