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비유의 폐해]
글 꽤나 하는 자들이 좌뇌의 논리와 언어를 이용하여 그럴 듯한 비유로 그들보다 배움이 적은 사람들이나 배움이 많아도 순진한 사람들의 우뇌를 마비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일이 무척이나 잦다. 일단 성공하면, 처음에 그 비유를 만든 교활한 자 외에는 그 추종자들마저 본뜻을 까맣게 모르고 아름다운 비유에 취하여 반듯한 현실을 울퉁불퉁한 렌즈로 비쳐 보고, 굽음을 바로 편다고 완장을 차고 나팔을 불며 천지를 모르고 날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 말만큼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사람들의 우뇌를 마비시킨 비유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그럴 듯한가. 좌익(左翼)과 우익(右翼). 한자로 써 보면, 곧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이다. 새가 어떻게 날개 하나로 날 수 있는가. 이 말 한 마디면, 우익도 절로 기가 죽는다.
'그래, 좌익에게 너무 심했다. 이제 그들에게도 말문을 터 주고 더불어 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쇠와 돌을 높은 데서 떨어뜨리면 무거운 쇠가 가벼운 돌보다 먼저 떨어진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말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무려 2000여년 후에야 과학자 갈릴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어디 한 번 그런가 안 그런가, 직접 쇠와 돌을 떨어뜨려 보자.'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이태리의 한 삐딱한 탑에서 쇠와 돌이 일직선을 그리며 동시에 떨어졌다!
이처럼 수학의 공리처럼 자명해 보이는 말도 검증해 보면 참인지 궤변인지 금방 드러난다.
[좌파는 몸통일 뿐, 날개가 없다]
공산국가는 왜 한번도 날지 못했을까. 자본주의는커녕 봉건왕조시대보다 도리어 못 살았을까. 노동자·농민의 천국이라고 선전했지만, 왜 노동자·농민들은 공포와 기아 속에서 해방될 날만 기다렸을까. 저마다 가슴에 두 마음을 품고 경쟁자와 원수만이 아니라 이웃과 친구와 가족마저 높은 사람들에게 고자질해서 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빵을 빼앗아 먹을 궁리만 하게 되었을까.
달콤한 사회주의가 만연하게 되면서 서구든 북구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들조차 사람들이 나날이 눈빛이 몽롱해지고 다리가 휘청거리고 입가에 거품이 보글보글 맺히게 되었을까.
역사상 공산주의를 유일 종교로 받아들인 나라들이나 사회주의의 통제와 분배를 시장경제의 자유와 유통 위에 둔 나라들이 하나같이 날개를 접고 처음에는 슬슬 뛰다가 이내 터벅터벅 걷다가 시나브로 엉금엉금 기게 되었을까. 끝내는 누워서 뒹굴뒹굴 구르게 되었을까.
[한국은 날개와 몸통이 있었으나 북한은 몸통밖에 없었다]
해방 후 제비처럼 멋지게 날 듯하던 북한이 왜 올챙이배를 드러내 놓고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을까. 60년대 초만 해도 굼벵이처럼 기던 한국은 왜 독수리처럼 힘차게 창공을 날아다녔을까.
한국에 오른쪽 날개만 있고 왼쪽 날개가 없었다면, 어떻게 80척(尺)의 언덕배기에서 1만 척의 거대한 산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북한에 그렇게 튼튼한 왼쪽 날개가 있었다면, 어떻게 300척의 앞산에서 굴러 떨어져 100척의 돌밭에서 나뒹굴까.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새는 신화에도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말장난도 이런 엉터리 말장난이 없다.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새는 신화에도 없기 때문이다.
비유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을 이용하여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상의 날개를 겨드랑이에 붙여서 이카루스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가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다. 아니, 자신에게는 없지만, 남에겐 있는 날개를 아예 부러뜨리려고 갖은 꾀를 다 쓴 것이다.
