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아니, 수천만 아니, 수억의 민중도 노회(老獪)한 정치가 한 명에게 당하지 못합니다. 인민공사니, 대약진운동이니, 제3선 건설이니, 뭐니 하면서 민생을 파탄시킨 모택동은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막후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릅니다. 권력의 미끼를 슬쩍 던져 4인방을 앞세우고 완전 평등의 무릉도원으로 무료 입장하는 초대장을 마구 뿌려 수천만의 홍위병을 동원하여 8억의 인민을 집단광기에 휩싸이게 만들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마음내키는 대로 죽인 후, 모택동은 3천만의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고 화려하게 동방홍(東方紅)으로 다시 떠오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도합 6백만으로 죽인 숫자만 적을 뿐, 모택동에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은 훨씬 높으니까요. 또한 모택동은 자식에겐 어떤 특권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만경대 김씨 부자는 대를 이어 동족을 학살하거나 굶겨 죽였으니까요. 이런 절대 권력자들은 절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은 동족상잔을 겪은 이후 헌법의 권위가 그 어떤 권위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의문사'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습니다. 제일 큰 비극은 4·19와 5·18입니다. 이 때 각각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지만, 지금도 해마다 강제수용소에서만 1년에 2만 명이 죽어 가는 북한에 비하면 과히 낙원입니다.
한국은 법에 의하지 않고는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정치인은 민중을 선동하여 분열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분열된 만큼 열렬한 고정 표밭이 확보되니까요. 역대 대통령 중 이 점에서 떳떳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중에서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이들이 분열에 의한 지배(divide and rule)에 가장 능수능란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너무도 감쪽같으니까요. 호남과 충청, 이 두 지역은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이, 오로지 민주의 제전에 들꽃을 꺾어 바친다는 순수한 일념으로 이들을 각각 최고의 권좌에 앉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이용되고도 이용된 것을 전혀 모르고 타지역에 대한 증오감으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칩니다. 헌법이든 법률이든, 지역감정이 불붙으면, 멀찍이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타지역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지역에게만 눈을 흘겼으나 이제는 두 지역을 향해 번갈아 손가락을 치켜듭니다. 이러니 저마다 화합을 외치지만, 분열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나마 우리를 진짜 식민지로 거느렸던 일본이나 우리를 오랫동안 '유사(類似) 식민지'로 거느렸다고 확신하는 중국이나 오늘의 삼천리 강산을 보면, 얼마나 통쾌·상쾌·유쾌할까요. 조걸 언제 다시 잡숫나, 하고 번갈아 침을 삼키지나 않을까요.
(2004. 12. 24.)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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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결정적 변수는 충청도의 표심이었다. 호남과 영남은 거의 변수가 없었고, 강원도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기엔 그 표가 너무 적었고, 수도권은 표의 약 절반을 차지하지만 본적 또는 원적에 따라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이것도 큰 변수가 아니었다. 명분의 나라답게 겉보기에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자주와 개방, 평등과 자유의 대결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지역갈등이란 말은 누구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저주'이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자들도 말로는 절대 드러낼 수 없는 본심이기 때문에, 본심을 숨기기 위해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20대와 30대에서 일부 순진한 사람들이 진보와 개혁, 자주와 평등을 위해 또는 그 반대를 위해 소신을 갖고 커튼 뒤에서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휴일이라며 놀러간 사람보다 그 숫자가 적었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충청 지역의 표심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4수생인 김대중 후보는 그래서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장관 자리의 반을 뚝 떼어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념적으로 상극인 김종필 후보의 쭈글쭈글한 손을 수갑을 채우듯이 꽉 잡았다. 결과는 대성공! 그러나 오로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매력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정략적으로 결혼했는데, 쭈그렁 신랑이 쭈그렁 신부의 면사포라도 벗겨 줄 리 없었다. 신방에 들어가는 척, 그 안에 미리 마련해 둔 밀실로 각자 들어갔다. 합방을 안 했는데 애가 생길 리 없었다.
