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우크라이나

여기는 우크라이나


金石圭 月刊朝鮮 이사〈steink@chosun.com〉

우크라이나가 대통령 선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고난의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이처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적은 없었다. 오는 12월26일 재선거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민주화로 가는 여부를 가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사와 인물, 그리고 국제정치의 세력 판도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우크라이나는 17ㆍ18세기 때 東은 러시아, 西는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는 러시아와 합스부르그 왕국, 1ㆍ2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에 분리 지배를 받았다. 1991년 舊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우크라이나는 독립 국가로서 지위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등장하는 인물은 두명이다. 지난 10월31일 21명의 후보가 격돌한 1차 대통령 선거에 이어 상위 2명이 11월21일 결선 투표에 나섰다. 이들은 야당 후보인 빅터 유센코(50)와 여당측 후보 빅터 야누코비치(54) 총리. 이들은 「승리자」를 뜻하는 빅터(Victor)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걸어온 길은 완전히 다르다.

회계사 출신인 유센코는 중앙은행 총재로 인플레이션을 막아 냈고 1998년에는 레오니드 쿠츠마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정치개혁에 나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에 맞서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 후 처음으로 2000년부터 GDP가 플러스 성장을 기록케 하는 등 국민들의 호감을 산 것이 경질의 계기가 된다. 부정부패의 상징인 쿠츠마가 그를 2001년 해임하고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쿠츠마의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유센코가 국민의 여망을 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EU와 NATO 가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親서방파이다.

한편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츠마 대통령은 임기 후를 위해 야누코비치를 후보로 밀었다. 야누코비치도 역시 러시아의 영향을 받고 있는 도네츠크 지역 출신의 기술자로, 주지사를 거쳤다. 그 역시 쿠츠마와 같이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중심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선거도 흥미롭게 진행됐다. 첫번 승리자는 유센코였다. 선거 당일인 11월21일 출구조사에서 유센코는 5% 이상이나 리드해, 대통령이 되는 듯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 많은 키에프 市民들이 몰려 나와 유센코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틀 뒤인 23일 중앙선관위의 발표는 2.85%의 근소한 차이로 야누코비치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 이미 하루 전인 22일부터 야누코비치의 승리라는 루머가 돌면서 시민들은 하나 둘씩 키에프 시내의 영웅광장에 모이기 시작했고 선관위의 발표로 시민들의 선거 불복 시위가 본격화됐다.

「자기들만의 리그」로 끝날 것 같았던(야누코비치 측의 착각) 우크라이나의 선거는 부정선거가 곳곳에서 보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폴란드 크바니니에프스키 대통령이 유센코를 지지하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끼어 들어 야누코비치를 지원했고, EU에 이어 미국 부시 대통령이 유센코를 지지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일거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유센코 지지를 뜻하는 주황색 깃발을 든 시위대에는 키에프 시민은 물론 지방 곳곳에서 올라온 주민들로 한때 50만 명에 이르러 언론은 이를 「오렌지 革命(Orange Revolution)」이라 불렀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돌이킬 수 없는 혁명의 前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국회는 11월27일 구속력은 없지만 대선 無効 선언했고 대법원은 마침내 12월3일 대선 무효를 판결했다. 다음 날 중앙선관위는 12월26일 재선거 날짜를 공표했다.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의 변화였고 물꼬는 유센코비치 측이 가고자 하는 길로 트였다. 이로써 러시아 말로 변경(우 크라야)에 불과했던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만에 세계의 중심에 도약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세계인이 주목 속에 민주화는 이제 되돌아 갈 수 없는 「이정표」가 됐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1991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의 입김을 피할 수 없었던 과거와의 단절도 의미한다.

시위대는 12월8일 해산했지만 키에프 시내 최중심가인 8차선의 그레샤틱街는 유센코 지지자들의 텐트촌으로 바뀌었다. 무려 18일간의 시위에서 단 한 건의 폭력 사태와 경찰의 연행ㆍ구속이 없었던 점에 세계 언론들은 호평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따뜻한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기자는 21일 키에프에 도착했다. 계속 구름이 덮여 해를 볼 수 없지만 기온은 영하 4~5도를 오르내리는 등 어느 때 보다 온화하다. 가끔 눈도 내렸다. 밤도 길어 오후 4시면 어둠이 내리고 다음날 오전 7시30분이 지나야 밝아진다. 23일 아침에는 하늘이 개이면서 잠시 태양도 나타났다. 冬至가 지났으니 밤도 차츰 짧아 진다고 한다.

키에프 시내는 크레샤틱街가 막혀 교통 혼잡이 심했다. 간혹 오렌지 깃발을 달고 거리를 달리는 트럭도 보였다. 거리 곳곳에는 유센코의 사진과 함께 「TAK(에스라는 뜻)!」이라는 구호로 지지를 호소하는 소형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23일부터는 유센코 지지를 나타내는 주황색 천이나 끈을 단 차량들이 부쩍 많아졌다. 기자가 묶고 있는 투리스트 호텔에는 캐나다에서 온 500명의 선거감시단 중 일부가 22일 저녁 투숙했다. 캐나다 팀은 존 터너 前 총리가 이끌고 있다. 이번 재선에는 8000명 이상의 외국 감시단이 참가한다.

전반적인 우크라이나 여론은 물론 외국의 유력 언론들은 이미 유센코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의 망가진 얼굴이 정보기관에 의한 다이옥신 독극물 감염 때문이라는 보도도 국민들의 여론을 기울게 하고 있다. 지난 12월14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마니아의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도 고무적이다. 미국과 EU가 유센코를 지지하고 있고 외국 선거 감시단도 3000여 명이나 늘어 1차 때와 같은 부정선거는 어렵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26일 선거가 끝나고 하루나 이틀 뒤면 세계인들은 유센코의 승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유센코의 승리는 2004년 국제 정치의 최대 변화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세계인에게 훌륭한 세모 선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렌지 혁명」은 일단 완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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