날개는 자유다. 날개는 원래부터 둘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한 쌍의 날개이다.
몸통은 평등이다. 몸통은 원래부터 하나이다. 공산주의와 계획경제가 한 몸통이다.
[도도새, 닭, 꿩, 제비, 독수리]
천적이 없어진 도도새는 뒤뚱뒤뚱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자고 놀다가 나는 것을 아예 잊어 버렸다. 몸통이 남산만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두 발 달린 짐승이 왔을 때 멀뚱멀뚱 구경하다가 다 잡아 먹혀 버렸다. 구공산국가와 아직도 유령처럼 버티고 있는 북한이 그러하다. 새로이 지배층으로 올라간 자들이 민중이란 도도새를 다 잡아 먹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잡아 먹을 게 없고 앙상한 뼈만 남은 도도새가 드문드문 있게 되자, 절로 무너졌다. 북한은 무너지기 직전에 '두 발 달린 짐승들이' 남쪽에서 담 너머로 툭툭 던져 주는 먹이를 먹고 도도새가 일부 살아나자 그걸 또 잡아 먹으며 총을 남쪽으로 겨누고 앙 버티고 있다.
꿩은 날아다니지만, 닭은 걸어다닌다. 꿩은 몸에 군살이 없지만, 닭은 몸에 군살이 오동통하다. 목숨이 위험하지 않는 한 닭은 날개가 있어도 날지를 못한다. 날 필요가 없다. 잡아 먹힐 때 잡아 먹히더라도 주인이 시시때때로 주는 모이가 살이 포동포동 찔 만큼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가 남미형 국가이다. 먹을 게 좀 있다고 너도나도 산에서 내려와 모이를 주워 먹다가 이리저리 다 잡아먹히고 날개는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몸은 비쩍 말라 버렸다. 한국도 어느 날부터 이런 꼴로 바뀌고 있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10리를 나는 독수리도 동물원에 가둬 두고 먹이를 넉넉히 주면, 몸통이 무거워져서 날갯짓을 열 번 스무 번 해야 10미터도 못 날아간다. 이런 나라들이 바로 잘 살다가 복지병(福祉病)에 걸려 제자리걸음을 하던 북구와 오늘날의 몇몇 서구 국가이다.
한국은 처음에는 닭의 날개보다 시원찮은 날개를 갖고 있었지만, 알맞게 먹고 몸통과 다리에 특히 날개 죽지에 살이 붙으면서 꿩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 날개(자유와 성장)만으로 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죽은 새이다. 몸통(평등과 분배)이 실해야 날개도 편다. 결국 날개가 있었기 때문에 새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산과 들과 강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몸에 군살이 붙지 않을 만큼 살을 찌울 수 있었다.
날개는 몸 전체를 위한 것이지, 날개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훨훨 날아서 구한 먹이는 날개가 독차지한 적이 없다. 아주 일부만 차지하고 몸통에게 다 주었다. 기업이 날게 되면 그 중에서 기업주가 가진 것은 언제나 일부였다. 대부분은 노동자 몫이었다. 나라 몫(세금)이었다.
[자유와 성장이 좌우의 날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은 오른쪽 날개로 홀로 날아서 그런 게 아니라 날개가 편의상 몸통 위에 있었을 뿐, 힘들게 날아서 먹이를 구하면 날개보다 훨씬 많은 몫을 몸통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훨씬 평등했다. 특히 스스로 잘못을 고칠 줄 알게 된 2차 대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날개를 달고 비상한 결과, 독선의 첨탑에 올라선 공산당 귀족들이 철문을 걸어 잠그고 피골이 상접한 노동자와 농민을 거짓의 늪에 빠뜨리고 평등이란 이름의 마약을 복용시키고 '행복해요'를 노래 부르게 한 공산주의보다 훨씬 평등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날개인 자본가와 기업주가 펄펄 날았을 뿐 아니라 몸통인 노동자와 농민도 너무 잘 먹어 '살과의 전쟁'을 하기 바쁘게 되었다.
