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전향의 어려움 (홍진표) - 범민련 실체
93년에서 96년까지 약 4년에 걸쳐 북한정권과 남한 운동권 일부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 책 한권을 쓸만한 복잡하고 긴 이야기지만 간략하게 줄이자면 통일운동을 둘러싼 의견대립이 생긴 것이다.
당시 운동권의 대표체였던 전민련은 90년말에 남북해외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만들었고, 전민련조국통일위에 있던 필자도 실무를 담당했다. 전민련 내부에도 급진적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대의명분을 앞세운 강행파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범민련준비위가 결성되자마자 당국은 국보법으로 전면적 탄압을 가하여, 문익환목사, 이창복(전 민주당의원), 조성우, 김희선(현 열우당의원)등 간부전원이 구속되거나 수배되고 필자에게도 수배령이 떨어졌다.
그후 93년경 문목사, 이창복(전민련의 후신인 전국연합의 상임의장)등이 출소하면서 활동불능상태에 빠진 범민련으로는 도저히 통일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범민련 해체와 새로운 통일운동조직(북과 조직적 연계가 없는)을 만들자는 논의가 활발해졌고 필자도 당시 몸담고 있던 민혁당(북과 연계된 주사파 지하조직)의 지침에 따라 이 노선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북한이 반대하고 나섰다. 범민련은 이른바 김일성의 특별한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서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민혁당 차원에서도 북한의 통일전선부에 여러차례 노선전환을 촉구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반면 새로운 노선을 주장하는 남한의 재야인사들은 북한이 충분히 설득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수년에 걸쳐 많은 노력을 했다.
먼저 문목사는 간곡한 편지를 썼는데, 북한에선 사실상 변절자라는 식의 답장이 오게되었고, 이는 한국언론에도 다루어져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반대하고 나서자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북한의 권위를 이용해 행세하려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범민련 해체론자들을 공격해 나섰다. 문목사가 공격의 타켓이 되었는데, 문목사의 돌연사는 이런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았다. 문목사를 가까이서 모시던 필자는 평상심을 잃는 모습을 처음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문목사의 가족들이 친북활동에 앞장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문목사가 범민련 해체를 주장했다고 갖은 모욕을 주던 북한당국에게 반감을 가져야 마땅할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기독교인들이라서 원수도 사랑하자는 것인가? 아마도 적당히 넘어가는 게 고인을 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목사 타계이후 함세웅, 문정현(문규현신부의 형)신부들이 각각 뻬이징과 폴란드에서 북한의 대남사업의 고위인사들과 만나 범민련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 두신부 모두 북한의 무례하고 강압적인 태도에 질려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문정현신부는 필자와 만나 '박홍신부 말이 다 맞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그후 이 두신부들도 친북노선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심에 의해 행동한다는 성직자들도 감히 북한에 대해 등을 돌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반 주사파들이 이른바 전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생각은 바뀌었더라도 그걸 주위에 내놓고 주장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른바 전향의 어려움
- 홍진표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4-12-22, 2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