30년 동안 아랫것들을 철저히 단속하여 언감생심 맹주 자리를 엿보지 못하게 한 김대중 아버지가 명예 맹주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초읽기에 몰리며 절묘하게 낙점한 노무현 양아들도 절체절명의 과제는 충청도의 표를 쓸어 담는 것이었다. 김종필은 김영삼 때도 그랬고, 김대중 때도 그랬고, 자신의 권력 욕심만 차렸을 뿐 결국 충청도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어서 세배는커녕 문안 인사도 받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 이름마저 잊어 버려 일당을 받고 동원된 아줌마들이 신나게 '조용필'을 연호할 정도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충청도는 무주공산이었다.
이 때 내놓은 것이 바로 1978년 그들의 철천지원수 박정희 대장이 법을 제정하고 청사진까지 다 만들어 둔 행정수도 이전 미끼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억 수십억이 생긴다는 계산이 서자, 이념적으로 전혀 맞지 않았지만, 충청도 주민과 거기 본적과 원적을 둔 사람들이 갑자기 진보주의자가 되고 민족주의자가 되고 개혁세력이 되고 지역화합의 선두주자가 되어, 슬그머니 황금 미끼 곁에 다가가더니 그것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버렸다.
국회 탄핵에 이어 총선이 또 다가오자 수도이전은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침체에 빠져 회생할 가망성이 없다고 하면, 언제는 서슬 퍼런 부동산 대책을 내놓더니, 전후방 효과가 큰 건설경기를 일으켜 경제를 되살린다고 하고, 안보가 걱정이라면 평택 이남으로 안전하게 나라의 머리를 모신다고 하고, 수도권의 불안을 얘기하면 기득권의 반발이라며 적의의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충청도 양반들은 왜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냐며, 입을 꾹 다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특히 어떠한 형태로든 통일이 되면 통일수도 얘기가 나오면 절로 물 건너갈 것이지만, 2007년에는 또 대선이 있는지라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어떤 괴이한 논리를 동원하더라도 생사를 걸고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었다.
이 때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구시렁구시렁거리며' 기각시켰던 헌재가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보안법을 적극 지지한 헌재의 최종판결도 무시하고 UN의 대북인권결의안은 불참하고 기권하더니, UN의 사람들까지 불러들여 맞장구치게 만들어, 인권을 들먹이며 12년간 단 한 번도 인권 침해가 없었던 보안법을 폐지하려는 집권당에 아연 위기의식을 느꼈던지, 유례 없이 빨리 단호하게 소신껏 소수의견까지 상세히 밝히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어쨌건 이만하기 다행이다. 어쩌면 스스로 무리수임을 잘 알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 모른다. 이제 그만 두어도 당당한 변명거리가 생겨서 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배우려면, 20년이 넘도록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던 행정수도안을 오로지 정략적인 차원에서 끄집어내는 따위의 치사한 짓을 하지 말고, 포항과 여천, 광양과 구미, 울산과 창원과 마산 등 외로운 어촌과 쓸쓸한 농촌을 북적거리는 대도시로 바꾼 것을 본받아야 한다. 충청도엔 기업의 입장을 최우선시하는 기업도시를 허용하고 서울의 유수 대학을 각종 혜택을 듬뿍 주면서 이전시키거나 하여 자연스럽게 수도권의 인구가 분산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생존의 기로에서 인권 유린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이 아니라 오로지 임신부처럼 배가 부른 김정일과 그와 운명을 같이 하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만 골라 하는 짓도 제발 그만 두고, 한국의 국민과 북한의 주민을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표는 절로 모인다. 야당보다 잘하면 지역적으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너도나도 여당을 안 찍어 줄 리 없다.
구호와 깃발, 호루라기와 침 튀김으로 표를 호리고 강탈할 생각을 제발 그만 두기 바란다.
실적과 설득, 유머와 관용으로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들듯이 표들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사뿐사뿐 날아들도록 섹시하게 유혹하기 바란다.
(200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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