[평등과 분배는 몸통]
공산주의와 계획경제가 패배한 것은, 사회주의가 패배한 것은 왼쪽 날개로 홀로 날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예 날개(자유와 성장)를 접고 몸통(평등과 분배)만 살을 찌웠기 때문이다. 날지 못하는 새가 먹이를 구할 리 없다. 그래서 서로 잡아 먹고 잡아 먹히다가 망한 것이다. 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훨훨 나는 푸른 자유는 없고 땅을 박박 기는 붉은 평등만 있었기 때문에, 자유란 멜로디와 평등이란 리듬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교향곡이 없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망하고 있는 것이다. 쿵쿵 들판을 짓밟고 쾅쾅 공장을 부수고 퍽퍽 사람을 치는 공포의 리듬만 가득 찬 생지옥에서 하늘 높이 치솟는 것은 악다구니와 비명의 불협화음뿐이다.
공산주의와 계획경제의 참담한 실패 후에 중국은 한국이 날아오른 것과 거의 똑같은 식으로 따라했다. 병든 병아리에서 날씬한 닭으로, 날씬한 닭에서 푸드득 꿩으로, 푸드득 꿩에서 날렵한 제비로, 날렵한 제비에서 눈부신 봉황으로 사흘만 안 보면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할 만큼 나날이 변신해서, 이젠 오대양 육대주를 겁도 없이 날고 있다. 태평양 너머 거대한 독수리가 아연 긴장하고 있다.
[뒤룩뒤룩 살찐 새, 한국]
오히려 한국은 닭에서 꿩으로 꿩에서 제비로 변신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독수리로 변신하려는 찰나, 악령에 사로잡힌 듯 멀쩡하던 날개가 묶여 '닭'스러운 꿩으로 퇴보하기 직전이다. 날개에서 깃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몸통에는 비계가 잔뜩 끼어 온몸이 뒤뚱거리고 있다. 불쌍한 새끼들은 입을 쫙쫙 벌리는데.
한국은 특히 60년대 이후 날개와 몸통이 늘 함께 있었다. 더 멀리 비상하기 위해 몸통이 지나치게 살찌는 것을 무척 경계했었다. 이 경계심을 내팽개치는 순간부터 몸통에 군살이 뒤룩뒤룩 붙었다. 군살을 빼야 한다. 이것을 기업에서는 구조개선사업[workout]이라고 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새, 북한]
북한은 처음에는 한국보다 더 좋은 날개가 있었으나 그 날개를 아예 묶어 버리고 깃털을 다 뽑아 버렸다. 그래서 한번도 날지 못하고 몸통에 살만 찌우다가 이윽고 몸통마저 살이 쏙 빠져 숨만 헐떡인다. 뒤늦게 선녀의 날개를 찾지만 날개가 돋아날 리가 없다. 수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먼저 몸에 살이 붙고 이어서 날개가 새로이 돋아난다. 이것을 개혁·개방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마적'과 그 졸개들은 수의사도 거부하고 던져 주는 먹이만 주워 먹고 있다. 말은 알지만 실지로 날개가 뭔지는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날아 보라고 하면 그냥 절벽에서 떨어지는 줄 알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무시무시한 칼과 총과 대포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도리어 아무 조건 없이 먹이를 던져 주는 담 너머의 앞집을 협박한다. 바다 건너 먼 나라도 협박한다. 하긴 태양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저 사발 만하게 여겨질 것이다.
진짜 웃기는 것은 남녘의 완장들과 나팔수들이다. 이들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며, 한국의 뚱뚱보 노동 귀족과 북한의 배불뚝이 공산 왕족을 두둔함에 절로 신바람이 나서 눈을 부리부리 치켜 뜨고 목에 핏줄을 팍팍 세운다. 이들에게 살그머니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뚱뚱한 새는 날지 못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새도 날지 못한다.'
(2004. 12. 23.)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